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서 린과 연락이 닿은 알렌은 린의 권유로 함께 최근의 발견된 소형 게이트의 탐사를 진행하게 된 두 사람.
" '게이트 안쪽을 조사, 그리고 가능하다면 클리어 조건까지 밝혀낼 것.'이 의뢰였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면 따로 클리어 조건을 찾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아직 내부탐사가 자세히 진행되지 않은 게이트였기에 긴장을 유지한채 나아가고 있었지만 만약 이대로 안쪽까지 별다른 발견을 못한다면 클리어 조건이 없는 빈 게이트이거나 지금의 두 사람은 클리어 조건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였기에 알렌은 내심 간단히 일이 끝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매끄럽기만 한 유리의 반사면을 살피다가 위화감을 느끼고 앞을 바라보았다. "알렌?" 거울에 비친 자신과 그리고 흑발의, 매우 잘 아는 그러나 훨씬 앳된 얼굴을 한 불만 가득한 소년이 유리를 사이에 두고 보였다.
"어머 머리색이." 당황하는 것도 잠시 흥미롭다는 얼굴로 귀가 아린 욕설은 신경쓰지도 않는지 입꼬리가 올라간 입매를 가리고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소년과 탄신을 하는 제 옆의 동료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 "옛날에는 꽤 말솜씨가 좋으셨는데요. 알렌군." 웃음소리만 흘리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붉은 눈은 방치된 생선을 발견한 고양이 마냥 짓궂은 빛을 띠고 있었다.
"거기 누구세요?" 하지만 이도 잠시 앳되다 못해 어린 아이의 것과 같은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바로 얼어붙었다. 잘 정리된 길고 검은 머리에, 생기가 도는 붉은 눈. 전체적으로 창백하다 할 만하지만 은은한 홍조가 감도는 볼이 딱 보아도 귀하게 자란 아이 같았다. 순진무구한 눈동자가 가라앉아 빛이 없는 같은 빛의 붉은 눈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질 좋은 원단으로 만들어진 원피스에, 머리띠까지 야무지게 쓴 어린 여자아이는 살짝 겁먹은 눈빛으로 인형을 안고 있었다.
"오라버니 어딨어요. 옆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쁜 말을 계속해요." 린은 급하게 알렌을 돌아봤다. 그러니까 흑발의 어린 알렌이 아닌 그녀가 아는 금발의 다 큰 알렌을 바라보았다. //4
순간 표정이 깨진채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 바보는 역시나 이럴때만 반응이 빨랐다. 당황하는 현실의 자신을 보지 못한듯, 이미 알렌은 거울 속 한심하게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인형을 껴앉고 있는 어린시절의 자신을 상당히 바보 같은 얼굴로 보고 있었다. 하, 속으로 명확하게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담은 실소를 뱉으며 가득 죽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머나?" 그러다가 마치 흥미로운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리고 눈 웃음을 지었다.
손으로 가린 뒤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시체같이 창백했다. 시린 눈으로 어쩔줄 몰라하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며 어르듯이, 속삭이듯이 말을 이어간다.
"옆에 있는 바보의 더 바보같은 시절은 타이르려 하지 마렴. 어차피 너로서는 그럴만한 능력도 언변도 없을 뿐더러 지금의 나는 제법 보는 재미가 있으니 말이야." 힐끗 고개를 돌려 꽤나 거친 자기소개를 마치고 현타가 온듯 그리고 당황한듯 소년과 아이를 보고 있는 알렌을 보았다. 피식 웃다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고 혼잣말을 하듯 말을 건넨다. 아이는 놀라 울음을 멈추고 미래의 자신을 바라본다.
"하지만 옳지 않은 행동에 나서지 않는것은 나쁜 짓이에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해주셨어요." "이거 깨버릴까요."
"물론 과거의 활발한 당신을 보는 건 꽤 재밌지만 이 아이는 좀 거슬려서요." 혹시나 이름을 말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6
아이는 눈치를 보다가 쪼르륵 넘어진 소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저기, 괜찮아요?" 도르륵 눈을 굴리면서 여전히 겁먹은 눈빛이지만 굳은 결의가 보이는 눈으로 마치 일으켜 세우려는 것처럼 물어본다. 그 어이없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고 이제는 대놓고 질색하는 동행인을 보다 이어지는 상대의 혼잣말에 린은 행동하던 것을 멈춘 채로 거울을 깨지 말란 말에도 잠자코 서있었다. 그리고 살짝 눈을 감고 항상 하듯이 미소를 그렸다. 입꼬리를 살짝올리고 손은 입가로, 그렇게
"어머나, 귀여우셔라..." 차갑게 웃는 눈이 매섭게 손을 내쳐졌지만 여전히 어쩔줄 몰라하며 주변을 빙빙 도는 어린 아이, 어린 알렌 마지막으로 이제는 꽤나 자기 표현을 하는 현재의 알렌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명백하게 조소에 가까운 거짓 웃음을 보이다가 한 걸음 한 걸음 내팽겨진 채로도 금방 일어서 마구 항의를 하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내가 널 납치해서 어떤 이득이 있다고." 진실을 모른다지만, 이미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무시하고 과거의 미련을 놓지 못하는 멍청이를 동료라는 허울뿐인 이름아래 신경써서 무엇을 한다고.
"정말로 납치당했더라면, 나라면 얌전하게 굴었을거야. 고분고분 순종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겁먹은 아이처럼 굴었겠지." 오히려 마구 분풀이를 하는 것은 상대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고 자신의 감정적, 무력적 무력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짓이다. 그렇게 행동해서는 아마 자신은 애저녁에 삼촌이라는 사람에게 죽었을테다.
"그리고 방심하는 순간에 그 목에 칼날을 박아 이렇게 말했을거야." 순식간에 지근거리까지 다가간 린은 삿대질을 하는 손을 잡아 가볍게 눌렀다.
"어머, 정말 바보같으셔요." "이런 거, 누가 안 가르켜줬나봐?" 계속해서 휘둘리기만 하는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이 짜증난다. 명백하게 분노를 삭히는 듯한 어조로 말을 하다 아래에서 미약하게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에 눈을 아래로 둔다. 불안해 보이는 표정의 어린 소녀가 그만두라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