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좋아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유우키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시라카와 가문의 사람으로서, 모시는 가문의 아가씨가 이렇게 신뢰를 해준다는 점은 상당히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물론, 순수하게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유우키는 혹시 다른 아는 이름이 없을까 싶어서 2학넌 C반의 이름을 천천히 확인했다. 아는 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모르는 이의 이름이 조금 더 많았다. 물론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작년 기준, 1학년 학생들을 모두 아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한편 다른 곳을 바라보는 아야나의 행동에 유우키는 덩달아 그곳을 바라봤다.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은 2학년이 아니라 1학년의 반과 이름이 실려있는 곳이었다. 그곳을 바라보며 어라라? 라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우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야나님?"
거기에 적혀있으면 안되는 이름. 혹은 아는 이름이 적힌 것일까. 그는 살며시 눈으로 쫓긴 했으나, 그녀가 어떤 이름을 보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까진 알 수 없었다. 일단 1학년 C반 쪽을 바라보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는 도중, 그녀의 입에서 물음이 나오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저는 학교 관계자가 아니니까 거기까진 잘 모르겠지만 어지간하면 없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는 아직 그런 사례는 듣지 못했거든요. 1학년 C반 쪽에 있어서는 안되는 이름이라도 있었나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유우키는 다시 한 번 위에서 아래로 쭈욱 이름을 확인했다. 하지만 제 눈에는 딱히 이상한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이어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녀는 후배라는 뜻이 뭔지도 모르고서 '님'자만 들어가면 높은 사람으로 대우해 주는 줄로만 알고 그저 만족스러운 듯이 배시시- 웃는다. 주변을 둘러보는 소년을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면 역시 인파로 복작이는 사내의 풍경이. 시끌시끌한 것이 재미있는 거리도 많아 보인다만. 뭐라도 먹지 않겠느냔 소년의 물음에 아주 잠시 고민하더니
"좋아."
라고 답하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좋지 않다는 말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라니까. 소녀는 소년이 무어라 말하거나 움직이는 것보다 먼저 그의 옆으로 찰싹 붙으려 하면서
"어서 가자."
라고 벌써부터 재촉스럽게 굴어버린다. 먹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뭘 먹을지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으면서. 쓸데없이 마음만 급해서는.
어쨌건 여기에 쓰여있다고 한다면 필시 이 학교의 학생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단순히 이름이 같다고 해서 그녀가 생각하는 이와 동일한 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당장 유우키라는 이름도 자신 혼자만 쓰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으니까. 그저 우연일수도 있다는 듯,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와 동시에 나중에 확인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듯이 그는 그녀에게 권유했다. 애매하고 모를 때는 직접 물어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도록 하죠. 그럼 반까지 에스코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야나님."
제 옷깃을 잡아끄는 그녀를 바라보며 유우키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유우키는 본교 건물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향했다. 당연히 그의 보폭은 아야나에게 맞춰져있었다. 본교 건물로 들어간 후, 신발장을 열어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신고, 유우키는 계단을 올라 천천히 2학년 교실이 있는 복도로 향했다.
2학년 A반. 2학년 B반. 2학년 C반. 여기구나. 곧 2학년 C반을 발견하며, 유우키는 아야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여기인 모양이네요. 일단 나중에 자리 배정이 따로 되겠지만... 괜찮다면 오늘 하루는 아야나님의 옆자리에 앉아도 괜찮을까요? 적어도 오늘 하루는 가깝게 있는 쪽이 저로서도 아가씨를 서포트하기 좋을테니까요."
물론 반에서 무슨 서포트를 할 일이 있겠냐만, 그럼에도 자잘한 것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를테면 지우개가 필요할 때 지우개를 빌려준다거나 식으로. 아무튼 그녀의 허락을 구하면서 그는 반에 들어가기 전에 그녀의 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TMI 시코쿠에 있는 린게츠의 본가는 상당히 '거대한' 일본 전통 가옥이다. 넓은 정원도 있고 잉어가 자라고 있는 연못도 있다. 화려하기 보다는 단아하고 고요한 멋이 있는 건물로, 건물 한 채는 적당히 개조하여 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용인들은 대부분 요괴, 특히 바케다누키이며 힘 없는 요괴를 거둬다 키우기도 한다. 여관으로써 평은 무척 좋다.
다-만- 린게츠는 자기 본가에 가는 일이 드뭄다. 년에 한 번은 주기적으로 들르긴 하는데, 오래 지내지는 않슴다. 그래도 결계는 꾸준히 갱신해준다고 하네여.
돈이 어디서 났냐고 하면.. "아무리 그래도 2천년 넘게 살아왔는데, 뭔가 해둔 게 없으면 그게 위험한 거 아닐까-?"라고 함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 만발한 앵화, 하늘하늘 내리는 꽃비를 맞으며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을 체감하게 되는 시기. 청춘이 아니고 연인이 아니어도 무릇 사람이라면 가슴에 사무치는 설렘을 품게 되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무신 역시도 이 시기를 썩 좋아했다. 물론 보편적인 감수성처럼 꽃이 피어 좋다느니, 새 소리가 아름다워서라느니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봄은 겨울 동안 둔해진 체절이 유연해지고 먹이활동이 편해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 정정한다. 새가 울면 잡아먹기엔 좋으니. 여하간 처참할 정도로 낭만 없는 무신조차도 좋아하는 봄날이라 이 말이다. 한데 지금 그는 제법 좋아하는 그 봄 때문에 다소 짜증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꽃잎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
인간들은 제정신인가? 무슨 놈의 꽃나무를 이렇게나 다닥다닥 길게 붙여 키우냔 말이다. 낙화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그저 길을 걷기만 해도 눈앞으로 꽃잎이 짓쳐들고 입을 열라치면 입 안에 꽃잎이 들어가 거슬린다. 꽃잎 맛은 고약하다. ……아름다운 꽃나무 길을 걸으면서도 내놓는 감상이 가히 참혹했다. 불만이 있다면 본인이 다른 길로 가면 될 테지만 무신이 언제는 그렇게 상식적인 신이었던가? 거슬리는 것은 죄 때려부수고 해치는 것이 야마후시즈메의 방식이다. 과연 그는 오늘도 악명 값을 저버리지 않았다. 쌓여가는 짜증도 결국 한계선에 다다르고, 무신은 이윽고 어떤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묵직한 걸음걸이 어느 순간 멈춘다. 무신이 문득 제 옆의 꽃나무를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 천천히, 부드럽되 급속히 이어지는 동작. 완벽한 각도와 형태로 돌아가는 팔, 비틀리는 상체, 다리로부터 전달되는 회전력의 각, 이 세상 어떤 인간도 흉내내지 못할 묘리와 신기를 담은 권(拳)이― 애꿏은 벚나무에 작렬한다!
쾅!
벽력 같은 폭음, 아니 소음이 일대를 울린다. 우렁찬 소리가 떠나간 자리에는 정적만 가득하다가…… 이내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 소리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겨울을 버텨 가며 애써 피워낸 꽃잎을 죄다 떨구게 된 나무는 순식간에 새순만 남은 처량한 몰골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아예 나무를 부러뜨리지 않은 것만은 최소한의 자비인 듯했다. 따사로운 햇살과 아름다운 꽃비 아래, 나무에 정권 질러서 꽃 다 떨구는 광인의 등장이라……. 아야카미의 생태계는 이토록 냉혹했다.
>>40 아하아하 옛 신토 세계관 관점에서는 일상적이지 않음=인간의 영역이 아님=신성함 같은 느낌이었다니 캡틴 지식백과야😮 모르고 있었던 부분인데 뒤로 갈수록 왼손이 부정한 것이 되는 것과 아오이의 영락이 연결된다고도 할 수 있다...??? tmi 너무 좋아 캡틴은 천재야 최고🥺🥺🥺 캡틴이야말로 푸짐한 썰 줘서 고마어
>>71 괜......괜찮아요 나무가 박살나는 다이스였으니까요😌
>>74 >>"아무리 그래도 2천년 넘게 살아왔는데, 뭔가 해둔 게 없으면 그게 위험한 거 아닐까-?"<<
영혼 빠진 대답. 소녀는 키미카게의 곁을 총총 걸으면서 점포를 둘러보기보다는, 사삭- 사사삭- 재빠르게 움직이며 그의 왼쪽에 섰다가 뒤로 돌아가서 다시 오른쪽에 섰다가. 때로는 그를 흘금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꽤나 정신 사납게 굴고 있었다. 좋아하는 게 있냐는 물음에는
"음... 규동. 온센타마고 두 개 올라간 거."
라고 무심결에 답하는데. 봄꽃 신사의 간이 점포에서는 팔지 않을 것 같은 메뉴다. 소녀는 지금 그게 먹고 싶다는 뜻으로 한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답을 한 것일 뿐이지만. 저걸 언제 먹어봤더라- 하고 돌아보면 너무 먼 생각이라.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으로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내가 미쳤지. 그는 그렇게 되내이며 꽃나무 아래에 돗자리까지 핀 상태로 앉아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꽃놀이랍시고 나온걸까. 혼자서.. 괜히 옛날 생각이라도 났던가. 한심하기 짝이없는 생각에 잠겨 그는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어휴 바보야.. 잠이나 자자."
주변 사람들의 웃음소리마저 거슬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벗어나지 않은채 그냥 누워서 잠을 청한다. . . .
1시간쯤 지났을까? 그가 눈을 뜬것은 굉음 때문이었다. 누가 나무에다가 수류탄이라도 던졌나? 아, 그랬으면 그는 죽었겠지.
"?"
이게 무슨 일이람. 그가 몸을 일으키자 쌓여있던 꽃잎들이 떨어져나갔다. 아마도 잠시 잠든 사이 꽃잎이 다 떨어진거 같은데.. 아니 이게 진짜 무슨일이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자 경악하는 사람들과 함께, 타는듯한 붉은머리의 여성이 보였다. 이 사람이 꽃잎을 다 떨어트린건가? 왜지..?
"음... 거기 예쁜 누나?"
그가 완전히 몸을 일으키자 꽃잎이 움직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로서는 봉변을 당한 꼴이었으나 어째서인지 그는 다소 기분이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글쎄, 왜일까. 시끄럽던 주변이 조용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저도, 기왕이면 그쪽이 좋긴 합니다만... 결국 자리 배정은 교사가 하는 것이니,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일단 1년 같이 다녔으니, 시라카와 가문과 카와자토 가문의 관계는 알 사람은 다 알 것 같으나 그럼에도 교사가 그 편의를 모두 봐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비가 오는 날, 유우키가 수업을 듣지 않고 그녀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보면 상당히 편의를 봐주는 것이었으니 더더욱. 일단 올해 같은 자리로 쭉 있을 수 있길 바라며 유우키는 곧 들려오는 아야나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올해도 그 포근함을 줄 수 있도록, 이 시라카와 유우키. 노력하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는 그 말에 유우키는 교실 문을 열고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반에는 여러 학생들이 있었고,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들도 저 안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일단 자리에 앉는 것이 우선이었다. 눈으로 가만히 쫓다가 일단은 중간 정도에 있는 자리에 ㅡ물론 에어컨 바람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자리였다.ㅡ 들고 있는 그녀의 가방을 내려놓고 유우키는 이어, 그녀가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뺐다.
그리고 자신은 바로 옆자리로 간 후에, 제 가방을 내려놓았다. 일단은 이 자리로 선택하기로 하며, 유우키는 아야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새삼스럽지만... 올 한 해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아가씨."
당신의 한 해가 즐거움으로 가득하길. 올해도 어김없이, 당신을 도우며, 행복한 추억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그렇게 빌며.
/일단 교실에 들어왔으니..막레로 하면 되려나? 막레처럼 쓰긴 했는데 좀 더 잇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어도 괜찮아!
음식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단 그냥 이렇게 노는게 재밌어보이기도 하는 시로사키의 모습에 그는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정신사납게 굴고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약간 꿀꿀하던 그에겐 이게 꽤 좋은 분위기 전환이 되어 살짝 기분이 좋아진듯하다.
"규동?"
아무래도 서서 먹는 점포들 사이에서 규동을 찾는건 어려워보여 다른걸 물어보려던 그였지만. 웬걸 묘하게 다른 시로사키의 반응과 돌려버린 고개에 그는 점포들을 둘러봤다. 그리고나서 한 방법은 별건 아니었고. 한 점포에서 밥을 구하고 ㅡ 사실 이게 제일 어려웠다 ㅡ 다른 점포에선 덮밥에 올릴 고기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점포에서 훌륭한 교섭? 능력으로 불과 계란을 빌려 온센타마고 흉내를 낸 반숙과 얻어온 소스까지 합해 즉석에서 규동을 만들어냈다.
"미안, 아마도 네가 좋아하는 그 맛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맛은 없지 않을건데. 먹어볼래?"
여기저기서 빌린걸 어거지로 조합했을뿐이고, 애초에 시로사키가 말한것은 평범한 음식을 말한것도 아니겠지만. 아니, 착각일지도 모르는거긴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뭔가 찝찝했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