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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였다면 뒤가 잡혀도 반격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조차 없다. 뒤가 잡혀있다는걸 알아도 돌아볼 수 조차 없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이 목숨을 붙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두막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넉넉잡아 30걸음만 가면 문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월이 몇 번이나 강조한 사실이 있다.
" 그래도 뭐...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
Holy shit! 동월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한건지 알기나 할까? 아무튼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며, 가까이에 있는 오두막의 문을 벌컥 열었다.
" 아, 당연하지. 이래야 괴이지. "
오두막의 문을 열어도 바깥이 나오는 일 없이, 그저 또 다른 오두막의 내부가 보일 뿐이다. 목숨걸고 방탈출이라. 동월은 이제 지긋지긋할 지경이었다. 그 때 들려온 것은 삐걱거리는 소리였다. 그 왜, 영화 보면 자주 나오는 기믹이 있지 않은가? 주인공들이 숨죽이고 있는 동안에 귀신이 낡은 오두막의 나무를 밟으면서 나는 소름끼치는 소리. 그것이 뒤에서 울음소리와 함께 들려왔지만, 동월은 그저 조용히 문을 닫았을 뿐이다.
" 너무 튀는 행동은 안하는게 좋아. "
숨소리마저 죽이고 낮은 목소리로 혜우에게 말했다. '그것' 이 얼마나 우리를 쫓아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것도 우리를 인지할테니까. 뒤를 돌아보지 않는게 상책이다. 큰 소리를 내는 것도 그것이 '인지' 할 수 있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리스크는 적은편이 좋으니까 항상 '그것' 이 나타날 때면 동월은 조용히 하기를 택했다.
" 아, 하나 더. " " 혹시 저 소리가 웃는 소리로 바뀌면.... "
동월은 잠시 말을 멈췄다. 지침서대로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이 든 것이다.
" 무조건 앞으로 달려. 문이고 뭐고 일단 다 열고, 앞으로만. 알았지? "
[캣박스 스튜디오 탈출 지침서]
그것이 당신을 알아채는 순간 당신은 웃음소리를 들을 것 입니다. 웃음소리가 들린다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십시오. 운이 굉장히 좋다면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적의 약이라 부른다. 샹그릴라를 파는 사람을 알고있다는 친구의 지인과 약속을 잡았다. 빛이 들지 않는 폐쇄된 길목이 바로 오늘의 거래 장소였다. 한참동안 왔다갔다하고 있으려니 지치기도 지쳤다. 10분만 더 있다가 오지 않으면 나가려고 했는데 멀리서 누군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모습이 비쳤다.
"주성 씨예요?" "네. 그런데 웬 따라붙는 놈이 있어서... 늦었어요. 미안해요."
주성이라는 가명으로 소개받은 그 사람은 주변을 연신 둘러보며 초조해 했다. 따돌린 거 맞겠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불안에 차 있었다. 숨을 돌린 주성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기다리던 약이었다.
-쿵
그때 위쪽에 있던 낮은 지붕에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그쪽을 올려다보는 순간이었다.
"주성 씨 뒤쪽!" "예?"
투신인 줄 알았다. 그러나 주성을 노린 듯이 그에게로 곧장 낙하하는 그것은 흰 가면을 쓴 누군가였다.
뒤가 잡힌게 싫던가 어쩌던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나한테는 그냥 이 장소와 상황 자체가 문제 덩어리였다. 차라리 아까 그 징그러운 인형들 있는 곳이 훨씬 훨씬 훨씬 더 나았다.
이런 거 정말 질색인데!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이 와중에 안은 깨끗하다니 뭐니 그게 할 소리냐고!
어찌어찌 그의 팔을 붙잡고 오두막을 가로질러서 문에 도착했다. 이 문만 나가면 끝이라는 전개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 너머에는 바깥이 아니라 또다른 오두막이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듯 뒤에서도 들려오기 시작한 소리에 눈물부터 핑 돌았다.
울고 싶은 건 나야...!
"...히잉..."
튀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데 뭐가 튀고 안 튀는 건지 생각할 수나 있을까. 팔 잡은 손은 더더욱 힘을 주고 앞으로 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걷기 불편할 정도로 바짝 붙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의지할 곳이 그 밖에 없었으니까.
슬슬 눈물이 고이는지 눈 앞이 어룽지는데, 그가 또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했다. 저 우는 소리도 소름 끼치고 무서워 죽겠는데 웃는 소리로 바뀌면이라니. 그를 흘겨보고 싶어도 그러다 뒤를 보게 될까봐 엄두도 못 냈다. 대신 고개만 몇 번인가 끄덕끄덕 하고, 그의 팔을 당기며 재촉했다.
"아, 알겠으니까 빨리 가... 나가면 끝나잖아. 그러니까 빨리이...!"
나가기만 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문들을 다 열고 열다보면, 그러면 정말... 나갈 수 있을까? 낡은 바닥 삐걱이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 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으니, 곧 전신을 오들거릴 것은 분명했다.
“세은 씨는 동기 사랑이 남다르신걸요. 전 푸딩 두… 한개쯤 먹어도 목숨은 붙여주시지 않을까요.”
저번 대화에서 세은은 분명 동기임을 자주 강조시켜 주었으니까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경진은 고개를 살짝 까닥여 보인다, 어깨를 으쓱이긴 귀찮다는 듯한 움직임. “월 선배는 그거 뺐어드신거 인증 하셨잖아요. 세은 씨는 그걸 도발로 받아들인 것 뿐.”
동월이 부장직의 기준(?)을 논하면 잠깐 생각하듯 일직선인 아랫입술 살짝 짓씹더니, 고개를 젓는다. 자신은 반평생 사람을 담궈도 에어버스터의 수장률(중요: 은우는 사람을 죽인 적 없다)을 따라잡기 힘들다 생각해, 일찍이 그 가능성을 부정하곤 동월의 표정이 포만감 가득한 것에서 당황으로 바뀌는 것을 가만 바라본다.
“은근슬쩍 무고한 저까지 끌어들이시네요?”
그렇게 말해도 내치지는 않고 자리 지키고 서 있다. 그 큰 상자를 의심스레 쳐다보다 내용물에 눈 동그랗게 떠보인다. 부장이 부실에서 요리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걸 자연스레 찾아 꺼내든 동월을 보면 그건 그냥 원칙적으로 하는 말이였으려나, 큰 난장판만 없으면 된다는 암시라고 제멋대로 이상한 결론을 도출해 표정 다시 평화로워진다.
“크림 브륄레 만드시게요?”
그리고 동월의 메뉴 이름도 맘대로 필터 껴서 듣는다… 제정신이 아닌가? 그런 건 경진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제 기숙사방 가서 구울까요? 오븐도 있고 재료도 다 있어요.”
강 건너 불구경이 제일 재밌댄다. 수습에 성공하든 말든 본인은 아무 잘못 없으니 이렇게 속 편한 제안도 가능하고.
혜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월은 태평했다. 아무래도 이런것들을 오랫동안 봐오다 보니, 이젠 공포보다는 다른 감정이 더 심하게 드는 탓이다. 뒤에서 쫓아오는 울보는 확실히 공포의 대상이긴 하지만, 조건만 충족되지 않으면 딱히 위협이 된다기보단 놀이공원 유령의 집 직원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동월이 그 사실을 혜우에게 알려주지 않는 건 지금까지 갈굼받은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일까?
" 그래. 나가면 끝이긴 한데, 어차피 당장은 못나가는거 떨지 말고 관광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가자고. "
나가면 끝. 말은 좋다. 아까 언급했다시피 놀이공원 유령의 집 정도의 느낌으로 즐긴다면 큰 부담감은 없을테다. 그야 당장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위협에 조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 밖에 없는데, 지금 공포에 떨어봤자 나중에 떨 공포가 모자라질 뿐이다.
" 넌, 나가면 뭐부터 할거야? "
하지만 동월은, 이 세심함이라곤 조금도 없고 속좁고 태평한 남자는,
" 나는.... 가보지 못했던 곳을 가볼거야. 혼자서 배낭여행으로. "
자기가 관광하는 느낌으로 가자고 해놓고서, 긴장감을 놓게 만들 생각이 없는 남자였다.
" 낭만있지 않냐? 아무리 인첨공 내부라지만,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더라고? "
그 낭만을 왜 이런 을씨년스럽고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오두막 안에서 찾고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느릿하게 걷고있는 그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자리잡은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얼마나 걸었을까, 다음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른쪽에 커다란 창문이 보였다. 창문... 이라고 해야할까? 분명 유리로 되어 반대쪽을 뚫어놓은 것 같긴 한데... 시커먼 배경만이 그들을 반겨줄 뿐이었다. 왼쪽에는 문 하나, 그리고 정면에 또 문 하나.
" ---놀리는건 여기까지 하고, "
본인이 놀리고 있었다는걸 인정해버리고는 창문 쪽에서 의도적으로 눈을 돌렸다.
" 창문쪽 보지 마. 정 안될것 같으면 눈 감고있고. "
이 괴이는 이제 시작이라고 해야하나, 반이나 왔다고 해야하나.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거리로 표현한다고 치면 절반정도 온게 맞긴 한데, 공포감이나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보면 이제 시작이라고 하는것도 맞는 것 같고.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혜우가 그토록 원하는 '출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 때,
동월은 귀도 좋고 눈치도 좋은 편이다. (아마?) 그래서 경진이 하려던 말을 귀신같이 캐치해내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무튼 도발로 받아들였다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먹은걸 먹었다고 하지 뭐라고 해야하나. 동월은 억울했다. 숨기면 숨긴대로 나쁜놈이고, 말하면 도발이라니. 다음엔 은근히 흘려야 하나? '내가 먹었을까? 먹었을지도?' 이런 식으로? 근데 이러면 놀리는 거 아니냐면서 오히려 한대 맞는건 아닐까 모르겠다.
" 무고하다니. " " 나에게 재고가 없는 푸딩이라고 '미리' 알려주지 않은 죄가 있다 후배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