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X를 담아、나로부터。 편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직접 전해도 괜찮습니다. ※ 누가 내 편지를 옮겼을까? 신발장에 감춰도 좋습니다. 장난꾸러기가 건들겠지만요! ※ 수수께끼의 편지함 누구에게 갈지 모르는 랜덤박스에 넣어봅시다. 상대도 랜덤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
요즘따라 비가 자주 나린다. 등교할 때 우산을 가져가지 않았는데. 그래도 부슬부슬 봄비는 따듯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기분 나쁘지 않게 맞아줄 만하다. 역시 인간들 틈에 섞여있는 건 괜히 피곤하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 변덕으로 하굣길에 곧장 신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내를 어슬렁거리는 것인지.
딱히 허기가 진 것은 아니고. 부드러운 고소한 냄새에 무심코 이끌려 따라가다 보면 '블랑'이라는 카페가 나온다. 가게 앞 화단에 꿈틀거리는 지네를 무심히 내려보다 속으로 주워갈까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까의 고소한 내가 더욱 진하게 다가와. 외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끼며 카운터로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아메리카노 하나 줘."
하고 말하더니 혼자 화들짝 놀라서 손끝으로 제 입술을 톡 때리고서 다시 말을 잇는데.
"... 주세요."
신 되는 자에게도 반말을 내뱉던 이누라는 작은 존재가 그디어 인간의 문화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방증일까. 혀를 샐쭉 내밀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주머니를 뒤져 일전에 받았던 아르바이트의 노동비인 500엔짜리 주화를 하나 꺼내어 꽤나 어린 인간인 주인장에게 쑥 내밀어 보인다.
일정적으로 여유가 되는 시간이 지금이기에, 지난번 고교에서 만난 카와자토의 옷을 수주받는 일을 오늘에서야 진행하려고한다. 누가 방문할지는 정해놓지는 않았기에 누가 오느냐에 따라서 대접은 달라지겠지. 카와자토의 요괴녀석이라면 조금쯤은 뇌리에 공포를 각인시켜주는 것이 좋을까. 카와자토의 요괴를 섬기는 인간이라면 약점을 캐내는 것이 좋겠지.
"이 노가쿠는 꽤 공들여 준비를 해놓았으니까. 즐겨줬으면 좋겠는데."
상점가의 골목사이로 들어가 그리 좋지않은 입지에도 불과하고 토코요 常世라는 간판은 전통복전문점 이라는 정체의 글자와 함께 마치 그자리에 수십년은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었다. 실제로는 10년이 채 되지않은 이 상점가에서는 비교적 신규의 상가임에도 불과한데도.
어린 주인장이 500엔 주화를 건네받으면, 어딘가 자리에 앉을 생각은 않고 카운터 앞에 멀뚱히 서서 밖을 바라본다. 우중충한 회색 하늘, 우산을 쓰고 느리게 걸어가는 인간들. 이런 풍경도 꽤나 여유롭고 운치 있다 느낄 때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트레이에 잔돈과 함께 주문하지 않은 쿠키를 하나 함께 내어주는 주인장을 돌아보며 싱긋 웃어보이는 흰 머리의 소녀.
"고마워. ... 요."
역시 존댓말은 어색하다 생각하며 어설픈 인사를 건네고선 카운터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적당히 앉아 두 손으로 따듯한 머그컵을 감싸들어올려 호록 소리 나지 않도록 입에 대어보는데. 고소하고 따듯한 것이 꼭 옛적의 그이가 달여주던 쓴 약물이 생각이 났을까. 고개를 스륵 돌려 다시금 밖을 바라보며 잔을 내려놓고는 괜히 손등으로 눈을 비비는데.
여기서 작은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주인장에겐 미안하지만, 팔을 들면서 옷자락에 걸린 머그컵이 쓰러져 테이블에 온 커피가 다 쏟아져 버린 것이다. 희연 맨 다리에 뚝뚝 흐른 뜨거운 물에 아파하는 기색은 없고 주인장을 힐끔힐끔 돌아보며 어쩔 줄 몰라 기어코 제 옷자락으로 물기를 닦아내려 하는데.
>>273 토요일이다! 주말이다! 옷을 맞추러 가는 날이다! 저번에 사쿠야님께서 방문하셔서 알려주신 곳으로 가기 위해 카와자토 아야나는 저택을 나와 종종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그녀가 갈 곳은 토코요常世. 전통복전문점이라 알려진 곳이다. 대로변에 있지 않아서 여기저기 찾아서 가야 하는게 힘들지만 뭐 어떤가, 유우 군 대신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서이다. 유우 군을 위해서 더 멋지게 맞춰줘야지! 라는 생각에서였으니.
"그건 그거고 상당히 골목길에 있사와요, 이곳..... "
뭔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추워지는 느낌 같기도 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심리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하여튼간에 여기.....가 맞나? 토코요 라는 간판을 보면 맞는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이며 아야나는 조용히 노크를 하지 않고 문을 열어보려 하였다...
>>278 뭔가가, 이상하다?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문은 이미 굳게 닫혀버린 지 오래였다. 당황해서 문을 열심히 열어보려 시도하였으나 요괴의 힘으로도 소용이 없었다. 이럴 수가! 요괴의 힘으로도 못 여는 문이 존재하다니, 이곳은 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열 수 있는 것.....열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와요.... "
덜덜 떨며 주위를 둘러보며 문을 열만한 것을 찾아 요 아니 근데, 진짜로, 여기 대체 어떤 곳이길래 들어가자마자 문이 이렇게 된 것일까? 무섭사와요. 너무나도 무섭사와요.
고맙다는 인사보단 미안하단 말이 지레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다. 머그컵이 쓰러지는 것은 꼭 절벽에서 사람의 등을 밀었을 때의 아찔한 감각을 닮았다. 그보다 무서웠던 것은 또 민폐를 끼쳤다는 것 때문일까. 작은 소녀가 교복 위에 걸친 흰옷자락으로 닦아내려 했던 것은 어지러진 테이블인데. 친절한 주인장이 건네준 티슈로 커피가 묻은 다리를 슥슥 닦아내고서는 뜨거운 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자리에 얼음이 담긴 봉투를 잠시 대고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손에 든 티슈로 바닥에 흐른 커피를 닦으려 하는 것이다.
"괜찮아요. 폐를 주어서 미안합니다."
다급한 손길로 바닥에 물들지 않도록 물기를 닦아내려곤 하는데. 문득 드는 생각은 어째서 이곳에 만났던 인간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선한 것일까였다. 그래도 존댓말이 빠르게 익었는지 다급해서 우연이었는지 모르지만 말은 똑바로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