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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런 시시콜콜한 소원을 일일이 들어줄 전능한 이는 없다는 것을. 자신의 미련을 버리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부여된 특권이며, 그러나 미련을 버리고 싶어하는 이는 결국 미련을 갖고 있기에, 미련에도 미련을 갖게 되어 결국 그것은 이룰 길 없는 소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성운은 오래전에 그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하고자 하는, 조금이라도 더 따스한 미래를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그것이 성운을 반항하지 못하게 만든 걸까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무엇일까.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혜우를 바라보며, 성운은 고개를 기울이고는 살짝 웃었다.
“섣부른 말일지도 모르지만─ 혜우한테서 나를 봤다고 하면 이상할까요.”
그래 그것은 혜우에게는 시시콜콜한 장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난인 것뿐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지구와는 전혀 다른 지구에 떨어져, 마치 생경한 땅에 착지한 작은 탐사선처럼 떠돌던 자신의 그림자를 혜우의 고약한 장난 뒤편의 심해 깊은 곳 그림자에서 언뜻 본 것 같았다. 미련. 혜우가 아직 버리지 못한 그것을, 성운이 버리기를 포기한 그것을. 그래서 성운은 저항할 수 없었다. 차가운 손이 스친 볼에 보조개가 패었다. 성운은 웃으며 혜우에게 반박했다.
“···사람을 냅다 물에 빠뜨려놓고서는 뭐래.”
꽤나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물리적으로도 실제 물에 빠질 뻔하긴 했다. 터어어어얼어 버리면서 기어이 물에 빠뜨리기도 했고. 가볍기 짝이 없는 몸뚱아리를 좀더 가까이 당겨안는 혜우의 움직임에, 이번에도 성운은 저항하지 않았다.
“놀리는 게 아니었다고 한다면, 어쩔래, 라는 질문을 내가 혜우한테 했겠지.”
보라색 별은 반짝이지도 않고 희미하게 빛나는 그대로, 새하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로 혜우의 손아귀 안에 가만히 기대어있을 뿐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유일이 될 수 있어요. 누군가 나를 위한 유일이 되어주는 사람에게.”
별은 깊은 물 안에 잠겨 있고,
“알고 있겠지만 그게 좋은 일만은 아니겠죠. 다른 사람들보다 널 한번 더 보게 될 테고, 네 일에 조금 더 걱정하고, 어쩌면 조금 더 참견하려고 할지도 모르고··· 어떤 궤도에 널 올려두려 할지도 모르고.”
"하핫. 그렇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나는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졌고, 그만큼 혜택을 받고 있으니까...그 에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돼."
웃음소리를 내면서 은우는 태연하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과연 그 웃음소리가 태연했을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그에 대해서 그는 굳이 더 무슨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이어 그는 곧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 시선을 수경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는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제 서랍을 연 후에, 그 안에서 초콜릿으로 만든 코뿔소 쿠키를 꺼낸 후에 그녀를 향해 가볍게 던졌다. 아마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초콜릿 쿠키를 꺼낸 후에 이야기했다.
"같이 가고 싶은 이는 있지만, 뭐...일단 기회가 없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런 문제거든. 일이 바빠서 말이야. 아. 내가."
앞으로 며칠은 야근을 해야 해. 아아. 집에 가고 싶다. 그렇게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키득키득 웃었다. 정말로 가볍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 아주 잠시, 빛과 초점이 사라진 것을 보면 집에 가고 싶은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네 업무 없다니까. 부원들은 언제나처럼 학교 순찰을 돌고, 그런 것을 하면 돼. ...아. 대신 조만간에, 당장은 아니지만 조만간에 모두 다 동월할 일은 있어. 그건 나중에 또 이야기할게."
그때까진 푹 쉬고, 컨디션 잘 챙기기. 알았지? 우리 부원.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음. 소리를 내며 수경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 세은이에 대해서는 솔직히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애. 그렇게 되고 나서부터 진짜 많이 힘들어했거든. 그 와중에도 쭉 이야기가 나온 애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너였어."
위크니스가 되고 난 이후, 시체처럼 지내던 그녀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 존재. 그 두 명 중 하나인 수경을 바라보며 은우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앞으로도 그 애와는 잘 지내줘. ...오빠로서 정말로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어. 아. 이런 말 했다는 것은 세은이에겐 말하지 말고.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