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사회에선 그렇지. 다소는 인정해주지만 아픈게 모든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 법이고.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큰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해봤자, 사실 그게 말처럼 쉽지도 않지. 다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얘기를 하는 것은 다소의 위안이 돼. 사람은 감정을 유지하는데에도 에너지가 들거든. 그것을 계속 토해내면 좀 줄어들어.
행복이라는 것은 사실 지독히 상대적이라. 아직도 행복하다의 정의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야.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들려오는 새소리가 조금 다르다던가. 아침에 먹은 음식의 간이 그날따라 잘 맞는다던가. 길을 걷는 데에 딱 맞게 튼 노래가 내 마음에 든다던가. 하루는 그냥 편의점에서 맘에 드는 사탕을 사서, 그걸 우물거리며 일하러 간다거나.
나는 그런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하다고 해. 아주 큰 행복이란 것들은 20대의 초와 말까지 이루었으니. 더 큰 행복을 쫓기보단 지금의 행복을 알고 싶다고 느낀지 벌써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있고.
얘. 살면서 특별한 행복만이 필요한 게 아냐. 네 호흡 달싹여 닿을 거리에도 찰나의 행복을 줄 만한 것들로 가득하단다. 네가 할 수 없던 것들은 조금씩 둘러보면 완전히 같진 않아도 해볼 수 있는 것들로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너에게 필요한 건 오늘을 버틸 수 있는 생각이고. 그로 하여금 내일 일어날 고통보다도 손끝에 닿을 행복을 기대할 수 있으면 되는 거야.
네 우울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란 얘기는 많이 들었을 거야. 몸 가득 우울이 젹시는 때가 분명히 있겠지. 답답하고 어지러운 순간 때문에 답답할 때도 분명 있을거야.
그럴 때에는 언제든 이곳에서 토로해도 돼. 나는 여기 모두를 탓할 생각도, 마음도 없어. 단지 너희들의 장난같은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고 말해주며 하루를 보내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일 뿐이란다.
그러니까. 내가 듣는 동안에는 언제든 와서 얘기해보렴. 네 고민 따위, 생각 따위를 내뱉고. 듣고 나면. 항상처럼 그랬구나. 하고 답해줄 수 있으니까. 그걸로 다르지 않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단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하는 시간이 되리라 믿어.
우울은 전염성 맞아. 남의 우울한 얘기를 듣다보면 마찬가지로 우울해지고 다소 피곤해지는 법이지. 근데 그건 달리 말하면, 슬픔을 나눈다는 분담이나 공동 작용으로도 볼 수 있는거야. 그러니 네 우울을 나눔받아줄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그러는건 민폐지만, 들어줄만큼 친한 사람에겐 다소 신세 져도 돼.
🥲 기화펜으로 바꿔두는거 진짜 똘이가 할 법한 장난이다... 가끔 예전의 추억을 구경하기 위해 18년도에 뛴 어장을 구경한다거나 그럴때까 있는데 그때의 나는 답레를 무슨 700자를 써서 준거야 지금 나는 답레로 헛소리밖에 못하는데 일상 돌려야지 어장이 활성화되는건 아는데 요즘은 그냥 헛소리도 안 써져...
애초부터 그냥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 봐. 나는 요즘 눈팅족이기 때문에 새벽 2시 40분에 네 레스를 보고 슬쩍 무시하고 못 본척 넘길 수도 있었어. 아마 친하지 않았다면 그랬을거야. 그게 제일 간단하고 편하기 때문이지. 굳이 나와서 대화중인건 적어도 그런걸 신경써줄 만한 관계성인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