익숙하기 짝이 없는 물기와 편안하기 짝이 없을 한기가 지금만큼은 찝찝하니 불쾌했다. 물에 탄 재 가루처럼 교묘히 섞여드는 탄내의 소치일 터다. 한 치 물러남 없고 성깔 만만찮은 것들끼리 만나니 겨우 두 번의 마주함 사이 이리도 부닥친다. 불현듯 앞으로도 죽 서로의 살을 깎아먹게 되기란 깨달음이 엄습했다. 낭청 떠는 저 치는 몰라도 자신은 불에 덴 물고기 꼴이 될 것이라고. 불건강한 관계란 몇 번이고 구축해 봤으니 새로울 것도 없다. 이 또한 그저 고와 죽겠는 성품 탓임을 알아서. 헌데 말이야⋯⋯. 대개 제 패악으로 비롯된 폐단이나 이건, 저놈 비중도 깨나 되지 않나? 말본새 한 번 저 못잖게 고약하다. 망령들을 처넣는 용광로 같은 눈만 멀거니 응시했다. 이젠 숫제 뭐하나 보자는 식이었는데, 제 뺨을 만지작거리더니 이윽고 달랑이는 파스를 떼어낸다. 턱 부근만 차단된 공기를 맞닥트려 닿아오는 온도가 달랐고, 상태도 달랐다. 가라앉았네.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알았다. 저놈 짓이라는걸. 어투는 방종하고, 태도는 방자하며, 행하는 짓들은 흉포하다. 요괴 머리통 수십을 뱉더니 예를 갖춰 보내주고, 별안간 물을 끼얹더니 살갗을 원상태로 되돌려놓는다. 머리채에 달라붙는 물기를 툭툭 털며 가만 생각했다. 얘도 퍽이나 변덕스러운 놈이라고.
"머저리가 따로 없어."
스스로에게 복수랍시고 하는 꼴이 제법 웃겨서 열 없는 웃음이 샜다. 자존심에 살짝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앙칼진 낯은 미적지근한 미소도 묘하게 비웃음처럼 보이게 했다. 물론 조소가 없었느냐 물으면 긍정하긴 요원했다. 한바탕하고 나니 정신을 놨나, 슬슬 즐겁기까지 했다. 아니, 뒤틀림은 여전한데. 뭐, 미친 적이 한두 번인가. 백팔십도 돌은 놈은 저 뿐만 아니라서, 웃기지도 않는 질문을 꽁초와 함께 내뱉는다. 가당키나 해.
"진짜 개새끼였음 묶어놓고 채찍질이나 해줬어."
비로소 한쌍을 되찾은 눈. 청보랏빛을 받치는 흰자위 일정 부근에 옅은 붉은 기가 감돌고, 눈매는 약하게 찢어졌다 새살 돋은 상흔이 자리했으며. 상처만큼이나 인격적으로도 자못 흉한 인어가 차갑게 웃으며 농조 섞인 경멸을 뱉는다.
"욕실부터. 이 비루먹을 꼴부터 치워야겠어. 설마 이대로 귀잠 하라 청할 만큼 형편없음은 아니리라 믿어."
창백한 살갗을 휘감고 맞붙어오는 교복 천을 떼어낸다. 미친 것 같긴 하나, 저리 - 물까지 끼얹고 - 되묻는 것 보면 위험하긴 대단히도 위험한가 보다 싶긴 했다.
공물은 자고로 신이나 요괴에게 바치는 것. 하지만 자신은 신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난감한 듯 웃었지만 딱히 거절하진 않았다. 슬쩍 하나를 더 올려주는데 거절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와는 별개로 아야나가 메론소다를 늘 주문한다는 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납득했다. 하긴, 오이소다를 만들진 않을테니까.
"그래도 이렇게 주셨으니.. 저도 하나만 알려주자면 오이소다를 만들면... 아마 아야나님은 크게 좋아할 거예요. 만들 수 있을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말이죠. 오이를 정말로 좋아하거든요. 후훗. 농담이지만요. 실제로 만들어도 팔라진 않을테고."
살며시 웃음소리를 감추면서 그는 류지가 주는 정보. 학교가 끝나면 일을 한다는 말에 일단 기억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에 학교가 끝나면 자신도 한번 와서 어떤 이가 일하는지 보도록 할까. 그런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어 손님이 오는 모습이 보이자 그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 류지에게 대답했다.
"이 이상 붙잡으면 일하는데 방해가 되겠네요.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얘기해요. 좋은 하루 되세요.(ごきげんよう)"
이어 꾸벅 인사를 한 후, 유우키는 안 쪽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잡담의 시간은 끝났으니 이제 이 디저트와 라떼를 천천히 즐길 뿐이었다. 굉장히 좋은 향이 나는 것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류지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트레이를 바라봤다. 다음에 학교에서 보면 정식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방만한 인어의 낯짝에 손을 댄 후로도 무신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들의 학교에서 일어났단 점에선 다소 험악한 사건이라 할 수 있기도 하겠으나, 그래봐야 두 눈 멀거나 턱을 못 쓰게 되지는 않았잖은가? 무신의 입장에선 그만하면 감사해도 모자랄 만큼이나 고이 보내준 셈이었다. 류지 녀석 곁에 머무른 이래로 피 흐르는 산 것에게 험한 수 쓴 지가 얼마만인지. 거칠게 긁혀 줄줄 피 흐르던 눈으로 노려보던 눈빛을 떠올지라면, 무료함에 질렸던 기분마저도 조금은 들뜨게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조금'이라 오래 가지도 못하고. 하여 무신은 오늘도 학창 생활 보내기에 질려서 잠이라도 잘 자리 찾을 작정이었다. 저 멀리에서 중얼중얼 혼자 분주한 요괴 하나를 보기 전까지는.
무신으로서도 저 요괴는 썩 반갑지 않다. 당최 종잡을 수 없으며 귀찮게 안겨드는 것 학교에서는 잡아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귀찮은 상대 마주쳤고, 그 상대가 딴생각을 하느라 바빠 자신을 눈치채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으레 곤란한 일 피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숨기는 것이 보통의 사람이리라. 하지만 노상 말하였듯 무신은 '보통'도, '사람'도 아니며 저 어린 요괴를 제 쪽에서 피하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지 못한다. 그는 차라리 정면으로 쳐 버리는 쪽을 택할 성정이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렇다.
그는 오늘도 그 괴상한 신음 내며 나가떨어지는 요괴 여전하게도 무신경한 낯으로 내려다 보았다.
후기> 유우키는 아야나와 관련된 서사가 많이 나올줄 알았는데 류지가 언급하기 전 까진 관련 서사 보단, 유우키가 류지에게 관심을 두고 풀어가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유우키의 성격 자체가 인간관계를 넓혀가고 친근한 성격인 편이라 대화하면서 즐거웠네요! 고생하셨어요 유우키주!
앗. 나에겐 후기 안 줘도 괜찮은데 말이야! 음. 개인적으로 아야나와 연관이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아야나에 대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굳이 막 언급을 하진 않으려 하고 있어! 접점으로 이야기는 할지도 모르지만...어쨌건 유우키의 이야기는 유우키의 것이고 아야나의 이야기는 아야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무튼 류지와는 다음에 시간이 되면 좀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한 쪽은 요괴의 집사이고 한쪽은 신의 후손이니... 뭔가 관련으로 노고를 이야기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말이지! 고생했어!!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갑각 두른 단단한 낯짝은 뚫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아야나란 요괴가 고민이 있다. 해서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일으켜주시면 물 기회를 준다니. 하, 황당해서 헛웃음 절로 샌다. 쾌한 감정 섞인 웃음은 명백히 아니었다.
약하고 물정도 모르는 것이 감히 기회를 운운해?
힘 빠져 있던 눈이 일순 예리한 빛 띠었으나, 오늘도 오래진 못했다. 주제넘은 것도 정도가 있어야 화가 나는 법. 저 정도로 무겁하게 망발을 해 대면 화내고 경고하는 것마저 귀찮아진다. 무신은 대뜸 손을 뻗어 아야나의 머리통을 손아귀로 꽈악 붙잡으려 들었다. 스미레에게 그랬듯 피멍이 들 정도는 아니었으나 꽤나 지끈거리게 아플 테다. 바보개구리… 아니 아야나가 수월하게 붙잡혔다면, 이어서는 머리통 손에 쥔 채로 번쩍 들어 올리려 했으리라. 마치 밭에서 무 뽑아내듯. 혹은 인형뽑기처럼. 대롱대롱하게.
잡힘과 동시에 인간형에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이 무슨 행동인가??? 그렇다. 먹이가 먹기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그 말씀이다. 아무튼간에 44.4cm의 이 카에루족 캇파는 지끈지끈 잡힌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무신의 한 손에 말이다. 그래. 분명히 아플 게 맞을 텐데.....
"후히히히히히히💕" "역시 카가리 신님 이신 것이와요. 오늘도 아야나의 카가리 신님을 향한 신앙심이 불타오르는 것이와요. " 아, 그래 역시 반한 게 맞는 걸지도. 역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맞나 보다. 저기요? 요괴가 신앙심 운운? 이건 또 뭔 소리죠? 하여튼간에 이 먹이는 오늘도 먹음직스럽게 요괴의 모습으로 파닥거리고 있습니다. 파닥거리며 뭔 헛소리를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