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가 하늘하늘 점점히 내려오며 어두운 하늘을 장식하기 시작하는 성탄절 전야의 밤이다. 내려오는 눈송이를 그대로 맞으며 린은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직업상의 이유로 어두운 시간에 익숙한 것도 있지만 비밀이 많은 그녀답게 다른 이유로 심란해서 찬 바람에 어지러운 마음을 날리고자 함도 있었다.
'음?' 야심한 시각에 학교 정문에 인기척이 느껴져 린은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고서 정문으로 걸어갔다. 산타의 존재를 믿을 아이들 보다는 세파에 찌든 청소년 내지 성인들로 가득한 학교에 가짜 산타도 올 일이 없을텐데. 눈밭을 사뿐히 걸어가며 소리를 죽이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익숙한 얼굴에 린의 눈에는 의아함과 호기심이 어렸다.
"알렌?" 그리고
"어머, 그 옷은..." 동그랗게 눈을 뜨다가 이윽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기위해 손으로 입을 막았다.
린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봤을때 알렌의 산타분장은 크게 안어울리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연령대가 꽤 안 맞았을 뿐이지... 그나마 다른 특별반 인원이었다면 알렌의 멘탈에 큰 영향도 없었겠고 나름 친절하게 사정을 물어봐줄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린은 두 가지 경우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에요." 알렌은 무리수를 뒀다! 금방 부끄러움에 침몰해버린 알렌의 눈높이에 맞게 쪼그려 앉은 린은 눈매를 접어 나긋하게 눈웃음을 그리며 인사를 했다. 하여간 하는 행동이 투명하게 보이니 놀리고 싶다가도 조금은 봐주게 된다.
"산타 할아버지인 알렌군. 저는 나쁜 아이인가요 착한 아이인가요." 어느 쪽을 답하던 결과는 똑같으니 구냥 하고 싶은 쪽으로 선택하시오,,,짓궂게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마주하고 생긋 웃으며 물어본다. 이 사람이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건지, 보나마나 꽤나 바보같은 일이겠지만 요새는 그에 어울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상하여라. 그 답을 분명 린은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피하고서 여전히 그를 응시하며 답을 기다린다. //4
"..." 솔직해도 지나치게 솔직하잖아. 오히려 제가 던진 질문에 당황하게 된 린은 순간적으로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며 부끄러움에 반발하듯 말하려고 하다가 양 손을 들어 뺨을 살짝 가린다. 추운 가운데 약간 열이 오른게 느껴진다. 반발하는 대신 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건낸다.
"계속 이렇게 계시면 아무리 의념각성자라도 감기에 걸릴거에요." "자, 산타씨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어야겠죠. 일어나주세요 그리고 어쩌다 이 옷을 입게 된건지 제게 얘기해 줄 수 있을까요." 너무 짓궂다는 말에 살짝 웃다가도 약간은 찔렸는지 괜히 먼곳을 힐끗 바라보며 딴청을 부리듯 눈길을 주다가 손을 내민다.
"수염빼고는 괜찮아요." 무의식적으로 필터링을 걸치지 않고 튀어나갈 뻔한 주관적인 답을 밀어넣고 솔직한 감상을 말해준다. 애써 돌려말한다 하더라도 꽤나 당황한 듯한 그가 납득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알렌군의 복장이 조금 안 어울렸다는 것보다 그 순간의 따뜻한 방 안과 다정한 대화와 그리고 선물에 대한 설레임에 젖어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 분위기를 앞으로 더 길게 기억할거에요." 저도 어릴때 그랬으니 틀리지 않을거에요. 여전히 가볍게 한 손을 잡고서 린은 차분하게 제 생각을 그에게 전해준다.
"그러니 당신의 아이들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정 걱정된다면 저도 같이 갈까요? 이렇게 되어서야 이 상태인 당신을 바로 보내버리는 것도 꽤나 짓궂고 잔인한 짓일 것 같아서요"
눈이 내리는 가운데 투명한 달이 비추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넌저시 장난스러운듯 태연함을 가장하며 물어본다. //8
"나름 아이들은 좋아할 것 같았어요." 보나마나 어울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산타하면 수염이란 생각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며 궁상을 떨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린은 가끔, 아니 어쩌면 종종 자신이 왜 이 사람을 신경쓰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었는데 꼭 오늘 같은 경우였다. 꽤나 바보 같았다. 그런데 그 바보 같음이 귀여워 보인다는게 문제다.
'바보병이 옮은게 틀림없어.' 흥,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니 속으로만 앙탈을 쓰며 뾰루퉁하게 군다. 그 겉은 티 없게 좋아하는 알렌의 모습에 은은히 미소를 짓게되는 자신의 바보같은 반응일 뿐이었지만. 뭐, 가끔은 내숭을 떨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린의 경우에 가끔이 아니라 항상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악의를 숨기기 위한 내숭이 아닌 적당히 얌전을 떨기 위한 내숭의 경우에 그는 잘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바보.'
물론 그 바보스러움에 안심하며 이리 저도 얄밉게 알다가도 모를 행동을 하는 것이기도 하니 할 말은 없었다.
"이리도 좋아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러면 저는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실실 놀려대다가 그가 당황하려는 차에 바로 태세를 전환하여 담담하게 물어본다. //10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강원도 부근.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 마주했던 대치동 전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 간단한 의뢰라고 해서 갔더니만 중대 규모의 병력이 게이트를 에워싸고 있었고. 거기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검은 짐승을 막아내려다. 오른팔이. 덜렁덜렁.
"아. 저기... 이거. 치료 좀."
스르륵- 의료 캠프의 천막을 밀고 들어온 토끼는 몸을 덜덜 떨면서도 헤실헤실 웃을 뿐이다. 그러게? 으스러진 한쪽 팔을 한 손에 들고서. 입꼬리는 왜 올라가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