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닙니다. 다음 스테이지의 시작이죠.」 「그것은 제가 여러분께 알려 드리는 내용이 아니라,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이 제게 가르쳐 준 사실입니다.」
「어떤 우마무스메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경기장을 밟지 못합니다.」 「어떤 우마무스메는 경기장 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둘 때조차 경기장에서 쓰러져야만 하죠.」 「어떤 우마무스메는 데뷔 2년차에 사츠키상, 더비, 국화상을 단숨에 연패(連覇)하고...」 「어떤 우마무스메는 평생을 로컬 시리즈의 OP에 출주하는 데 그칩니다.」
「또 어떤 우마무스메는 철없이 중앙의 레이스에 나서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서도 불완전연소하고,」 「지도자로 달아난 이후에도 혈기 넘치는 제자들을 보며 동경과 질투를 멈추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에 공통점이 있다면, 끝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되기에...」
「여러분이 앞으로 향할 트랙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여러분께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지금까지 무엇보다 빠르게, 무엇보다 맹렬하게, 또 무엇보다 끈기 있고 늠름하게 달려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골인 지점을 향해서, 아니, 골인 지점을 지나서도...」 「빛 너머로 끊임없이 달려가길 바랍니다.」
【엔딩 피리어드】 방학식의 연설에서 오즈 학원장, 아니, "쇼츠 어딕트"는, 학생들 앞에서 처음으로 모자를 벗었습니다. 단정한 버킷햇에 숨겨져 있는 귀가 처음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키워낸 최초의 로컬 3관 우마무스메에 대한 경의였을까요? 아니요, 사실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우마무스메와 트레이너들을 향한 감사의 표시였을 겁니다.
감기 걸렸구나. 어쩐지 목소리가 좀 다르다 싶었다. 방이 아니라 거실에서 자니까 그런 거라고, 바보같다고 놀릴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답지 않은 느낌이네 오늘은.
아까까지의 웃음이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무표정으로 유우가는 내 손을 잡는다. 그땐 없던 일로 하자고 했으면서. 헛짓거리라고 했으면서. 이건 뭔데? 하지만 뿌리치진 못했다. 아니. 뿌리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힘주어 잡고, 좀 걸을까?라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직. 나중에 뽑으려고..."
지금 뽑았다가 흉이라도 나온다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서. 부모님이 뽑을 때도 나중에 친구들과 같이 하겠다고 사양했던 참이었다.
"...할 얘기라도 있어?"
걷자는 건 그런 뜻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툭 내뱉듯 물었다. 막상 그렇게 묻고나니, 생각해보니까 할 얘기가 있는 게 당연하겠네. 목도리는 언제 두고 갔냐던가, 뭐 그런 거라도 나오려나. 여전히 이상한 표정인채로 유우가가 이끄는 대로 걸어간다. 맞잡지 않은 손으로 목도리를 끌어올려 입가를 덮어본다. 그런다고 전부 가려지지도 않겠지만... 뜨듯한 날숨이 목도리에 막혀 미지근한 온기를 남긴다. 뭐라 말하기 힘든 꿉꿉함도 같이.
찌푸린 눈살. 퉁명스러운데다 나무라는 듯한 어조의 말. 혼날 일 같은 건 하지 않았는데도 혼나는 느낌이 든다. 어째서일까.
왜 널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로 혼나야하는거지? 혼란과 불만이 섞여 꼬리가 한차례 거칠게 흔들린다.
"응. 좋아해."
혼나는 기분이 들어도, 가시돋친 말을 들어도 그건 변하지 않으니까.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리고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침묵을 이어가다가, 입을 뗀 것은 가장 마지막에 들려온 말이 끝난 직후였다.
"-왜 그걸 유우가가 정하는데?"
좋아한다, 아니다. 그런 걸 왜 멋대로 정하는거야. 왜 멋대로 내 생각도 기분도 정해두고, 그렇게...
".....처음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그냥, 좋아한다고... 난 유우가가 좋아."
처음엔 그랬을지도 모르지. 내가 잠시 방황하려고 할 때 다잡아준 어른이니까. 처음으로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꿈을 안겨준 사람이니까. 그게 시작이고, 계기가 되어서, 같이 지내면서 보게 된 새로운 모습이라던가, 의외인 부분이라던가, 다정함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몇 개월을 쌓이고 겹쳐서 지금의 감정으로 자리 잡은 거야.
처음이 착각이라 하더라도. 몇 개월을 겹쳐왔다면 그건 이미 착각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해도 되잖아. 그렇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