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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하게도 성운의 발상은 내 머릿속에도 떠오른 것이었다. 못 해도 접시 세 개는 들어야 하니 내 손으로 아슬아슬하게 드는 것 보다는 성운의 능력으로 안정적으로 들고 오면 되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내가 잠시 깜빡한게 있었다.
내 눈에 귀엽게 보인다는 건 다른 사람 눈에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것. 성운은 올 초부터 다방면으로- 폭력과 사건에 얽힌 적이 많다는 것. 지금이야 저지먼트고 능력으로 대처하는 듯 하니 괜찮을 법 했지만 그렇지 못 한 일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성운에게서 떨어져 빈 자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깔끔하게 빈 테이블 하나 잡고 앉아서, 폰으로 연락 확인이나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럴 때, 참 절묘하기도 하지.
어떻게 그 불쾌한 소리가 귀에 쏙 들어왔을까?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소리를 왜 듣자마자 그 쪽을 쳐다봤을까?
시선 닿은 곳에 성운이 보이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씹어먹을 놈들 중 한 놈의 손이 새하얀 다리로 향하는 걸 보자마자 허벅지에 두른 띠를 철컥 풀렀다.
스륵 풀린 띠가 두 겹으로 갈라져 이윽고 한 줄로 길게 늘어졌다. 검고 반질한 가죽띠를 휘릭 흔들자 빠르게 공기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남자의 손을 후려쳤다.
찰싹!
타격음과 동시에 남자가 손을 거두며 물러서고 동행인 남자도 놀라 같이 주춤거렸다. 그 틈을 타 성운의 뒤로 다가가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내 품으로 당기려 했다. 성운을 당기는 몸짓이 조금 전과는 비교될 정도로 거칠다는 것을 성운은 알 수 있었겠지.
"...버러지 X끼들이 감히 어디에 손을 대?"
그리고 머리 위에서 울리는 목소리 역시, 성대를 짓누르듯 깔렸다는 것도.
주춤했던 남자들은 곧 다시 껄렁대며 추파를 던져댔다. 성운의 옷차림과 내 차림새를 거들먹거리고 나더러 특이취향이냐는- 그런 저급한 말도 입에 담았다. 그러면서 마치 지들이 훨씬 우월하고 잘난 양 자화자찬까지 하는 꼴을 보였다.
"...하, 그래? 니들이 그렇게나 잘나셨어. 어? 그런데 어쩌라고. 하는 짓이 쓰레기 만도 못 한데?"
발끈하려는 그들의 얼굴이 동시에 옆으로 재껴졌다. 가죽과 가죽이 마찰하는- 찰진 파공음이 울린 직후였다.
"구경 왔으면 조용히 눈깔이나 굴리다 가라. 밖에서 굴러먹던 놈들이면 살아서 두 번은 볼까 싶은 행사고, 안에서 굴려지는 놈들이면 '엘리트'를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을 거 아냐. 어? 맞어? 아니야?"
맞냐 아니냐를 물을 때 다시금 찰진 소리가 연달아 나며 남자들의 얼굴이 좌우로 흔들렸다. 얄팍한 가죽에 맞은 자리는 금새 뻘겋게 물들고 핏기도 슬핏 보였다.
"그리고, 내가, 모처럼 기분 좋게 외출하고 있는데 X발 거기에 초를 쳐?"
괘씸하단 듯이 말 하자마자 거칠게 휘두른 가죽띠가 남자들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그렇게 몇 줄인가 뻘건 자국이 생긴 그들 중 하나가 달려들려 했으나 가죽띠 든 손을 들자 움찔했다. 다른 하나는 능력자인지 뭔가 쓰려는 낌새를 보이길래 놓치지 않고 전신 근육에 이상증세를 일으켰다.
뭐, 가볍게 온 몸에 쥐가 나게 한 것 뿐이었지만. 그것 만으로도 자빠져 덜덜 떨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옆놈이 그걸 보고 놀라게 하는 효과는 덤이었다.
"야."
쓰러진 남자를 보던 다른 남자는 내 부름에 다시금 움찔하며 돌아보았다. 시퍼런 눈에 성가시다는 기색을 팍팍 담아 남자를 향해 손을 휙휙 내저었다.
"이 쯤에서 보내줄 테니까 저거 데리고 꺼져. 당장. 그리고 다신 눈에 띄지 마라."
한 번에 못 알아 들었는지 주춤대길래 띠 든 손을 들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쓰러진 놈을 들쳐매고 도망쳤다. 그들이 가기 전에 얼굴과 손의 부상을 슬쩍 낮게 해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괜히 나중에 신고니 뭐니 하지 않게, 증거인멸 해두는 거지.
잠시간 소란으로 인해 주변에 사람이 몰리긴 했으나 소란의 원인들이 떠나자 곧 흩어지며 다시 북적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재밌었다 어쨌다 하는 소리들도 있었지만 무시했다. 주변에 다시 접근할 요소 같은게 없나 확인하곤, 성운을 보며 물었다.
"많이 놀랐겠네. 괜찮아?"
방금의 거친 목소리와 말투가 싹 사라지고 평소의 목소리와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보는 시선도, 오늘 만나 종일 마주하던 그 눈빛 그대로였을 것이고.
─어찌 보면 천생연분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경박스러운 손길이 허벅지로 뻗어올 때, 성운이 한 생각도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행동이 조금이라도 더 늦었더라면, 두 사람이 난데없이 공중으로 끌려올라가 상공 몇 미터에서 옴짝달싹도 못 하고 떠있는 꼴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기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가죽 채찍이 짝 하고 피부 까만 쪽의 손등을 후려치는 게 한 박자 더 빨랐고, 가무잡잡한 녀석은 우효옷─☆ 하는 꼴사나운 괴성을 지르면서 빨갛게 부어오른 손등을 잡고 뒤로 휘청휘청 물러섰다. 너를 바라본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성운도 마찬가지였다. 두르고 있던 벨트를 순식간에 채찍처럼 뽑아든 네 모습에 성운은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네가 힘있게 허리를 감싸안아 당기자 한참 기죽어있다가 주인을 발견한 소동물 같은 얼굴표정이 되어서는 네 품에 쉽게 몸을 던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성운은 그 다음 순간까지 그대로 가만 넘기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너희 좀 특이취향 같은 거? 고스로리였던가, 고딕 BGM이라던가 그런 거니? 참, 특이하다. 응,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대놓고 빈정거리는 소리. “─무슨 알지도 못할 이상한 그 벨트 같은 걸로 옥죄는 게 커플룩인 거지? 네 파트너 성격도 알 법···” 그러나 그 순간, 더 멀쑥한 쪽은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흡사 무슨 왕자님에게 구해진 공주님 같은 표정으로 품에 매달려있던 키 작은 꼬마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보라색. 그 눈동자의 색을 우리가 아는 단어 중 하나를 골라 일컫는다고 한다면 그 색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공정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단어들 중 그것에 그나마 가까운 색일 뿐, 결코 그 눈동자 안에 담긴 것을 다 담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우리 별마저 보이지 않는 머나먼 외우주 한복판에 던져진 듯한 공포감이 그의 온몸을 옥죄는 것 같았다. 멀쑥한 쪽은 말을 하다 멈춰 헤벌어진 입을 한 채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자신의 가무잡잡한 일행을 되돌아보며 뭐라 입을 떼려 했으나, 매서운 채찍질이 그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성운의 눈을 보지 못한 가무잡잡한 금발 쪽은 얄팍한 분개를 내뱉으며 혜우를 향해 손을 치켜들려 했으나 이내 전신에 쥐가 나서 쓰러져버렸고, 결국 그들은 혜우의 엄포를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으로 그 날의 헌팅을 대실패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안도한 표정의 네 작은 애인밖에 없었다.
“고마워, 혜우야··· 응, 나 괜찮아.”
또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으나, 성운은 눈을 질끈 감고 소매로 슥슥 눈가를 훔친 뒤에 다시 네 어깻죽지에 얼굴을 파묻고는 가볍게 삭삭 부벼 따뜻한 체온을 또 한 움큼 남기는 것으로 감사의 의사를 표했다. ─이래서야 결국 누구 한 명이 자리 맡으러 간 보람 없이, 주문과 음식 수령도 같이 해야 될 것 같다. 처음에 점찍어뒀던 푸드코트로 발을 떼면서, 성운은 혜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차마 못하고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심란해하는 표정인데, 그러다가 마침내 성운은 말을 꺼낼 용기를 냈는지 잠깐 까치발을 하고는 혜우의 귓가에 나직이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