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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나는, 잘 만든 조각 같은 삶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 사람도 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온기에게서 멀어지지 않을 테지.
"응. 네가 잘 하리라 생각할게."
성운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깊게 파고들지 않으며 단지 그 말만 해주었다. 지금까지 봐 온 성운이라면, 그리고 지금의 성운이라면 과욕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필시 말 할 테니, 나나 다른 사람이 나서주는 건 그 때면 되겠지. 성운이라면 그래 줄 테니 나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한편, 성운과 태오가 정확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는 나로서는 성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상도 할 수 없었으나 솔직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 일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오늘을 어떻게 보낼까였다. 나는 내게 기대는 성운에게 마주 기대 성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쿠아리움, 영화, 커플 악세사리, 만화, 저녁, 노을... 그 모든 것을 함께하는 하루. 보통의, 평범한 하루.
그것들을 내가 마다할 이유는 세상이 뒤집혀도 없었다. 그러니 성운의 볼을 손등으로 살살 쓸어주며 말했다.
"어쩌지. 너랑 함께면 평범함도 특별함이 되어버리는데."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매순간 반짝이는 보석 같다며 내게 기댄 포근한 숲향에게 조곤조곤 얘기했다.
"그러니까 시간을 들여서 다 하자. 내가 하고 싶은 거, 네가 하고 싶은 거, 우리가 하고 싶은 거, 다, 전부 하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이, 우리에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우선 아쿠아리움부터 가자. 나 해파리가 보고 싶어. 커다란 수조에 한 가득 들어있는 해파리, 보기만 하면 은근히 귀엽다?"
그렇게 얘기하며 어느새 빈 음료 캔을 내려놓고 성운의 손에 내 손을 겹쳤다. 그리고 맞잡아 꼬옥 쥐려 하며 가자, 하고 생긋 웃어보였다.
번아웃 증상에 대해서 아는가? 달리 특별한 증상은 아니고, 아마 생각나는 그것 말이다. 다 타버려 재만 남은 상태와 같은 그 증상. 그것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눈알 빠지게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원이든 커리큘럼에 목을 메는 학생이든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에서나.
"야, 너 오늘- 어?"
유준이 사무실 문을 열며 뭔가를 말하다가 멈췄다. 그 안에 있어야 할, 오늘도 계획서를 놓고 미적거릴 그녀가 없기 때문이었다.
분명 아까 와 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페이크를 친 건가 싶었지만 곧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 증거로 아메가 쿠션에서 새 개껌을 야무지게 뜯고 있었다. 사무실에 온 건 확실한데, 정작 본인이 없다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멀뚱히 서 있던 유준에게 지나가던 연구원이 말했다.
그녀라면 아까 첼로 케이스를 들고 방음 부스로 향했다고.
"아, 땡큐."
연구원에게 손을 흔들어주곤 바쁜 걸음으로 방음 부스로 향했다. 가는 동안, 갈 거면 말이나 하고 가던지, 하다못해 쪽지라도 남겨놓던지 폰은 장식이냐던지, 그런 잔소리를 해줄 생각 만만이었다.
방음 부스를 열어 그 참상을 보기 전까진.
"...하."
그래, 어째 요즘 조용하다 했지.
방음 부스 안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몇 개 있는 의자는 죄다 구석으로 내던져진 채 뒹굴고 그녀의 첼로는 산산조각이 나 한낱 나뭇조각으로 흩어져 있었다. 벽과 바닥에 군데군데 피가 튄 걸 보니 부수기 전에 현을 쥐어뜯는 기행도 한 것이 분명했다. 그 난장판 가운데 기적 같이 피아노는 멀쩡한 것이 오히려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유준은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가 가장 조명이 들지 않는 구석에 웅크린 그녀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 난리를 쳐놓고 그저 가만히 있었는지 손에서 떨어진 피로 그녀의 주위에 붉은 구역이 그려져 있었다.
"야, 거기서 뭐 하냐."
일단 불러는 보았으나 대답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그 앞에 수그려 앉아 피가 흐르는 손을 건드리자 매섭게 내쳐지는 손길에 기절한 건 아님을 확인했다. 다시 조용히 무릎을 감싸는 손엔 자잘히 부서진 나뭇조각들이 보였다. 가만 보니 팔과 다리에도 잔 생채기들이 울긋불긋했다. 하나 하나가 대단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성가셨다.
그녀의 히스테리는 드러나는 것이 별 것 아닐 수록 그 속이 뒤틀려가고 있음을 수년간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에휴. 하여간 뒷감당은 나만 하지 아주."
유준은 일부러 대놓고 투덜대며 방음 부스를 나갔다. 그리고 조금 후에, 구급 상자와 두툼한 담요를 들고 돌아왔다.
그 때까지도 웅크린 그녀에게 다가가 다시 손목을 잡자 이번엔 아무런 저항 없이 손이 들려졌다. 그것 역시 알고 있었다는 듯, 유준은 익숙하게 핀셋으로 나무조각들을 뽑기 시작했다.
왼손, 다음은 오른손.
양 손의 나무조각만 뽑아내고 놓아주자 곧 손의 상처들이 아물어갔다. 팔다리의 생채기들도 사라졌다.
이제 핏자국과 조금 찢어진 옷만 남은 그녀에게 유준은 담요를 펼쳐 덮어주었다. 그리고 방음 부스의 불을 끄고서 나갔다.
그러네요.. 혜우에게도 가끔 혼자 감정 삭일 시간이 필요한거지 문앞에 맛있는 간식 잔뜩 놔두고 올래 라는 생각으로 성운이가 바리바리 간식 싸들고 와서 문앞에 두고 가는데 갑자기 문너머에서 뭐가 기대앉는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어요 성운이도 이게 뭔소린지 잠시 긴가민가하다가 문에 기대앉고 성운이가 먼저 뭔가 몇분간 허밍하고 있으면 갑자기 화음이 따라붙는 (아니 자라니까)
별개로 혜우가 히스테리로 두문불출일 동안에 성운이가 중상 입어서 중태+의식불명 빠지면 혜우가 어떤 반응일지도 궁금하네요
>>620 (들어서 팔 안에 폭 품어줌)(등 복복) 그려 그냥 궁금한 거에서 끝나자... 흠 문너머로 허밍과 화음이라 저런 상황... 한번쯤 있으면 좋긴 할거같음 문 열고 엉망인 모습 보여주는것까지 쭉 생각해보니 혜우가 내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모습을 내보이게 되는 걸 거라 혜우가 진짜 딴맘없이 온전히 성운이에게 기대게 되는? 순간이 될 지도
>>622 (행복한작은털덩어리)(코쓱)(파고들어자리잡기)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었지만 더욱 확고하게 궁금증에서 끝내야겠어요 👀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상황이네요 성운이도 방금 순찰 이나 스트레인지 레이드나 커리큘럼 막 끝나고 온 참이라 다소 지친 모습으로 더 솔직하게 마주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