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라하면 누구나 방학이 끝나는걸 싫어하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알바를 늘릴 수 있는 그에게 방학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도 있었다. 학교를 싫어하는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마땅한 보호자도 없는 그에게 금전은 언제나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공부라도 잘했으면 모를까.."
2학년 중간고사까지 바닥을 치다가, 이제서야 중위권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적을 받았던가. 그는 한숨을 쉬며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자고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기왕 이렇게 된거 방학 끝나는 기념 뭐라도 먹을까 싶어 길한복판에서 잠시 옆으로 비켜 전봇대에 기댄채 핸드폰을 꺼냈다. 그래도 지금은 약간의 여유도 생겼고, 핸드폰도 있고 ㅡ 2학년이 되어서야 살 수 있었다. ㅡ 옛날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여기온지 이제 3년째인데 아직도 주변을 잘 모르는건 너무한가."
바빠서 그런지, 성격탓인지. 그는 자신이 알바를 하러 가는곳이나 학교를 제외하곤 주변을 잘 기억해두지 않는편이었다. 아무튼 적당히 근처 가게를 검색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그는. 껌이라도 씹을 생각이었는지 아직 뜯지 않은 껌 한통을 꺼냈으나.
"어라."
핸드폰을 보고 있어서인지, 실수로 꺼내던걸 놓쳤고. 네모난 주제에 내리막길에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껌을 잡기위해 뒤늦게 움직여야 했다.
시라카와 유우키.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두고 있는 그는 한손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으며, 와이셔츠에 검은색 양복 상하의를 차려 입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복 차림 그 자체였다. 물론 그렇다고 상의의 단추를 다 잠근 것은 절대로 아니었으며, 모두 풀어둔 상태였다. 아무튼 근처 마트에 가서 요리에 쓸 식재료들을 산 그는 카와자토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뭘 만들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요리를 떠올리는 도중, 갑자기 옆의 오르막길에서 뭔가가 굴러오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라?"
이내 그 굴러오던것이 제 발 앞에서 바로 멈췄고, 그는 그것을 허리를 굽힌 후에 집어들었다. 이것은 껌? 왜 껌이 여기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는 살며시 고개를 위로 올렸다. 저 앞에서 달려오는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처음 본 유우키는 키가 정말로 크다고 생각했다. 일본인 남성의 평균 키 따위는 한참 초월한 거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자연히 자신의 키에 비해서 얼마나 큰지를 떠올렸다. 어림잡아 10cm는 큰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는 이어 살며시 사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 부스스한 느낌이 들면서도 불그스름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그의 눈에 비쳤다. 그러면서도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우키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쥐고 있는 껌을 내밀었다.
"이거, 당신의 껌인가요?"
싱긋. 사람 좋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만약 자신의 껌이 맞다면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그는 손을 그 자리에 가만히 고정시키고 껌을 잘 볼 수 있도록 좀 더 앞으로 가져갔다.
데굴 데굴 굴러가던 껌이 멈춘다. 그제서야 껌만 보고있던 그의 시선이 저절로 껌과 닿은 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올라가 눈앞의 사내에게 닿았다. 정장을 보고 성인인가 싶었지만. 뭔가 앳된 느낌이 보여 내 또래려나? 하고 생각을 바꿨다가도. 하지만 동안일수도 있는데... 까지 생각한다.
물론 그건 별 중요한건 아니고.
"아, 감사합니다."
어쨌건 껌도 주워준데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반말을 찍찍 할 정도로 그는 예의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설령 상대가 나보다 어렸다고 해도 초면에는 예의있게 굴어야하지 않겠는가. 사내 덕분에 더 뛸 필요도 없이 껌이 멈췄기에. 그는 숨을 고르며 사내에게 다가가 머쓱하게 웃은뒤 껌을 받아들었다.
"네모난게 잘도 굴러가네요."
뭔가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가 뭐 별게 있겠는가. 그저 껌을 꺼내다가 슬쩍 내밀어서 혹시 하나 드실래요? 하고 어색하게 말할 뿐이었다. 싫으면 어쩔 수 없고.
"어라, 근데..."
어째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그는 동급생이면 모를까, 후배들까지 기억하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 강당 같은데서 오가며 볼 일은 더러 있어서일까. 묘하게 사내를 완전히 처음 본 느낌이 들지 않아 호기심이 떠오른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아야카미고 다니시지 않아요?"
사실 이 사람이 고등학생이라면 90% 확률로 앚긴 할거다. 여기 고등학교가 거기밖에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