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팔이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마비는 아닙니다. 좀 더 외부적인 측면의 이유였습니다. 고개를 돌려서 눈으로 확인하니 월광고 분이 이번엔 저의 팔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폭력은 나쁘다고 주장하고 싶어지신 걸까요. 그 생각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공무집행에 방해가 됩니다. 저의 존재 의미가 점점 희미해질뿐입니다.
"놓아주세요…"
실낱같은 목소리를 내며 손을 때어내기 위하여 팔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스킬아웃분은 일어서서 다가오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때가 되어서야 그분께서 무언가 수를 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능력이겠죠. 제게는 없는 것입니다. 곧 다부진 체격이 저를 향해 달려들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져버립니다. 대응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아…"
포기하고 저항의 마음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마침 또 귀에는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제 몸에 아픔은 느껴오지 않습니다. 이렇게나 빨리 저승에 도착한 걸까요? 자포자기했던 시선을 제대로 가누니 제 앞에는 어느새인가 한 분이 더 골목에 들어와 계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정신이 없는 사이 다부진 분을 배제하셨습니다. 그분은 팔에 저와 같은 완장을 차고계셨습니다. 또 하얗고 작았습니다. 저지먼트군요.
하얗고 작은 그 분은, 마치 춤과 같은 움직임으로 나머지 스킬아웃분들도 마찬가지로 농락하고 순식간에 쓰러트렸습니다. 엄청난 걸 봐버린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저의 일을 해야겠죠. 사람은 움직일 때 큰 힘을 쓰기 때문에 도망가려는 동작만큼은 구분하기 쉽습니다. 저는 두 눈을 바로 뜨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팔을 뻗어서 권총의 가늠자에 시선을 모아 열심히 달리시는 두 분의 등을 정조준했습니다. 거리가 유효합니다. 놓아드릴 생각이 없었습니다.
일상을 돌리던 중 피곤해서 자러 가는 것은 모두가 존중하니, 일상 돌리실 때 피곤하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시고 주무시러 가셔도 돼요. 일상은 잠시 멈췄다가, 내일 시간될 때 계속 이어서 돌릴 수 있으니까요. 예외적으로 아지주가 자러가지 말고 일상돌리라고 땡깡부리실 수 있는데 농담이니 흘려들으시구요.
>>0 오늘은 처음으로 순찰 중에 스킬아웃 분들을 배제했습니다. 총을 쐈습니다. 몸을 부딪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목숨을 위협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총을 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지하고 있던 사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습니다. 스킬아웃은 저처럼 초능력을 쓰지 못하는 무능한 분들이라고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현장에서 능력에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저같은 존재와는 다르게 유능한 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유능하신 분이 스킬아웃을 자칭하고 계셨던걸까요.
생각해봤지만 이유를 해아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스킬아웃을 계속 하는 이상 저도 계속해서 배제해갈 뿐입니다. 그것만이 제가 저지먼트에 있는 이유입니다.
저는 좀... 인첨공이 혜성이의 비폭력주의와는 너무 반대로 돌아가고 있어서 혜성이가 방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진행에서 본인의 신념에 반하는 상황이 너무 많이 나왔고, 본인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도 많이 강요받았으니까요. 물론 혜성이의 신념도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은 확실한데... 인첨공이 너무 콘크리트 정글이죠..
그러고 보니 도중에 스킬아웃 중에서도 1~2레벨쯤 되는 애들이 대장노릇 하고 있거나, 강능력자 이상이면서 스킬아웃 생활을 하고 있거나 하는 케이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케이스... 있겠죠? (없다고 해도, 아직 마지막 남은 샹그릴라를 갖고 있던 녀석이라고 해도 되지만요)
성운주 말대로 좀 복잡하긴 해 콘트리트 정글이라서 신념에 반하는 행동과 상황들을 겪기도 했지만 이혜성한테는 같은 저지먼트 부원들 그러니까 자신이랑 떠들고 놀던 후배들이 그런 상황에서도 마치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것을 보고 더 복잡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3학년조-이끌어야하는 위치-인 동기들은 모두 망설이지 않는데(특히 한양이라던가 한양이라던가 한양이) 자기만 멈춰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상황은 이혜성한테 답하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점 훈련에서도 나왔듯이 이혜성이 부정적인 감정에 취약하고 폭력을 반대하는 성격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른 성격이고 음 복잡해
월광고의 아이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조그맣게 되뇌며 그 자리에 반쯤 쓰러져있었다. 다행히 이지와 방금 난입해온 하얀 녀석의 뒤에 쓰러져있으니 저 스킬아웃들이 월광고 아이를 노리지는 못할 것이다. 새로 난입해온 후드티 차림의 하얀 녀석은, 두번째 녀석- 아까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그 홀쭉한 녀석을 매타작으로 쓰러뜨린 뒤에 이지를 힐끔 돌아보았다. 보라색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하얀 와이셔츠와, 목화고 지정의 빨간 넥타이가 보인다. 이지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돌아본 듯했는데, 물론 이지는 괜찮았고 하얀 녀석은 든든하다는 듯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그들이 도망치려는 것을 발견한 하얀 녀석은 이내 땅을 굴러 달려나가려 했으나, 이지의 경고를 듣고는 허리를 세우고 달려나가는 대신에 몸을 쏙 웅크려 사선에서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탕, 탕, 탕탕탕탕······.
돌발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다시 정렬된 이지의 가늠쇠 끝은 한 치의 자비 없이 스킬아웃들의 등짝에 비살상탄을 정확하게 때려박았고, 등에 가해지는 충격에 스킬아웃들은 몇 발짝 도망가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모두 제압됐다.
“전원 그 자리에 엎드리시고, 두 손은 등 뒤로 해주세요.”
하얀 녀석은 허리춤에서 케이블타이 수갑을 빼들며, 일단 자신이 삼단봉으로 때려 쓰러뜨린 녀석의 양 손목을 억지로 뒤로 잡아당겨서는(기절해있어서 통제를 따를 수 없었으니까) 팔목에 케이블타이 수갑을 묶어버린 뒤에 이지가 덩치큰 녀석을 구속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이지에게도 케이블타이 수갑을 하나 던져주었다. 이미 의식을 잃어버린 두 녀석을 구속하는 동안, 비살상탄에 맞고 쓰러진 둘 중 하나가 몰래 슬쩍 일어나 다시 도주를 시도하려 했으나, “엎드려서 두 손 등 뒤로!” 하는 불호령과 함께 냉큼 달려든 하얀 녀석의 삼단봉 찜질을 한바탕 더 당하고 다시 쓰러지는 결과밖에는 거두지 못했다. 나머지 두 명에게도 케이블타이 수갑을 채우면서, 성운은 미란다 원칙을 읊었다.
“여러분을 현시간부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의식불명인 분께는 의식을 되찾으셨을 시 해당 내용이 다시 고지될 예정입니다. 이해하셨겠지요?” “야, 이봐, 우리도 시민이고 학생이라고······. 저지먼트가 이래도 되는 거야?!” “무고한 학생한테 능력을 써서 저지먼트를 공격하는 걸 제가 다 봤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나.” 하얀 녀석은 이마를 찌푸리며, 자기 후드티 앞섶에 하네스로 단단히 고정된 바디캠을 흔들어보였다. “현장에서 모든 정황의 판단은 저지먼트 재량입니다. 꼬우면 얌전히 체포되시거나, 스킬아웃 소리 들을 만한 짓을 하고 다니지 말았어야죠.”
네 명을 전부 케이블타이 수갑으로 채워서 구속한 다음, 하얀 녀석은 핸드폰을 꺼내 안티스킬에 연락했다. 얼마 되지 않아 안티스킬의 경찰차가 도착했고, 그들은 수갑으로 구속된 스킬아웃들을 경찰차 뒷칸에 잡아넣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월광고 학생이 엉엉 울며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고 사과하는 것을 달래어 보내는 게 더 힘들었다. ─그 스킬아웃이 월광고 아이에게 이능력을 쓴 것은 확실해 보인다.
스킬아웃이 되고 나서 능력을 각성해 1레벨이나 2레벨이 된 능력자가 스킬아웃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케이스도 있을 수 있고, 능력자의 계수를 억지로 강화시켜 무능력자도 능력을 쓸 수 있게 만드는 마약인 샹그릴라가 얼마 전 스킬아웃들 사이에서 대유행했을 때 구해둔 비축분이 아직 남아있던 것일 수도 있다. 후자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다른 부원들이 샹그릴라를 제작하는 스킬아웃 조직인 블랙 크로우를 일망타진하고 돌아온 것이 바로 저번 주말이니, 아직 어딘가에 비축분을 남겨둔 녀석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무튼간에 상황은 정리되었고, 하얀 녀석은 이지를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수고하셨어요! 멋진 사격솜씨, 잘 봤어요.”
그러다가, 한 박자 늦게서야 그 녀석은 갑자기 걱정스러운 눈을 한다. 눈은 보라색. 아니, 그나마 그 색에 가장 가까운 색의 이름이 보라색이라 할 수는 있었지만, 무언가 보라색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다 부르기 어려운 기묘한 위화감이 있다. 그러나 그 색이 걱정스러운 온기를 띄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날은 더워지고 햇빛은 따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의 공기는 알 수 없는 상쾌함을 가져다준다. 리라는 펜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새로운 풍경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스케치북을 들었다. 슥슥 그려지는 실루엣은 지금 이 환경과 전혀 상관 없는 것이었지만 반드시 그려야만 했다. 왜냐면... 지금 그리고 있는 이게 꿈에 나와서 그려달라고 했으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원래 꿈은 그런 거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그림은 좀 오랜만인 거 같다. 리라는 색연필이 든 필통을 꺼내 천천히 색을 올리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말랑말랑해 보이는 브라키오사우르스 인형은 :D 표정을 짓고 있다. 색상은 민트색, 어두워지면 야광으로 빛이 나게...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데.
"아."
리라는 그림 옆 공백에 설정을 덧붙였다. 인형의 꼬리를 잡아당기면... 빨간색으로 변하면서... >:( 표정으로 변한다......(???)
"높이 140cm,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재질. 혼자 서 있을 수 있게."
갈수록 희한한 물건 만드는 기술만 느는 것 같다. 하지만 귀엽죠?(???)
@안희야
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지먼트에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 같다. 분명 게시판에... 그러니까... 누구였더라... 아, 희야 선배님이었나?
"좋아, 가자."
1층으로 내려가 거실 한복판에 거대 야광 변신 공룡 인형을 실체화 시킨 리라는 뿌듯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인형의 목에 팻말을 걸어두었다.
희야는 부스스 일어났다. 막 일어난 모습은 머리카락이 엉키고 이리저리 흩어져 북슬북슬한 털 뭉치 같기도 하다. 아침 기도를 해야 하는데 왜 해가 중천이지. 이렇게까지 늦잠을 잘 줄은 몰랐는데……. 희야는 꺼진 알람을 한 번, 손목을 한 번 두들겨 보고는 전말을 깨달았다. 칩에 또 오류가 나서 알람이 삭제된 모양이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 희야는 손을 모으곤 눈을 감았다. 기도를 마치고 바깥 파라솔에서 파도치는 걸 구경할까 싶어 준비까지 끝마치니,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예쁜 조개라도 주울 수 있을까 싶던 막연한 감은 막상 마주한 현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꿈인가?"
희야는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음, 촉각이 느껴진다. 공룡 인형이다! 그것도 희야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만 가득했다. 맹하게 생겼고, 민트색에다, 목이 긴 브라키오사우르스까지! 희야는 다시금 볼을 꼬집었다. 음, 여전히 촉각이 느껴지니 꿈은 아닌 것 같다! 이리저리 공룡 인형 주위를 빙빙 돌던 희야는 꼬리를 당겨달라는 팻말을 발견하곤 꼬리를 꾹 잡았다. 말랑말랑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희야는 꼬리를 쭉 당겼다. 그리고 첫 눈이 내리는 날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놀란 듯하다가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희야는 팔을 쭉 뻗어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이 났던 모양인지, 호도도 달려가 달각거리며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냈다.
[(공룡인형 사진)] [크앙이* 리라가 만든 거예요?] [대단해!] [만드느라 고생했을 텐데] [빙수랑 이것저것 만들어뒀으니 먹고 쉬어요.]
공룡이 있던 자리에 조금씩 여러 종류 먹을 수 있게끔 화채도, 우유 얼음 빙수도, 거기다 음료수로 만든 고양이 발바닥 모양 아이스 바도 잔뜩이다. 하물며 능력으로 저녁까지 녹지 않게끔 주변 시원하게 만들었으니, 희야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금 크앙이를 끌어안았다. 폭신폭신하니 오늘 밤 끌어안고 자야겠다.
운동화를 벗고 여름을 위해 아껴놓았던 선물받은 슬리퍼를 꺼내는 도중 핸드폰이 진동했다. 잠금을 풀고 메신저를 켠 리라는 공룡인형 사진이 보이자마자 활짝 웃었다. 마음에 드셨구나, 다행이다!
[네! 제가 만들었답니다~ 서프라이즈!] [밤 되면 반짝반짝 빛날 거예요!] [아이스크림들 맛있게 먹을게요] [크앙이 많이 예뻐해주세요~]
크앙이가 놓여있던 자리로 가 보면 온갖 여름 간식이 놓여 있다. 주변 공기는 시원해서 초여름 더위에 익어가던 피부의 온도도 조금은 내려가는 거 같다. 리라는 고양이 발바닥 모양 아이스 바를 하나 집어든 다음 핸드폰 카메라 렌즈에 가까이 대고, 그 뒤로는 다른 간식들까지 잘 나오도록 위치를 잡았다.
찰칵! 찍힌 사진은 곧장 저지먼트 단톡방과 희야에게로 날아간다.
@저지먼트 [(사진)] [희야 선배님의 축복!] [간식 먹을 사람 전부 1층 거실로 오세요!]
안 온 사람은 마주치는대로 붙잡아 쥐여줬을 것이다.
@안희야 [(사진)] [고양이 발바닥 너무 귀여워요! 다른 것들도 맛있어 보여요!] [선배님 최고~ 잘 먹겠습니다!]
어지간히 맘에 든 건지, 뇌절하는 것인지 애매해졌다. 키득이는 웃음소리가 무언가에 막힌듯 조용히 들려오는걸 보면 후자인듯. 아지가 고양이 대신 문자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고양이도 슬슬 캣닢 항에도, 남정네 품에 안겨있는 것에도 질려가는듯 뛰어내려 네 발로 착지한다. 허공을 응시하는 고양이를 본 경진은, 그게 아지 쪽으로 가진 못하게 발로 막으려 축을 새로 잡았다.
[트로피라도 만들어줄까]
문장 꼬라지 메마른거 보니 시니컬한 답변일수도 있겠으나, 살짝 올라간 입꼬리 훤히 보이는 거리라 다행이다.
[( ˙ỏ˙ ) 비밀로 해줄까?] [말 잘 들어서 멋있다고 해준지 1분도 안 지났는데 ;)]
아지의 걱정을 덜지, 오히려 부담이 될지 모를 능청스런 답이 돌아온다. 그걸 끝으로 잠깐 답이 없어져, 하단의 점 세개 찍힌 말풍선도 없이 정적이였다. 그걸 깨고 돌아온건 왜 말을 안 놓을까 묻던 아지의 문자에 스레드 건 단답이다.
[그러게 。:(;´∩`;):。] [이모티콘 찾느라 늦었다]
본인이 남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탓이 크겠지만, 안면 이제야 튼 아지에게 그런거 다 털어놓을 정도로 상황 못 읽는건 아니다. 솔직한건 둘째치고 tmi는 tmi다.
[깡 좋다 부실에서 잠을 다 자고] [그래도 마음에 드나봐? 안 자르고 내비두는거 보면]
아지는 여로가 무섭지도 않나보다. 사람 잘 믿고 순진한 꼴 보니 전부터 있던 작은 의문이 다시금 수면에 뜬다; 이런 사람이 과연 저지먼트 일을 잘 할수 있는 건가? (나중에 블크 리더 죽일 기세로 패는것 보고 없어질 생각이다.) 경진은 아지 쪽을 힐끔 보더니 뭐라 한 문장 더 보냈다.
싸늘하다. 아니 사실 따뜻하다. 바다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싸늘하다. 동월은 현재 방 안, 잘 준비를 분주히 하고있는 아이들 가운데 대충 이불만 정리하고서 벽에 기대 앉아있다.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문자를 전송한다. [5분전. 준비 바람.] 이미 모두가 밖에서 놀고있던 시간에, 잠시 리라와 뒤로 빠져 준비는 마쳐놓았지만, 재확인은 언제나 필수다.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하니까. ....사실 성공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벌써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 휴대폰이 지잉 울린다. [OK~!] 짧고 간결하니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동월은 분주한 아이들 사이에서 스르륵 일어나, 리라를 통해 입수한 상자를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꽤나 커다랗지만 동월이 대충 둘러댄 덕분에 이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테다.
[Take it easy....]
타이밍이 중요하다. 다들 전투라는 상황에 익숙해서 시작 하자마자 무슨 지옥도가 펼쳐질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럼에도 남학생이라면, 물러서지 않고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물론 위층에 있는 한 여학생에게도 해당되는 일일테다.
"Go, Go, Go!!!!"
미리 준비해둔 무전기로 위층의 여학생(리라)에게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무전기를 통해서, 그리고 천장위에서 무엇인가 파방팡팡팡!!! 하면서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리라에게 특별 주문으로 제작한 아무 살상력이 없는 특제 폭죽이었다. 물론 터지고서도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그냥 무지개색 빛이 팡 하고 터지는 폭죽이라 보면 된다.
동월이 소리치고,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자 1층의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천장과 동월을 번갈아본다. 그저 동월은 씩 웃으며, 한 손에 선물용지 비슷한 것으로 포장된 거대한 무언가를 들었다.
'동월이가 무언가를 지시했고, 위에선 무언가 난리가 났다.' '그렇다면 저 손에 들려있는건 설마...'
그래, 이 타이밍이다. 모두가 알아차리기 직전, 혹은 알아차리자마자 표정이 파리하게 변해가는 이 타이밍. 그걸 놓칠 생각은 없다. 포장지가 벗겨지고, 그 아래에 숨어있던 것은...... 말해 뭐할까, 리라가 준 폭죽이 몇백발은 장전되어있는 게틀링건이었다.
동월은 상황 파악이 끝나가는 아이들에게 틈을 줄 리가 없었고, 총구를 대각선으로 든 후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 Ask and Go to the blue!!!!!!!!!!!!!!!!!!!!!!!!! " [묻고 더블로 가]
>>185 나 너무 행복해 너무 너무 행복해... 너무 행복해............................ 아아아아 귀여워 귀여움으로 모든 것을 지배할 아기공룡의 등장이다 저거 입고 크앙이랑 같이 잔다고? 거긴 천국이로군요 나도 볼래 희야 리라야 잠깐 영혼 좀 바꾸자(리라:?)
성운: ‘저기, 두세 사람 정도는 띄울 수 있거든······.’ 성운: ‘가만, 그렇게 다른 사람 끔찍이 챙기는 리라가 다른 사람을 붙들어가면서까지 피하려고 한다고?’ 성운이의 생각에 귀기울이던 성운주: ‘잠깐만 뭐 있는 거 아니냐’ 성운: ‘아, 리라, 어쩌면 맥주병일지도 모르겠네. 리라한테는 다른 걸 「대접」해줘야···.’
>>210 (일단 의외로 겉바속쫄이고, 달달하고 맵고 감칠맛나는 게 먹다보면 좀 마라향 섞인 떡볶이같다.) (맛있게 맵다.) (좀... 좀 심하게 매운 것이 문제일 뿐.) 성운: “응. 누가 뭐래도 친구인걸.” (은은한 미소) (의외로, 성운은 애정도 장난도 받은 만큼 돌려주는 성격이다)
>>211 기대하고 있을게요..(?)
>>212 기왕 혜우우 괴롭히는거 거기까지 폭죽기관총 들고 쫓아갔다가 맞아주세요 (이런참치)
제게 던져지는 물건을 받습니다. 그 물건은 수갑 타입의 한 케이블 타이였습니다. 그것을 손에 얻자 제 시선이 자연스럽게 앞에 누워계신분께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오히려 상황을 모르고 다시 일어나려 하시는 것 같아서 일단 또 다시 권총을 겨누고 쐈습니다. 이번에는 기절하실 때까지 다섯 발 쐈습니다. 그리고나서는 손쉽게 수갑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덤으로 탄창도 여분으로 교환할 수 있을만큼 여유가 남았습니다. 나중에는 안티스킬분들이 오셔서 저와 또 다른 저지먼트 동료분과 제압한 스킬아웃씨들을 연행해가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문제라고 느낀 것은 인질 역할을 하고 계시던 월광고의 학생분이셨는데. 괜찮다고. 그리고 또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도 계속 울고 계셔서 저나 동료분께서나 좌우간 큰일이었습니다. 이번엔 하얗고 작은 저지먼트씨가 저를 그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향하며 묻습니다. 저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괜찮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아…"
그러나 저는 그때가 되어서야 아직도 손에 들려있는 권총의 감각을 자각했습니다. 확실히 사람과 대화하는데 이런 무기를 들고있으면 안 되겠죠. 뒤늦게나마 치맛자락을 걷어올려서 다시 권총을 제자리에 꽂아 대기 시켜두었습니다.
"괜찮아요."
말함과 동시에 자가진단을 했습니다. 외상과 내상이 없습니다. 따라서 아픔이 느껴지는 곳도 없습니다. 하지만 별개로 마음은 조금 불편했습니다.
"확실히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하얗고 작은 저지먼트씨께 제가 사과했습니다. 만약 아까 제가 제대로 저의 일을 했다면 이분께서 나설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월광고 학생분이 그렇게 울고 계시는 일도 없었겠죠. 오히려 이 하얗고 작은 분이 없었다면 저는 해코지를 당하고 말았을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 자신이 스킬아웃씨들에게 무슨 일을 당하는 것은 상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저지먼트와 부여받은 임무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스스로 이 자리에서 도움이 되었다기엔 아직 기준 미달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오늘의 제 역할은 도시의 눈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스킬아웃을 발견하고 배제해야만 할 것입니다.
"…저어."
또, 눈 앞에 계신 하얗고 작은 저지먼트씨를 바라봤습니다. 단지 그뿐으로 잠시동안 또 아무 말 없이 손 끝들을 서로 마주치며 서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분명 망설이는 행색을 하고 있었겠죠. 실은, 송구스럽게도 제게 그분의 이름이나 학년같은 정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까부터 제가 상대를 '하얗고 작은 저지먼트씨'라고 밖에 인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주 잠깐 임시방편으로 그렇게라도 불러볼까 생각했지만, 만약 이분이 저보다 선배라면 크게 혼날 것 같아서 금방 그만두었습니다. 저지먼트에서 저의 위치는 1학년으로 뒤늦게 저지먼트에 입부한 후배입니다, 그 누구도 저보다 직위상 낮은 사람이 없던 것입니다.
"유이지…라고 해요."
그래서 저는 상황의 타개를 위하여 일단 지금 맥락에 아무 상관도 없는 제 이름을 대었습니다.
>>0 단순히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함으로 인해 쓰러졌다는 것 치고 입원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눈을 뜬 건 입원한 그날 저녁쯤이었지만 '기왕 입원한 김에 상담받으며 쉬라는 담당의 전언이 있다'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병원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다. 상담은 별거 없었다. 기분을 물어보고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꾸준히 한시간 내지 두시간 대화를 한다. 찾아가는 일보다 찾아오는 일이 더 많았고 그럴때마다 뭔갈 바리바리 싸들고 오길래 도리 없이 대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퇴원을 할 쯤엔 입원했을 당시보다 정신적으로는 그럭저럭 나아진 상태였지만 챙겨먹으라는 약의 갯수는 더해졌다. 투통을 가라앉히는 약과 기타 이름을 잘 알 수 없는 약. 듣기로는 불안함을 가라앉혀준다고 했다.
"퇴원 준비는 잘 되가?" "담당 연구원님이 갈아입을 옷 가져와주셔서 입원했을 때 입었던 옷은 안입고 가도 되니까 좋네요." "전해듣기로는 여행인가 간다고 하던데.. 참여할거야?" "-..참여해야죠." "상태가 안좋아질 수도 있어?" "친구가 개인실을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하게 해준다고 했어요. 그리고 거기 있다보면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욱··· 이거 정말 오해가 있는 거라니” 이제 와서 얼토당토없이 늦어버린 하잘것없는 수작질은, 이어지는 확인사살에 파묻혀 버렸다. 완전히 실신해버린 이의 몸을 돌려눕히는 것은 어려웠지만, 팔을 등뒤로 잡아빼어 케이블타이 수갑을 채우는 것은 쉬웠다.
“잘해줬어요. 항상 고마워요, 학생들.”
스킬아웃들을 연행하러 온 안티스킬의 인사였다. 냉소적으로 보자면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상투적인 인사였으나, 그래도 저렇게 굳이 감사인사를 건네는 안티스킬도 별로 없다. 어쨌든 경찰차는 그렇게 떠나갔고, 그 자리에는 두 저지먼트만이 남았다. 괜찮다는 대답 뒤에 뒤따르는 사과에, 하얀 녀석은 이상하게도 뜻밖의 말을 듣기라도 했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모호한 꼬맹이는 천만의 말이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꽁지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에? 아, 아뇨, 부원님이 미안해하실 일이 아닌데.”
하얀 녀석은 그제서야 양손의 삼단봉 끄트머리를 바닥에 푹 찍어서 삼단봉을 접은 뒤에 하네스에 걸고는, 이지에게로 쪼르르 다가서서는 이지의 어깨를 다독다독 두드려주었다.
“─확실히라뇨. 정말 잘해주셨는데요.”
그 녀석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얼마 전까지 레벨 0이었으며(본인이 알고 있기로는.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계수가 꾸준히 감소되었으나, 3레벨이 되기까지 계수가 감소되는 것을 스스로 자각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특히 자신의 엉망진창이기 그지없던 첫 순찰을 떠올린 탓이다. 저지먼트 기초 교육은커녕 완장 외에 아무런 장비도 없이 나가서, 여섯 명의 스킬아웃들을 막아낸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꼴사납게 여섯 명에게 집중구타를 당하다시피 하며 그들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게 성운의 첫 순찰이었으니까. 문득 성운이 눈앞에 그린 것은, 그날 자신에게 지원을 나왔던 선배 이혜성의 얼굴이었다.
“제 첫 순찰은 이것보다 훨씬 엉망진창이었어요. 저는 저지먼트한테 비살상 제압장비가 지급되는 것도 모르고 그냥 맨몸으로 나갔다가 호되게 당했었거든요······.”
하며, 사실상 흑역사나 다름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그 녀석은 멋적게 웃는다. 그러다 이지의 자기소개에, 그 작은 것은 그제서야 내 정신 좀 봐! 하는 얼굴을 하더니,
둘은 그렇게 밖에 나왔다. 초저녁이던 옅은 색의 밤은 식사를 하고나오니깐 꽤 진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산책을 하기에는 충분한 날씨. 정하는 산책을 하기 전에, 밝힐 것이 있다는 듯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취미일 뿐이지만 선입견으로 인해 불량하게 보이는 경우라.. 타투? 타투는 애초에 불법이잖아.
"아아, 바이크? 난 또."
생각보다 덤덤한 반응이었다. 바이크에 흥미를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저도 자전거 타는 걸. 면허증 있고, 헬맷 쓰면서 안전운전 하면 된 거지."
개인적으로 폭주족에 대한 낭만 없이, 오로지 혐오로만 가득하다. 하지만 오토바이에 대한 혐오는 없다. 오토바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있는 걸.
이어서 도착한 카페. 굳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주문을 해서 받아갈 수 있었다. 마시면서 걸으려고 하는 듯.
"커피 잘 안 먹어. 그냥 다들 마시니깐.. 지금 주문한 것도 커피가 아니야."
서한양은 카페에서 커피가 아닌, 키위주스를 시켰다. 카페에서는 커피보다는 과일주스를 마시는 편이었다. 사실 카페보다는 정하의 이미지대로 쌍화차를 더 좋아하지만.
하얗고 작은 분께서 제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십니다. 이 행동은 제가 낙심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다독여주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담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요약하자면 저지먼트 단원에 제공되는 장비를 확인하지 않고 순찰에 임했다가 오히려 당해버린 이야기였습니다.
"아…"
저는 이야기를 토대로 잠깐 당시의 장면을 상상해봤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엉망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한 저의 소감을 말했습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스킬아웃을 확실하게 배제하는게 저지먼트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저조차도 운이 좋았을 뿐일 것입니다. 저는 제가 쓸 수 있는 장비들을 확인하고 숙련시키는 요령이 습관화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목록 중에 화기는 없었기에 저는 저의 개인적인 물품을 시설에서 가져와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방금의 비살상탄과 권총이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하얗고 작은 분은 친절하시게도 저의 맥락 없는 화두에 알맞게 반응해주셨습니다. 역시 2학년이셨습니다. 사람은 겉보기로 판단하면 안 되는 법입니다. 비록 저의 막연한 상상 속 선배님 이미지와 매칭되지 않는 체격을 갖고 계셨지만 겉보기로 판단해서는 절대로 절대로 안 되는 일입니다.
"서성운, 선배님… 성운 선배님…"
저는 혼잣말로, 속으로 몇번이나 그 이름을 되뇌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네에. 기억했어요."
이제 잊는 일은 없을테죠. 스스로 다짐이라도 하듯이 쥔 손을 가슴 위로 가져갔습니다.
"…성운 선배님도… 잘 와주셨다고 생각해요."
기억한 이름을 활용해서 짧게나마 그런 말을 조심히 입으로 내어봅니다. 말에 마음을 담는 것은 제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비록 선배님이 방금 제게 하시던 말을 따라하는 형태의 말이었지만 나름대로 마음을 담았다고 홀로 생각하고 납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제가 본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서 성운 선배님이 홀로 난입하여 순식간에 셋의 스킬아웃 분들을 쓰러트리시던 장면을 세 번 정도 재생했습니다. 역시 틀린 기억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언제나처럼 일상 돌리다 소소한 세계관상의 궁금증에서 시작하는, 캡틴께 던지는 맥락리스 질문 타임
@캡틴 이지와의 일상에서 잡 스킬아웃 리더가 1~2레벨 능력자인 것으로 묘사했는데, 스킬아웃 중에서도 스킬아웃이 되기 전부터/스킬아웃이 된 후에 능력자가 된 이들이 스킬아웃의 리더 노릇을 하는 경우가 있나요? 그런 경우, 그런 능력자들은 최대 몇 레벨까지 존재할 수 있나요? (혹시 그런 경우가 없다고 하시면, 해당 인물이 샹그릴라 단종 이후 자기가 몰래 갖고 있던 샹그릴라 비축분을 먹은 것이라고 설정할 예정이에요)
>>429 보라요? (갸웃) 보라는 NPC고 애초에 4학구에 있는 이고, 딱히 접점도 없고, 정식 등장을 한 애도 아니라서..(흐릿) 기본적으로 NPC와의 일상은 불가능해요. 그 애들은 그냥 일단은 있는 주변 인물이라는 설정이기 때문에...관계를 쌓는 것은 MPC 둘 밖에 없답니다.
은우라. 그렇다면 상황을 물어도 캐릭터의 개성을 보여주는 일상을 또 이야기하겠지요. (옆눈)
“그것보다 더 엉망인 사례들도 있어요. 그러니, 오늘 이지 후배님이 너무 잘못했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당장 며칠 전의 블랙크로우 결전만 해도 상대방의 큰 기술 하나를 못 막아서 큰일날 뻔했거든요. 늦게나마 저지에 성공했는지 잠깐 노출되는 것으로 그쳤지만······.”
물론 그 당시 저지에 실패했는데도 결정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당시 성운이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조력자의 덕분이었으나, 성운은 아직 해당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래도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 블랙 크로우의 일망타진에는 성공했고, 샹그릴라는 거의 단절되었으며, 3학구에는 그럭저럭 평화가 찾아왔다. 어디까지나 이전에 비해서 평화로울 뿐 아직도 이런 잔챙이들이라던가, 블랙 크로우와 관련없는 스킬아웃 갱단들은 남아있지만.
“아무튼 이번에 잘못한 건, 이지 후배님이 아니라 그렇게 지저분한 방식으로 능력을 가져놓고 사용하는 것도 너저분한 그놈이에요. 전치 2주 딱 맞춰서 머리 한 번 걷어차줄 걸 그랬나?”
성운은 태연하게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하며, 그제서야 경찰차가 사라진 방향을 한번 흘끗 본다. “비살상탄 권총을 쓰시는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저지먼트의 비협조자 진압 및 체포시 전치 2주를 초과하는 부상을 입히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러다 잘 와줬다는 이지의 말에, 성운은 다시 이지에게로 고개를 돌리고는 멋적게 웃었다.
“이번에 너무 늦지 않았다는 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네요. 자세가 완전 엉망진창이었는데.” 그러다, 성운의 미소가 조금 부드럽게 바뀌었다. “비단 지금 잘 온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 만난 거에요.”
그리고 성운은 악수를 하자는 것인지, 조그만 손을 이지에게로 내밀었다. 작고 보드라워보이는 하얀 손은, 보기와 다르게 반창고와 굳은살투성이였다.
“첫인사가 많이 늦었지만─ 저지먼트에 어서오세요.”
“그러면 남은 순찰 동안 음료수나 하나씩 마시면서 할까요. 한잔 살게요, 딸기 프라푸치노 맛집을 알아요.”
그때 그 사건 이후, 딱 하루만 휴식을 취했던 은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복귀했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3학구가 완전히 안정화되었다고 판단했을 때, 부원들에게 섬으로 가자고 제안했고 지금에 이른 상태였다. 아마 대부분이 즐겁게 끼리끼리 모여서 놀고 있었겠지만, 은우는 혼자 조용히 빠져나와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주변을 바라보던 와중, 폭포수가 흐르는 곳에 도착하자 그는 제 동기를 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철현의 모습이었다. 뭐지? 수련이라도 하는건가? 그런 호기심이 들어 은우는 살며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약한 바람을 일으켰다. 아마, 그 바람은 폭포수를 가르며 철현의 몸에도 차갑게 닿았을 것이다.
"뭐해? 스님이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키득키득 웃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장난끼가 가득 섞인 모습이었다.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바라보지만 딱히 자신은 옷을 입고 있는 만큼, 물에는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듯, 그는 일부러 폭포와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을 빠뜨릴지도 모르니 가만히 발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거기 괜찮지? 시원해서 좋아. 진짜. 날씨가 더울때 거기에 들어가있으면 어찌나 시원한지. 대신에 지금 시원한만큼 밖의 더위가 더 뜨겁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눈에 옅은 웃음기를 담고서 그렇게만 얘기해두는 것이다. 강요를 한다고 해도 들을 혜우도 아니고 강요할 일도 아니며 결국 선택은 혜우의 몫인 거다.
"뭐어~ 형이 너를 의심하긴 했는데~!" "난 아닐거라고 말해줬단 말이야~ 왜 너야~" "... 왜 그랬어~? 그럼 성운이 형이랑 여로 머리 기른 사람도 너야~?"
성운이 의심한다는 한 번의 누적된 경험이 없었다면 믿지 않을 만도 했다. 하지만 역시 흑청색의 장발은 혜우를 생각나게 했기에 아지는 짧은 침묵 후에 투정부리는 것이다.
"싫어~ 내가 챙길 거야~"
제멋대로인 한아지는 또 한 마디도 안 지겠다고 제멋대로 얘기하고서 체 소리를 내고 고개를 돌렸다.
"친구끼리니까 덜 부끄러운 거라구~" "안 부끄럽진 않았단 말이야~!"
혜우가 안 걸리면?? 안 걸리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어쨌든 힘을 조절하느라고 잠시를 방심했을 뿐인데 또 그 시간을 이용해서 혜우는 알차게 정수리도 누르고 머리도 흐트리고 딱밤까지 먹이는 것이다. 이익... 이이익... 이익...! 딱콩 이마를 맞았을 때는 아얏 하는 소리와 함께 맞은 부위를 감싸고 빨갛게 되어서 원망하는 눈으로 혜우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그렇게 폭포수 맞는 것은 스님들이 많이 하잖아? 아. 그러면 한양이가 하려나?"
그 애. 그쪽으로 믿는 것 같던데. 그런 혼잣말을 하면서 은우는 살며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편견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그냥 생각만 하고 굳이 묻진 않기로 하며 그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물대포라는 말이 나오자 은우는 두 손을 손뼉을 짝 치고 가만히 물을 바라봤다.
"해줄까? 해줄 수 있는데."
아마도 자신의 능력을 쓴다면 저 물을 이용해서 물대포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혹은 민물 위에서 생겨나는 파도라던가. 어쨌든 파도의 생성에는 바람도 꽤나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었으니까. 보란듯이 그는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기를 압축하거나 하진 않았다. 잘못 사용하면 상당히 위험하고, 제 동기가 다치는 것은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잘 쉬고 있어? 일단 이렇게까지 데리고 왔는데, 제대로 못 쉬면, 내가 이렇게 데리고 온 보람이 없단 말이야."
돌아갈때까진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푹 쉬라고 하면서 그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철현을 바라봤다.
>>529 보이기만 저렇게 클 뿐이지 요즘 힘 하나도 없는 한자리수 빈발 허접면봉막대기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계수 뽑을 때나 좀 그렇게 뜨지.. (앙심)
>>532 얼마든지에요~ 상황이 셋다(성운: “저기요, 셋 다?”) 한일상에 한방에 다 가져갈수도 있을것 같고(욕심쟁이) 첼로연주회 참석도 가능할 것 같고... 다만 이지주와 일상 돌리고 있어서 멀티가 되고, 답레가 겹치면 이지의 답레를 우선적으로 작성할 거라는 점 괜찮으실까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선이라면 용인해주는 모양이다. 원래는 이것도 재산손괴지만, 딱히 사람들의 관심에 띄지 않는(건물주조차 신경쓰지 않는) 벽에 그리거나, 실소유주가 없는 벽을 장식하는등, 아슬아슬한 합법 불법 사이니까.
"저도 뭐어, 그렇게는 생각하는데, 세간엔 그렇지 않은사람들이 더 많더라구요."
안그래도 키가 작다보니, 올려다보는 느낌인데, 눈까지 매섭고 오토바이를 탄다고 하면...안살 오해도 자연스럽게 사게되니까. 그래서 안경을 끼고 다니는거 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누군가 스트레인지 주변 건물을 사들이고 있댔나? 그럼 이 아슬아슬한 회색지대도...확실히 그쪽에서 그리는건 범법이 되려나...?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카페에 도착했다.
"하긴...그런사람들도 많죠. 아메리카노는 죽어도 못먹는사람들도 있고..."
고개를 두어번 끄덕인다. 쓴걸 싫어하시는건가?
"아 체리콕 좋죠!"
닥터페퍼도 최애 음료수중 하나니까. 확실히 샷을 내리는 과정이 없다보니 음료수 자체는 매우 빠르게 나왔고 약간 쌀쌀해진 날씨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기 싫어 금새 나온 음료수를 능력으로 들어올린다. 정확히는, 물을 들어올리는거니까 컵이 안 내용물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느낌이 되어버렸지만. 그렇게 나온 음료수를 한양선배한테 옮겨드린다
"여기 나왔어요. 생각보다 빠르게 나오네요... 커피가 없어서 그런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잠깐 걷는다. 잠깐이라고 해도 정말 3분도 안되는 짧은 거리니까.
"코앞이에요. 이 건물 오른쪽 뒤."
그렇게 이야기하며, 골목길에 들어서자... 네모난 철제 프레임과 비계. 거기에 걸린 방수포에 감싸진 벽이 보인다. 능숙한 솜씨로 주머니에 손을 빼지 않고 옆에있는 접사다리를 타고 올라,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촥하고 걷어낸다. 그러자 보이는건,
"꽤 멋있죠?"
덕지덕지 붙어있는 박스. 그리고 그 박스 아래로 보이는건... 3X5미터정도 크기의 코뿔소의 형상이다. 목화고 라는 글씨가 머리에 디자인되어있었다. 근처 벽에는 a.k.a 에어버스터, 마틸다, 파인미스트, 야누스 라고 적혀있는 낙서도 있었다.
"아, 이 벽 제가 산거라서 합법이에요. 건물주랑 합의된녀석! 한...X천정도 들었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벽은 내가 주인이니까, 당당하게 낙서해도 된다고. 조금 비싸긴 했지만, 아무래도 건물의 한 쪽 면 전체를 가불한거니까. 거꾸로 생각하면 5층짜리 건물 윗쪽에도 마음껏 칠해도 된다는 말이지!
뿌듯한 포즈로 사다리 위에 있다가. 새삼 한양선배가 다시 생각나 뒤돌아본다.
"아하하... 숨긴 이유가 있었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래피티의 상상도. 이 허접한 그림을 대충 어찌저찌 정하의 매직금손파워로 업그레이드 시킨 버전이야!
경진이 자 들고 태진이 하나하나 지적하는 거 왜이렇게 귀엽지 진짜 보배다 보배 이게 현대의 명작이지 다치고 까칠하고 사나운 인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태진이도 멋지다 근데 경진아 너 귀를 보면 네가 태진이 지적할 군번은 못 될 거 같아 혹시 가방도 까줄 수 있니 거기 담배 나올 거 같아서 그런데
>>0 이번 훈련은 딱히 대단한건 없었을 것이다. 드문드문 시간을 두고 날아오는 야구공을 쳐날리는 것은 스트레스 풀기에 제격이라지만 어떤건 평소만큼, 어떤건 유독 멀리, 어떤건 힘을 준건지 모를 정도로 낮게 튕겨지는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을까?
[...평소에도 이런걸 한다니 좀 신기하거든.] "좀 쌩뚱맞긴 하지? 그래도 물리적인 힘 역시 영향이 가는 능력이니까~ 물론 직접 강해지는 건 아니지만 피지컬도 좋아지면 능력의 효율 역시 좋아지긴 하거든~" "함 해볼래여? 한두시간쯤 하면 개운해짐다." [나는 두뇌파라서 육체적인 노동은 조금 그렇거든~] "오~ 그래서 그렇게 뱃ㅅ..."
그녀의 묘한 도발에 타격이 있었는지 여학생은 대뜸 금속배트 하나를 집어들고 옆에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러고선 꼬나쥐고 있는 그것을 세차게 휘둘러보지만 자칭 두뇌파라는 말은 딱히 틀리지 않았는지 때려내는 것보다 겁먹고 피하거나 몸 여기저기 맞는게 더 많았다. 그렇게 겨우 스무번을 채울쯤 방금 전까지 공이 때리고 지나갔던 배를 부여잡으면서 주저앉았을까?
[으으... 우우... 아프거든...] "...우와... 생각보다 허접임다." [그... 그동안 제대로 된 식습관을 들이지 않아서 그런 거거든?? 이젠 균형 잘 맞춰서 먹을 거거든?? 운동도 할거거든??] "오, 그럼 학구 한바퀴는 어때여? 간단하게 운동하기 좋슴다." [엑...?] "어머, 점례한테 못들었니? 그것도 체력단련 스케쥴 중에 있다고?" "맞아여, 그게 싫으믄 러닝머신 4시간도 있어여. 아니믄 방패 들고 피칭머신 최대출력 버티기도 있구여," [그거 운동부에서나 할법한 하드 트레이닝이거든...] "즈는 하는데여?" [아니, 너가 이상한 거거든...]
그걸 들은 저는 그저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당일, 부실에서 서류정리를 하다 현장에서 돌아온 부원분들께 말 걸리는게 무서워져서 조용히 부실을 빠져 나갔던 것을 기억합니다. 바로 그날에 블랙크로우씨와의 결전이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 안 것입니다. 저는 그때 자신이 쓰고 버려지는 병뚜껑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계속 저의 라이벌 자리는 병뚜껑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병뚜껑이 이겼을테죠.
"알고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진압 요령에 대해서는 입부당시에도 들었고 이후 매뉴얼로도 숙지한 바입니다. 사적인 견해로는 비협조자와 스킬아웃은 모두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지먼트의 이름에 해를 끼칠 생각까진 없었습니다. 그러니 규칙인 이상 저는 그것을 최대한 준수 할 생각이었습니다. 무기는 통제되고 있을 때 훌륭한 법입니다. 저라고 별로 다른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선배님이 손을 내밀어주십니다. 왜일까요? 저는 고개를 기울이고는 선배님을 따라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갔습니다. 힐끗 선배님의 눈치를 봤습니다. 좌우간 몇번 정도 손끝을 스쳤다 놓았다를 반복했습니다. 선배님이 보시기에는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나중에는 그 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손을 뻗은 의도를 도통 알 수가 없어서 그대로 가만히 잡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제게 오늘 부여된 임무는 순찰입니다. 임무를 아직 전부 완수하지 못한 제가 그런 걸 마실 자격이 있는지 의심됩니다. 선배님이 그르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음료수를 마시는 동안 어디선가 또 스킬아웃분들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걸 놓친다면 저지먼트로서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situplay>1597027084>552 "내가 즐긴게 중요해? 너 응원하러 온 건데. 니가 즐겨야지." 이러면서 머리 박박 헝클어주고 밥먹자고 끌고감. ㅋㅋㅋㅋ 이게 왜 경진이 공로가 되지 경진이 그말 들으면 그래? 그럼 지면 내가 제대로 안 본 탓이라고 했을거야? 이러면서 웃을듯 ㅋㅋ 아 이경이 대회 갈수 있다면 매번 가지 못 가는 날은 상황설명 짧게라도 해주고 내뺀다
미인 오타라고!!!!!!(흑흑) ㅋㅋㅋㅋㅋㅋ 활을 왜 줘!!!!!!!!! 이경이 상금 모아서 산걸!!!!!!! 경진이 뭔가 이경이한테 쏴봐도 되냐고 묻고 활시위 당겨봤는데 일정량 이상 안 땡겨져서 당황했던 전적 있을듯(?) 이경이가 준 꽃 다 모아논다 이게 한병 가득 채울때까지 우리우정 영.원.히.
굳이 말하면 나는 약해지고 싶다...라는 말은 은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건 철현에게 꺼내봐야 기만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힉에 자신의 작은 소망은 그냥 마음 속으로 묻었다. 딱히 누군가의 이해를 바랄 생각도 없고, 이해받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과연 그게 정말로 이해일까. 속으로 헛웃음소리를 내지만, 표정만큼은 피식 웃는 모습이었다.
"하핫. 가능은 하지만...."
이건 네가 하겠다고 한 거야. 이어 은우는 살며시 공기를 작게 뭉쳤다. 그리고 가만히 각도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자연하게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연산식과 연산속도. 그것은 아마 컴퓨터와 맞먹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내 방향을 살며시 바꾸고, 그는 공기를 압축한 구체를 집어던졌고 적절한 타이밍에 터트렸다. 방향을 조절하며, 힘을 조절하며, 그리고 물이 떨어지는 각도를 조절하며 터트린 바람은 철현의 머리에 제대로 명중했을 것이다. 아마도 꽤 거칠게, 강하게.
"아. 내가 아니라 네였나? 발음이 비슷해서 말이야. 하하핫."
일부러 얄궂게 웃는 것은 장난, 그리고 놀리기 위함이 분명했다. 이 또한 1학년, 혹은 2학년에게는 보이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 에어버스터가 저런 짓궂고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하는 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노는 것은... 글쎄. 원래 이런 자리는 높은 사람이 있으면 괜히 신경쓴다고 잘 못 논단 말이지. 그러니까 오늘 하루 정도는 따로 돌아다닐까 싶어서 말이지. 이러다가 또 어울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어쨌든... 레벨5. 돈은 많이 버니까 말이야. 한달에 2200만원. 그리고 그것을 계속 모으고 모으고 모으다보면... 더 큰 돈이 되기 마련이고."
이내 처지가 다르다는 불평이 나오자 그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그는 철현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심장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있냐, 없냐라는 차이점도 있지. 참고로 난 없는 것이 좋은데 말이야."
“반대사례도 있어요. 지금도 0레벨이신 어떤 선배분이 있는데 그 큰 기술이 발동될 때 그 선배님이 적의 위협적인 능력자 한 명을 억지로 잡아다가 방패로 써버린 덕분에 공격도 막고 그 능력자도 무력화했던 전적도 있었거든요.”
성운이 직접 현장을 겪어보고 느꼈던 사실이다. 레벨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것은 그저 다른 선택지일 뿐, 전장에서는 결국 하나 이상의 선택지는 언제나 있다고. 아니 오히려 레벨이 낮아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있다고. 삶이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듯이. ─성운이 방금 말한 이건, TMI다. 원래의 자신에 비해서도 지금 자기 자신이 말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성운은 느꼈다. 그러나 불가항력이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눈을 하고 있는 이지의 얼굴 위에 겹쳐보이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얼마 전의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가, 라는 생각에 몰두해있는.
이지의 경우에는 그것을 넘어 스스로를 단순한 도구나 연장으로 취급하고 있기까지 했으나, 아직까지 이지와 충분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성운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의미의 반대사례로, 지금 3레벨이나 4레벨을 달성한 아이들도 이지와 비슷하게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도 했다. 스스로를 「카드의 패」 취급하는 아이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성운의 눈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지다. 그래서 성운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마주 내밀어진 이지의 손을 꼭 잡았다.
“앞으로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거에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이라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능력이 없어서, 그 대신으로 칼리를 배웠구요··· 이지 후배님도 권총을 잘 다루시잖아요?”
확실히, 방금의 전투에서 성운은 능력을 쓰지 않았다. 부원의 명단과 사용 능력이 다 적혀있는 부원 명부를 이지가 봤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지의 반문에 성운은 싱긋 웃었다.
“아직 순찰 시간이 덜 끝난 건 알지만, 잠깐 들러서 음료수 한 잔씩 테이크아웃해 가는 걸로 선배들이 너무 뭐라고 하시진 않을 거에요! 혼이 나도 선배인 제가 나는 거죠, 뭐.”
"그런데 혜우가 머리도 길게 할 수 있는 줄 몰랐지~" "혹시 애린이 머리도 혜우가 한 거야~?"
이제는 엉뚱한 쪽으로 의심이 번져나가고 있다.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으니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아지를 위해 변명해주자.
"혜우는... 혜우는... 그게 그렇게 싫었어~?"
그때 혜우가 같이 창피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조금 상처 될지도!! 혜우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서 째려보다가도 금방 시선을 떨구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앗 하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가령 좋아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오해를 사게 만들어서 싫다든가...?
하지만 혜우를 흘끔흘끔 보면서도 직접 말로 하지는 않는다. 만약에 희야 형에 이어서 오해가 두 번째면 창피하잖아!!
"너무해..."
딱밤당한 곳을 문지르다 혜우를 따라 눈이 시계를 향하는 것이다. 시간이 벌써 꽤 지나 있었다.
"나 더 물어보고 싶은거 많은데~"
세은이랑 친하냐든가 병원 생활은 어떠냐든가 이것저것... 서둘러 저질러놓은 키위를 마저 깎아 혜우에게 내민다. 잘 생각해보면 정작 한아지는 하나도 안 먹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오늘은 돌아가 볼게~" "나 가면 혜우 손 잘 치료해야 돼~"
간호사에게 살펴달라고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생글생글 웃는다. 혜우가 키위를 거부했다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을 것이다.
키득키득 웃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일부러 그렇게 웃는 것이었다. 약 좀 올라보라는 듯이 일부러 메롱을 하는 것은 역시 3학년들에게 보이는 작은 짓궂음이었다. 이어 들려오는 말에 은우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철현을 바라봤다.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겠냐는 물음에 은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역시 너라면...
그런 생각을 잠시 하지만, 아직 그는 특별히 무슨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좀 쉬라고 이야기를 하는 그 말에 그는 괜히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가 자신 쪽으로 바람이 솔솔 불게 능력을 사용했다. 땀이 식는 것을 느끼면서 은우는 철현에게 이야기했다.
"지금 충분히 쉬고 있잖아. 일 안하고, 이렇게 한가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쉬는 거야. 적어도 내 기준에는 말이야."
서류 작업도 없어. 퍼스트클래스로 해결해야 할 일도 없어. 그렇다고 순찰을 도는 것도 아니야. 얼마나 편한데.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은 적당히 둘러대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가득했다. 지금 이렇게 있는 것도 얼마나 편한지. 그만큼 지난 샹그릴라 사태가 그에게 있어서는 많이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심어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더라."
참을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말을 망설이는 듯 하다가 괜히 뒤로 홱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철현에게 이야기했다.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보다는 내 동생이 더 소중해. ...너희들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중요성을 따져보면 역시 세은이가 압도적으로 높아.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언젠가... 언젠가는... 진짜 최악의 경우에는 너희들과 대립해서 싸워야 하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 그때는..."
이어 은우는 고개를 살며시 옆으로 돌리면서, 철현을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역시 네가 때려줘라. 나. 레벨5 퍼스트클래스를 때리는 레벨0. 엄청나게 유명해질걸? 아마 퍼스트클래스보다 더욱 말이야. 최강을 때려눕힌 최약. 괜찮잖아. 타이틀."
큰 마음을 먹고 질렀다. 플레이스테○션 5. 그것도 상급기종. 끝끝내 입금된 활동지원비를 보태서 사버린 것이었다.
인첨공 내부의 특성상 온라인 플레이가 크게 제한되기는 하지만, 싱글 게임을 하거나 부원들끼리 패드 여러 대를 연결해놓고 같이 게임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명분상으로는 저지먼트 비밀 초소라고 세워놓고 이런 걸 들여오는 것은 초소라는 명색이 흐려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주머니 사정과 함께 성운이 이런 걸 사지 못하도록 막는 내적 명분이었으나 주머니 사정은 이제 소매넣기로나마 지원금을 받게 되었으니 결국 트이게 되었고, 그리고 지금까지 아지트에 몇몇 사람을 초대(?)해 본 결과 이 아지트에 가장 필요한 건 컨텐츠(??)라는 결론이 나온 이상 어쩔 수 없다.
·········본체와 별개로 모니터로 쓸 TV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걸 성운이 깨닫고 머리를 싸쥔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블랙 크로우와 샹그릴라 사건으로 어수선했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3학구에 평온한 일상이 돌아왔다. 더는 샹그릴라로 인한 폭주 사건도, 블랙 크로우의 횡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인첨공이 바뀐 것은 아니었으니 방심할 수 없겠으나 당분간은 마음 놓고 일상을 만끽해도 될 터였다.
나는, 그럴 수 없었지만.
그러는 와중에 계절이 바뀌어 어느새 하복을 입는 시즌이 왔다. 무더운 날씨는 누군가에겐 괴로울지 몰라도 내게는 몹시 편안했다. 남들에 비하면 쾌적한 일상을 보내는 중에 갑작스런 휴가가 잡혔다.
저지먼트 부원들만, 부장 소유의 섬으로 일주일 간 놀러가자던가.
적당히 핑계를 대고 빠질까 하다가 변덕 한 번 부리기로 했다. 어차피 다짐한 대로 행동하면 어울리지 못 할 것도 없었다. 나름의 준비를 갖추고 첼로도 챙겨서 떠나는 배에 합류했다.
도착해서 간단히 짐을 풀고 좀 놀아볼 생각으로 옷을 꺼냈는데-
...이 하얀 건 뭘까... 나는 분명 이런 걸 산 기억이 없는데...?
하얀 수영복 아래로 팔랑 떨어지는 쪽지 한 장. Good Luck! 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과 낯익은 필체. 쪽지를 손 안에 구기며 생각했다.
돌아가면 옆구리에 무릎을 찍어주겠어.
"...하."
어쨌거나 원래 입으려던 옷 대신 그게 들어 있었으므로 그걸 입는 수 밖에 없었다. 흰색 홀터넥의 비키니를, 입고 보니 더 열받는게, 위아래 사이즈가 어떻게 딱 맞을까? 이건 소장님한테 보고해야 할 사안인가 아닌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그것도 나중에 돌아가면 생각하기로 하고 밖으로 나갔다.
새로 산 샌들이 조금 어색했지만 걸음이 가벼우니 괜찮았다. 바닷물은 별로지만 구경이나 한 번 하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 해변에 먼저 갔다. 반짝이는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파란 튜브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풍경 구경을 하다가 문득 한 사람을 발견했다.
하얀 꽁지머리, 아담한 키, 그런 사람은 저지먼트에 한 명 뿐이었다.
산책을 하는 건지 노는 중인 건지 모를 작은 뒷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조용히 튜브를 내려놓고 살금살금 그 뒤로 다가갔다. 어차피 소리가 잘 나지 않는 모래사장임에도 조심히, 아주 조심스럽게, 그 뒤로 접근해 팔이 뻗으면 닿을 사정거리에 들어가자마자 확 하고 달려들었다.
냅다 성운의 몸통을 붙잡고 무릎 정도는 잠기는 물 쪽으로 내던져버린 것이었다!
어찌나 대차게 던졌는지 내 몸도 잠깐 휘청일 정도였다. 그러나 주춤거릴 새는 없었다.
성운이 물에 푹 빠져 잠긴 걸 보자마자 뒤돌아 숲 쪽으로 뛰었다. 가는 길에 튜브 챙기는 것도 잊지 않고 평소 연구소에서 다져진 지구력과 달리기 실력으로 진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다.
"누, 누가 걱정했대?! 딱히 걱정 안했거든?! 아니..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굳이 말을 할 정도로 걱정하고 그러진 않았거든?! 이상한 말 하지 마!"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는 그 말에 세은은 움찔하더니, 마치 고양이가 털을 바짝 세우는 것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툴툴거리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녀는 걱정했다. 딱히 여로만이 아니라, 모두를. 일단 무사해서 천만다행이라고 얼마나 생각했는지. 그와 동시에 다시 한 번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세은은 아랫입술을 저도 모르게 약하게 깨물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미안" 이라는 말을 조용히 여로에게 남겼다. 물론 들렸을진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그래도 사람이 저렇게 되었는데 병원에 가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듯이 세은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일단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목숨을 붙여줄 것이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 레벨5니까 어떻게든 살려주겠지. 그것이 인첨공이니까. 그런 씁쓸한 표정과 감정을 속으로 삼킴녀서 그는 숨을 후우 내뱉었다.
"너도 병원 가. 다쳤을 거 아니야. 안 다쳤다는 말 하지 말고."
꽤 큰 싸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안 다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여로에게 톡 쏘아붙이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규칙적인 파도 소리는 마음을 안정시킨다. 포말이 굵은 모래 알갱이 사이에서 보글거리다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걸 지켜보는 시선이 곧 달빛 내린 밤바다의 윤슬로 옮겨졌다. 소금기 섞인 공기가 얼굴을 기분 좋게 스치고 간다. 리라는 슬리퍼 신은 발을 질질 끌며 해안선을 따라 걷고 있었다. 손에는 우쿨렐레 케이스와 텀블러를 든 채 은우의 펜션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공기가 맑았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별들이 검은 비단에 박힌 보석처럼 총총 빛나는 게 참 절경이다. 물과 하늘과 땅을 번갈아가며 마음껏 눈에 담은 리라는 해변가의 한 바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우쿨렐레 케이스를 열었다. 다양한 스티커가 붙은 우쿨렐레 위에는 약봉투들이 겹쳐져 있다. 리라는 개중 하나를 뜯어낸 다음 입안에 털어넣고 물과 함께 꿀꺽 삼킨다.
"으익, 써."
이 맛은 어떻게 해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 오만상을 쓴 리라는 케이스 뚜껑을 대충 덮고 그 옆에 텀블러를 세워둔 뒤 물가로 다가갔다. 이 시간에 혼자 나온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번째는 밤바다 풍경이 궁금해서. 두번째는 바다를 보며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로망을 이루기 위해서. 세번째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이유인, 약을 먹기 위해서.
"아~ 시원하다! 밤에도 예쁘네!"
발끝을 바닷물에 적시자 슬리퍼 아래로 젖은 모래가 들어왔다. 음, 벗어둘 걸 그랬나. 발가락 사이로 까끌한 감각이 느껴지는 게 별로 좋지는 않다. 리라는 허리를 숙여 슬리퍼에서 발을 빼냈다. 동시에 세찬 파도소리가 밀려와 고개를 들면 갑자기 강해진 물살이 무릎 위까지 덮어온다.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고 상황 파악을 하는데 손 안에 슬리퍼가 없다. 어, 하고 수면 위를 바라보면 그것들은 어느새 종이배처럼 둥실둥실 떠 있다.
"아, 뭐야!"
옷까지 적실 예정은 없었지만 이미 방금 전의 파도로 젖어버린 데다가 저걸 떠내려가게 둘 수도 없어서, 리라는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 원피스 끝자락을 살짝 묶은 다음 물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잡! 았... 아니, 움직이지 말라고! 제발...!"
하나는 비교적 쉽게 잡혔지만, 다른 하나는 잡힐락 말락 약올리듯 넘실대는 물결을 타고 조금씩 멀어져 간다. 정강이 정도 오던 물은 벌써 허벅지 위까지 차올라서 이걸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리던 찰나,
지금도 대학에서 와달라고 요청이 온다는 말은 그는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여기서 말했다간 정말로 기만이야. 기만이지. 기만이고 말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퍼스트클래스니까 사실상 확보해두려고 하는 것은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성적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프리패스는...좀 너무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괜히 찔리는지 휘파람만 불었다.
"지금은 은우로 있으니까 은우로 괜찮아."
철현의 속을 알리 없는 은우는 정말로 순수하게 지금은 그렇게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상쾌하게 웃는 것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당연했다. 은우는 기억을 읽거나, 생각을 읽진 못했으니까. 그런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말에 한 번 피식 웃고, 이어진 얼간이가 되겠다는 말에 두 번째로 그는 피식 웃었다. 이어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친구가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때리는 것도 친구가 할 일인 법이야. 걱정 마. 네가 갑자기 눈에 뵈는 거 없이 날뛰면 내가 직접 주먹을 날려줄테니까."
얼굴이 좋아? 배가 좋아? 그렇게 말하지만, 딱히 살벌한 분위기는 없었다. 그저 장난스럽게 키득키득 웃을 뿐. 이어 그는 가만히 물을 바라봤다.
"일단 지금은 참고, 다음에 들어가야겠어. 오늘은 영 기분이 아니야. 이대로 조용히 산책이나 할까 싶거든."
그러다가 밤이 되면 절벽에 올라서 별을 보다가, 모두가 잘 시간쯤에 슬며시 들어와서 거실에서 잠이나 잘까 싶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왜 굳이 그런 말을 하는 건데?!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 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은우는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애초에 지금도 일은 자신이 가장 많이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덤이었다. 물론 한양의 경우는 일이 많긴 했지만, 그건 그 아이가 부부장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적어도 은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한번 언제 물어보는 것이 좋을까. 그렇게 생각도 하며.
"...아니. 서로 잘못된 길로 가면 크로스카운터를 할 것도 없잖아. 그리고...내가 주먹을 쓰면 능력 쓸거야. 난."
크로스카운터 이전에 풍압샷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은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누군가는 공기팡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지만, 그건 굳이 따지자면 자신보다는 청윤이 좀 더 어울리지 않나 생각하며 그는 괜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너는 잘못된 길로 안 빠지면 돼. 그리고.. 한양이에가 맞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누군가가 때린다고 한다면 난 네가 좋아."
물론 다음은 혜성이려나. 그런 말을 하다가 그는 순간 멈칫했다. 아니. 이거, 뭔가 맞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되버린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헛기침 소리를 내면서 시선을 살며시 회피했다.
"말해두는데... 어디까지나 내가 잘못된 길로 갈 때의 이야기야. 나도 맞는 것은 싫어. 진짜로."
─저번 꽃놀이 때 그렇게 좋지 못한 기억이 있었기에(당시에 우울증 고위험군 진단을 받았었다) 이번 합숙 휴가에 참가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기우였던 것 같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를 면치 못했던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럭저럭 안면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새로운 안면을 익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두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좋았다. 혼밥이 익숙한 성운이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으로는 자신이 직접 한 요리를 좋은 사람들과 도란도란 나눠먹는 식사 자리를 꿈꾸고 있었기에, 다른 이들에게 식사를 차려주는 게 힘들지만 그 힘듬마저도 행복했다. 이번 휴가에 참가하길 잘했다고 성운은 생각했다.
정확히 잠이 들려는 찰나에 동월과 리라가 쓸데없이 성스러운 효과음을 탑재한 폭죽 개틀링건을 들고 침실에 난입하기 전까진 말이다.
하필이면 동월이를 제지할 수 있는 선배(은우와 철현)도 자릴 비운 탓에, 결국 모두가 와그르르 몰려들어 다굴로 제압하는 엔딩이 되는가 했으나··· 갑자기 어디선가 들이닥친 제 3의 구출세력으로 인해 상황이 반전되고 만다. 아, 이 녀석들, 첫날밤은 밤샘이 국룰이라 이거지. 성운은 결국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 되겠어를 외치며 창문을 열고(혹시나 걱정할 은우를 위해 확실히 못박아두자면 깨거나 부수지 않았다, 얌전하게 열었다) 탈주를 감행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도착한 게 밤바다였고, 성운은 밤바다 근처에 마련된 원래 파라솔을 위한 데크에 기대어누웠다. 동월이를 제압하느라 한바탕 난리를 쳤다가 견디지 못하고 탈주하느라 따뜻하게 데워진 몸이, 서늘한 바닷바람에 식혀지는 게 기분이 좋았다. 돌핀팬츠와 나시에 셔츠 한 장 덧입은 차림으로 무릎을 끌어안고 쪼그려앉아 밤바다를 바라보던 성운은, 이내 꾸닥꾸닥 졸기 시작했다. 완전 무방비 상태. 그래서 이 작은 친칠라는 등 뒤에서 심술궂은 고양이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혜우는 성운을 뒤에서 시원스레 와락 집어들듯이 껴안아서는 냅다 밤바다로 내던져버리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차게 성운을 내던지면서, 혜우는 뭔가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40킬로그램도 안 될 가벼운 체중이, 붕 휘둘러 날리는 동안 혜우의 품속에서 너무도 급격하게 가벼워졌던 것이다. 혜우의 품 속에서, 깼다. 결과적으로 혜우의 품을 떠나 날아간 성운은 아무리 체중이 적어도 그렇지 무슨 가벼운 베개를 던진 것마냥 생각보다 너무도 큰 포물선을 그리며 밤바다로 날아가버렸고······
공중으로 날려지던 성운의 몸이 펴지더니, 공중제비를 돌며 자세를 바로하고 밤바다로 떨어지는 것까지 보았다. 그리고 지면에 착수.
그런데 문제는 성운의 착수 장면이 혜우가 예상한 것처럼 보기좋게 물속에 가라앉는 게 아니라, 전혀 예기치 못한 형태였다는 점이었다. 첨벙, 하고 종아리가 반쯤 가라앉나 싶더니, 진짜로 무슨 사람 모양의 풍선이라도 던진 듯이 균형을 잡고 둥실 떠올라서는 두 발로 물 위에 서 있지 않은가. 그 상태로 성운의 시선과 혜우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성운이가 전날 동월이에게 시달린 끝에 어제 못 잔 잠을 자려고 낮잠을 자다가 이번엔 다른 사건 때문에 못 자게 돼서 따뜻한 해안가 선베드에서 낮잠자자고 나온 걸 이번엔 혜우가 집어던졌다고 바꿀 수도 있으니, 시간대를 낮으로 하고 싶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그 정도는 금방 고쳐올 수 있으니까요.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다? 자신이? 그건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의지로만 살아갈 수 있는 몸이 아니었으니까. 만약에 이들을 모두 없애라고 명령이 떨어진다면 자신은 그것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것이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아무리 싫다고 해도.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었고,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 몸에 폭탄이 있는 이상은.
허나 지금, 이 순간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괜히 키득키득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설마 저렇게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탓이었다.
"너도, 내가 아는 어떤 후배도, 다른 이들도... 너무 쉽게 생각해. 당연히 막을 수 있다라던가, 지켜주고 싶다라던가. 정말... 그 말이 고맙다고도 생각하고, 진짜 내가 좋은 애들을 만났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말 끝을 흐리며 그는 뭔가 말을 제대로 잇지 않았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허나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복잡한 생각을 떨쳐낸 그는 숨을 후우 내뱉었다.
"기대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땐 기대볼게. 지금은 아니야. 몸이 물에 젖고 싶진 않거든. 지금 옷 상태라면 말이야."
지금 그에게 기댔다간 그냥 말 그대로 물로 다이빙하는 셈이 아니겠는가. 그건 피하겠다는 듯이 그는 살며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쭈욱 기지개를 켠 후, 그는 가만히 다른 곳을 바라보다가 이야기했다.
"하지만, 조금은...청춘이라는 거. 즐겨볼까라는 것은 생각 중이야. 그렇다고 특출나게 뭔가를 하고 그럴 생각은 없지만... 그래. 불꽃놀이라도 조용히 즐겨볼까. 같이 시간을 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말이지."
너는 안 올거지? 피식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는 슬슬 발길을 옮기려는 듯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슬슬 가볼게. 산책 중이니 말이야. 너도 너무 오래 있진 마. 감기 걸려. 아. 불꽃놀이 세트. 아마 관리인에게 말하면 나눠줄거야. 너도 같이 볼 이가 있으면 같이 보고 즐겨."
/슬슬 자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흑흑...철현이..이 멋진 아이. 대견하다! 철현아! 레벨 0 최약이면서도 대단하다!! 아무튼 다음 것으로 막레를 부탁할게요!
그러나 이번에도 별로 와닿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이 영리하신 것이니까요.
저는 어디까지나 저였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저를 모멸하고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자신 스스로를 자만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가 일어나서도 곤란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객관적으로 지금의 순찰이라는 역할에 진지하게 임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더욱 보잘것 없는 역할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제가 어느 순간에 어떤 역할도 맡지 못한채 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블랙크로우씨와의 결전에서처럼요. 그래서 지금 저의 라이벌은 언제나 채용되고 있는 부품인 병뚜껑입니다. 그것이 제가 최종관측한 저의 위치였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려야할까 생각하다가도, 혹시나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실까 말을 꺼내기가 무서워서. 역시 그만둬버렸습니다. 저 하나의 의견이나 기분은 저지먼트와 사회에 비교해선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기에 성운 선배님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기 위해 동조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그런…"
성운 선배님이 자신이 혼나면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기에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그건 불합리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건 그저 음료수를 마시지 않으면 해결 되는 것이니까요. 누구도 혼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계에 정비가 필요하다는 말에는 반론 할 수 없었습니다. 궤변이라는 것은 알면서도 적절히 받아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선배님을 설득하자니 그건 그것대로 시간을 소모합니다.
"…그럼, 되도록 신속하게… 부탁드릴게요."
그렇다면 차라리 빠르게 다녀오는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가슴 속의 손을 꾹 쥐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다다!! 휴식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한아지는 부원들과 함께 논다는 사실에 신나 있었다. 그렇다고 첫날부터 방을 침범한 동월에게 바다로 내던져질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아지는 바다로 왔다는 것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한다. 모래들 사이에서 마모된 유리조각들을 찾아내 구경하다가 싫증난 아지는 모래찜질으로 관심을 돌린다. 생각만 해도 모래 속에서 찜질되는 자신은 재미있을 것 같다.하지만...
"흐음~"
모래찜질을 혼자 할 수는 없는 법!! 아지는 고민하다가 모래를 팍팍 파고 그 속에 들어가 누워본다. 당연히 택도 없다.
"역시 여럿이서 해야 하나~" "여로랑 이경이를 부를까~?"
엄청나게 얕은 무덤에 들어간 것 같은 아지가 시체처럼 배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모래밭 가운데 눈을 말똥하게 뜨고 누워있었다.
해변이라. 오랜만이다. 그러고보면 동월은 요새 해변을 통 안갔더랬다. 예전에는 기분전환 한답시고 가끔 갔던것 같은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 흐음.... "
아무튼. 숙소에서 나오기 전. 뭔가 음료수병 같은게 있길래 들고나왔는데, 병에 아무것도 안써있고 향은 오묘한 것이 뭔가 의심이 들었다. 이거 사실 간장같은거 아냐? 어쩌지 어쩌지 고민하다가...
" 에라. "
그대로 뚜껑을 따고 반정도 꿀꺽꿀꺽 들이킨다.
" 크하아- " " 맛 없 어!!!!!!!!!!!!! "
있는 힘껏 들이켜놓고는 그렇게 외친다. 에이, 그래도 이미 딴걸 버릴 수는 없으니 맛없음을 감수하고 한모금씩 홀짝이며 느긋하게 해변가를 걷고 있는데... 어라, 저 앞에 있는거, 후배님 아닌가? 땅을 얕게 파고 누워있는것이, 아무래도 모래찜질을 하려다가 실패한 모양이다.
" 킥. "
그렇다면 선배 된 자로써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묻히고 싶다는데 묻어줘야지 (??)
" 한 아 지!!!!!!!!!!!!!! "
당장 아지에게 뛰어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모종삽을 들고, 아지의 주변을 굴삭기마냥 빠르게 파내어갈 것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 소리에 화들짝 놀라 온몸의 잔털까지 곤두선다. 이것은... 이것은 FBI 어쩌구를 외치던 그 목소리와 같은 목소리다!!(이미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것 같다) 머리속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그러나 결국 그 경보음도 한아지의 경보음인지라 느릿느릿 한 거다. 어느새 동월은 모종삽을 들고 주변을 엄청나게 파헤친 거다. 아지는 자신이 담겨있는 무덤(?)이 깊어진 것을 느낀다.
"아아아앗~ 워리 형 어디서 나타난 거예요오오"
워리엉에 가깝게 발음하는 아지의 동월 부르는 호칭이다. 당황에 당황을 겹으로 해버린 눈동자가 빠르게 진동한다.
"고고고고맙지만 사양할게요오~!!"
아지는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키려 한다. 이 형, 내핵까지 파버릴 것 같은 기세다!! 물론 모래찜질을 원했지만!! 묻히고 싶긴 하지만!!! 워리 형에게 맡겨도 될까?? 정말??
나름대로 생각해서 말한 것인데 혜우의 눈빛에 어쩐지 자신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감정이 담긴 것 같다.
"그럼 그렇게 싫진 않았구나~"
좋을 대로 해석하고는 안도하는 것이다. 그럼 다음에 또 그런 벌칙이 걸리면 혜우에게 해도 되는 걸까? 이건 잘 생각해봐야겠다. 그때는 정말로 정수리가 벗겨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알았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는 키득키득 웃으며 얘기한다. 막상 와본 병실에 별다른 게 없으니까 내일 가지고 놀만한 것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지는 손으로 눌러서 가지고 노는 강아지 모양 말랑이를 가지고 오게 된다... 어쨌거나 혜우가 키위를 받아먹길래 헤헤거리고 웃는다. 자신이 선물한 것을 남이 먹는 걸 보는 기분은 꽤나 좋다고 생각한다.
"응~! 알았어~ 학교 끝나고 연락할게에"
내일은 학교 끝나고 적당히 시간을 두고서 옷도 좀 적당히 입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일 또 봐를 말하면서 손을 흔들던 때에 혜우가 이름을 불렀다. 왜인지 처음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오랜만에 듣는 이름 같았다. 혜우가 고맙다는 소리를 하자 어리둥절한 얼굴에 점점 웃음이 오르더니 꽃망울 터지듯 피어나온다. 환하게 웃는 아지였다.
"으응~ 나도 고마워어~"
뭐가 고맙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만한 것도 없다. 한아지는 그냥 나를 기분좋게 해줘서 고마워 정도로 답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지는 기분이 아주 좋아져 몇 번이나 인사를 하면서 문 밖으로 나갔다.
인어모양 조각까지 완성하고서 뿌듯한 얼굴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는, 아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보인다. 아지의 기분이 별로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내 체념한 모양이다.
" 그렇다면 목적 달성이군!!! " " 중간에 일어나버려서 반밖에 못하긴 했지만... "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아닐까? 일반적인 모래찜질과는 다르게 손이 자유로우니, 오히려 좋아! 가 아닐까? 아지의 타들어가는 속은 헤아리지 못하고서 핫핫 웃어보인다.
" 평범하게 둥근 찜질은 재미가 없잖아!! " " 그래도 나름 잘 만들어졌다구? "
실제로 어떻게 한건진 모르지만 퀄리티는 좋았다. 색깔만 입히면 완벽하지 않을까? 정도의 경지였다. 그야 TMI지만 동월은 칼로도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쓸데없는걸 잘하는 사람인 것이다.
" 맞아. 강한 아지. 넌 강해. 강한 아지다. "
말이 헛나왔다는걸 들키기 싫었는지 이래저래 사족을 붙이고 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의심간다는걸 동월은 알고있을까?
" 좋아. 잠깐만 기다려. "
어째 흔쾌히 수락하는 동월이 이상해보였다면, 정확하게 본 것이다. 동월은 모래에 바닷물을 적셔 쌓아올리기 시작했고, 화난 아지가 그것을 부숴버리지 않았다면 모래로 만든 파라솔(무너지지 않게 기둥을 여러개 만들었다) 모래로 만든 모래맛 음료수가 만들어졌을테다. 다만 지속적으로 모래가 떨어지기 때문에... 파라솔은 아지와 거리가 약간 있었고, 그렇기에 그것이 파라솔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건 당연한 결과였다.
병뚜껑! 모두가 하잘것없다고 생각하지만, 병뚜껑이라는 개념이 없었더라면 음료나 식료품의 장기보관 및 대량유통에 유용하면서 재밀봉까지 간편한 병이라는 용기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이 나레이터는 이지가 자신을 병뚜껑에 빗대는 것을 너무도 단순하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지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기에, 눈 앞의 소년 서성운은 이지가 마음속에 담고 있는 생각을 모른다. 그저 이지가 저지먼트에서 자신의 위치와 쓸모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어렴풋하게 어림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소년은, 이지의 심오한 고민에 비해서는 너무도 단순한 행동을 하고 마는 것이다.
“─뭔가 고민되거나 하는 걸 누군가한테라도 털어놓고 싶을 때면,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드릴 테니까.”
그것은 너무도 단순한 사고였다. 자신이 다른 저지먼트 부원들에게 그렇게 많이 받았으니, 이제 자신도 누군가에게 뭔가 해줄 차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랑에게서 자신이 닿고 싶은 무언가를 보았고, 혜성이 제대로 된 첫 발짝을 떼도록 해주었고, 한양에게서 무술을 배웠으며, 리라에게서 마음을 받는 법을, 아지에게서 마음을 주는 법을 배웠다. 그러니 이젠 내 차례다. 성운은 그런 성격이었다. 능력은 그닥이지만 고집은 세서, 자신이 이게 옳다고 생각한 일은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지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성운은 이지의 손을 가볍게 잡아끌었다.
/막레 느낌으로 써졌는데, 이걸 막레로 받아도 좋고 더 잇고 싶으시다면 더 이어주셔도 좋아요!
땅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는 한아지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려고 하지만 잘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깊게 파묻고 두껍게 덮은 모양이다. 기를 쓰면 나올 수야 있겠지만...
"응. 달성이에요~"
포기하기로 했나보다. 아지가 힘빠진 얼굴로 하하 웃는다.
"그건 그렇네요~" "아~ 저 사진 찍어주세요~"
브이~ 사진찍힐 포즈를 잡고 있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묶고있던 머리를 푸는 것이다. 이편이 더 인어 같으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고서 다시 브이자를 그린다.
"...약은 워리 형"
입술을 내밀고 툴툴거리는 모양이 역시 하찮다. 아무리 그래도 둘러대는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았나 보다. 금세 수락하는 동월에 그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뒤로 편하게 누워있던 아지는 동월이 그저 파라솔을 가지러 갔나보다 했지 파라솔을 만들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배님은 제게 격려의 의미를 담은 말을 해주고 계십니다. 역시 제 얼굴에 다른 생각을 하는 표가 났었던 걸까요. 본의 아니게 걱정을 시켜버린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님은 그것에 대해 혼내오거나 특별히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의 손을 잡아 끌며 움직이실 뿐입니다. 제게는 그 침묵이 도리여 마음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시야에는 가벼운 뜀박질에 좌우로 반복해서 움직이는 새하얀 꽁지머리가 잡히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의 머리카락 같습니다.
"성운 선배님은 상냥하시네요…"
그 뒷모습에 대고 조용히 느낀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프라푸치노'…? 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맥락 상 음료수의 일종이라는 것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름의 음료수에 대한 정보는 제게 없습니다. 하지만 가기로 해놓고 이제와서 묻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저는 잠자코 끌려가는 형태로 선배님을 따랐습니다. 아마도 거기에 답이 있을테죠.
티배깅의 보람이 있어, 성운은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모양이다. 그러나 물 위에서 발이 자기 생각만큼 빠르게 나가지 않아 헛발질을 하느라 성운의 뒷모습이 순조롭게 멀어져갔던 탓에, 어쩌면 혜우는 폭포로 조금 안심하고 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방심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슬슬 계곡으로 접어드는 길일까 싶을 때쯤, 뒤에서부터 팍, 팍, 팍 하고 규칙적으로 땅을 박차는 소리가 무슨 호러게임 수준으로 가까워져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혜우가 딱히 신경쓰지 않았거나 모르고 있던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우선 체력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은 비단 혜우뿐만이 아니었으며, 특히 성운의 경우는 체력이 놀라울 정도로 늘었고, 결정적으로 성운은 자신의 체중을 가볍게 만들어 몇 배는 빠르고 효율적인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긴 간격으로 땅을 박차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성운이 무슨 무협지에서 땅을 박차고 풀 위를 날아 빠르게 내달리는 무림고수의 모습이 저럴까 싶은 모습으로 거의 날아오다시피 달려오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것도, 예전의 친칠라같은 똘망똘망한 까만 눈동자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그 색채를 선명히 알아볼 수 있는, 보랏빛이라고밖에 일컬을 수 없지만 보랏빛이라고만 일컫기에는 절대로 충분치 않은 색의 눈을 하고서는.
폭포가 흐르는 계곡을 코앞에 두고, 성운은 더없이 상쾌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서는 그대로 혜우에게 들이닥쳐왔다.
혜우의 발이 갑자기 허공으로 붕 날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에는, 이미 세상이 4분의 1 정도 뒤집혀서 혜우의 몸이 성운의 두 팔에 안겨들려 있게 된 뒤였다. 그러나 혜우를 번쩍 안아들고도 성운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성운은 혜우와 함께 몇 발짝을 더 도움닫기한 뒤에 극적으로 계곡의 물 위로 날아올랐으며─
>>0 탕. 탕탕. 탕탕. 장소나 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총소리는 사실 들어보면 투캉거리는 날카로운 폭음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탕이나 빵같은 비교적 귀여운 어감의 말이 의성어가 된 것은 그것이 사람에게 있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사람을 편히 죽일 수 있도록 설계 된 것이 총인데 모순되게도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끔찍하다고 여겨 그렇지 않은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입니다. 초능력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능력은 총의 배로 위험하지만 그 편리함과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학업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여 본래의 이미지에 덧칠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사회적인 효과를 부르는 것이라면 정말 아무 상관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런 쪽의 감각이 희미한 것 같으니까요. 그것이 제가 초능력을 얻고싶은 이유입니다. 탕. 탕탕.
"…"
사격 중이던 권총을 내리자 사로 끄트머리의 표적지가 저의 앞까지 다가옵니다. 이번에도 정 가운데에만 구멍이 잔뜩 뚫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또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인간은 방심의 동물이라고도 하던가. 한 번 방심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으면 그 다음엔 긴장 팽팽히 당겼어야 했는데.
그만 또 방심해버린 걸 보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
도망치는 내 머릿속에는 나보다 작은 체구의 성운이 달려봐야 얼마나 빠르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바다에서도 제대로 못 뛰고 있었으니까 화가 났어도 저런 모습이면 쫓아오는 동안 다 잊던가 하겠다고 생각했다.
왜 내가 그 생각은 못 했을까. 성운이 중력을 조작해 몸을 가볍게 해서 뛰면 그깟 리스크는 다 씹어먹고도 남는다는 것을.
숲길을 따라 달리는데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 빠르고 규칙적으로 추격해오는 소리였다. 설마 싶어 힐끔 뒤를 본 순간, 그 눈과 마주쳤다.
귀여운 소동물의 눈이 아닌 완전히 포식자의 것을 한 그 눈을!
"히이익!"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키며 속도를 올려봤지만 이미 늦었다. 더 빠르게 접근한 성운이 바로 뒤에 와서야 기척을 알아채버렸다.
달려드는 성운을 보고 이대로 날려지겠다- 라고 생각해 두 눈을 질끈 감았는데 다음 순간 몸이 붕 떴다.
뭐지 싶어 눈을 뜨자 성운이 나를 들어 안고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몸이 안긴 것보다 끝없이 허공으로 올라가는 그 불안감에 다시금 히익 비명을 냈다. 그 순간 붙잡을게 성운 밖에 없었으니 덥석 팔을 둘러버린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달밤에 날아오른 두 인영은 계곡의 가장 깊은 곳 위에서 돌연 뚝 떨어졌다.
풍덩!
시원한 물소리가 나며 나도 성운도 잠시나마 물 속에 푹 잠겼다. 파문 번지는 수면으로 도넛 모양 튜브가 찰박 떨어졌다.
물에 떨어진 직후, 눈 감고 숨 참고 성운을 붙들고 있던 나는 잠시 그대로 굳어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있긴 했다. 내가 붙잡은 채로 있으면 성운도 쉽게 못 올라가고 능력을 써서 올라가더라도 나도 같이 올라가게 될 테니까. 내가 먼저 한 짓이 있긴 했지만 이판사판이다 라는 생각으로 숨 꾹 참으며 붙잡고 있었는데
목이 좀... 허전한 거 같다?
아직 눈 안 뜬 나와 달리 성운에게는 바로 보였겠지. 입수의 충격으로 풀어진 홀터넥이 물 속에서 자유롭게 살랑거리는 그 모양을...
일단 당연히 혜우를 익사시키거나 동반익사를 하거나 하는 게 성운의 목적은 결코 아니었으므로, 성운은 다시 자신과 혜우에게 적용되는 중력을 줄여 수면으로 쉽게 부상했다. 부력은 부피에만 비례하므로 같은 부피에 질량이 더 낮으면 실제 물에 더 잘 뜬다. 성운의 수영실력은 지극히 평범한 편으로, 물에 안 가라앉고 물장구는 칠 줄 안다 정도이며 다른 사람을 매달고 수영할 정도까지는 안 되나 능력의 도움을 받으면 혜우와 함께 물에 떠서 헤엄치는 것도 어렵지 않은 것이다. 세상이 머릿속의 이론과 다르게 돌아가더라도 역중력으로 다시 수면 위로 솟구치면 된다는 안전장치도 있었으니, 성운이 이런 자폭을 동반한 과감한 보복을 감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성운은 맛이 어떠냐, 하는 뿌듯한 표정으로 혜우를 바라보았고,
딸꾹질을 하더니 급속도로 귀가 빨개졌다. 귀에서부터 시작한 붉은 기운은 순식간에 온 얼굴에 떠올랐다. 아직 화가 덜 풀렸나? 아니면 화가 날 새로운 이유가 생겼나? 라는 의문을 갖기에는, 그건 결코 화난 표정이 아니었다. 화난 표정이라기엔 그건 너무도 가련했다. 어느 쪽이냐 한다면, 그것은 곤혹, 압도적 곤혹!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잡았다 요 깜찍이 하고 눈빛으로 말하던 보라색 눈이, 이젠 갈 데를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었다! 성운은 떨린 시선을 한 채로, 혜우의 상반신을 상박과 팔꿈치만으로 지탱한 채로 물 속을 필사적으로 누볐다. 다행히도 사태가 더 악화되는 일 없이, 성운의 손은 풀려버린 끈들을 모두 찾아 한데 꽉 그러쥐는 데에 성공했으며, 끈을 다 쥐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전자드럼을 사려고 조금씩 모아둔 돈인데 생각없이 플레○스테이션을 사버렸다. 심지어 기껏 사고는 TV도 타이틀도 없어서 게임을 하지 못한다······. 거기다가 일단 당장의 생활을 위해서 수중에 돈이 모자라면 곤란하다. 고등학생이 합법적으로 돈을 벌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성운에게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오늘도, 성운은 중고가구점 주말알바를 하기로 했다. 연구실에서 커리큘럼을 받아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모자랄 능력이 고작 중고 가구들을 옮기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많은 연구원들이 탄식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편이 당장 일당이 짭짤하게 들어오니까. 능력 덕분에 성운은 그날의 업무를 예전보다 훨씬 많이 처리해낼 수 있었고, 1인분의 일을 힘내서 해내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사람 너더댓 명이 할 일을 반나절만에 해치워버린 성운을 본 사장님은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일당에 금일봉을 얹어서 주셨다. ─이 돈만도, 이번에 들어온 이번 달치 지원금과 거의 엇비슷한 액수다.
“─꼬마야. 그런데 너 이제 이런 데서 일하기에는 아까운 아이지 않냐? 이제 3레벨이라며. 그러면 찾는 연구소도 기업도 많을 텐데.”
한동안 계곡물 위엔 파란 튜브 하나만 조용히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멀찍이 쏟아지는 폭포 소리 만이 주변을 채우는 소리였고 밤새와 밤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베이스로 깔릴 뿐이었다.
그 계곡 물 속에서 물거품이 보그르르 올라오더니 이윽고 머리 두 개가 둥실 떠올랐다.
그 때까지도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수압이 사라짐으로써 물 밖으로 나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눈 뜨는 것보다 숨 쉬는게 먼저였다. 눈은 솔직히 머리에서부터 물이 떨어져서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뭐, 성운도 목적을 달성한 듯 하니 이대로 있으면 어련히 밖으로 나가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나가려는 움직임은 커녕 왠 딸꾹질 소리가 들렸다.
결국 내 팔뚝에 얼굴을 문질러 물기를 좀 밀어내고 눈을 뜨자 여태 시뻘건 성운의 얼굴이 제일 먼저 보였다. 뭐야, 아직도 화가 안 풀린 건가- 라고 생각하기엔 표정이 이상했다.
당황했나? 뭐에?
도저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멀뚱멀뚱 보고만 있으니 물 속을 움직이던 성운의 손이 멈추고 뭔가 꾹 당겨졌다. 어라, 이게 뭐지 싶어 고개를 두리번 거릴 것도 없었다.
갑자기 눈을 감아버린 성운의 말에 머릿속에 번개가 친 듯 이해가 파바박 지나갔으니까.
"아-"
나는 이해했다는 의미의 소리를 내며 손을 풀어 목 뒤로 가져갔다. 어쩐지, 허전하더라니, 그새 풀려 있었다.
"끈 주세요. 묶을 테니까."
태연하게 말하며 성운의 손에서 끈을 받아와 묶었다. 사실 풀려도 괜찮았던게, 끈은 어디까지나 장식의 일부였으므로 풀린다고 해서 완전히 벗겨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전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태연하게 끈을 묶었고 다 묶은 다음엔 성운이 도망갈새라 어깨에 한 팔 걸쳐놓고 히죽 웃는 얼굴로 성운을 보며 말했다. 약올리듯이, 볼을 콕콕 누르면서.
"서성운 선배님- 거 후배가 장난 좀 쳤다고 복수가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보니까 제대로 빠진 것도 아니던데- 진짜 너무하다- 야 서성운-"
슬그머니 말의 높이가 낮아지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이다.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말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모두 휴식을 취할 무렵 조용히 첼로 케이스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살풋 내려앉은 바깥은 불 꺼질 줄 모르는 인첨공과 달리 부드럽고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묵직한 첼로 케이스를 들고 천천히 걸었다. 낮에 미리 봐 둔 자리를 찾아서 해변 산책로로 향했다.
저 멀리 잔잔한 파도 소리 들려오는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걷자 적당한 조명과 휴식을 위한 벤치가 놓인 포인트에 다다랐다.
그 자리에 앉기 전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산책로의 정경과 빈 벤치가 담긴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고 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묵묵히 첼로를 꺼내 연주할 준비를 했다.
유백색 불빛에 기대 첼로의 현과 활을 손질하고 있으니 여기 오기 전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놀려고, 쉬려고 가는 곳에 뭐하러 첼로를 가져가냐던 말.
그 말에 했던 내 대답을 곱씹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내게는 당연하지 않았던 대답을.
......
준비가 다 되어갈 즈음 누군가 산책로에 들어서는게 보였다. 멀리부터 걸어오는 실루엣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 이가 조명 아래 얼굴을 비출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자 나는 활 든 팔을 우아하게 들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내 품에 첼로를 기대었다. 옆에 놓인 블루투스 스피커로부터 연주에 필요한 반주를 재생하며 박자에 맞춰 현 위에 활을 올렸다.
미지근한 어둠처럼 부드러운 선율이 산책로를 천천히 채워나갔다.
"야. 첼로는 뭐 하러 가져가냐. 가서 실컷 놀기나 하지." "...필요하니까요." "뭐에 필요한데?" "마음, 아니, 영혼에." "뭐?" "몸이 나았다고 해서, 모든 상처가 낫는 건 아니라는 거, 잘 알지 않으신가요." "...쯧. 네 맘대로 해라. 또 저번마냥 조지지나 말고." "글쎄요-" "뭐? 야! 저 망할 꼬맹이가!"
아무래도 아지는 포기한 모양이다. 흘러가는대로 두겠다는 뜻일까. 그것을 확인한 동월이 승리 포즈를 취하려 한 순간, 아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 상관 없긴 한데, 나 사진 잘 못찍는다. "
음, 못찍더라도 사진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동월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꺼내들었고, 열심히 포즈를 취하는 아지를 한 장 찍자마자 머리가 풀어진다. 오, 장발. 어쩐지 방금 자신이 만든 모래 인어(하반신)와 어울리는 것 같아 몇 장 더 찍어주었다. ...여담이지만, 역시나 사진은 별로 못찍었더랜다.
" 뭐! 약았다니!! 내가 뭘!!! "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마 동월은 자신의 연기(?)가 먹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어프헥, "
말하는 와중의 아지의 모래맛 음료수가 제대로 적중했다. 완벽한 커브! 동월의 목에 맞은 모래맛 음료수는 그래도 산산조각나서 일반 모래로 변해버렸고, 입이 벌려져있는 통에 모래가 조금 입 안으로 들어간 듯이 에펫! 에페펫! 하며 모래를 뱉어내다가 아까 가져왔던 반쯤 남은 음료(?)를 입 안에 조금 머금고 헹구어낸다.
" 어으, 모래맛 별로 안좋아해. "
찝찝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고서, 아지가 음료를 가져다달라 했던것을 떠올렸는지 3분의 1정도 남아있는 음료병을 아지에게 내밀었다.
" 파라솔이랑 다른 음료수 갖다줄테니까. 일단 이거라도 마시고있을래? 맛은 좀 별로긴 한데, "
그래도 공짜로 얻은거니까 일단은 다 마셔줘야 인지상정이지. 아마 아지가 그것을 받든 받지 않던, 아지의 옆에 내려놓고 파라솔을 찾으러 자리를 뜰 것이다.
와도 되는가 고민이 되긴 했으나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가보겠느냐 같은 말을 듣기도 했고, 어쨌든 힘든 시간을 넘겼으니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기에, 랑은 인첨공 영해 어딘가에 있는 섬에 와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레벨 5의 재력이란 대단하구나 싶다, 위크니스라든가 얼마 전의 일에 부려먹힌다든가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 같긴 한데... 어쨌든 퍼스트클래스를 부장으로 둔 덕에 배가 잔뜩 있는 부둣가나 사람이 우글우글한 해수욕장이 아니라 조용한 분위기의 섬 해변을 볼 수 있었으니 기분은 썩 괜찮았다.
이제 잠이 오기 전까지 여기서 바닷바람이나 맞으면서 있을까, 한 번 자의로 벗어야 했던 가시 목걸이의 가시 옆면, 그 매끄러운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바닷가를 보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밤의 바닷가는 위험한 편이니(낮이라고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바닷가에 온다고 해도 해변을 좀 걷다가 말 것이다. 아니면 좀 앉아 있던가, 뭔가를 모여서 한다면 바다 가까이보단 펜션 근처에서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는 사색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갑자기 누군가가 바다에 빠져버린다던가 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
! 하고 갑작스레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 이제는 익숙해진 그 느낌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혹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랑은 감았던 눈을 뜨고 등을 기댔던 나무에서 떨어졌다. 무슨 일이지? 약간의 서늘함이 느껴지지만 바닷바람 때문은 아니다, 자신에게 향한 위협이라기에는 주변에서 뭔가 더 느껴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이 섬을 관리하는 건 은우일 테고... 거수자가 들어올 일은 없을 텐데. 펜션 쪽?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펜션 쪽을 돌아보지만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걸 제외하곤 딱히 뭔가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설마..."
그렇담 바다? 랑은 주변을 살피는 것을 멈추고 펜션보다 가까이 있는 바닷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새카만 밤에 달이 비추는 길을 따라 해변에 발자국을 남기며 바닷가를 훑는다, 기분 탓인가? 해변을 돌아다녀도 딱히 보이는 것은 없어 돌아가려던 차에 첨벙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들린 듯했다. 당연히 바닷가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소리가 직접 들릴 리는 없으니 이건 무언가에 대한 예감, 누군가 물에 빠진 건가? 그리 생각하며 움직이던 시선에 밟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우쿨렐레 케이스와 텀블러를 보고 랑은 바로 바다 쪽으로 몸을 돌려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