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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뻤다. 잊지 못할 광경이라면.. 그 안에서 하늘을 나는 자신도 잊지 않는다는 뜻일 테니까. 소년은 다소, 기억된다는 사실에 대해 집착이 있었다.
아무리 고릴라 악력이라고 하지만 최소 0.5톤을 들고 하늘을 날 수는 없었던 소년이 꺼낸 절충안은, 다행스럽게도 수경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얀 소년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뒤 하늘을 날아 수경의 앞에 멈췄다. 팔을 움직이며 제자리 비행을 하던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수경의 머리가 든 바구니의 손잡이를 잡았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할게요."
그 말을 하고 소년은 그 상태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의 수직으로 날아올라 다소의 흔들림을 제외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이후 소년은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경쓰면서 하늘을 돌았다. 아래의 풍경을 보는 것에는 제한이 좀 클 것이었으나.. 하늘 만큼은 잘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뱀의 것이나 다름없는 하반신은 하도 기어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 이제 두 다리가 된다면 되레 불편해질 것 같았다. 연구원들은 제각기 다리의 부조화를 막는답시고 가느다란 얼음 다리를 만들어 허공을 걸어다니게 하거나, 얼음 자체로 만든 조형물을 타고 다니는 등의 방법을 모색했지만 기물을 쉽게 이용해 주변을 기어 올라가는 희야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한 연구원이 희야에게 걱정을 담아 '인간의 다리로 돌아가면 적응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으나 희야는 초연하게 '세상이 본래의 이치를 되찾을 때, 육신 또한 자연히 그리 따를 것이니 괘념치 말라'고 일축해버리지 무언가.
하물며 문제가 이것저것 더 있었으니, 희야가 안티스킬 대원이 돌아간 이후 '빙공'을 수련한다며 통 잠을 자질 않고 운기조식인지 뭔지에만 온 심혈을 쏟지 무언가. 보다 못한 승환은 한 문장을 툭 던졌다.
"……희야야, 아무리 그래도 잠은 자야지."
희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주변을 에워싸던 냉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오욕칠정으로 기인된 근심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 또한 자연히 지날 일이다." "어떤 식으로." "육신이란 것은 닳기 전에 스스로 수복하려는 성질이 있으니 알아서 그 과정을 거치지 않겠는가?"
승환은 희야를 덥석 잡아 끌더니 그대로 눕혀 담요를 폭 덮었다. 희야가 내기가 흐트러지니 뭐니 칭얼대도 폭신한 베개까지 머리맡에 대며 꾹꾹 눌러 몸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더니 한숨을 팍 내쉰다.
"내가 그 연구소 쫓아가든지 해야지 원!" "하지만 이대로면 성취가……." "잠이나 자라!"
"만약, 나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이 있었다면... 너희들의 성장을 조금 더 기다려볼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최대한 빠른 시일내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은우는 절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내 주먹을 풀었다. 카드키로 잠긴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꽤나 고급적인 인테리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전용 냉장고부터 시작해서, 안마의자. 그리고 기록지, 침대까지. 어떻게 보면 그를 위한 공간임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이곳을 담당하고 있는 AI의 목소리였다.
ㅡ어서오십시오. 에어버스터. 오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은 자율모드로 부탁할게. 언제나처럼 수리는 자동 수복 기능으로."
ㅡ알겠습니다.
AI에게 지시를 한 후, 은우는 살며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살며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쓸모없지 않아. ...아무도 쓸모없지 않아. 나는... 병원에서 널 데려갔어. 다른 이들에게도 모두 지시를 내리고 함께 움직였어. 그런 너희들을 쓸모없다고 생각할리가 없잖아. 부탁이야. 그런 말은 하지 마. ...너희들이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니야. 아니. 애초에 쓸모라는 것 자체를 거론할 필요가 없어. 나는 너희들이 전부 소중하고, 너도 소중해. ...그러니까,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마. ...나는, 나는 단지... 너희들이 다치는 것이 싫고... 혹시라도 죽는 것이 싫을 뿐이니까."
다시 한 번 애린의 말이 아프게 곱씹혔다. 아. 이런 것인가. 이런 것을 말한 거였나. 정말로 뼈저리게 핵심을 찌르는 말들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눈을 감고 숨을 조용히 골랐다. 이어 그는 안으로 들어서며, 2번째 문을 카드키로 찍어서 열었다. 그곳은 외부로 나가는 곳이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넓은 야외 부지였다. 잔디조차 자라지 않는 그야말로 평평한 맨바닥인 필드는 상당히 넓었으며 천장은 뚫려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걸 믿어줄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는 너에게 뭘 해주면 좋을까. ...청윤아. 너는 바라는 것이 뭐니.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지금 네 행동은 그에 반하는 행동이지 않아? 부원들이 다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없애고, 가장 강한 힘을 지닌 내가 해결한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많은 이들이 3학구의 평화를 다시 누릴 수 있어. ...그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네가 말하는 공리주의 아니니?"
뭐라고 해야 할까...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다. 아니, 사실 그렇게 복잡할 것 까진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종종 보던 후배는 추측되던 바... 조차도 없고, 그냥 딱 봐도 내가 알던 그 사람이다. 그렇기에 단 둘이서 순찰이 나가는 타이밍에 확실하게 확인을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제길, 어쩌다 이렇게 일이 꼬였담. 아니, 불평하지 말자. 단 둘이 있는것보단 차라리 덜 어색한게 나을 수 있어. 그리 생각하며 플랫폼임을 표시하는 스마트폰 장식이 달린 휴대폰을 가만히 다시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는다. 그래! 지금은 순찰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
"부디 다음 구역도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라고 무심한 듯 이야기하고 있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최애 아이돌과 함께 순찰하게 되어 괜히 들뜨고 있다는게 동기에게 들키는건... 그런 쪽팔림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양을 한번 슥 보고, 앞서 나가는 리라를 보고 우리 앞을 본다.
"...어? 근데 저거 뭐냐."
손을 들어 앞을 가리킨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 혹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것은... 이 다음에 이을 사람이 정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