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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하굣길이었다. 시로사키 하나는 역시 인간 행세를 하며 인간들 틈에 섞여 지내는 것은 피곤한 일이라 생각하며 교문을 빠져나왔다. 이제 벚꽃도 다 지고 벚나무에 푸릇푸릇 새순이 돋는구나- 태평한 상념에 빠져있는데, 저 앞에 익숙한 뒷모습이 소녀의 눈에 들어온다. 금발 트윈테일이 흔치 않은 머리 스타일은 아니지만, 양쪽에 묶은 붉은 리본 장식이 같은 반 학생인 후카미 나나라는 것을 확신케 했다.
학기가 시작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녀와는 아직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시간 빌게이츠 시로사키 하나, 이누는 친구는 하나라도 더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떠올리고 지금이 적절한 기회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을 때, 보이지 않게 본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앞서 걸어가고 있는 후카미 나나의 뒤로 살금살금 거리를 좁히려 했다.
뒤로 바짝 다가가서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お は - "
라고 속삭이곤,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녀가 옆을 돌아보려고 하면 사사삭- 뒤로 돌아가 반대편에 서려 했다. 그녀가 신 되는 존재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어차피 안 보이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주마등이 스친다. 그러나 주마등은 주인을 잘못 찾아왔다. 주마등이 죽은 자 혹, 죽을 위기에 처한 자의 경험이라면 자신이 아니라 여기 차디찬 체육관 바닥에 쓰러진 아야나가 겪었어야 했다. 흡사 학대라도 당한 듯한 하룻캇파의 신음 소리에 놀라서 보면 감싸느라 뒤통수에 1차 가격 직후 쓰러지며 바닥으로 인해 2차 가격을 당해 기절한 아야나가…….
단박에 수라장이 된 체육관. 공 던진 학생의 낯빛이 시퍼렇게 질리고, 체육 교사 두 명이 다급히 다가왔다. 얘야, 아야나. 일어나 보렴. 조심스레 어깨를 흔들며 깨워보지만 감은 눈은 도무지 다시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우. 희박한 인내를 끌어올린 한숨이 내뱉어지고, 스미레는 아야나를 기절시킨 학생에게 당장 업고 의무실로 옮기라 명한다. 한기 서린 어조였으나 죄책감에 휩싸인 학생은 정신도 없이 명을 이행했고.
그리고 현재. 사교시가 끝난 점심 시간. 보건 교사는 단순 기절이나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 진단을 받아보라 이른 뒤 점심을 드시러 가셨다. 학생은 스미레가 냉큼-당연하게도-내쫓았다. 하여, 의무실엔 아야나와 스미레 둘 뿐.
고요히 의무실 침대 위에 누워 기절한 아야나를 내려다본다. 황금 안개 같은 오후 햇살이 아야나의 이마와 콧잔등을 스치고 스미레의 진녹색 속눈썹 위에 앉았다. 조용히 손을 뻗어 아야나의 이마와 다친 머리를 조심스레 쓸어넘기며 살펴보려 했다. 혹여 아야나가 정신이 들어 뒤척인다면 검지로 볼을 찌르며 "잠꾸러기 캇파야, 이제 일어나렴." 하였을 것이다.
그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쿡 볼을 찔리며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잠이 깨었다. 여기가 어디지? 마지막에 분명 스미스미 선배님을 지켜드렸는데..... 흐릿하게 눈을 뜨며 일어나 보면 낯설 지 않은 천장이 아야나를 반긴다. 그렇다. 이곳은 보건실이다. 비 오는날이면 항상 오는 곳. 내가 왜 이쪽에 왔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단은 눈앞에 있는 것은 스미스미 선배님인 건 확실하다. 헤실헤실 웃으며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스미스미 선배니이임, 아야나 몇시간 잤사와요.....? "
악, 머리야. 왜 머리가 아픈지 모르겠다. 거울 이라도 봐야 알수 있을 것 같은데..... 이마 쪽이 아프다. 왜지?
지금쯤 통증이 찾아와 머리가 지끈거릴 텐데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헤실 웃는다. 아야나가 몸 일으킨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스미레의 눈이 힐긋 시계에 향했다가 다시금 아야나의 푸른 눈을 응시했다. 아픈데도 해저 비출 만큼 맑고 푸르른 호수 같은 눈. 내게 익고 편안한 호수의 눈동자. 눈은 영혼의 창이라던가. 이 캇파 요괴를 보면 그 말이 딱 맞는다는 믿음이 샘솟는다.
"삼십 분 정도 됐던가. 지금은 점심 시간이야. 보건 교사 말론 단순 기절이라 하나, 만약을 위해 병원을 한 번 들려야 할 듯해. 뇌진탕이라도 오면 큰일이니."
평이한 어조로 고한 스미레가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를 보여준다. 흰 종이 위엔 검게 [외출증]이란 글씨가 인쇄되어 있고 한 장엔 우미 스미레, 나머지 한 장엔 카와자토 아야나라 적혀있었다.
"혹시 몰라 끊어왔어. 점심시간 동안 -병원을-갔다 오면 될듯한데 괜찮으면 지금 출발하자. 아는 병원이 있어. 식사는 걱정 말고. 사줄 터이니."
후카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그녀를 바짝 뒤따르던 시로사키 또한 몸이 닿을 듯한 아슬아슬한 거리에 겨우 멈춰 선다. 놀래려던 것은 이쪽인데 존재를 알고 말을 걸어오는 듯한 그녀의 반응에 되레 놀라는 것은 시로사키였다. 그녀는 소리에 반응해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태연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있나 싶어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녀의 근처에 있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다.
요괴로서의 본모습이라 해봐야 교실에서의 모습에 귀와 꼬리만 더해진 것이라, 모습을 보인다면 같은 반 학우라는 것이 단번에 알아채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위기의식 없이 아까 하려던 것을 마저 행하기로 하는 소녀였다. 후카미의 뒤를 스륵 돌아 반대편에 서서는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속삭이려 한다.
분명 거세게 날아왔지만 그 정도로 아플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맞은 이후로 기억이 없으니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음, 그래도 스미스미 선배님 말대로 병원에 가야 한다면 가봐야 하는 거겠지.
"스미스미 선배님, 아야나 많이 걱정하셨사와요? "
"아야나 괜찮은 것 같은데...." 하고 🥺 표정으 로 바라보나 잠시 후 이어지는 고통에 "아야야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찌릿 하고 아파오는 것이 확실히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역시 병원을 가야 겠다는 마음이 들던 차, 마침 보이는 외출증에 아야나는 눈을 똘망똘망 반짝였다.
"후히히, 점심시간동안 스미스미 선배님과 같이 병원 디녀오는 것이와요? 아야나는 아주 좋사와요. "
예ー이 신난다 스미스미 선배님과 병원(?) 데이트(??) 다. 아니 밥을 사주신다잖아 그럼 아무튼 그게 맞지.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리는데도 밥 사준다는 소리에 좋다고 웃고 있는 아야나였다. 아싸 스미스미 선배님과 같이 밥먹는다~~~~~
후카미의 친절한 답변에 시로사키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사 들으라고 한 거니까 들렸겠지 바보 강아지. 상대에게 요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로 보아서 같은 요괴는 아닐 테고. 너무나도 태연한 반응을 보자면 또 평범한 인간은 아닌 듯싶다. 인간이 됐던 신이 됐던 같은 반 친구 중에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건 또 신나는 일이겠지. 따로 만날 때엔 매번 불편하게 인간 행세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시로사키는 후카미를 빙글 돌아 퍽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하려 했다.
"특별히 용건이 있는 건 아니고.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처음의 물음에 답하며 방긋 웃어 보이는 시로사키는, 여전히 평범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요괴의 모습을 하고서, 혹여나 평범한 인간이라면 정체를 밝히지 않을 요량으로 구태여 제 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노곤한 햇몉에 뇌는 예민하니까, 하고 나른하게 중얼거리고 있으면 하룻캇파의 낑낑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참새처럼 하루종일 짹짹 말하다가 고통이 퍼지는 낯에 재깍 아야나를 살피는 스미레.
"그래. 걱정했지. 우리 하룻강아지, 어떤 범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할까 심히 염려되어 늘 과민성을 달고 산단다."
걱정한 건 맞는데 과장된 면도 업잖아 있다. 단순히 말하면 될 것을 이리저리 꼬아 부러 부풀려 말하는 건 입버릇 안 좋은 스미레의 못된 습관 내지는 반 진담이다. 본디 예민하여 자잘한 병 달고 사는 제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말고 그만 아프라며. 물론 방점은 '그만 아프라'에 찍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여삐 여기는 후배 요괴이니.
"가자."
몸을 일으킨 스미레는 최소 필수품만 챙기고 아야나를 이끈다. 의무실을 나서고, 서늘한 복도를 지나, 정문을 넘는다. 밑창과 비벼지는 건 더 이상 테라조판이나 디럭스타일이 아닌 아스팔트 바닥. 십오 분 정도를 걸으면 산을 등진 구석 귀퉁이에 자그마한 대리석 건물이 있다
이곳은 독 개구리 요괴가 운영하는 요괴 전문 병원으로, 어디든 도달함이 가능한 바다에 서식하는 마당발 인어들 덕에 대대로 정보를 얻게 된 연 깊은 곳이다. 인간 세계에 뿌리내린 베테랑 요괴들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눈을 피해 운영 중인 곳으로 이곳을 찾으려면 독개구리 요괴의 체액이 필요하다. 스미레는 병원과 하나뿐인 병원의 의사에 대해 소개하며 코르크 마개로 덮인 시약병을 보여준다. 투명한 병 안에 담긴 축축한 무언가.
"이게 독개구리 요괴의 체액이야. 나중에 담을 병을 가져오면 나눠줄게."
설명을 끝마침과 동시에 병원에 들어선다. 삼사 층 정도로 보이던 건물의 내부는 단 하나의 습하고 물기 어린 호수를 낀 수풀가였다. 거대한 독 개구리의 모습을 한 요괴 의사가 스미레의 낯을 보자마자 반갑게 아는 체를 해왔다.
-오랜만이군, 자네. 전번엔 <해국>이 왔었는데.
"걔넨 가장 약하니까. 아직 회복하지 못한 이들이 있었나 보군. 그들이 뭐라던?"
-그래도 낯빛이 좋던걸. 거진 수복이 완료된 게지.
"그럼 됐어."
아야나를 대하는 태도보다 훨씬 강한 기세. 일개 요괴 선배가 아닌, 하나의 일족을 대표하는 자로서 어조도, 어투도, 자세도, 눈빛도 연식 깊은 독개구리 의사에 밀리지 않게 무게를 담았다. 그러나.
-너무 힘주고 있구나.
"…시끄러워."
이 망할 독 개구리 영감은 연륜이 너무나도 깊었다. 치밀어 오르는 민망함을 헛기침으로 분산 시키곤, 아야나의 등을 밀어 독 개구리 의사에게 보여준다.
"얘 좀 봐줘. 머리와 이마를 맞았어. 심한 건 아니겠지?"
-어디 보자. 아구구, 이거 벌써 퍼렇게 멍 들었구만. 많이 아프지 않았느냐? 흐음… 별 이상은 없다만 당분간 머리는 조심히 하는 게 좋겠어. 그런데, 이올(여기서 스미레가 의사를 노려봤다), 크흠, 스미레가 인어도 아닌 다른 요괴를 데려오다니. 흔치 않은 예쁨 좀 받나 보군.
재밌다는 듯 낄낄 거리는 독 개구리 요괴. 어린 손녀를 놀리는 할아버지라도 되는 듯이 구는 게 짜증이 나 무심코 조용히 하라며 일갈했다. 이윽고 아야나의 어깨에 살풋 손을 올리며 말한다.
"이 영감, 의료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에도 빠삭하니 궁금한 게 있음 지금 물어봐. 말마따나 흔치 않은 예쁨 받는데 흔치 않는 경험도 좀 해봐야지."
중심이 흐트러진 틈을 타 그대로 그럼에도 날아오는 주먹을 펼친 부채로 쳐내 막아냈다. 흐트러진 위력에도 불구하고 손이 저려옴과 동시에 부채가 너덜너덜해졌음을 확인하니, 꽤 기분이 나쁘다. 새로 장만해야하니까.
"도발이었다면, 좀더 협박조였겠죠?"
던지는 말에는 상대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이지만 이렇게 물어온다면 한칸 뒤로 빼는게 전략의 상책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하고 뒤에서 악수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니까.
"누군가를 속이려면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 볼정도로 눈치가 좋아야 하겠죠. 요컨데 가설입니다. 첫째로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는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걸 확인했으니 본인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일일 가능성이 높겠죠. 경우의 수를 보자면 시험의 아닌 일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는 추론이 틀리게 된다만. 세치 혀를 놀리는건 내 특기니 적당히 맞춰보는 걸로 하자.
"타인의 일이면서 걱정되는 것. 그런것으로 소거법으로 정리하다보면 일단은 가족관계가 가장 우선시. 다만 사토군의 아버지는 그럴 느낌은 아니였으니, 그럼 누구겠어요. 당신이 문제겠죠?"
후히히 웃으며 말하는 것 역시 반 진담이다. 누가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보건실에 데려와 준것은 스미스미 선배님일 것이 분명하다. 바로 옆에 있었던 스미스미 선배님이 아니었더라면 빨리 보건실에 오지도 않았겠지. 자……그건 그거고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다. 몸을 일으키는 스미레를 따라 아야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쫄래쫄래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병원에 갈 시간이다.
보건실을 나서고 복도를 지나 정문을 나서, 스미스미 선배님을 따라 쫄래쫄래 걷다보면 어느새 산을 등진 곳에 웬 병원이 있다. 아야나로써는 한 번 도 가본적이 없는 병원. 당연하다. 보통 병원은 유우 군과 같이 가니까 이런 요괴들 만 오는 병원에 아야나가 오게 될 일이 없다. 코르크 마개로 덢인 시약병을 보여주는 것에 눈을 똘망똘망 밝히는 아야나. 투명한 병안에 뭔가 신기한 축축한 것이 담겨있다.
"우와아아앙"
담을 병을 가져오면 나눠주겠다는 스미레의 말에 알겠다는 듯 아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나중에 조그만 유리병을 찾으면 가져오겠사와요…아야야. “
찌릿 하는 느낌이 여전하다. 제 머리를 둥글게 쓸어보이며 스미레를 따라 나서니 내부에 보이는 건 거대한 수풀가. 와앙 와아앙 하고 신기해하는 목소리가 내부를 가득 채운다. 아픈 와중에도 구경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듯 하다. 스미스미 선배님과 커 다 란 개구리 의사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도 흘려들으며 여기저기 수풀을 구경하고 있던 차, 얘 좀 봐달라는 말에 얼른 다시 제 자리로 아야나는 돌아왔다. 진료 시간이다.
“오이잉? “
독개구리 의사 선생님의 손길은….. 카에루족 캇파의 손길과는 다소 달랐다. 이름이 카에루 일 뿐 우리들은 엄연히 말하자면 개구리는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인가?
그와중에 예쁨 받는다는 말을 들으니 그건 좋은 것 같다. 스미스미 선배님에게 계속 예쁨만 받고 싶다. 아야나는 스미스미 선배님이 제일 좋으니까. 후히히 거리며 진료를 받던 와중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말에 으음 하다가 물어보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