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짧았던 어느 시기의 기억이 떠오른다. 끔찍히도 약하고 느리던 것. 터럭마저 연약하여 제풀에 가죽이 벗겨질 것만 같던 무른 소생. 그것이 끝내 도태된다 한들 그 또한 이치라 생각하면서도, 죽기를 바라는 마음은 가진 적 없다. 늘상 다 큰 정남이 나약하게 군다며 물어뜯기는 하지만, 까마득하게 묵은 무신의 나이로 보면 결국 열일곱을 먹건 팔십 세가 되건 어린 것은 어린 것이라 답지 않은 짓 많이도 하게 된다. 스스로 여기기에도 명확하지 못한 기준이란 사실 안다. 아마 그래서이리라. 놓아달란 말에 순순히 팔을 풀고선 왠지 모를 뚱한 표정 짓게 된 것은. 무신은 드물게도 겸연쩍은 기분이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쑥스러운 사람이 으레 그러듯 신은 이내 아무 이유도 없이 꼬장을 부렸다. 뾰족하게 난─그러나 고작 인간의 것밖에 못 되는─ 이로 류지의 머리통을 제법 아프도록 꽉 깨물려 든 것이다. 한 번을 그러고 난 뒤에야 물기도 껴안기도 모두 놓아 주었다.
"하, 진정 주요한 소간은 따로 있건만 이야기가 어찌 이리 흐르는지 원."
투덜거리며 무신은 한손을 제 얼굴 언저리에 가져다대었다.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됐다 됐다, 그렇게까지 말한 이상 이건 그냥 「싫다」라는 뜻이네. 싫다고 생각하면 굳이 하지 않아도 좋아. 네 아가씨가 장난을 치듯 이건 내 쪽의 장난이었으니까. 놀아주는 거야. 보면 알잖아? 「잘 부탁드린다」고 한 건 네쪽이었으면서."
굳이 말하면 집사가 말한 말은 「싫다」보다는 훨씬 완곡한 의사였지만, 일부러 강한 말을 고르면서 나는 손을 휘휘 저어보였다.
"나 화과자 그냥 받은 거 아니고, 이런 거 받으면 제 값은 하는 주의라서. 네 쪽의 아가씨가 미울 정도로 싫은 것 같으면 이런 거 받지도 않았어."
애초에 누군가를 격렬히 미워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아야나님이 싫습니까 하고 말하는 집사의 말은 차라리 별세계의 이야기에 가깝게 들려왔지만...
"그래도 말이야, 반쯤은 진심이었어. 예절 교육 얘기."
"네 아가씨 그렇게 안온한 온실에만 있는 거 아니니까. 아가씨가 그렇게 모셔야함직 하면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게 어때? 아, 이건 대애충 화과자 사분지일 값이랑 시종을 생각하는 주인의 마─음으로 친 거니까. 「잘 부탁드린다」 그렇게 말했으니까 여기까지 말해주는 거야."
아아, 이래서 지나치게 올곧은 것들은 상대하기 별로다. 자칫하면 이쪽에서 말려든다니까. 그런 생각을 숨기면서 뭇 위정자의 뒤편에 있었던 신은 속으로 쯧 혀를 찼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끝끝내 마지막 심술 다 부리고서는 곧장 원래 하려던 행동 마저 하려고 했다. 그는 얼굴 가까이 가져온 손으로…… 아, 그런데 이제 보니 불은 켜야겠다 싶다. 조금 전까지야 류지 녀석이 갖은 공포에 시달리는 중이었으니 그럴 계제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지금은 제 손에 있는 것 무엇인지 눈으로 보아야 할 테니.
신이 행하고자 하자 손 대지 않고도 절로 불이 켜진다. 밝아진 카페 안 풍경은 평소와 다를 것 하나없었다. 괴괴하게 범벅이 되었던 손자국도, 커다란 벌레가 기던 흔적도 일절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일상의 모습. 무신은 그 평화로운 장소 한가운데서 돌연 괴이한 행동을 시작했다. 인간의 관절이 허하는 최대한의 범위까지 입을 크게 벌려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대로 끄집혀 안에서 딸려 나오는 것은, 첨예한 독충의 이빨이다. 인간 태態의 안에는 다 들어가지 못할 만큼이나 거대한 그것이 자연스럽게 꺼내졌다. 무신은 멈추지 않고 그것을 당겨낸다. 바깥으로, 본래의 반대 방향으로 꺾어──
뚝.
힘을 버티다 못한 이가 기어이 부러지고 말았다. 깨끗이 닦아 둔 바닥에 혈액 몇 줄기 후드득 쏟아진다. 떨어지는 피의 색은 이질적이게도 푸르렀다. 이내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을 갈무리하자 입가에 흐르는 피도 붉게 변했다. 턱을 타고 흐르는 핏줄기 닦아내고는 입 안에 흐르던 것도 대충 삼킨다. 신이 류지의 손에 사해준 것이란.
"내 독니다."
뿌리만 해도 인간의 팔뚝보다 긴 그것이 점차 크기가 줄어들어 간다. 끝내는 손 안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가 되자 그것을 직접 손 안에 쥐여주려 했다.
"네 힘만으로 항거할 수 없는 기사奇事가 벌어질 때엔 이로써 찌르거나 베어라."
인간이 구원을 바랐기에 신은 후손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힘을 주기로 하였다. 이 또한 무신의 종소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