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서리가 내리고 츠나지의 하늘은 깊어지며, 밤하늘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수많은 별이 빛을 발하는 머나먼 심연 저편의 다른 우주까지 거리를 헤아릴 수도 있을 만큼... ▶ 주요 레이스: 일반 레이스(11/4), 산마캔(11/11)
【다랑어자리 유성군】 10/30 ~ 11/10 (situplay>1596993074>1)
「캠핑 시즌」의 듣기 좋은 변명일 수는 있지만, 츠나지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다랑어자리 유성군이 곧 시작됩니다. 별빛에 많은 관심을 지닌 사람이나 우마무스메라면 텐트와 망원경을 들고 한적한 공터로 향하지 않을 수 없겠죠. ▶ 유성우 진행: 11/4 ~ 11/5 【링크】
[나 니시카타 미즈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코우 씨만은 제일 마지막에 아셨으면 한다는 것을, 일이 일어난 뒤에 가장 마지막에 아셨으면 한다고 약속했음을 녹음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 편집을 해서, 뒤에 피리카가 개별로 녹음한 게 이어붙여져 있습니다.
[...혼잣말이지만요..] [그렇게 말을 하시는 것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디까지나 핸드폰을 몰래 봤다고 주장함으로써 약속은 지킨 겁니다. 보여줄 생각은 없었지만 뉘앙스에서 수상함을 느낀 야나기하라 트레이너가 핸드폰을 본 것이다. 라는 것과 약속을 깨고 말했다. 라는 건 차이가 크니까요?
옥상이 아니라 교무실이라고? 어째서지... 마음에도 없는 귀찮다는 말(사실 10%정도는 있었다)을 뱉으면서 턱을 괴고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밖으로 뛰쳐나가는 반 아이들을 힐끗 보고 있었다. ...그보다 너네 왜 창문으로 나가는데???? 문은? 저기 문은???? 쓰이지 않는 문의 존재의의란... 별 쓸데없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나도 슬슬 가긴 가야겠지. 그나저나 뭐지? 팀 이야기라면 임시 부실로 멋대로 점거 중인 옥상에서 해도 될텐데. 헉, 설마 뭐 잘못한거 있나? 무슨 짓을 했었나? 그렇게 열심히 고민하면서 도착한 교무실, 유우가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자 어쩐지 엄청나게 무게잡힌 분위기가! 나 진짜 뭐 했지?!??
"에..에우.... 어떤 소식이길래..." "....으에에....."
조심조심 앉아서 들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 너무 늦게 팀을 결성했다니. 하긴 우리 임시로 있던 기간이 좀 길긴 했지... 그래도 이제 정식이고, 제대로 궤도에 올라탔다는 느낌인데. 그런 팀에게 다른 건 다 돼도 부실까지도 줄 수 있.... .....아니 잠깐만 말이 뭔가 분위기랑 정 반대잖아!
"—그냥 다 주겠다는 말이잖아 그거! 한숨 쉴 일 전혀 아니잖아!"
나의 긴장감, 나의 참회(?) 전부 돌려내 이 자식아!!!! 여기가 교무실이 아니면 그렇게 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다른 선생님도 있고, 여기선 속으로만 외치는 걸로 하자. 아- 진짜. 하다못해 트레이너실이었으면 그냥 해버렸을텐데(?) 외침은 속으로만, 하지만 감추지 못한 표정은 새어나와 유우가를 째릿 노려봤다. 분하다. 다음엔 내가 먼저 속여야지...
불만을 가득 담아서 볼을 부풀리지만, 머리를 톡톡 두드려주는 손이 좋으니까 역시 금방 풀린다고. 흥, 이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뭐 계속 삐져있는 것보다는 드디어 생긴 우리의 부실이 어떤 느낌인지 보러 가는 게 더 나을테니까.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걸로... 하지만 다행이다. 겨울엔 눈 엄청 올텐데 그대로 옥상이었다면 우린 얼어죽었을걸..."
책걸상은 둘째치고 라디에이터와 에어컨이 제대로 돌아가는지도 잘 봐야할걸... 시골의 트레이닝 센터는 이렇게 눈물나는 일이 일상인 것이다. 학원장님이 항상 애쓰시는건 알지만요.. 그.. 사랑해요 학원장님 아시죠...?
"응, 알았어. 어? 지금 가봐도 돼? 갈래! 후헤헤~"
당연히 가봐야지! 앞으로는 지겹게 가겠지만, 이건 특별해. 처음으로 가는 거니까! 프러시안에 있을 때도 부실이야 당연히 있었지만, 이미 있는 팀의 부실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으니까. 우리만의 부실은, 옥상이 아닌 곳은 처음이니까. 처음하는 일을 같이 한다는건 굉장히 기쁜 일이니까. 후다닥 일어나서 아예 접이식 의자까지 정리해버린다. 빨리! 빨리 가자! 누가 봐도 들떴다는 걸 알 정도로 발을 살짝 구르면서.
뭐 나는 일하면서 줄담배 필 수가 없게 됐으니 한 톨 정도의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얻어오길 잘한 것 같다. 안 쓰는 빈 교실 있는지 없는지 다 따져보고, 제일 좋아보이는 녀석으로 골라왔으니까. 부실 보고 나면 칭찬해달라고 할까나.
딱 봐도 들떠보이는 메이사를 느긋하게 따라갔다. 평소는 보폭 차이를 감안해도 속도가 비슷했는데 확실히 들뜨긴 들뜬 모양이다. 저만치 앞서간 거 보면. 나는 내 열쇠뭉치를 메이사에게 가볍게 던져줬다.
"네가 열어봐." 하면서.
물론 거긴 자취방 열쇠나 원래 집 열쇠도 섞여 있어서, "아 그건 집열쇠. 그건 당직실. 그건..."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는 설명으로 뭐가 부실 열쇠인지 가르쳐줘야 했지만. 나중엔 알아보기 편하게 색깔 스티커라도 붙여줘야겠다.
그렇게 부실 문을 열면... 훤히 넓은 것도 아니고, 원래는 교실로 쓰이던 것으로도 안 보이는 공간이다. 3층이라는 높은 층은 옥상만은 아니지만 전망이 잘 보이고, 먼지 냄새는 좀 나지만 큰 하자 없이 깔끔한 게 확실하다. 이전에는 실습실 같은 것으로 쓰였는지 여기저기 콘센트가 다수 분포한 것도 호감이었지.
사이즈는 교실의 2/3만 하지만, 둘이 쓰기엔 최적.
"우리 이거로 츠나페스 부스도 낼 수 있겠지? 하고 싶은 거 맘껏 해도 된다고, 너 혼자 쓰는 팀이니까."
앗, 너무 들떴나봐. 너무 앞섰나? 생각해보니 나 열쇠도 없는데? 느긋하게 오고 있는 유우가를 보며 눈으로 '빨리~'하고 재촉하다보니 열쇠뭉치가 날아왔다. 가볍게 받아드니... ...우와, 열쇠 많아. 손으로 열쇠를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차락차락,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난다. 아- 그러니까 이건 집열쇠고, 요건 당직실... 당직실 열쇠도 가지고 다니는거야?
"아- 이거구나. 좋아, 연다?"
열쇠를 넣고 돌린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리고, 그대로 문을 열면... 거기엔 교실보다는 좁지만, 깔끔한 공간이 있었다. 먼지냄새가 좀 나긴 하지만 이건 환기하고 청소 싹 하면 사라질 냄새다. 안 사라지면 탈취제라도 가져다 놓지 뭐. 창문 밖도 탁 트여서 해도 잘 들고, 전망도 꽤 괜찮다. 옥상보다는 덜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우와아... 그러네, 츠나페스 부스도 내기 좋겠어. 아, 그치만 뭐할지 생각 안 해놨는데... 에헤헤, 산마캔 끝나면 열심히 생각해야겠네."
행복한 고민이겠네. 머리 좀 아프겠지만. 니시카타가 왜 나무 위에서 소리질렀는지 좀 이해가 될.. 아니 안 된다. 역시 그건 좀 이상한 일이 맞아. 그렇게 부실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기려다가, 잘했지?라는 물음에 유우가 쪽을 보았다. 평소의 히죽히죽하는 웃음이 아니라, 만면의 미소로 유우가를 보면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청! 에헤헤헤, 고마워 유우가."
부실, 생길거라고 생각 못하고 있었어. 뭐랄까, 임시는 벗어났지만 생각이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고 할까. 이런 날 대신해서 열심히 애써준거라면, 감사인사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그리고 그대로 팔을 쭉 뻗어서 유우가를 안으려고 했다. 어- 이건, 우리집 전통의 칭찬 방식이라고 할까. 그런 거야.
우와, 웃는 것 좀 봐. 저러고 방긋 웃으니까 얼마나 예뻐. 나도 덩달아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걸 느낀다. 껴안아오는 손길을 피하지 않고 껴안기면, 뭔가 음, 으음, 이걸 뭐라고 해야하지. 싫은 기분은 아닌데 확실히 어색하긴 해서. 꼭 이름을 불릴 때 같은 기분이지만 또 밀어내고 싶은 건 아니라, 손을 어디 둬야 할지 삐걱거리는 채로 고민하다가... 메이사의 등 위에 가볍게 얹었다.
"머리 말이지, 그럴까? 오늘 나는 내가 봐도 좀 잘 한 거 같으니까. 그래볼까나."
장난스럽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수그려 머리를 들이민다. 어색해서 조금은 빨개진 얼굴을 가리려는 것도 있고.
"...그 뭐야. 부스 말이지."
도로 고개를 들었다. 쓰다듬 받는 것도 익숙한 기분은 아니라서...
"나는 꼭 안 해도 돼. 그냥 돌아다니면서 놀고 먹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너 반에서 부스하는 것도 있을 테고..."
뭐 우리 반이야 팀에 소속돼있지 않고, 사고 치기 좋아하는 녀석들만 잔뜩이니까 거기 껴도 재밌기야 하겠지만.
장난스러운 대답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유우가를 보며 쿡쿡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리저리 뻗친 더벅머리를 결을 따라서 느긋하게 쓰다듬어본다. 하는 김에 너무 뻗친 쪽은 손으로 빗어보기도 하고? 아까 장난친 복수로 와바박 해버릴까도 생각했는데, 실행에 옮기기 전에 고개가 올라가버린건 살짝 아쉽네.
"음, 그것도 그렇긴한데... 모처럼 부실이 생겼으니까 그냥 두기도 좀 아깝고." "하지만 확실히, 각잡고 준비하기엔 시간이 빠듯하기도 하지. 뭐, 생각나는게 있으면 해보고. 없으면 그냥 돌아다니면서 노는 걸로 하자."
반에서 하는 부스라면... 갸루삐네가 폭주하기 시작한 그거 말인가... 초안에서 하도 이리저리 변하고 뒤틀려서(?) 이제 그냥 뭐가 뭔지 모르겠는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그거? 참고로 나는 의견은 내지 않고 구경하는 쪽이었지만. 엉망진창이 되는 것도 나름대로 축제의 추억이 되고 그러지 않을까? 어쩌면 기적적으로 재미있는 뭔가가 탄생할 수도 있고.
"응, 알아. 무리해서 하진 않을 거니까 걱정마." "그러고보니 프러시안은 메이드카페 한다면서? 니시카타 트레이너가 어째선지 나무 위에서 그렇게 외치고 있던데."
나름 학교 축제의 대명사 같은 느낌이지 그거. 어째서 나무 위에서 외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그건 프러시안에서 선점하기도 했고, 프리지아가 하기엔 인원도 시간도 예산도(...) 부족할 것 같다. 애초에 음식을 판다는 건 귀찮은 허가가 필요하니까...
"최대한 편한 게 뭐가 있을까... 이불 몇 개 깔아두고 낮잠카페라도 만들어?"
말만 카페고 음료는 일체 금지인 낮잠을 위한 장소... 다들 떠들썩한 부스를 할테니 이런 정적인 부스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정적이고 조용한... 낮잠.. 아니면—
쓰다듬는 느낌은... 싫진 않았지만 간지러웠다. 누가 살살 에센스를 발라가면서 빗질이라도 해주는 느낌? 나같은 반곱슬한테는 사치지. 뭔가 분수에 맞지 않는 걸 누리는 기분에 어색해서 보다 일찍 고개를 든 것도 있겠다. ...언젠간 익숙해지겠지.
"아, 그 고릴라 메이드 말이지..."
오이씻고날라 모에모에큥이었던가. 뭔가... 음... 솔직히 말하자면, 20대 중반의 나이에 아이들과 한데 섞여 메이드복을 주문제작해 그런 걸 새벽 운동장에서 맹연습한다는 거, 유난을 넘어서... 철딱서니 같지만. 일단은 입 안에 담아둔다. 나의 정적으로 많은 것을 짐작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메이사.
"플라네타리움?"
뭔가 멍청한 얼굴로 생각하다보면, 뭔지는 알겠지만 말로 하긴 어려운 '그거' 라는 걸 알겠다. 아니, 알아. 천문대 같은 거잖아. 근데 그걸 우리가 만들 수 있나.
"...그건 좀 너무 크지 않아? 옥상을 썼다면 모를까... 이 날씨에 그러면 좀 쌀쌀할 거 같기도 하고, 밤까지 페스는 안 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건 문외한이라, 실내용 플라네타리움 라이트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네가 1착한 덕분에 예산이야 넉넉하니까 아마도, 오래 준비하면 안 될 것도 없겠지만 말야."
이 정적.... 뭔가 있었나본데... 때로는 말보다 이런 침묵이나 비언어적 행동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유우가도 뭔가... 봤구나. 내가 본 니시카타는 정장차림이었고, 메이드카페를 한다는것만 말했는데 바로 고릴라메이드란 말이 나온 걸 보면.. 뭘 봤는진 모르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삭제가 가능하길 바라... 안타까움을 담아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아니 별로 안 커.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츠나페스 때 가지고 와서 쓰면 되겠구나 싶어서."
방에서 쓰는 거야. 이만한 크기, 라고 말하면서 적당히 손으로 어느 정도인지 해보인다. 음, 한.. 한... .....축구공보다도 작을 걸? 아마? 작정하고 재본 적 없어서 모르지만. 비오는 날에도 별이 보고 싶어~라고 했더니 파파가 사줬던 건데. 지금도 흐린 날에 가끔 쓰긴 하지만, 이렇게 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오, 한번 아이디어가 떠오르니 뭔가 착착 계속해서 떠오르는 느낌이다. 창문엔 암막커튼을 달고, 여긴 저렇게 하고, 이건 그렇게 하고? 투영기는 저쯤 놓고, 관람은... 누워서 하는 게 좋을까? 역시 이불이나 매트 같은 걸 잔뜩 놔야겠네.
"예산은 조금 필요하긴 하겠다. 암막커튼이나, 매트나 이불 같은 걸 사려면 좀 들 것 같은데... 으음, 너무 사도 처리가 힘들어지려나."
아아, 플라네타리움은 그런 물건이구나. 나는 영락없이 초등학생 때나 잠깐 탐방했던 천문대 같은 거창한 걸 떠올렸다. 막 20만엔짜리 엄청난 망원경 세팅해야 하고 그런 거 말야. 나는 멍청하지만 착한 학생 같은 표정으로 메이사의 설명을 듣고, 폰으로 몇 번 찾아보고 나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메이사 네 말은 그거지? 온통 어두운데다가 이거 하나 틀어놓고, 다들 느긋하게 쉬기만 하고 거기서 돈을 받는다."
속물같은 요약.
"메이사 너..."
그리고 나도 속물, 너도 속물, 우리 다 속이 좀 검다. 악당이 될 뻔한 녀석들끼리 뭉친 게 프리지아니까 당연한가.
"천재냐?"
이건 카페처럼 온갖 처치 곤란의 탄산수와 시럽을 구비해둘 필요도 없고, 쓰레기를 잔뜩 갖다버리느라 고생할 일도 없다. 손은 더럽히지 않으면서 돈만 받아챙기고, 분위기까지 만들 수 있다니까. 온갖 커플들이 '어머, 약간 어둡고 분위기 좋은 공간이 있다고? 당장 가야지 너 어디 아프냐?' 하면서 찾아오리라.
게다가 날 더욱이 혹하게 만드는 건, 이게 토퍼나 이불들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예산이 있지.
"매트는 체육창고에서 쓰면 돼. 앞구르기 시험 보는데에 쓰는 거 빡빡 닦아서 쓰면 되겠고, 그걸 덮을 이불들은... 일단 메이사 너네 집에서 버릴 생각으로 몇 개 갖고 오고, 몇 개는 사서 쓰지 뭐."
그리고 그 몇 개는 나의 차지가 된다.
"일단 물건만 준비해두면 세팅은 하루만 써도 충분하겠는데? 우리는 완전 여유겠어, 천재 컨셉이라. 그치."
"사실이긴 한데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속물같네...." "뭐 아무튼 그렇지. 아무래도 다들 시끌벅적한 느낌일테니까, 이런 정적인 부스도 있어야하지 않겠어? 휴게소란 느낌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바쁜 일정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잠시나마 동심과 여유를 되찾아주는 부스라고 하자. 돈은 받고 싶은데 뭘 하긴 귀찮아서 대충 이불깔고 누워서 쉬다 가라고 하고 싶은데 양심이 아파서 천체투영기 하나 갖다놨으니까 별을 보든 잠을 자든 하다 나가라고 하는 것보단 좀 더 있어보이고, 그럴듯하니까.
전부는 무리지만 조금이라면야. 한 두개 정도는 괜찮겠지. 어차피 새로 살 예정이기도 했고. 물건 주문만 해두면 유우가 말대로 세팅은 하루만 써도 충분할 것이다. 애초에 투영기도 우리집에 있는 걸 들고 오는 거니까. 청소하고, 매트랑 이불 깔고 커튼 달고 투영기 배치하고 끝. 음~ 아주 편하겠어.
"그러네, 완전 여유. 그러면 주문만 해두고 준비는 산마캔 끝나고 하는 걸로 할까!"
아마 당일에 바로 하는 건 무리고, 그 다음날에 나와서 하면 될 것 같다. 으음, 행사가 연이어서 있는 것도 꽤나 피곤하구나. 레이스에 이어 바로 츠나페스... 그래도 기억엔 확실히 남겠네.
빈틈을 노린 완벽한 컨셉, 간편함과 특별함 모두 잡은 계획에 얼마 들지도 않는 예산. 정말이지 최고라니까~ 나는 우쭐해하는 메이사를 저지할 생각일랑은 안 하고 정수리를 박박 쓰다듬었다. 응! 귀찮지도 않다는 게 최고야! 이상한 애들이랑 엮일 걱정 없이 거기서 폰만 하고 있어도 되겠다.
"좋았어, 그러면 오늘은..."
해야 할 일은 주문하고 트레이닝하고 기다리기. 트레이닝이야 자율트레이닝 시간에 봐주고는 있다만 원래는 부활동 시간까지 할애해서 봐주는 게 맞... 맞는데.
츠나지는 깡촌이라 7시면 상점들 문을 닫기 시작하고, 난 당장 이불도 냉장고도 코타츠도 필요한 사람이라. 뭔가 메이사의 눈을 피하게 된다. 사실 어제도 이렇게 얼렁뚱땅 일찍 헤어져 버려서 미안했었다. 트레이닝 잘 봐준다고 해놓고... ...으, 윽, 그 근데 지금 내 삶의 온갖 부분이 삐걱거리고 있어서어...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그으... 사실은 말이지, 오늘도 좀 이래저래 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해야 할 거 같은데에..."
으윽... 거짓말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자취 시작했다고 말하면 안되느냐고? 뭐 마미레나 마사바 같은, '아아 히토미미야 이제야 독립하였느냐... 내가 매일 찾아갔을 때 과자가 있도록 하여라. 참고로 쌀과자는 싫다.' 라고 할 것 같은 녀석들이라면 모를까.
메이사는 "에? 자취? 무 조 건 가볼래! 나 구경갈래~!" 할 거 같아서 말이다. 기대만발한 녀석에게 이 꼬라지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걱정 끼칠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 아무튼 진짜 그렇다고.
역시 트레이닝? 트레이닝이야 뭐 자율적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트레이너가 봐주는 건 다르다고 할까. 요즘 이래저래 일이 있다고 하면서 어제도 그제도 아니 사실 최근들어 계속 일찍 끝나니까... 오늘도 그러려나 했다가, 오늘은- 이라는 말에 살짝 기대했다. 뭐, 무참하게 깨져버렸지만요. 으음.. 아쉽다. 사실 산마캔도 코앞이니 살짝 불안한 기분도 들지만....
...부실 준비하던 것처럼 뭔가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래. 오늘은 부실 구경도 했으니까 됐다는 걸로 하자.
"우~ 오늘도? ...괜찮아.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뭐." "바쁜 일 빨리 끝나면 좋겠네~"
뭔가 바쁜 일이라도 있는 거겠지. 그렇게 납득하면서도 웃음에 씁쓸함이 섞이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하지만 그렇다고 '에에 싫어싫어 트레이닝하자아아아'하고 붙잡기도 좀 그렇고. 유우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한 발 앞서서 문가로 걸어가기로 했다. 응, 오늘은 부실 구경으로 끝. 그래도 트랙에서 조금 달리다가 돌아갈까.
"그럼 갈까, 아직 아무것도 없긴 하지만 문은 잘 잠그고 가자. 아, 나는 갈아입고 트랙에서 좀 더 달리다가 갈테니까, 유우가도 힘내."
그렇게 말하고 탈의실로 걸어가려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으음,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고집부리고 싶어. 슬쩍 다시 문가로 고개를 내밀고 마지막 말을 덧붙인다.
"...바빠도 산마캔은 꼭 와야해. 열심히 할 거니까..." "그럼 진짜 안녕! 내일 봐, 유우가!"
그렇게 말하고 탈의실을 향해 가볍게 뛰어간다. 트랙 가볍게 뛰고, 마무리 운동하고... 집에 가면 투영기를 찾아놔야겠네. 츠나페스 이후에 부실을 어떻게 꾸밀지도 생각해둘까. 씁쓸함을 잊어버릴 정도로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래,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