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다문 입 안에 도사린 턱들이 덜컥 구른다. 당장이라도 저 머리통을 형체도 남지 않도록 짓씹어버리고 싶다. 그러한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다는 것은, 아직은 이성이 충분히 남아 있다는 방증. 본형과 뒤섞여가던 형상이 어느 순간 점차 안정되어가기 시작한다. 겹겹이 갈라졌던 눈은 눈동자 한 쌍으로 돌아가며 몸 안에 꿈틀거리던 기관들도 잠잠하게 가라앉는다. 중요한 이야기 할 판에 우스꽝스러운 꼴 하고 있기도 싫으니, 신이 눈짓하자 서로 잘못 입고 있던 옷도 이쯤에서 절로 뒤바뀌어 주인을 찾았으리라(다만 끝끝내 이 자리에 없는 치마와 블레이저 돌려주지 않은 것만은 그 와중에도 부리는 앙심 되겠다).
그럼에도 끝끝내 거친 태도 거두지 않으니 무신의 천성 무척이나 고약하다. 제 이를 지르물며 윽박지르는 태도만은 여전했다. 두 발 물러난 걸음 세 발 걸어 가까이 다가가고, 바짝 몸 굽혀서 입꼬리 길게 늘이는 꼴 잡아먹을 듯 사납다.
"영용하도다. 아주 잘 아는구나. 그래, 이 내가 너를 해하고 싶을 뿐 까닭 따윈 중요치 않지."
노기 서렸던 태도는 어디에도 없고 이제는 숫제 낙락한 기색 비친다. 제 말마따나 부당한 악의고, 그를 즐거이 느끼는 흉덕한 신격이니. 하하, 낭랑한 웃음 흐르더니 이내 무신이 한손 내뻗어 요괴의 턱을 우악스레 틀어쥐었다.
"썩 구미가 당기는 소리로군. 네 그것을 바라는 듯하니 그리하마. 기왕 이리 된 차 탐나는 목 썩지 않도록 별히 금칠도 해 주지."
손에 든 힘 점차로 강해진다. 으스러질 듯한 압박감 더는 견디기 버거울 만치 더해지다 한계 가까울 무렵, 돌연히 손이 풀렸다. 당장 죽이겠다 으름장을 놓긴 했어도 지금의 제 처지를 망각하지는 않아서. 제길. 대신(大神)까지는 못 되더라도, 적어도 세상에 위명 떨치던 시절만큼만 되었더라면 이리 눈치 봐 가며 다 잡은 것 풀어주는 일 따위 없었을 터인데.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도 간만에 성질머리 조금이나마 푼 덕에 기분이 썩 나쁘지만도 않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후련한 낯으로, 무신은 대단한 아량 베푼다는 양 요괴를 오시한다.
"재사해 보니 어육은 맛이 없겠다. 대신에 그 어린 놈과 있었던 일 소언이나 해 보아라."
오늘의 tmi: 머리를 자르고 금칠하겠다 발언← 아따쉬... 일본사 알못이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적장의 잘린 머리에 금칠을 해서 잔치 구경거리 삼았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 잇어요 해석에 따라 당대 기준으로는 이 행동이 고인능욕이 아니라 경의를 표하고 명복을 비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고도 하지만?? 야마어쩌구는 '내 목과 눈을 탐한다'라며 화를 내는 스미레한테 장식품으로 쓰겠단 말은 꽤 열받는 발언이 되지 않을까 하고 일부러 그렇게 던졌다고 하네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이런 거지. 새하얀 햇귀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살기가 폭죽처럼 터지는 정오, 무신에게 턱을 틀어잡히며 든 생각이다. 푸르른 뺨 위로 새파랗게 타오르는 눈은 여전히 사그라들 기세 전무하고. 무신 낯에 웃음 퍼질 적, 인어 낯엔 되레 소거되는 그것. 무신이 낯빛을 뒤바꾸고, 옷마저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았을 때에도 아직 노려봄은 맹수를 앞에 두고 등을 보이지 않는 행위와 상통한다. 서서히 조여오는 숨통에 이를 악 물었다. 미친 무신 놈, 진짜로 턱을 부수기라도 할 셈인가. 불길함이 파도처럼 엄습했다. 아니, 인어에게 '파도'처럼 엄습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문장인가. 더해지는 고통에 어느덧 정신을 놨나 보다. 이런 얼빠진 독백이나 하고. 와중에도 억 소리 하나 내지 않음은 척추처럼 받치고 있는 인어의 견고한 자아 탓이며, 지독한 성질 탓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발음기관 하나를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였다. 홈으로 빨려 들어가는 수조 물과 같이 밀려오는 숨에 연거푸 기침과 숨을 몰아쉰다. 예상 목록에 없었던 '턱을 놔준다'라는 선택을 그녀가 했으므로. 무신이라 함은 주저 없이 살육하고 함부로 피를 내는 족속 아닌가? 변덕이라 치부하기엔 일전의 살심이 걸렸다. 혹…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이지 '못'해? 그러한 가정까지 드니 잔웃음이 새려 했으나 적절히 제동을 걸었다. 한 번 더 건들면 불명료한 어떤 이유고 뭐고 정말 목이 날아갈 것 같으니.
"고려하시길, 그놈과의 일이 스미레의 목 값만큼은 되나 봅니다? 무신께서 이리 다 변덕을 부려주시고."
그러나 기질만큼은 거듭 입 밖으로 토해져 나와서. 벌겋게 손 자욱 남은 턱 부근을 살살 매만지며 비아냥대듯 뇌까린다.
"할 이야기가 있나. 스미레가 그놈에게 욕보였을 뿐인 것을. 이형을 끼고 살며 그것에게 수호 받는 주제에 괴이 취급하니, 극심한 모욕감과 울분에 시달려 멱살 좀 잡은 거. 고작해야 그뿐. 헌데, 무신께선 시비 가리지 않고 제 인간만 어화 둥둥이시고. 퍽 억울하여라."
연거푸 재수 없다는 듯 건방진 어투로 그간의 일을 줄줄 쏟아낸 스미레는 이맛살을 찌푸린 채 그저 신경질적인 기색으로 말을 매듭지었다. 팩, 하고 돌려받은 와이셔츠를 정돈하곤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