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uplay>1597031091>969 고양이에게 쫓기는 캇파라. 이 얘기를 카와자토 당주에게 하면 녀석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웃을 수도 있겠다. 일단 내가 좀 웃었거든. 입에 후토마키를 가득 문 채 살았다는 듯 나를 부르는 카와자토 가문 막내 아가씨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흐응, 아야나 아가씨 이제 백 년 남짓 먹은 캇파시면서 고양이에게 쫓기는구나-?"
키득키득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놀려댔다. 하지만 사실 그리 놀릴 일은 아니었다. 짐승에게 쫓기는 요괴가 어디 한 두 마리인가! 옛날에는 산골에서 짐승에게 당한 요괴도 좀 봤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뺨은 부끄러움이 역력한 낯빛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살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지금 이 모습을 유우 군에게 들킨다면 얼마나 우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모시는 아가씨가 고작 고양이에게 쫓기는 신세라는 걸 알면 유우 군이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만 해도 부끄럽다. 꼭 강해져서 고양이도 무섭지 않게 될것이와요!
"흐음, 그렇다면 이참에 아야카미쵸를 한바퀴 도시는 것도 나쁘지 않으시겠사와요! "
물론, 고양이를 만나지 않는 전제 하에 말이와요. 라 덧붙이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또 고양이를 만난다면 도망가고 말것이와요....
"이렇게 만나게 된 김에 저희 저택에 들렀다 가시는 건 어떠신지요? 아버님도 굉장히 기뻐하실 것이랍니다? "
situplay>1597031091>950 "딱히 겨울잠을 자는 건 아니고. 평소에 그냥 잠이 많은 편이라고."
할 일이 없으니 혼자 마냥 평화로운 것이긴 하겠지만. 평소엔 무너진 신당에서 잠을 자다가 혹 깨어나서 심심하면 인간 마을로 내려가 조금 장난을 치고의 반복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너무 거칠게 만져대면 벚꽃색이던 눈을 붉게 물들이며 크릉- 하기도 하면서 기분이 언짢다는 것을 표시하기도 하는데.
"왜. 내가 학교에 가는 게 이상해? 나도 인간을 많이 알아보고 싶어. 조절을 할 정도로 힘이 강하지는 않단 말이야. 요즘은 점점 더 무거운 것을 못 들게 되는 것 같은데."
평소에 많이 잔소리를 듣긴 하지만 학교에 간다는 말에 기뻐해 주는 것보다 먼저 걱정스러운 눈빛을 받은 것이 못마땅한지 너구리 씨에게서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나 몸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옷매무새를 살피고서는 주눅이 든 목소리로. 괜스레 볼을 부풀리고서.
situplay>1597031091>964 빨간 눈을 하고서도 길거리 고양이에게 머리를 몇 대 얻어맞은 이누는 바들거리던 기색을 싹 없애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정말 안되겠다는 눈으로 아야나를 괴롭히고 있는 고양이의 뒤로 다가가 손바닥으로 엉덩이? 허벅지를 찰싹! 하고 때린다. 소리는 조금 요란하지만 맞는 동물이 느끼기에도 아프다고 느끼지는 않을 정도였지만.
"이게. 너무 까불고 있어."
놀란 고양이는 먁- 하고 달아나서 옆의 담벼락 위로 훌쩍 뛰어올라간다. 봐주는 것도 적당히지 사람이 싫어하는데 너무 덤빈다는 생각과. 그래도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공존하면서 살짝 마음이 간지러운데. 그래도 일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아야나에게 손을 내미는 이누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더니 뭔가 진중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아서 순식간에 기가 죽었다. 다시 situplay>1597031091>311 같은 표정으로 돌아와서 추욱 어깨를 떨어뜨리고 시선을 떨어뜨린 아오이가 힐끔힐끔 린게츠를 눈치 살폈다. 고질병인 싱싱미역이 다시 도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근데 진짜 무섭다 이런 상황 그야 폐급 힉힉호무리에게 폐급 힉힉호무리 화제를 꺼내는 것은 악마나 할 법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짓이고...
뭐라뭐라뭐라뭐라...
...안되겠다. 일단 오늘... 아니 한동안 우리 집에서 지내세요.
"ㅇ.....? 진짜? 진짜아........???"
아오이의 표정이 슬쩍 다시 밝아지려고 하고 있었다. 말끝을 멍청하게 끌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슬쩍슬쩍 입꼬리도 올라갈락 말락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볼품없었다.
"난방도 끝까지 뎁혀놓고 밥도 달라 할 때 주고 방도 가장 넓은 걸로 하나 따로 마련해주는 거지...?"
누가 폐급 아니랄까봐 폐급 같은 소리만 뭐가 떳떳하다고 툭툭 던져놓고는 좀 전 상체를 벌떡 일으키면서 땅에 널브러졌던 빵과 우유, 사과를 한 개 한 개 소중히 품에 그러모았다. 가라아게와 한 세트가 되었다.
안면을 통해 대놓고 아찔한 기분을 표해도 무신은 통 알아먹을 기미가 없다. 복합적인 표정을 읽어내기엔 포유류의 감정 표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다. 그렇게 문장에 담긴 복잡한 심경은 싸그리 튕겨내고, 들리는 것이란 직관적인 말뿐이다. 즉 그가 듣기로 류지의 말은 무카이 님을 성실하게 모시겠다는 선언밖에 안 된다.
"흠, 충노를 자처하는 게냐?"
참, 이 신은 신분제가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애당초 신분제가 있던 시절에도 인간의 신분 체계따위 잘 몰랐다.
장담컨대 지금 내 얼굴에는 능글능글한 너구리 웃음이 걸려 있을 거다. 예전에 누가 보여준 적 있거든! 그래도 화가 났다기 보다는 부끄럽다는 느낌이다. 붉게 달아오른 뺨이 그 심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서 그 도련님 생각이겠거니 했다. 도련님이라고 할까, 정확히는 사용인이었지만. 집사라는 말이 요즘은 잘 어울리겠다.
"이미 몇 바퀴 돌긴했지만, 그럴까-"
어차피 쌓아놓은 것도 많아서 여유롭기 짝이 없는 너구리니까 말이지. 할 일이라고는 산책 정도 밖에 없었다. 으엑, 이렇게 보니까 진짜 뒷방 늙은이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소일거리라도 만들어야하나.
하긴! 요즘 신들이야 위기니 뭐니 하지만 요괴들에게는 오히려 기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쁘지 않은 형편이었다. 아마 신에 별 관심이 없을 이누이누는 더 하겠지. 그런데 얘는 어쩌다 여기서 학생이 됐다냐.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는 게 이런 걸까? 저기, 어느 나무의 땅에서 들었던 운명의 여신들이 장난이라도 쳤나..싶고.
아, 삐졌다. 하긴, 축하 이전에 걱정부터 받는 게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 영 감이 무뎌지네. 뺨을 긁적이다가 나뭇잎을 퐁! 하고 귀여운 강아지 모양 머리핀으로 만들었다. 그것을 이누이누에게 내밀면서 결국, 웃음을 헤실거렸다.
"잘 어울려, 교복."
동그란 강아지 모양 핀을 받으라는 듯 흔들거리면서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으이그- 그 어리던 애가 언제 이렇게 커서 학교까지 간다냐- 카와자토 녀석이 자랑하던 자식 키우는 느낌이 이건가- 근데 이누이누는 내 딸은 아닌데."
>>21 "크게 생각치 마시와요 린게츠 아저씨. 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워낙 사이가 좋으셔서 그러신 것이와요. " "린게츠 아저씨에게도 그런 소중한 분이 찾아오셨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시는 게 아닐지요? "
정말....사이가 좋으신 분들이시지. 사이가 좋다못해 백년 단위로 언니오빠들이 태어났으니. 아야나 본인 역시 그들 중에 포함되었다. 그래도 이젠 아야나를 끝으로 한동안은 육아에 집중하겠다고 하시니 그 점만큼은 다행인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진짜로 다행이다. 하마터면 열두 형제자매가 될 뻔했다. 진짜로......열두 형제자매가 될 뻔 한것을 간신히 형제자매들이 말렸다......
>>20 분위기에 휩쓸려 장난삼아 도망을 오기는 했지만 분명히 눈을 빨갛게 해서 요력을 보여줬음에도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았고. 처음부터 제대로 쫓아내지 않았던 것은 괜히 동물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긴 한데. 역시 마음이 조금 착잡하긴 하다. 그래도 손을 맞잡고 일어난 아야나의 옷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팡팡 털어주는 이누. 성숙하고 상냥하단 느낌보다는 어디서 본 게 있어서 따라 하는 어설픈 느낌이다. 그러면서 입가에 묻은 오이 부스러기?를 바라보면서. 손으로 떼어주기엔 지금 손이 지저분하니까.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도 익숙한 퐁! 소리를 내며 만들어낸 귀여운 머리핀을 헤실헤실 웃으며 건네오는 것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선 또 금세 표정을 풀어내고서. 카와자토라는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지만 자식 키우는 기분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해서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서는.
"린게츠 공이랑 얼마나 오래 봤지? 내가 그렇게 어렸었나.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잠이랑 장난만 반복하다 보니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고 제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도 모르는데. 그러면서 받아든 머리핀을 원래 하고 있던 머리장식의 반대편에 살짝 끼워보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리면서.
어휴... 미간이 좁혀지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래도 자신이 잘 지내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던 듯 하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칠까.. 그래 이 형님이 그래도 상식까지 죽진 않았을 거야. 적어도 2천년 전 상식에 머무르지는 않았겠지 하는 기대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소리가 어디 안나나 나는 지금 나는 거 같은데.
요괴의 걱정어린 잔소리 그것도 길지도 않은 것에 질색하는 건 그러려니 한다. 같이 지내자는 말에 곧바로 표정이 밝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싶고, 아까 말한 것처럼 그래도 현실 감각이 아주 나가리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행인 것 같다. 금새... 나쁜 버릇이 도지셨다.
"형님..."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꿀꺽 삼키고 빵과 우유, 사과를 소중히 모아 가라아에와 한 세트로 만드는 형님 앞에 다가가 그를 올려다 보았다.
"난방은 알아서 하시고 밥도 알아서 드시고 방은 적당한 걸로 드릴게요."
그건 분명 형님이 상상하던 안락한 생활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그래도 길거리 노숙보다는 나을 것이다.
"틀어박혀 있기만 한 건 신계에서 충분히 봤습니다. 물론 도와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