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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린다거나, 구토를 계속 한다거나... 이 경우는 식중독이겠지. 내출혈이 생긴다거나 같은 흉흉한 일이 음식을 먹음으로써 생기진 않았으니 어쨌건 먹을 수는 있는 음식인 건 맞다. 먹을 만한 다른 게 있다면 절대 안 먹겠지만.
"그래도 전부 다 그런 재료는 아니었지, 절반 정도는 정석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사실 그래서 좀 더 이상한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재료투성이었다면 으악 이걸 누가 먹어! 하고 엎어버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을 텐데 의외로 제대로 된 재료들이 들어간지라, 어라? 먹을만 할지도? 하고 집어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투정을 부리듯 하며 모래밭에 발길질을 하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던 세은이 간신히 균형을 되찾고 얼굴을 붉히며 고갤 돌리자 고갤 살짝 기울인다.
"뭐 그렇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긴 해도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소화에 나쁜 음식이라기에는... 들어간 것 자체는 먹을 수 있는 것들 투성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비주얼이 자꾸 떠올라 불편한 것처럼 느낄 뿐.
"평소에도 이런 거 해먹는 거냐?"
은우가 제안했던 걸 떠올리면서, 퍼스트클래스는 얼마나 다른 부분이 흥미롭지가 않길래 이런 걸 하는걸까 생각해본다.
"기준이 너무 낮지 않아요? 폐기 직전의 재료들로 요리를 만들어서 먹어도 문제 없으면 먹을만 하다와 차이가 없잖아요."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기준 조금 높이는 것이 어때요? 선배?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와 눈빛에는 진지한 걱정어린 시선과 감정이 섞여있었다. 자고로 음식이란 맛있게 먹기 위해서 존재하는 법이었다. 영양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맛도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몸에 문제만 없으면 먹을만한 것이라니. 너무 기준이 낮다고 세은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더 짜증나요. 차라리 다 엉터리던가."
그래서 버리기도 애매하고, 조합이 이상한 것일까...라는 생각만 할 수밖에 없고.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젤리는 용납할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전골에 젤리를 집어넣는단 말인가. 이건 반드시 찾고 싶다고 생각하나, 찾을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익명으로 넣은건데 CCTV를 뒤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원래 이런 방식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절로 세은은 한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최악이야. 그런 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평소에요? 오빠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는 거, 내키진 않은데 오빠는 요리 하나는 되게 잘하거든요. 뭐... 어릴적부터 요리나 그런 것을 도맡아서 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긴 한데..."
오늘 나온 그 냄비 요리와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제 양심이 아프고 찔리고 미안할 정도로 두 개는 차이가 있었다. 이어 그녀는 가만히 뒷짐을 지고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다가 살며시 발걸음을 멈췄다.
"맛있어요. 오빠의 요리. 그게 제가 평소에 먹는 요리에요. ...그래서, 제가 저걸 싫어하는 걸지도 모르지만요. 아아. 언젠가 독립하기 전까지 레시피. 싹 다 배워야하는데.. 귀찮아."
폐기 직전이라는 건 아직 폐기할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다 버려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챙길 수 있다면 맛과 영양을 동시에 챙겨야겠지만, 맛도 영양도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저 먹고 죽지 않으면 그만이다. 급하면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그렇게 살고 싶다는 건 아니니까 무어라 덧붙이지는 않는다.
"글쎄, 그래도 난 그런 음식을 좋아한다고 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딱히 기준이 낮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먹을 수 있다고 했을 뿐이지. 그것밖에 먹을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먹어야지. 맛에 너무 연연하는 것도 귀찮고. 애초에 그리 민감한 미각을 지니고 있지도 않아서 그렇기도 했다. 아무튼 여러모로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는 것엔 동의했기에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뜨리는 세은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럼 오늘이 아니었으면 평생 먹을 일이 없었을 수도 있었겠군."
세은에게 은우가 대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 건가 조금 생각해 보면서도 일단 은우가 자신의 목숨이 걸렸다는 이유로만 세은을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라는 것 쯤은 알았고, 세은도 툴툴대는 것에 비해서 은우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은우가 인첨공 내에서 손꼽히는 강자이긴 하지만 결국 그도 학생이다. 성인이 된다고 해도 뭔가 크게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기도 하고.
현재의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하나뿐이다. 너무나도 느린 연산속도. 빛이 충분히 공급된다는 가정하에서는 문제될 것이 아니지만 주변의 광량이 조금만 줄어도 치명적일 정도로 강하게 나타나는 문제점. 단 한번을 쏘아내는데에 시간이 걸리면 그 결과물이 아무리 빠르고 강력한들 의미가 없잖아? 고로 오랜만에 연산력 강화주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맞다는 말에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세은은 일부러 고개를 빠르게 도리도리 저었다. 적어도 그녀의 기준에선 그것과 이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애초에 그런 음식을 굳이 먹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당장 마트에만 가도 신선한 요리는 한 가득인데. 물론, 이건 자신이 레벨4고, 돈 걱정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음식의 기준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하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그런 음식을 좋앟나다고 한 적은 없다고 말하는 것에 세은은 납득하며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이런 경험. 필요없어요."
모든 일이 경험이라지만, 왜 이런 경험까지 해야 하는건지. 자신이 너무 철부지같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세은은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으으. 자신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면서 그녀는 괜히 입에 남아있는 식감도 없애버릴 생각인지 크게 심호흡을 여러번 내뱉기 시작했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그렇게 여러번 반복하니 입가에 남아있는 식감이 사라지는 것 같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까지나 같이 살 순 없잖아요. 오빠는 오빠의 삶이 있고, 저는 제 삶이 있으니까요. 남매라고 해서 평생 같이 살진 않고... 언젠가 오빠가 누군가와 결혼할 때 거기서 같이 살 마음 없어요. 반대로 제가 누군가와 결혼을 해도, 오빠를 같이 살게 할 생각 없고요. ...애초에... 어릴 때라면 모를까. 지금부터는 슬슬 떨어질 때도 되었어요."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그녀는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굳이 말해서, 알게 해서 좋을 일야기도 아니었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언제가 되건 세은은 은우의 곁을 떠날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봐야 3학구 내의 어딘가에서 독립하는 것일 뿐이지만.
"다 큰 새는 둥지를 떠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에어버스터의 둥지를 떠나는 것을 조금은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언제가 되건,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