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몰아친 추위로 츠나지의 나무에 붙어 있던 마른 잎들이 모두 떨어져 버렸습니다. 겨울을 착실히 준비하는 거리에는 벌써부터 털옷과 풀빵이 보이기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 주요 레이스: 일반 레이스(11/18), 산마캔(11/25)
【츠나페스】 11/13 ~ 11/24 (situplay>1597006077>1-2)
올해도 찾아왔습니다, 츠나센의 온갖 진기명기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문화제!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문화 경연의 장이지만, 사실은 동아리끼리 목숨을 걸고 살벌한 경쟁을 펼치는 전쟁터이기도 하죠... ▶ 미스 츠나센 & 츠나센 제일의 트레이너 선발대회: 11/18 ~ 11/19 【링크】
유식쟌이 일부러 귀에다 대고 조용히 말한거 메이쨔가 큰 소리로 와 진짜? 너 나니와랑 사귀는데도 또 다른 사람한테 고백받고 데이트도 했다고?? 쩐다아~ 그거 나니와도 알고있냐? 아~ 그래서 해변에서 나니와 울었던거구나~ 라고 >>>주변 애들한테 들리게<<< 말한다던가....
어 맞아 유성우때 고백했는데? 소문 싹 돌았는데 못 들음? 아 맞다 너 나 대차로 쳐바른다고 산마캔 나왔다가 대차로 착외찍고 골골거려서 못들었나보구나~ 미안 내가 섬세하지 못했당ㅎㅎ~ 라던가
"너 말이야... 물론 나도 확 올라와서 멱살을 잡긴 했지만." "여기서 끝을 보자고? 잘 보라고."
주변의 갤러리-물론 원치 않는 관객들이다. 당장이라도 다 꺼져줬으면 하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내는 일은 없겠지-를 가리키며, 저마다 웅성거리기도 하고 긴장한 눈으로 이쪽을 보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기도 한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간다.
"그러다 얘네가 휩쓸리기라도 하면? 반성문이 배로 되는 건 물론이고 마구로 출주까지 막혀버릴텐데?" "머리에 피 쏠려도 생각이란건 하고 살아. 유키무라." "간 보네 마네 하지 말고 뒷일도 생각을 좀 하라고. 알겠냐? 하긴~ 머리에 뭐가 들어있어야 생각이란걸 하겠다만."
한껏 이죽거리면서 비꼬듯 말을 던진다. 아-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건, 실소로 그치지 않고 거의 폭소가 나올 뻔한 유치한 도발이다. 고백은 했냐는 대목에서 입술을 비집고 나오던 웃음은, 뭐라도 된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풀어둔 그 말에—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한차례 크게 웃은 후, 눈가에 배어나온 눈물을 닦아냈다. 아니 진짜. 웃을 분위기가 아닌데 웃어버리게 됐네.
"아~ 재밌네. 진짜.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던데, 너 그거 네가 나니와한테 하고 싶은 일 아니야? 오, 그러네. 내가 나니와랑 라이벌이라고 했던 것 하나만으로도 내 다리 부러트리겠다고 협박까지 했으니까, 신빙성 있잖아." "근데 뭐, 진짜 기분나쁜 쪽은 말이야... 멀쩡히 연인 두고서 다른 사람한테 고백받고 데이트까지 했다고 하는 네쪽이 아닐까?" "어쩐지... 해변에서 나니와 엄청 울고 있더라니... 나니와도 참 불쌍하다."
귓가에 소근거리는 걸 보니 남에겐 들려주기 싫었나보지? 그야 그렇겠지. 츠나지는 좁고, 츠나센은 더 좁다. 점심에 꺼낸 작은 말 한마디에 살이 붙어 열마디가 되어 굴러다니는 건 당장 저녁쯤이 되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해준다. 아- 주변의 아이들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거, 저녁쯤엔 어떤 소문이 되어 퍼져있을까?
"그리고 좀 늦게 답해주자면, 맞아. 고백했어. 산마캔 전에 유성우 보면서 했다." "계속 계속 같이 있자는 답도 들었고. 뭐 이것도 벌써 소문 쫙 퍼져서 돌고 있던데 넌 못 들었나보지?" "아~ 맞다. 날 대차로 이겨주겠다고 산마캔 나왔다가 꼴사납게 대차로 착외 찍은 후에 골골거려서 소문 들을 틈이 없었겠구나! 미안~ 내가 섬세하지 못했네."
너는 내가 그때처럼 이성을 잃고 의자를 집어 휘두르길 바랐던 것 같지만, 내가 휘두르는 건 의자가 아니라 세 치 혀다. 애석하게도 난 원래 이랬어. 합숙 때도 네가 날 발로 차지 않았다면 의자를 휘두르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조그만 중얼거림이 들렸다. 불이 다 꺼진 므두셀라의 부실. 훈련이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무렵. 아직 자리를 뜨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문을 열지 못한채로 문 앞에섰다. 뻗쳐나오는 레이스의 소음. 경기의 내용은, 코노와타 스테이크스. 방금 전에 있던 경기. 그 사이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코를 훌쩍이는 것 같은 소리. 그래, 누군가의 울음소리였다. 이미 끝난 레이스, 불마저 꺼진 부실 안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퍼펙트 원더였다. 홀로 부실에 남아, 유일하게 켜진 티비앞을 떠나지 못하고 웅크린채로... 울고있었다. 울음소리에 섞여서 이 말이 들려왔다.
"한 걸음만... 딱 한 번만..."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부실에서 멀어졌다. 이것은, 일개 팬인 내가 봐도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저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안 봐도 뻔하다. 지고 분하지 않은 우마무스메가 있을리 없다는 것을, 아무리 거대하고 강하다고 한들 계속 달려가는 한 패배의 원통함은 누그러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깨달아버렸다.
너는 다른 아이들을 가리키며. 여기서 끝을 보자는거냐고. 잘 보라며 말한다. 나는 너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뭘 어떡하려는거야. 이 이상 내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거냐고. 있잖아, 메이사. 사람은 자신과 정 반대의 사람에게 끌린다던데, 너와 히다이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너희들은 정말 많이 닮아있어. 대체 저 사람들이 뭐라고 그렇게 신경을 쓰는거야? 중요한건 나 자신이라고. 그 누구도 너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아. 알고 있어? 사랑이라는것도 그래. 내가 파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내가 늙어 죽을때까지 나냐가 나를 책임져줄까? 그렇지 않아. 오히려 가슴이 아파서 나를 떠나겠지. 관계라는건, 우리의 인생이라는건 결국 노력인거야.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레이스와 닮아있어. 너는 왜 그걸 모르는거야? 나는 그래. 그러니까,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으니까. 내가 스스로 손을 내밀기로 결정했다고. 이기심과 자기합리화라는 추한 감정속에서 발버둥치며, 노력하고 있어. 그런데 너는, 어째서.
"휩쓸려? 재밌네. 눈 돌아서 다른 아이들이 다치든 말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선전포고 같은거야?"
"마구로 출주가 더 중요하다면 이런식으로 나오면 안됐지. 그렇지 않아? 솔직해져보라고, 메이사 프로키온."
나는 한걸음 더 바짝 네게 다가가서. 어쩌면 코가 닿을법한 거리에. 네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옅게 웃어.
"너도 나도, 트러블 메이커야. 싸움을 걸어오면 피하지 않는 우마무스메라고."
"뒷일을 생각하는게 네게 중요했다면, 상처입은 채 기절한 날 버리고 떠나지 않았겠지."
이죽이는 너를 바라보면서. 너는 곧 크게 웃어버린다. 하핫. 재밌네. 나 역시도 느릿하게 소리내어 웃고.
"재밌네, 너. 이걸로 히다이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툭, 툭 하고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건드리며.
"사랑이라는게... 참 우스워. 제 분수도 모르고 마구 입 밖으로 말을 내뱉고 보니, 그 결과가 어떤식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채."
"그저 한때의 승리감에 젖어 도취되어, 제 눈이 머는 것도 모르고."
"네 말대로, 나는 이걸로 밑바닥까지 떨어졌네. 그런데 혼자 죽지 않았어. 네 고백을 받아준 히다이 트레이너. 성인과 학생의 연애. 거기에 더불어서 한명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내게 고백까지 한. 하핫, 아하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까."
"응? 그렇지 않아? 메이사 프로키온. 대차로 진건 어쩔수 없는 사실인데. 퍼져나가는 소문은 다르지."
"흥미 본위로 전해지고, 추가되고, 왜곡되며, 변질되는. 썩어 문드러지는 소문이란건 어떻게 변해서 너와 그 남자의 가슴에 박힐 비수가 될까."
말을 마치고는, 윗옷 주머니 안쪽에 들어있던 핸드폰을 꺼내어 네게 상세한 주소를 찍어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는 뒤를 휙 돌아 천천히 교실 문을 나가며.
"경찰을 부르든 말든 마음대로 해. 너도 나도, '트레이너를 둘러싼 치정의 비극' 같은 자극적인 뉴스의 스타가 되고싶다면."
밤 열시. 학교 인근, 인적이 드문 공원속. 아무도 오지 않는 넓은 공터. 거기서 끝장을 보는거야. 나는 느릿하게 -너를, 나를?- 비웃으면서 문 밖으로 빠져나가고.
...
이걸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되었다. 쓸모없는 들러리도, 방해꾼들도 모두 없는. 너와 나만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채로 끝을 볼 수 있는. 자리에서 느긋하게 몸을 풀었다. 매서운, 밤의 추위도 스러진걸까. 분명히 추운 날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몸이 뜨겁다. 체온이 올라가서 몸에서는 김이 뿜어져나올 정도였고. 흰색 반팔 티셔츠, 흰색 트레이닝 바지. 새하얀 운동화. 제자리에서 몇번 뛰면서 몸을 풀다가. 너를 바라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