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설명을 삼키며 공상속으로 제멋대로 메뉴를 창작하기 시작한다. 더치는 튤립이 꽂힌 커피, 아인슈페너는 대충 외국 이름 같으니까 수염 달린 느긋느긋 아저씨 커피, 드립은 찰랑찰랑 흘리고 다니는 덜렁이 커피..! 일단 쓴 녀석들은 NG─!! 머릿속으로 붉은색 삭선을 쫙쫙 긋는다.
"커피에 우유를 넣으모 커피우유니까네─ 아자씨 커피 하겠슴다──!!"
제멋대로 메뉴를 바꿔 부르다 만약 선배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시 한번 아인슈페너 이름을 더듬더듬 불러본다. 대화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길때마다 카페 내부를 두리번 거리곤. '예전 살던 까페보다 더 예삐네─'라며 감상에 젖은 눈이 된다.
"먼가 꼬롬하이 꼬소하이─ 간지랍네─ 키힛.."
음료를 시키고 나선 잔뜩 채워진 홀빈을 신기하다는듯이 쳐다보거나 진한 커피향에 코를 킁킁거리며 작게 재채기한다.
이것은 오늘도 아야카미 고교의 누군가의 가방에 들어간 카와자토 아야나(라 쓰고 검은 공이라 읽는것) 이다. 지난번에 남자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수모를 겪어놓고 또 왜 남의 가방에 들어갔냐고??? 그야 여긴 1학년 반이고.... 착한 애들만 있을 것 같은걸? 하여튼간에 그래서 들어갔단 이야기다. 별 이유는 없다.
"후히히히히히히히히"
아니 근데 이 가방, 너무 좀 많이 무거운 게 계속 들어가있기 좀 그런 것 같지 않아??? 생각해보면 지나칠 정도로 캔뱃지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 뭐라고 해야 할지?? 범상치가 않았다. 사실 그런 이유로 궁금해서 들어가본 것도 맞지만 말이다. 아니 근데 의외로 들어가보니 별 게 없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그래, 새로 사 온 만화잡지를 꺼내 읽기 위해 지퍼를 열기 전까지는.. 무언가 탱탱하면서도 말캉하면서도 묘하게 단단해보이기도 하는 검은 공이, 가방 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학교에 올 때 이런 걸 넣어 놨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당연함, 평소에도 교과서는 커녕 만화 단행본 따위밖엔 없으니..
일단 보기에 평범한 것은 아닌 게야. 게다가 자세히 들어 보면 묘하게 고른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 것이..... X일리언?
여러모로 수상한 구석이 있는 구체였으나, 구체에겐 어찌 보면 불행하게도.. 이 좌부동은 새로운 것에 지나치게 흥미를 가지는 타입이다. 조용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못된 요괴는 구체에 천천히 손가락을 갖다 대어 살짝 간질이려 했다...
테이블 위로 살며시 올라온 부담스러운 시선은 커피가 나오는 내내 계속되었고. 잔 위로 녹진한 크림이 살포시 얹히는 모습에 침을 꼴깍 삼키지 않을수 없었다. 커피 머신과 포터필터나 탬퍼.. 평소엔 신경도 쓰지 않았던 물건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여유로운 선배의 모습에 '역시 3학년..!'이라며 꽁시랑 꽁시랑, 팔짱을 끼고 감탄의 끄덕임에 취한다.
"나왔다──!"
건네오는 잔을 카운터 위로 쭈욱 뻗어 받는다. 커피와 크림이 만나 기분 좋은 대칭에 스마트폰을 꺼내 찰칵찰칵이며 넘칠듯 말듯한 크림을 쭈욱 입으로 가져간다. 맥주의 청량감에 취한 아저씨 같은 리액션은 덤.
"아이자와 히데미 1학년 임다─!! 슨배임예── 이래 므찐데 계실줄은 마 상상도 못했슴더──!"
선명한 크림 수염을 매단채 경례하듯이 이름을 밝힌다. 가끔 복도에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인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통성명을 하다니. 그래서 더 좋다고. 방끗거리는 얼굴로 말한다.
살짝 간질이는 것에 반응이 오는게 보이는가? 어? 게다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가? 그렇다. 이 공은 살아있다!!! Living Ball 이란 소리다!!!! OMG!!!!! 아무튼간에 한참을 간지럽혀지고 까르르 대던 이 공은, 그제서야 이 가방의 주인이 지퍼를 열은 것임을 눈치채고 말았 다.......
"끼잉"
초롱초롱 눈을 뜨며 눈을 천장으로 돌려 요 와. 머리가 보랏빛으로 물들어져 있다. 자연모인가? 신기하기는 둘째 치고 중요한 것이 있다.
살짝 간질인 것만으로 대번에 반응이 온다. 오라, 이것 보게. 말을(특이한 말투인 것은 자기 자신도 워낙에 그런 편이기에 별 특이점으로 다가오지 않은 것 같다) 해? 까르르 웃어대는 것에 재미가 들려 조금 더 공을 간지럽히다가. 이내 웃음이 멈추고 위를 돌아본 시선에, 요괴는 깨닫고 말았다.
이 녀석, 갓파로군?
나름대로 몇 백년을 거쳐 온 요괴의 삶, 언젠가는 갓파라는 종족과 마주쳐 얘기를 몇 번 나누어 본 적도 있었더랬다. 그 때 만남 후로 얼마 만이더라... 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나저나, 허어, 신기한 녀석이로세. 갓파가 학교에 돌아다니면서, 심지어 학생의 가방에 들어간다라? 대범한 아이로고. 놀람과 의문스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빤히 이 아기 갓파를 바라보다가.... 저런, 못된 좌부동의 장난기가 또 다시 발동하고야 말았다. 곧 씨익, 웃더니...
이럴 수가!!!! 이곳이 사실 가방이 아니라 먹이주머니였다 그 말인가???? 아야나의 눈이 그 말을 듣자마자 단 번 에 휘둥그레졌다. 이럴 수가!!! 게다가 인간의 가방도 아니고 요괴의 가방이었다니!!!!! 단 번 에 탱 탱 탱 하고 튀어올라 책상 위로 안착하는 검은 공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