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자신의 반려견인 금랑이와 산책 중에 금랑이가 길에서 배변을 보자, 한양은 집게로 금랑이의 배변을 주머니에 넣으며 치우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에 몰려다니는 불량배들이 한양에게 담배꽁초를 던지며 시비를 걸고 있었다. 한양은 불량배들의 시비에 대응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다 치우고 가던 길을 가려고 할 때, 고의인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담배꽁초 하나가 금랑이에게 적중했다.
"......"
"저거 자기 개X끼가 당해도 가만히 있네."
한양은 금랑이를 근처에 묶어두고, 눈가리개를 씌워서 눈을 가린다.
"금랑이 여기서 가만히 있어- 그래, 착하지~"
금랑이를 쓰다듬으며 얌전하게 만든 뒤에 불량배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덤비게?"
한양은 덤덤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만만하지. 쟤 정도라면 내가 이길 수 있겠다. 저 범생이 녀석은 내 밥이지."
"뭐라는 거야. 맞는 말이긴 한데."
"이게 제 인식입니다. 어느정도 힘만 있으면 이길 자신이 있는 녀석. 좋아요..제가 만만하게 보이는 건 상관 없어요."
주머니에 양쪽 손을 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건드릴 걸 건드렸어야지."
"후까시 봐라? 능력자냐?"
"능력? 내가 당신들한테 능력을 왜 써요... 덤벼보세요. 당신들은 압도적인 격차를 느껴봐야 될 필요가 있어."
"소원대로 해줘야지."
선두로 덤비는 불량배 1호. 자신감 있게 한양에게 덤벼들지만 얼마 가지 못 했다. 1호는 공격을 할 수 있는 거리가 좁혀지기도 전에 명치를 제대로 맞고 쓰러졌다. 불량배에게 발이 닿는 거리를 본능적으로 계산했다. 어느정도 사정권에 들어오면, 왼발을 180°로 축을 틀고 몸통을 오른쪽으로 부드럽고 빠르게 회전해서 오른발을 불량배의 명치로 번개처럼 뻗은 것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거리에서 한양의 뒤차기를 정통으로 맞고 , 아무것도 못한 채로 쓰러진 불량배 1호.
심상치 않음을 느끼는 불량배 둘. 2호와 3호가 둘이서 덤빈다. 2호는 자세를 보아 유도를 수련한 녀석이고, 3호는 복싱을 수련한 녀석이다. 너클까지 끼고 있군.
"내가 잡으면 너가 끝내."
"오케이-"
이번에는 한양의 선공이었다. 2호를 향해 오른발을 정면으로 높이 뻗어올린다. 2호는 턱을 뒤로 당기며 발을 피했고, 그대로 잡으려고 하지만 발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갔었다.
"아아..아아..미친...씨X!!!"
그대로 높이 뻗은 발을 아래로 찍은 것. 발뒤꿈치로 2호의 발등의 찍어버린 것. 발등 역시 인간의 급소 중 하나고. 보호하는 살이 거의 없기에 고통은 엄청나다. 2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발등을 찍자마자 한양의 오른편에서 들어오는 3호의 날카로운 라이트 스트레이트. 2호의 발등을 찍은 채로 상체를 숙여서 펀치를 피한다. 본인이 2호에게 집중을 하면 당연히 3호가 기습을 하겠거니 예상한 것이다. 그렇기에 오른발로 발등을 찍자마자 바로 지면으로 미리 둬서 피할 수 있는 밸런스를 마련한 것. 하지만 펀치는 스트레이트로 끝난 것이 아니다. 물 흐르듯이 연결되는 레프트 어퍼컷. 그러나 한양은 오른발의 힘과 탄력을 이용해서 그대로 거리를 벌리며 어퍼컷을 피하며 연타를 끊어낸다.
"주머니에서 손을 뺄 뻔했네요-"
발차기는 위력과 리치에서는 주먹보다 뛰어나지만 체력소모, 밸런스, 스피드 등은 나머지 모든 면은 주먹보다 열세이다. 특히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는 더 크고. 하지만 한양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오로지 두 다리로만 밸런스를 유지하고, 주먹이나 그래플링 하나 쓰지 않고 녀석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3호는 마이크 타이슨처럼 양턱의 가드를 단단히 올리고, 자세를 낮춘다. 하체와 허리의 힘을 이용해서 머리의 움직임을 옆-옆으로 U자를 그리며 위빙을 한다. 어디서 올지 모르는 타격을 피함과 동시에 한양의 타격 포인트 선택에 교란을 주려는 것. 그대로 성큼성큼 전진해서 거리를 좁힌다.
한양은 그런 3호를 보며 주머니에 손을 놓은 채로 따분히 바라볼 뿐이다. 위빙은 상체공격을 회피하기에 용이하지만 하체를 방어함에 있어서는 무방비하다. 그럼 하체를 차야지. 오른쪽 발바닥으로 3호의 앞 무릎의 바깥 사이드를 밀어찼다. 정확히는 무릎보다 조금 위지만.
가뜩이나 위빙으로 인해 체중을 앞쪽에 실으며 전진하는 3호에게는 이런 간단해보이는 한양의 킥에도 무릎이 꺾이면서 쓰러진다. 자신의 하체를 잡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3호.
"저거 하나를 못 잡아?!"
불량배 4호가 균형잡인 자세로 신중하게 덤벼든다. 먼저 덤비지 않고 서로 탐색전을 펼친다. 하지만 불량배 5호가 나이프를 쥐고 기습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칼을 들어요-"
하지만 나이프를 쥔 손을 대담하게 발로 차내며 나잎를 놓치게 만들었다. 번개처럼 빠르면서도 물처럼 부드러우며 간결했다. 나이프를 주워서 자세를 잡으려고 하는 5호. 나이프를 재빠르게 주우려고 한양을 경계하며 상체를 숙이지만, 나이프에 손이 닿기도 전에 발바닥으로 얼굴을 맞고 쓰러져버렸다.
5호가 쓰러지자마자 바로 한양에게 덤벼드는 불량배 4호. 한양은 왼쪽 정강이로 4호의 갈비뼈에 돌려차기를 시전한다. 하지만 한양의 킥을 잡아낸 불량배 4호.
"오"
하지만 짧은 감탄사만 나오게 할 뿐이었다. 발이 잡히자마자 몸을 틀어 뒤로 돌면서 잡힌 발을 앞으로 찬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빼냈다. 빠져나옴과 동시에 빠르게 자세를 다시 잡으며 대치한다.
"내 특기가 킥캐치다. 이제 발놀이는 끝났어."
"아? 그래요?"
한양은 오른발을 지면에서 떼기 시작했다.
'이렇게 겪어도 또 킥이라니. 저 오른발부터 잡아서 부러뜨려주마.'
한양의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4호는 자세를 낮추며 오른발의 공격이 완전히 뻗어지기 전에 오른발을 잡아서 부러뜨리려고 한다.
"콰직---!!!!!!!!"
이 소리는 한양의 발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불량배 4호가 턱을 정통으로 맞은 타격음이었다. 오른발을 거의 다 잡자마자 날아오는 것은 왼발이었다. 왼발끝이 불량배 4호의 턱을 정통으로 적중한 것. 이단 앞차기였던 것이다. 오른발은 이단 앞차기의 도움닫기와 페이크가 목적이었던 것. 진짜 공격은 왼발이었다. 오른발로 도움닫기를 한 뒤에 그 힘을 이용해서 왼발로 점프를 함과 동시에 앞차기를 날린 것.
고통도 느낄 틈도 없이 쓰러지며 기절했다.
"하하..하하하!! 너네 개X끼 죽는 꼴 보기 싶으면 무릎 꿇어."
아까 한양에게 발등이 찍힌 불량배 2호가 나이프를 들고 금랑이를 인질로 잡아서 한양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
"무릎 꿇으라고!!!!"
한양의 능력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불량배가 쥔 나이프는 손에서 벗어나서 한양에게로 갔다. 나이프를 쥐고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커..케흑..뭐..야..커헉...!!!"
불량배 2호는 마치 목이 잡힌 듯, 공중으로 띄워진다.
"하- 이 새X를 어떻게 조지지..."
분노의 단계를 5단계로 따지자면, 현재는 4단계인 대노 수준에 있는 서한양. 염동력으로 불량배의 목을 잡고 공중으로 띄운 뒤에 금랑이에게로 간다. 금랑이는 눈이 가려졌지만, 한양의 냄새를 맡고 손을 핥기 시작한다.
"아니다..정신 차리자..정신 차려.."
공중에 띄운 불량배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는다. 불량배는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공포감을 느끼며, 누운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절해버린 인간이 안타깝지 않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실신한다는 것을 바깥에서 본 것은 얼마만인가! 이따금 마주친 인간들은 기절이 아니라 정신을 놓아버린 것에 가까웠으니, 타인들을 훔쳐보며 호기심을 충족하던 관찰자에게 있어서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쾌재였다. 그것도 육신이 가장 아끼는 존재가 직접 보여줬으니, 희야는 단숨에 의견을 바꿔 벌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느꼈다. 충만하고도 생기가 가득했다.
"응."
하지만 에어버스터는 이 상황을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희야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화가 난 얼굴은 아주 무섭다. 일그러진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적이면 다시 보고 이번엔 확실하게 외우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그런 표정을 두 번 봤다간 다음날 해가 뜨는 걸 보지 못할 것이다. 당신도 그렇게 되면 아쉬울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은 한 번 더 놀라게 만들었다.
이는 유대감이다! 육을 더불어 시간이라는 초월적인 개념으로 하여금 영이 이어진 결과물이다! 그렇구나,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역시 우리는 잘못된 게 아닌 것 같다. 응당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다시금 제대로 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몸의 주인은 한때 당신을 그리워했다! 여러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연락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당신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당신 또한 그러하길 바랄 뿐이다.
"어라-?"
하지만 당신은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오늘은 여러 번 굴곡을 겪는 것 같다. 축복이라 생각했는데 금세 그 생각이 식어버릴 것 같다. 희야는 여전히 팔을 벌린 채 기절한 남자에게 소독약을 뿌려 흔적을 지우는 것도, 상처를 지우는 것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붉은 죄사함이 사라지니 슬픈 일이다. 언젠가 남은 형제자매로 하여금 저 속에 더 깊은 죄사함 담길 것이라 믿는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여전히 팔을 벌리고 기약 없이 기다리던 때, 당신은 그제야, 아니, 당연히도 응답하였다.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다른 걸 전부 잊어도 너는 잊지 말아야 하는데."
희야는 익숙하게 당신을 마주안으며 품에 파고들었다. 냉랭한 분위기와 달리 따스한 품이다. 어릴 때는 분명 자신이 더 컸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당신이 자신보다 더 커버렸다. 그리고 야윈 것 같다. 시간이 흘러버려 당신은 달라졌다. 하지만 희야는 여전히 작고, 가늘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머리의 길이 뿐이다.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서로의 과거에서 이어져 영이 마침내 다시금 만났는데.
"있죠, 혜우야. 너무 늦었지, 그동안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평소엔 좋아하지 않는 행동이다. 드러날지도 모른단 꺼림칙함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괜찮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속삭이는 모든 행동이 좋다. 희야는 나긋하게 종알거리곤, 눈을 서서히 내리 깔았다. "일이 있었어요. 그래도 한 번은 연락했어야 했는데." 덧붙인 말의 어미가 점차 흐려지더니, 희야는 푹 고개를 파묻듯이 하려 들었다.
웃는다는 것도 그럭저럭 피곤한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는데. 어째 지끈거리는 듯한 미간을 주물거리며 하얀 소년이 중얼거렸다. 무감정한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그는 지금, 유독 굵은 벚꽃나무 가지 위에 앉아있었다. 같이 놀러온 인원들에게서 벗어난 위치, 고요한 곳에서 시선이 닿지 않는 꽃 사이로 파고든 그는 입가를 문지르며 숨을 가다듬었다.
즐겁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소년은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이 썩기 쉬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일반적인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표정이나 반응을 꾸며내는 건 좀 힘들었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하고 일반적이고 장난스러운 반응을 만들어내는 건..
"..하아."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다.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 조금 졸아버릴 것도 같은 고요 속에서.. 소년은 아래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부스럭 거리는 걸음, 그리고 목소리?
"아,"
얕은 선잠이 문제였던 것이겠지.. 소년은 몸이 기울어짐을 느꼈다. 다행스럽게도 추락하지는 않았다. 굵은 가지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된 채 눈이 마주쳤을 뿐이지....
"힘-들-어- 왜 희야가 이런 걸 해야 하나요-? 이렇게 육체적인 활동으로 하여금 얻는 결과는 없을 것 같아요- 체력의 소모로 건강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것 같아-" "너도 레벨 3이잖니. 스스로 몸 간수는 해야지."
희야는 아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땀을 훔쳤다. 레벨 3이라면서 갑작스럽게 물이 충분한 환경에서의 모의 실습이라니! 데 마레에서 이런 걸 할 줄은 전혀 몰랐다. 주변에는 고드름이 돋아있고, 어떻게든 더미 안드로이드가 쏘는 물감을 맞지 않기 위해 빙벽까지 세웠으나 마땅한 체력이 없어 정작 도망치지 못한 희야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잘 지워지는 물감이라지만 새하얀 옷에 알록달록하게 물든 걸 보니 영 찝찝하다. 아끼던 옷인데! 입술을 비죽 내밀며 스트레칭을 하니 어디선가 오도독 소리가 났다. 삼촌에게 밤에 꾹꾹이 해달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카락을 주섬주섬 그러모아 위로 올려 묶던 희야는 손목에서 징, 하고 울리는 진동에 눈을 깜빡였다. 연락이다. 누구지?
"어라-?"
<[좀 만나자.]
희야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랑이다. 친한 친구 랑이. 그런데 만나자고? 희야는 자신이 기억하는 랑의 인상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스트레인지에서 만났지. 형제자매와 함께 대치까지 했고……. 저번에 같이 순찰을 돌긴 했지만 영 찜찜하긴 했는데……. 아! 설마! 이건 답이 하나밖에 없다는 소리다! 희야는 핸드폰을 꺼내 푸르스름한 손가락 끝으로 톡톡, 자판을 터치했다.
분홍 꽃잎이 살랑살랑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경 사이로 이질적인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소리 흘려낸 장본인은 한창 애꿎은 머리카락 괴롭히며 정처없이 걷는 중이었다. 그러다 왕게임으로 만들어진 흑역사 떠오를 적이면 머리카락 부여잡은 손가락에 힘 들어간다.
역시 퇴부가 답이다. 선전포고니 빔이니 했던 일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자! 그렇게 마음 먹은 순간 찬물 끼얹는 생각이 겹쳐진다. 정작 퇴부 신청서를 내려면 그 부장님과 조우해야 한다는 것. 피하기 위해서 만나야 한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입술 사이로 다시 한번 앓는 소리 흘러나온다. 물론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완전히 떠나지도 못하고 근처만 맴도는 중이니 결말은 뻔했다. 남과 어울릴 수 있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지?
"어, 어라. 벌써 시간이..."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리를 비운지 한참이 지났다. 한동안 골머리를 앓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슬슬 돌아가야겠거니 생각하던 순간 불쑥 눈 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아아아아아아악"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막을 새도 없이 비명이 튀어나온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은 이레는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위를 올려다본다. 그제야 그 무언가가 사람임을 깨닫는다.
"누, 누구. 왜, 왜왜 거기, 거기에 있..."
엉덩방아를 찧어 느껴지는 욱신거림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당황한 그녀의 입에선 두서없는 말이 마구 쏟아져나왔다.그러다 점차 놀라움이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다른 감정이 불쑥 생겨났다. 아무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저러고 있을 리가 없다는 판단 하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주는 제일 큰 애정 표현은?" 최은우:하핫. 그런 것은 전혀 궁금하지 않을 것 같은데? 최은우:딱히 내 애인이 될 것도 아니잖아. 그런 거야. (찡긋)
"과거vs현재vs미래. 가장 중요한 것은?" 최은우:현재.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 미래는 알 수 없어. 최은우: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어느때보다 중요한거야. 지금 이 순간을 잃어버리면 미래도 뭐도 없잖아? 최은우:오. 이거 꽤 명언같은데? 다음에 써먹어야겠다.
"과거의 네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할래?" 최은우:....글쎄. 최은우:일단 세은이는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랐으니까 저 세상에서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하고 싶은걸. 최은우:그와 동시에, 정말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어. 그리고, 날 용서하지 말고 부모로서 계속 원망해달라고 하고 싶어. 최은우:응. 이 정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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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사람 한 명을 되살릴 수 있다면 누굴 살릴래?" 최세은:안 살릴거야. 그 누구라도. 최세은:과거는 더 이상 누구씨와 돌아보지 않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미래로 갈 수 있다면 미래의 너를 만나고 싶어?" 최세은:만나기 싫어. 최세은:내 미래가 정해지는 것 같아서 실단 말이야. 최세은:그러니까 절대로 안 봐. 죽어도 안 봐. 다시 돌려보낼거야! 리모콘 꾹꾹 누른다고 하면서 돌려보낼거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소감은?" 최세은: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해. 최세은:참고로 勢恩이라고 써. 최세은:무슨 의미냐고? 흥. 적당히 해석하던지. (홱)
그래.. 비명을 지르겠지.. 이경은 대롱대롱 매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나한테 늘렸던 낙조 선배의 기분이 이랬을까? 이것보단 나았겠지? 땅이 가깝잖아. 별 시답잖은 생각을 하다가 대체 누구의 심장을 공포로 흔들었나 확인했다. 긴 하늘색 머리가 어째 눈에 익었다.
아-
누군가 했더니 인상이 아주 깊게 남은 사람이었다. 그.. 빔... 이경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광경은 빔을 쏘는 그것이었다.. 함게 빔을 쏘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경은 무려 구호도 선명하게 생각났다. 파이널 퓨전! 말을 더듬는 것이나 느낌이 소심한 사람 둘이 걸렸었던 것 같았다. 진정하는 여로를 보고 뭐라 할 군번이 못된다.
"아~ 괜찮아! 놀래켜서 미안해~"
조금만 물러서 줄래? 그렇게 부탁한 하얀 소년은 별 힘 들이지 않고 상체를 세우더니 가지를 붙잡고 제대로 내려왔다. 그렇게 낮은 위치는 아니었는데 바닥에 두 다리를 탕! 하고 붙이는 순간에도 무척 여유로워 보였다. ..참고하자면 이 소년, 아직까지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다. 치마 아래 체육복 반바지를 입긴 했지만 그랬다.
초음파를 사용하는 능력. 신기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거였다. 인천첨단공업단지에 발 들인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초능력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질리지도 않고 드는 감상. 이곳의 모든 초능력은 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실제로 그것을 방증하듯 많은 능력들이 연산식을 베이스로 둔 매커니즘을 기본 골조로 실현되는 듯 했다. 전기를 다루고 수분을 다루고 신체의 능력이나 오감을 극도로 강화시키고 풀을 키워내고 공기를 압축시켜 다루고. 그 외에도 차마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다양한 능력들이 존재했으며 대부분은 자연 에너지를 다루거나 그 외 생물학적, 신경학적으로 인간과 가까이 연관 있는 것에 따라 커리큘럼이 짜여지는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리라 자신의 능력은 다소 이질적이다. 2차원에 그려진 것을 3차원으로 끌어내는 능력. 이 또한 이곳의 커리큘럼에 따라 개화한 능력인 만큼 과학에 기반한다는 사실은 자명하겠지만 개인의 짧은 식견으로는 어떤 흐름을 거쳐 이러한 결과가 도출되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다만 상상력을 그릇으로 한다는 개요를 보아 인간의 뇌에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짐작만 해 볼 뿐.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마법 같잖아. 이곳의 모든 게 마법 같긴 하지만.
"멋있어요. 꼭 안 보여주셔도 괜찮아요, 상상해 보면 되니까. 대단할 것 같은데요? 초음파라~ 활용도도 무궁무진 할 거 같고. 영화에도 자주 나오잖아요. 음파로 공간 울리는 그런 거."
방울과 초음파. 리라는 두 가지 단어를 연관짓고 생긋 웃었다. 전후사정을 알고 보니까 혜성과 더더욱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케이크? 네, 좋아해요!"
단 건 좋아한다. 누가 싫어할까? 리라는 혜성의 휴대폰 케이스 뒷쪽에서 나오는 종이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티라미수 무료 제공 쿠폰.
"부족은요! 와, 이런 거 저 주셔도 되는 거예요? 소중하게 가지고 있다가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사실 실이나 끈을 만드는 건 대단한 일은 아니다(레벨이 올라서 하는 배부른 소리 같이 들린다면 그게 맞을지도). 그보다 더 형태 잡히고 복잡한 설정이 필요한 물건들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적당히 튼튼한 끈이라면 시간도 힘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답례 받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었는데, 혜성은 그 다정한 미소에 걸맞게 셈까지 완벽히 치루고 만다.
파란색과 녹색의 색연필을 받아든 리라는 섬세한 매듭을 그린다. 두껍지 않지만 너무 얇지도 않게, 딱 방울을 매달 수 있게끔 두가지 색상을 절묘히 꼬아서 색상의 혼합을 시도한다. 어느정도 적절한 길이로 마무리 되어 현실로 나온 끈은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완성~ 웬만한 거엔 끊어지지 말라고 설정했는데 그래도 종이에 그린 거니까요, 불은 조심하셔야 해요. 타 버릴 수도 있으니까. 물론 제 끈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끈이 불에 약하긴 하지만!"
스스로도 내심 뿌듯했는지 목소리의 톤이 조금 올라갔다. 리라는 완성된 끈을 혜성에게 내민다.
"진짜 저랑 선배님 눈동자 색깔 하고 비슷하게 나온 거 같아요.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113 ㅋㅋㅋㅋㅋㅋ 아니. 하다 못해 이제 진단에서 떼오는 거예요?! 그리고 은우는 그래요. 부모님에게 용서를 받거나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요. 여러 의미로 말이에요. 정확히는 뭐랄까... 미래를 보면 자신의 미래가 그렇게 확정날 것 같아서 꺼린다에 가까울 것 같네요.
"처음 보는 사람이 친근하게 오랜만이라고 말을 걸면?" 유다은: 실례합니다, 저희가 어디서 만났었죠? 하고 대답하는 편. 음, 그래도 경계하는 기색을 감추긴 어려울지도. 그 수법에 걸렸다가 큰일이 날 뻔한 이후로, '그걸' 들고 다니게 됐거든.
"네게 충성하겠어." 유다은: 함께해 주시기로 결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오늘은 환영의 티타임을 갖고 이 자리를 끝내기로 하고, 내일부터 업무를 전달해드릴게요. 학생회 총무부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내가 졌어. 너에게 이길 수 없었어. 그게 다야. 할 말은?" 유다은: 인정할게. 좋은 승부였어. 나도 배운 것이 많으니, 고개를 들고 돌아가렴. 유다은: (온갖 꼼수와 함정이 판을 치는 더러운 전투에서 힘겹게 이겼다면) 어쩌면, 이기고도 이렇게 기분이 더러울 수가 있을까. 진심으로, 오늘 참 많이 배웠어. (탕!)
매달려있던 상태에서 멀쩡히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고는 감탄했다. 게다가 저런 복장으로. 이레는 힐끔 그가 입고 있는 메이드 복을 보았다. 그래.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한 법. 꽃놀이할 때 메이드 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만, 신기해하면 실례일 터... 자꾸 눈이 가는 복장에서 애써 시선을 올려 이경을 보았다.
"욕이요? 제, 제가 왜... 음... 혹시 일부러 그랬어요...?"
좋은 사람이란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레는 지금 상황을 비고의적인 사고, 혹은 실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화를 내서는 안된다. 실수를 지적하는 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니까. 하지만 만약 놀래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한 일이라면 제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아, 으... 네. 괘, 괜찮아요. 죄, 죄송해요. 소리 질러서..."
이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 괜찮다고 말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까.
>>142 후배에 대한 질문은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요소 중 하나이지만, 그것을 말하면 뭐가 되었건 스포일러가 될테니까 입을 다물도록 하겠어요. 재이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그야..진행에서도 나왔다시피 처음부터 목표가 재이가 아니었으니까요. 블랙 크로우의 타깃은 재이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보호했던 그 여자애랍니다. 그러니까 저쪽인 척 하고 다른 쪽을 노린 거예요. 퍼클이 관여되어있는지의 여부도...아무래도 뭐라고 대답해도 차후 스포일러가 될테니까 입을 다무는 것으로...
세상에는 자기 실수로 피해를 입혔어도 욕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경은 순한 낯의 이레를 보며 방긋 웃었다. 이레의 시선이 그의 복장을 향하는 것을 느꼈지만 특별히 말을 할 것은 없었다. 변명이 거세면 거셀수록 오해를 불러오는 법이다. 이 왕게임의 승자는 누구일까. 적어도 자신은 아닐 것 같았다.
"아니아니, 소리 지를만 하지!"
메이드복을 입은 애가 벚꽃나무에서 거꾸로 튀어나왔을 때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경은 저지먼트의 면면을 떠올리고 잠시 침묵을 골랐다. 놀라지 않을 사람이 보이긴 했다. 랑이나... 낙조나.. 동시에 놀라면서 주먹이든 뭐든 나갈 사람을 떠올리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적색투귀가 있었다. 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장이 이 꼬라지니까?"
나무에 들어가있던 이유를 소년은 그렇게 설명했다. 실제로는 달랐다만, 이렇게 말하는 편이 좀 더 설명이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표정을 만드느라 힘이 들어 쉬고 있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후배를 바라보고 있던 혜성의 눈은 멋있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다른 방향으로 도로록 굴러갔다. 굴러간 혜성의 눈이 머무르는 곳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빈 주스팩이였다. 멋있다, 인가. 혜성은 빈 주스팩을 손가락을 이용해서 슥 문지르듯 만졌다. 방울은 테이블에 있기 때문인지, 손이 심심해서였다.
"레벨이 높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큰 범위까지 사용할 줄 몰라. 내 능력보다 후배님 능력이 더 멋있기도 하고. 그림을 실체화한다는 건 그만큼의 상상력과 실력이 뒷받침 된다는 뜻이잖아?"
커리큘럼 받을 때 꽤 고생이겠다. 하고 말하며 혜성은 주스팩을 문지르던 손에 힘을 줬다가 풀어낸 뒤 웃어보이는 얼굴과 똑같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이 오늘 처음 만난 후배에게 이야기할 필요 없다.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도 없지만. 혜성은 자신이 꺼낸 쿠폰을 좋아해주는 후배의 모습에 언제 그랬냐는 듯 살짝 웃어보인다.
"당연히 괜찮아. 거기 음료수는 모르겠지만 티라미수는 진짜로 맛있어. 꼭 친구랑 같이 가봐. 위치가 좀 찾기 힘들겠지만 쿠폰 뒤에 가는 길이 안내되어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마음에 들어해줘서 다행이다. 답례를 해줄 거라면 좀 더 확실히 다음에 만났을 때 뭐라도 쥐어주는 게 좋겠지만, 다음에 또 여기서 만난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보답해줄만한 게 바로 떠올라서 다행이라고 혜성은 생각한다. 후배의 손으로 현실에 나타난 끈과 후배의 뿌듯한 목소리에 혜성은 다시금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이정도로 능력을 활용하는 걸 보면 그만큼 노력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불에 뛰어들지 않으면 타버릴 일은 없을테니까 꽤 오래 쓸 수 있겠다."
받아든 끈과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방울들을 집어들어서 엮어내는 혜성의 손길은 익숙해보였다. 엮어진 방울들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울려퍼진다.
사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동물은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아도 교감으로 대강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만-물론 어떠한 능력은 동물들과 소통할 수도 있다지만-사람은 더욱 체계적인 소통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진위를 의심할 뿐이다. 교감을 하지 못해서는 분명 아닐텐데... 아니, 어쩌면 그녀가 교감을 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줄곧 만져왔던 것은 종이와 펜, 그리고 차가운 금속과 기계장치들뿐... 그 어느 것에도 온기는 없었다.
그렇기에 부드러운 것이 닿으면, 탄력있는 말랑함이 닿으면, 형형색색으로 치장된 시선이 닿으면 어딘가 모르게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당신의 표정은 보름달에서 초승달로 바뀌었다. 확실히, 느긋한 그믐달은 아니었다. 그런 면면은 좋은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엩. 그런걸 물어보셔도 즈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슴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지식과 표현력은 엄연히 별개의 영역인지라 마치 출력하다 갑자기 종이를 뱉어내어 중간에서부터 주욱 그어져버린 인쇄물을 내놓는 프린터 같았다.
"음... 스읍... 이걸 무어라 말해야 하나... ...아, 약간 그검다! 봄감자 같은 거에여."
전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와버리고 말았다. 지금 상황과 들어맞는 거라곤 봄이라는 것밖에 없으려나?
입안에서 머물러있던 당신의 웃음, 장난스러운 질문과 비스듬한 시선이 쇄도한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동화책을 내려놓고선 이쪽으로 다가온 당신과의 한층 더 좁아진 거리는 확실하게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렇다면 확실히 그녀에게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반짝이거나 빛이 없거나 어두워지거나
그렇게 세가지밖에 출력할수 없는 프린터였지만 적당히 섞으면 그럴싸한 느낌이 나기마련이었다.
그게 오롯이 자신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하하, 아님다! 즈야말로 괜히 이상한 행동이나 해가주구 죄송스럽네여..."
당신에게서 손이 뻗어져나와 머리 위에 얹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볍게 쓸어내는 듯 쓰다듬는 것도 느껴졌다. 최소한 그런것을 느낄수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었다.
더이상 흉조같은 홍조가 아니었다. 비록 방금전과 같이 밝은색으로 물들을 수는 없겠지만... 애초에 그녀는 딱 이정도가 최선이었다.
"핫핫하!!!! 반갑네, 동월 선배!!! 모쪼록 말을 편하게 해주었으면 좋겠군!! 물론 자네와 나는 상관과 하관의 관계가 아니다만, 선배와 후배의 관계이지 않은가!!"
"못써먹을 후배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주길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바이네!"
울던 것 조차 까먹었는지, 어느새 의기양양한 얼굴로 씩 웃으면서, 능청스레 이야기했다. 네가 다리를 펴고 곧게 서자, 시선을 따라 올리면서.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 사탕이 하나에 500원만 한다고 해도, 두개나 된다면 무려 천원이지 않은가!! 천원이라면 하루종일 밥도 먹을수 있는 고가치품일세! 물론 일반상식선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적용되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떠나서!!!!!"
척, 하고 자세를 잡고는.
"이렇게 맛있는 사탕을 선물로 주었음은 필히 친목의 증표요, 애정의 증거이니! 이를 어찌 은혜라 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은혜를 입었으면 갚는 것이 사람 된 자의 참된 도리! 자, 말해보게나! 어떤 잡일이라도 맡겨주게! 이 몸은 레벨 0, 무능하다고 하면 무능하겠지만, 그런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는가! 핫핫하!!"
뿌듯한 얼굴로 다시금 이야기하면서, 손동작으로 청소를 해보이는 모양새를 잡거나, 설거지를 하는 모양새를 잡거나. 가방을 들어주거나, 어깨를 주물러주는 모양새를 잡았다.
"흐음, 확실히 시간대가 애매한가. 일일이 찾아서 인사를 하는것도 나쁘진 않네만, 모쪼록 한번에 인사를 하고 싶었거늘.. 아쉽게 되었군."
"어디까지나 자칭 소위일 뿐일세! 뭔가 멋진 일을 해내서 중위나 대위, 최종적으로는 장군까지 진급하는것이 목표이네만, 핫핫하!"
"물론 농담일세. 뭐, 나중 일은 잘 모르겠다만, 군에 입대할수 있으면 그것도 좋을 것 같군! 장군까지 진급할지는 미지수네만 말이야! 핫핫하!"
"동월 선배는 그래, 꿈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니, 더욱더 친목을 다졌으면 하는군!"
>>0 바빴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다은은 다시 커리큘럼으로 되돌아간다. ...이번 커리큘럼은, 트위X에서 스트리밍을 하는 어떤 스트리머의 대전 영상이다. 그것도 꽤 오래된 게임의, 전기를 사용하는 캐릭터만을 집중적으로 편집해서 만든 듯한 영상이다. 갈수록 커리큘럼이 산으로 가고 있지 않아? 무엇보다, 전기를 사용하는 캐릭터가 과장된 기술을 여기저기 헛날리다 형편없이 두들겨맞는 영상의 연속인데다, 오른쪽 아래의 스트리머임직한 아저씨의 분노가 갈수록 에스컬레이트하고 있어서 도무지 캐릭터의 무빙에 집중이 안 된다. 무엇보다 저 사람, 코가 딱 웃길 정도로 커서 신경쓰여...
그리고 보고 있자니, 너무 못해서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맞는 모습만 연속으로 나오는 게 갑갑하기 그지없는데 조금만 상대에게 접대받거나 운이 좋아서 큰 기술을 맞추면 바로 아까까지 날뛰던 게 무색할 정도로 온갖 자신감 넘치는 자뻑을 일삼는 모습이 참으로 킹받는다. 신체조건이 조금 더 좋아서 악역 레슬러로 프로레슬링에 나갔으면 캐릭터 하나는 끝내주게 잘나갔을 것이라 생각하며, 다은은 손끝에서 찌릿찌릿하는 느낌을 끌어올려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무심코, 오늘 밤이 어제보다 덥다고 생각하면서 소매를 살짝 걷어올릴 요량으로 폴라 티 소매에 손을 대었고, 그 순간 짜릿! 하고 손끝이 닿은 발목에서 감전되는 기분을 느꼈다.
"어, 어머?"
1단계 커리큘럼의 핵심 목적이 두 가지, 전기를 방출하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분노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 또한 목적이었음을 다은은 내일 연구소에서 갖게 될 정밀 검사에서 알게 될 것이었다.
"반 강제로 무대 위로 초청되어 한마디를 해야 한다면?" 한아지: 어~ 한마디는 꼭 한마디만 해야 하나요? (청중의 웃음)(부끄러움) 아~ 아닌가 보네요~ 그러면 이렇게 말할게요. 모두 사랑합니다~ (환호성과 박수)(씨익) 고맙습니다~ (높아지는 환호성, 박수) 어려운 일도 많았을 텐데 고생 많으셨구요. 한아지가 응원하고 있어요. 오늘 하루도 내일 하루도 매일매일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 (박수갈채후 부끄러워져서 내려와서 친한사람 아무나 붙잡고 고개묻음) 나 잘 했어...?
"본사의 면접에 지원해 주신 이유는?" 한아지: 귀사의 행보는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인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것과 닮아있습니다 저는 이제껏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하여 자원 순환의 과정에 관심을 두고서 대학교에서... 아니 아지주야 캐입을 하라고
고생인가. 리라는 그 말에 레벨 2를 달았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집중 커리큘럼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몸에 무리를 가져왔고 그는 분명히 앓았다. 길게 검었다가 짧게 회색이 된 머리는 끝내 빛바랜 흰색이 되었고 이전보다 더 마구잡이로 길어버렸다. 그런 눈에 띄는 변화 전에도 혜성의 말대로 피나는 노력들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어째서인지 무감하게만 다가온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지 않나.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떠올려 봐야 현재에 방해가 될 뿐이니까 그에 대해 큰 감상은 없다. 레벨이 높지 않아서. 라는 말이 나오자 리라는 다소 주제 넘었구나 싶어 입을 다물었다. 구렁이 담 넘듯 부드럽게 주제를 넘어가기 위해 말을 아낀다. 목소리가 다시 등장하는 건 다음 문장이 도착한 뒤다.
"네, 꼭 같이 갈게요. 아~ 티라미수는 많이 안 먹어봤는데~ 여기 티라미수가 너무 맛있어서 기준이 높아져 버리면 어떡하지? 그럼 저도 어느새 여기 단골 되는 거 아니에요?"
앗. 혹시 이거 고도의 영업? 장난스러운 말을 덧붙이며 소리내 웃은 리라는 주머니에 쿠폰을 넣는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혜성 선배님이 만족하시니까 저도 뿌듯하네요."
울려퍼지는 방울의 소리가 청명하다. 리라는 잠시 그 맑은 소리를 곱씹어본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 초음파라는 말을 들었을 땐 막연히 강한 음파를 사용하는 능력으로 상상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면 저렇게 고운 소리를 내는 방울을 들고 다니는 혜성은 보다 섬세한 방향으로 컨트롤 하지 않을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게 되는 거다.
"다음에는 다른 것도 만들어 드릴게요. 더 열심히 해서 예쁘고 멋진 걸로~ 약속~"
새끼손가락을 불쑥 내밀며 웃어보인다. 리라는 그 상태로 다시 혜성의 눈을 본다.
"이리라 이름을 걸고!"
이름을 굳이 한번 더 인식시키는 건 후배님으로 정리되는 명칭이 어쩐지 첫만남 때 그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해서다.
>>252 히히 복슬 혜성주 귀여워... 부끄러워 하지 말고 이리 와서 쓰다듬을 받으시오!!
>>257 캡틴 안녕안녕~! 맞아, 나 훈련 한거 뱅크에 반영하려고 하는데 스프레드 시트 보유자에게 문의해서 보호를 해제하라는 메세지 뜨는데, 혹시 확인좀 부탁해도 될까? 뭔가 개인이 하는 분위기인것같아서~ 캡틴나 다른 사람이 하는거면 내가 또 뭔가를 잘못 안걸테니까 스루해주면 고맙겠어~
>>260 예은 : 중대장은 그대들에게 실망하지 않는다네!!!
예은 : 이렇게 열심히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는 것 만으로 장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주게나!! 핫핫하!!!
예은 : 그래도 부탁이라면 하, 한번쯤은 해줄수 있네만... 나는 그렇게 악덕 상관이 될 생각은 없다네..?
>>261 이레주 안녕~! 매력적이라고 해줘서 고마워.. 이레도 엄청 귀여운걸! 레벨 3 선배님같은 동갑이기도 하고 말야~ 사차원 예은이랑 친해지면 멋대로 막 끌고 다니면서 하이텐션이라.. 며칠 앓아누워야 하는데도 매일같이 놀자고 불러내거나 하면서 귀찮게 굴것 같다는 뭔가 귀여운 상상이 막 되네.. 빨리 친해졌으면 좋겠다!!
>>263 희야주 안녕안녕~! 지금 막 위키 봤는데 엄청 대단하네... 베이비 크툴루쨩이구나... 나 그러고보니까 아까 졸기 전에 몸 관련해서 떡밥 봤던것 같은데🤔 어떤 비설을 가지고 있는 아이일까 엄청 궁금한걸~
>>265 고마워... 다은이도 완전 멋져 🥰🥰 다혈질 다은이랑 친해질수 있을까???? 내 코뿔소 목표중에 하나로 적어놔야겠다...(?)
"단골이 되면 거기 사장님이 되려 더 좋아라하실걸. 영업인지 아닌지는 -.. 응, 어떨 것 같니?"
고도의 영업 아니냐는 말을 듣고 혜성의 표정은 여전히 다정한 표정이었지만 약간 장난스레 바뀌었다. 대답하면서 혜성우 잠깐 자신에게 쿠폰을 쥐어주던 카페 사장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연히 sns를 뒤지다가 찾아가게 된 카페치고는 분위기도, 디저트들의 맛도 꽤 괜찮아서 단골 카페로 자리를 잡았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아마도. 음료는 진짜 모르겠지만.
"나야말로 만들어준다고 해줘서 고마워. 끈이나 포장끈이 없으면 사러 가야하나 고민했거든. 이렇게 보여도 졸업할 때까지는 계속 차고 다닐 거니까."
후배님이 만들어준거니까 소중하게 사용할게. 혜성은 말을 덧붙히며 엮어낸 방울들을 자신의 허리께에 묶었을 것이다. 흔들리는 방울소리가 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느낌으로 들려오자 혜성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편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풀고, 일어나려다가 혜성은 잠깐 행동을 멈췄다. 손가락을 내미는 후배의 모습 때문이었다.
하하, 혜성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무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기대는 할게."
그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며 눈을 맞추고 혜성은 빙긋 미소를 짓는다.
"리라야."
//막레다! 놀아줘서 고마워! 약간 리라가 혜성이를 보면서 뭔가 뭔가를 떠올리고 그래서 잘못 건드릴까봐 불안했다! 즐거웠다면 좋겠네 수고했어
>>307 태진주 안녕안녕~!! 이렇게 인사할 수 있는것만으로도 좋은걸~ 늦은건 신경 안써도 돼😊😉 나도 노리는 포지션이 구석탱이 잡초 정도니까(???) ㅋㅋㅋㅋㅋㅋㅋ 태진이 위키 봤는데 영화 감상부잖아? 영화 장면 하나하나에 일일이 크게 반응하는 예은이한테 질리는게 벌써 상상되는걸🤣 친해질 수 있으면 좋겠네~~
>>308 이렇게 귀여운 털뭉치에게 배방구를 하고싶은 욕망을 참을수가 없는걸........(혜성주:키모;;;;;;;) 미에에에ㅔ에에에ㅔㄱ(털뭉치됨)
누가 그랬는가, 거학의 너울이 거칠다고. 뭍에 닿은 자는 너울 거칠다 하나 심해 깊은 곳은 잔잔하다. 둘은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함께 했던 사이다. 누군가는 끝없이 가라앉고, 누군가는 더 깊은 곳에 침잠하여 암약하였으나 결국 다시금 심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형제와 자매가 있었다 한들, 한때 무엇보다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한들 현재 온전하게 존재하는 당신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정말?"
유대감, 그 이상의 무언가. 정신적인 연결점을 사랑이라고 칭하기엔 옳으나 이는 성애적인 것이 아니다. 이를 감히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인간의 가족애라 칭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해도 괜찮다. 깊었던 감정의 골이 사라졌다면 가족이 아닌 친구라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간 당신을 만나고 싶었으나 만나지 못했던 것 떄문이다. 비록 거룩한 사명을 행했다 한들 현 상황에서는 잘못이 맞았으니 달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응, 혜우야."
포근하다. 눈을 감은 상태로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봄날, 이따금 부슬부슬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흐르는 이름을 부르며 답했다. 혜우야, 혀 위에서 구르는 이 발음이 그리웠다. 언젠가는 당신이 컸을 때 자신을 부르면 어떤 목소리일까 떠올린 적도 있었다. 그래, 이런 느낌이구나. 자신은 시간이 멈춘 듯 여전한 목소리지만 당신은 다르다. 달라진 것을 듣는 것이 나쁘지 않다.
"응."
다시금 답했다. 점차 감정의 깊이가 더해지는 소리에 희야는 괜찮다는 듯 마주안은 손을 가볍게 다독였다. 그리움에 사무쳤던 인간의 감정은 이런 것이구나. 그래, 이런 것이구나……. 그 소리를 네게서 듣는구나. 마지막으로 당신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희야는 당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혜우야." 다시금 부르는 목소리가 차분하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는 지금 너를 부인하지 아니하리라. 닭이 세 번 울고, 누군가 세 번 부르짖는다 하여도.
"으응…… 혼자 있는 거 싫은데."
희야는 당신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폭 파묻은 고개 속에서 웅얼거렸다. 하지만 본인이 남성을 제압하면서도 돌아가겠다 약속을 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겠지. 대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 희야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종알거렸다.
"그래도 혜우니까, 말 잘 들을게요. 대신에, 돌아가는 길에 같이 과자 사러 가자. 아니면- 아!"
예전처럼 예쁨 받고 싶다. 바라는 것도 퍽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늘 그랬던 사람이고, 늘 그랬던 존재였으니. 또한 언제까지고 그렇겠지. "있지, 혜우야, 음- 희야- 아픈 것 같아! 응, 맞은 곳 많이 아픈 것 같으니까 혼자 못 있어. 삼촌 올 때까지 희야랑 있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야 거기! 어디 갔어 잡아! 넌 손발이 없냐 이 머저리야, 눈 뜨고 코 베어가는데 멀뚱멀뚱 보고만 있어! X발 여기까지 저딴 게 왜 들어오냐고, 빨리 찾아! 찾을 놈 하나밖에 없는데 왜 이리 굼떠! 꼬리 붙이고 왔으면 뒷처리라도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냐!
욕설 섞인 목소리가 저편으로 멀어져 간다. 리라는 그제서야 손에 든 에코백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모양의 지갑들이 거기 있다. 총 수량은 열다섯 개 정도... 다행이다. 제대로 집어왔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으면 멀어졌던 발자국 소리들이 다시 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리라는 빗자루의 방향을 돌렸다. 여긴 안 되겠다. 다른 곳으로 넘어가야지.
스트레인지에 대한 소문은 작년의 리라에겐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었다. 딱히 가 볼 일도 없고 일부러 가지도 말아야 할 곳. 스킬아웃으로 명명된 사람들이 점령한 구획. 슬럼가. 사각지대. 그렇게 정의된 공간은 해설 없는 미지수인 동시에 금단적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딱 그 정도. 개인적으로 크게 어떤 감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무장한 무능력자들의 본거지로 낙인찍혀 있어서 누구든 쉽게 발 들일 수 없는, 인천첨단공업단지의 뒷골목이라 불리는 곳. 저지먼트가 되면서 이쪽으로 눈 돌릴 일이 아예 없지 않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훅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사실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리라는 한 시간 전 쯤에 있던 일을 회상한다. 여느 때와 같은 순찰 업무, 구석구석을 돌다가 마주친 소매치기, 달리다가 넘어져 한쪽 무릎을 깨 먹고 그제서야 빗자루를 꺼내 날아다니며 족적을 쫓았다. 이후 즉각적으로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높이에서 서서히 미행하다가, 무리들이 모여 하루의 벌이를 점검하는 그 순간— 탁. 하고 멋지게 잡아챈 것이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존재를 드러냈으니 지체없이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돌면 돌수록 아는 길은 커녕 모르는 골목만 나오는 것이다. 뭔가 잘못 됐다는 걸 인식할 즈음에는 이미 공중에 올라가도 맨눈으론 섣불리 방향 잡기 어려운 지점에 도달해 있고, 그쯤에서 리라는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후우. 이제 갔나."
리라는 한 건물의 벽 뒤에 숨어 호흡을 고른다. 긴장으로 차가워진 손이 미끄럽다. 주위를 훑다가 그를 숨긴 건물이 무엇인지 얼추 헤아려 보면 아마 학교 비슷무리 한 것 같다. 물론 보수하지 않은 지 오래된 티가 나서 지금도 용도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알 길 없지만.
"아, 여기가 어디지. 일단 좀 있다가 나가야 할 거 같은데."
급하게 나갔다가 다시 발견되면 곤란하다. 빗자루는 최대 속력이라고 해봤자 그가 달리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날지 못하고, 아무리 높이 난다고 한들 일말의 안전장치 없이 정도 이상의 고공비행을 하는 건 사실상 자살시도나 다름없는 위험한 짓이다. 무엇보다 이 비행은 무한대로 가능한 게 아니다. 레벨 2라지만 아직은 겨우 익숙해진 수준. 장시간 유지하고 있으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리가 온다.
"잠깐 내려가 있어야겠다. 힘 빠져..."
그리고 이렇게 기운을 많이 빼면 자연스럽게 실수가 뒤따르는 법이다. 빗자루를 아래로 향하게 움직이는 순간 축축한 손이 쭉 끄러지며 생각보다 더 심하게 앉은 곳을 경사지게 한다. 헉, 하고 숨을 들이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가 애초에 그렇게 높게 떠 있지 않았다는 점일까. 창문 앞을 스쳐 바닥으로 향하는 한순간, 리라는 내부에서 누군가의 인영을 본 것 같았다.
정말 누를 줄 몰랐다는 말에 나는 그저 말 없이 웃어보인다. 나는 한다면 하는 여자라고 후배님~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이런 행동력빼면 스스로도 남는게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질소만 가득해져버린 요즘 과자처럼... 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쓸쓸해지는데... 그렇다곤 해도 이런 돌발스러운 내 행동에 잘도 따라와주고 있는 애린이었다. 뭐뭐~ 애초에 나를 여기까지 끌고온 장본인이니까? 이정도 따라와주지 않으면 이쪽이 오히려 곤란하다고! 버스 계단을 저벅저벅 걸어내려와 손에 들었던 아이스박스의 스트랩을 몸에 둘러 맨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버스의 천장에 가려졌던 햇살이 무섭게 공습했다. 나는 조금 팔을 올려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눈을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한다. 과연 해안가인가... 아직 여름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유지만큼은 봄이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드는 태양이었다. 과연, 봄 봄 봄 봄 봄이 온 건가...
"―근데 역시 그 노래 뭔가 섞이지 않았어?!"
봄 위에 선 눈사람... 조금 생각해본다. 그러자 그러기가 무섭게 눈사람은 내 머릿 속 세계에서 3초만에 녹아버렸다. 새벽의 빛을 쐰 흡혈귀마냥 재로 변해 버린 거다. 남은 것은, 급격한 기술 발전의 부작용인 환경 공해로인해 점토처럼 질척한 눈... ...돌려줘, 내 동심!! 뭐, 그건 그렇다치고. 아무튼간에 이렇게 해안도로의 땅을 밟게 됐다! 후후후... 모든 것은 계획대로다. 이래보여도 아무 생각 없이 내려온 게 아니란 말이지. 아까부터 생각한 거, 그걸 한 번 보고싶다. 나는 그런 나의 생각을 검증하고 싶은 마음에 애린을 두고 저 먼저 도로 한 켠의 난간쪽으로 달려, 가까이 붙는다. 이렇게 여기까지 오면...
"오오오~! 그래 이거라구 이거~ 이렇게 보고 싶었다구! 타하하~!"
그저 차가 지나다니기 위한 평범한 도로 위가, 이쪽과 저쪽의 세계를 가르는 듯한 구분선이 되어 우리가 가야 할 바다와 모래사장이 한 눈에 훤히 내려다 보이는 명소가 되는 것이다. 역시 해안가라면 이거지~ 이런 건 직접 걷는 자만 누릴 수 있는 특혜같은 거다. 차 안에서 봐도 좋지만 역시 내려서 보는 거랑은 비교가 안 된 다니깐~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살랑살랑 흔들려 뒷목을 간질인다. 바람에 섞인 바다내음도 제대로 현장감이 느껴져 좋은 기분이었다. 나는 길게 흩날리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일행인 애린을 부르기 위해 뒤를 돌았다. 상쾌하게 웃음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요오~! 빨리 와서 한 번 보셔! 여긴 완전 절경이 따로 없다구! 아아~ 정말 우당탕탕 와버렸다지만 결국 오길 잘했구만! 와하하~! -아 맞다, 애린! 너도 여기 와서 같이 사진이라도 찍..."
나는 말을 하다말고 중간에 끊고서는, 갑자기 머쓱한 기분이 들어서 너털웃음 흘리며 제 뺨을 긁적였다.
"아~... '애린', 이라고 불러도 되려나? 류애린, 맞지? 헤헤... 뭐! 대신에 너도 나에 대해서는 그냥 편하게 생각해도 된다고~?"
아니 이제와서??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이런 건 제대로 나누는 편이 사람으로서 좋은 방향인 것 같아서 얘기를 꺼내봤다. 나같은 녀석은 워낙 분위기에 잘 타는 편이긴 해도,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종종있단 말이다. 거기에 이쪽이 조금 선배이기도 하고?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말 안 하면 이런 걸 은근 어려워하는 녀석들이 있단 말이지~
노스탤지어라는 말은 아득하기만 하니, 추억할 대상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너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네 입으로 너의 그 노스탤지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러다 봄 감자 같다는 그 이해 못 할 답에 류화는 그만 참지 못한 웃음을 말갛게 터트린다. 네 그런 보랏빛 눈동자에 무엇이 번득이고 있을지, 너와 눈을 마주한다.
"장난을 친 건 난데. 네가 죄스러울 게 뭐가 있겠어."
류화의 손이 네 머리 위에 얹어지고, 처음에는 가볍게, 그러다 약간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로 네 머리를 쓰다듬는다. 손으로 쓸어보면, 그 빛바랜 색의 머리카락이 손에 걸려오니. 이번에도 거부하거나 피하지 않는 것에 류화는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홍조가 완전히 다 가시지 않고 어렴풋이 남아있는 네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은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따라, 네 옆머리로, 네 귓가를 스치며 미끄러지듯 내려오다가, 콧잔등을 검지로 툭 두드리고선 거둔다.
"너는 네 외모에 대한 자각이 없구나. 누구에게나 물어보든 예쁜 아가씨라고 할걸."
말하며 류화는 빙긋 웃는다. "내 눈엔 충분히 공주님 같아." 하며 이어 말하며 류화는 장난하는 듯, 한쪽 눈을 감아 윙크를 곁들인다. 그러며 너에게서 살짝 떨어지니, 잠깐 놓아두었던 시집을 다시 손에 든다.
>>432 음~~~~~~ 고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여! 일단 돈이 없어서 머라두 해야하는데 세나가 평범한 건 하기 싫어했구여! 마침 눈에 보이는 카페를 드갔는데 마침 메이드카페인데다 거기서 일하는 메이드는 매니저 언니 혼자밖에 없었구여! 매니저 언니가 힘든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었구 또 언니가 무지 이쁘니까 어떻게든 사정사정해서 일하게 됐대여! >< 대충 전말은 이런 느낌이에여 헤헤
>>433 후후후~~~ 고것은....... 천천히 알아가조! >< 이겼으니 질문이에여! 동월이는 검을 들고다니는 데다가 능력두 다 잘라버리는 능력인데 이 이유는 검술같은 거에 일가견에 있어서 인가오?? 아님 그냥 단지 만화를 따라하는 남학생인건가여?
>>449 검술에 딱히 일가견은 없지만 검을 다루는 방법 자체는 독학 비슷한걸로 공부해서 안정적이랍니다!!!!!!!! 만화 따라는건 그냥 재밌어서고, 검 들고다니고 능력까지 그거인 이유는..... 어느새 정착한 말버릇인 '썰어버린다' 의 키워드로 누군가와 어떤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죠!!!!!!!!!!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를 보며 배우고 자라는 법이었다. 감정, 사상, 사고방식, 행동, 그리고 자아를 구축하기까지. 하지만 그것을 가르쳐 줄, 보여주어야 할 부모가 없이 자란 아이는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까. 초석 없이 세워진 건축물이 과연 얼마나 유지될까.
이 땅 위에 수정부터 불행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는 무수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운이 좋은 하나였다. 차가운 길바닥 대신 제대로 몸을 뉘일 잠자리가 있었으며, 세상을 가르쳐 줄 부모는 없었지만 자아를 이끌어 줄 사람은 있었다. 굳건한 초석은 없어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굄돌은 있었다.
"그래. 희야."
그를 다시 만나지 못 했더라면 나는 조만간 모래가 되어 흩어졌을 것이었다. 굄돌마저 잃은 건축물은 허물어짐 만이 기다릴 뿐이었다. 몹시도 혼란스러운 찰나에 다시 만나 품은 그는 나의 존재를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하고 뚜렷하게 이 세상에 인지시켰다.
어릴 적과 변함 없어 보이는 그가 종알종알 말하는 소리가 품 속에서 들려왔다. 그의 성장한 모습을 그려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여즉 품에 쏙 들어오는 체구인 건 분명 나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행여 부서질라 조심히 안고 있으니 뻔뻔스러운 말이 들려와 자연스럽게 그를 보게 만들었다.
"머리는 다 나았을 텐데. 어디가 그렇게 아파."
반은 농담이었고, 반은 진담이었다. 눈에 띄게 다친 머리는 진즉 낫게 해주었으니 이제 안 아플 테고, 달리 눈에 띄는 외상은 없으니 저 말이 엄살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엄살이란 걸 알아도 아프다는 그의 말에 동요하고 말았다. 마주하는 눈에 미미한 걱정과 불안의 기색이 담길 만큼이었다.
"...소장님 부르는 거, 싫다며. 택시 불러서 같이 가자. 데려다 줄게."
동고동락한 시간의 길이는 그만큼 나를 쥐고 흔드는 족쇄의 죄임과도 같았다. 그것이 길어질수록 멀어질 수 없으며, 나 또한 숨길 수 없어졌다. 그를 안았던 손 하나를 위로 올리면서도 부슬한 머리카락을 훑으며 움직였다. 그 손으로 그의 얼굴, 그의 한 쪽 뺨을 감싸려 하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니면, 같이 있을까. 오늘 밤. 소장님은 싫고, 혼자도 싫다니까."
예전처럼 가까이 있고 싶었다. 온전히 나를 부르며 나를 보는 금빛 눈을 조금이라도 더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 한다고 서로 등 돌렸던 시간을 보상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오늘 만은 혼자가 아니길 바랐다.
>>458 헉 선관 제안해줘서 고마워! 그러게~ 은근 성격의 결이 비슷하네. 이타적인 성격이라던지 말야! 나도 아이디어뱅크가 도산해서 ㅋㅋㅋㅋㅋㅋ 뭔가 둘이서 인첨공 내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 돕다가, 최근에 적당히 안면정도는 텄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은근 학교에서 만나면 "자네 사복 차림과는 인상이 다르구만!!!! 못 알아볼뻔 했다네!!! 핫핫하!!!" 같은 말을 태연스럽게 건네지 않을까 싶기도 해 🤔
>>468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해! 예은이 아껴줘서 고마워... ㅋㅋㅋㅋㅋㅋㅋ 이래저래 시험기간에 현생이슈도 있는것같은데... 힘냈으면 좋겠다.(쓰담쓰담) 그리고 정하 지금 봤는데 레벨 4인것도 대단하고, 엄청 귀여워~~ 여고생같은 정하랑 시간 들여서 천천히 친해질 수 있으면 좋겠네!
>>478 (쓰담쓰담) 전에는 4도 5도까지 내려갔는데 오늘밤은 18도네. 날씨가 이상한것같아... 시간도 늦었는데, 슬슬 자야하지 않아?
>>487 헤헤 맞다요~~~~ 검술소녀 말고도 원래는 화염능력자로 하려고 했다는 썰도 있다요~~~~~ >< 음~~~ 우선 세나주가 생각하기에는 먼가 칼로 서걱서걱 썰어버리는게 멋지긴 하지만 별루 학생답지 않다구 생각했구여! 또 저지먼트는 어쨌든 정의집행을 이끄는 선도부라서 비살상에 집중해야 한다구 생각했어여 피가 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진다고 할까여?? 이번 캐릭터인 세나는 청춘이라는 시원시원한 느낌에 몰빵해두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가지를 치다보니 이런 느낌이 되어버렸네여 후후 동월주 말씀대로 우산은 그 잔재인것임니당~~~! >< 꺄아아아아악 앗 참고로 스레 내의 동월이나 다른 검술 캐들을 부적절하다구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여!! 이 부분은 오해하시면은 안 된다요~~~~
어느날_자신이_괴물이_된다면_자캐는 : 눈 뜨고 어... 꿈인가? 하고 나가서 삼촌 이거 봐~ 하고 촉수 꿈틀대다 제압 당해서 죽는 엔딩밖에 생각 안 난다...
그 괴물이 만약 비유적인 거라면 어 음 흠 🤔
자캐가_나에게_고민상담을_한다면 : 🤔...
"있죠~ 들어 봐요, 그러니까- 음- 희야가 오늘 보석바 먹을까~ 해서 하나 샀거든요?" "응응 듣고 있어~" "그런데 포장을 딱 깠는데요!" "깠는데?" "작아!" "그건 문제야!" "맞아! 너무너무 작아서 두 개 먹어야 성에 찰 것 같아요! 이걸 누구 코에 붙일까요? 왜 아이스크림 크기는 모두 작은 걸까요-" "그러게나 말이야~"
이럴 것 같은데...🤦♀️
자캐를_고양이에_비유한다면 : 도~통 속을 모르겠는 복실복실 놀숲? 메인쿤? 그런데 돌연변이라 거대하지 않고 미니미한... 봑실하기만 한... 눈이 금안인... 울음소리는 야옹 맭도 먉 냥 앍도 아니고 '껭.' 이거일 것 같고... 캣타워에서 맨날 사람 지켜봄 창가에서도 사람 지켜봄 그냥 모든 걸 지켜봄....
키에에엑 (혜우주와 정하주 세나주의 삼박자로 끌어내어진 심해참치) 여로주 안녕. 그리고 굉장히....싫은 소식을 가져와줬구나 (눈물)
situplay>1596995070>476 그치 성격 결이 비슷해서 순간 띠용했다는 후문이 있다. >>사복차림의 이혜성<< 을 교내 밖에서 봤다고? 게다가 그걸 학교에서 이야기한다구???:0 그거 듣자마자 이혜성이 예은이 입 막으려 들거나 일단 이리와봐하고 사람 없는 곳으로 데려갈거 같은데.
예은이와 만나고 싶지만... 지금 내가 여로에게 끌려가기 딱 좋은 상태라... 흑흑... 다음 기회에.....
그리고 야심한 밤을 노린 여로주의 신기한 경험.
오후에 전철에서 깜빡 졸았는데 분명 XX역이 다음역이었거든? 근데 잠에서 살짝 깨니까 또 XX역이 다음 역이래. "아, 잘못 들었나" 하고 꽤 한참 자고 일어났는데 XX역에 도착 예정이라고 또 방송이 흘러나와서 "어라...." 상태였어. 물론 그 때 진짜로 도착해서 그 다음역으로 계속 갔고 나도 목적지에서 내렸지만:3
>>502 >>> 캣타워에서 맨날 사람 지켜봄 창가에서도 사람 지켜봄 그냥 모든 걸 지켜봄.... <<<
귀여워...(흐뭇)
>>504 ㅋㅋㅋㅋㅋㅋ 그러게, 나도 신기하네~ 이거 우리 완전 짱친 모먼트 세워진것같은데???(혜성주: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귀엽다.... 아마 밖에서 봤으니까 사복이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만약 그렇게 만났다면 진짜 당황하겠다. 혜성이가 입막으면 읍읍거리면서 물음표 띄우다가, 사람 없는곳에서 하지 말란 얘기를 들으면 핫핫하!!!!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가?! 그런 멋진 모습을 하고 다니는건 오히려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고 생각하네만!!!! 같은 얘기를 하면서 혜성이 이마를 탁 짚게 만들지 않으려나 🤔🤔 물론 얘기하지 말라고 하면 앞으로 철썩같이 부인할듯... 약간 밖에서 사복차림으로 만나도 아니 자네는 누구란 말인가?! 같이 땀 뻘뻘 흘리면서 시치미 떼지 않을까??
>>523 본격적으로 파고들면 방향성은 다르겠지만....(맑눈광 루트가 있는 이혜성 봄)(안봄) 짱친 모먼트라면 나야 땡큐지 학년 상관없이 친구하면 되는 것이야~~ 이혜성 진짜 제대로 당황해서 어법법 하면서 바로 입막고 빠르게 데려간대 백퍼 예은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진짜 이혜성 이마팍 치겠네 이걸 어쩌면 좋니하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밖에서 필사적으로 모른 척 하는 거 짱웃겨ㅋㅋㅋㅋㅋㅋㅋㅋ이미 까발려져서 모른 척하면 장난스레 웃으면서 왜? 할것 같은 이혜성 이거 역할이 반대가 된 것 같은데
>>539 >>54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맑눈광 루트라니.... 나 갑자기 너무 궁금해져...... 헉 좋아좋아~~~ 짱친 모먼트 마음에 든다니까 다행이다. 나는 혐관도 잘 먹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으니까 혹시 나중에라도 하고싶은거 있으면 편하게 말해주면 고맙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혜성이 너무귀엽다...... 역할 반대로 된것도 너무귀엽잔아.... 마구 쓰다듬을래...
좋아좋아, 그러면 혹시 편하게 선레 부탁해도 될까? 얘기한대로 혜성이가 밖에서 사복 차림으로 곤란한 사람 도와주는데, 예은이도 도와주려고 해서 둘이 첫 만남 가지고 있었다가, 그 뒤로 오늘 처음 만나는 느낌도 괜찮고~ 다른 상황도 전부 괜찮아🥰
마지막 수업이 수학인 건 정말 시간표가 너무한 것 같아. 터지는 하품을 억지로 꾸욱 눌러참으며, 혜성은 복도를 가로질러 걷는 중이었다. 시간은 어중간하게 붕 떠있어서 부실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가는 시간이 될 때까지 붕 떠버린 시간을 죽일 참이었다. 부실로 향하는 동안 친구들이 어디로 놀러갈지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같이 갈래? 아냐. 부실에서 좀 자고 아르바이트 가야돼. 평소라면 제안을 받고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였겠지만 안하던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런지 이번만큼 제안을 거절하는 혜성의 모습은 단호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신경 안쓰는 걸 보면 평소에 혜성이 무리에서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딱히 상관은 없다만. 미리 커리큘럼 일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기로한 뒤 조정했으니 커리큘럼에 늦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친구들과 헤어지고 혜성은 학생들이 아직 남아있는복도를 걷고 있었다. 맞은편-혹은 뒤편-에서 걸어오는 누군가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걸어가며 핸드폰을 만지는 혜성의 모습은 일견 평화롭기까지 했다
이제 하늘에서는 태양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달만이 숨죽여 하늘 위에서 세상을 관찰한다. 어둠이 내리깔린 골목은 음산하고, 사람이 둘이나 쓰러져있으며, 능력 때문에 춥기까지 하지만 이보다 더 안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희야는 끌어안은 팔을 풀듯 앞으로 쭉 뻗으며 괜히 소매를 파닥거렸다. 이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천진난만한 욕심 때문이었다.
"음- 그냥 아프다고 할래.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아프다고 할 거야."
희야는 동그란 눈동자로 당신을 빤히 마주했다. 머리에서 느껴지던 불쾌한 축축함도 느껴지지 않지만 지금은 아프다고 실컷 떼를 써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신의 눈을 보니 조금은 자중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뻔뻔하게 아프진 않지만 아프다고 할 것이라 선언하고, 희야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으응, 또 혼나는 건 싫어. 그래도 혜우랑 있으면 덜 혼날 것 같은데! 삼촌은 혜우한테 약하니까."
당신이 곁에 있는 한 승환은 크게 화를 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는 법이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 예외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뺨에 올라온 손을 비비던 희야는 말려 올라가는 입술을 숨기지 않았다. "응?" 괜히 되묻고는 고양이처럼 동그랗고 잔망스럽게 미소를 짓고,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영화 보고 싶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어릴 때 많이 봤는데……. 마침 볼 사람이 여기 있는 것 같은데에-"
능청맞게 같이 있고 싶다고 얘기하던 희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소매를 걷었다. 보지도 않고 손목 부분을 두어 번 터치하며 원격으로 119에게 위치 신호를 보내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소매를 내렸다.
"아무튼 아프진 않지만 아프다고 할 거고, 영화도 보고 싶다고 할 거야. 과자도 먹고 싶다고 할 거고, 빙수랑, 저녁이랑, 또…… 아, 그리고 학교 같이 가자고 해야지. 왜냐면 희야 방에는 푹신한 소파도 있고 침대도 있고 체육복도 있고 재밌는 영화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동조해줄거죠? 우리 밤 새우기 공범 하자! 괜한 소리를 하며 품 속에서 몸을 살짝 돌리려 했다. 이대로 앞으로 쭉쭉 걸어서, 어서 택시 타러 나가자는 듯.
"……아참, 그리고요, 혜우한테 고맙다고도 할래요. 몸 주인은 정말 고마워 할 것 같거든."
대강 그럴거라 예상이야 했지만, 역시 예상은 예상일 뿐이라고 상당히 활동적인 당신이라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긍정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단순히 자신처럼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만 저 양기에 준하는 음기가 있다던가, 아니면 그 외에는 공허라면... 역시 조금은 고민스러울지도, 하지만 어차피 당신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기 전까진 미지수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으에엑..."
당연하지만 봄이다. 대낮이다. 해안가다. 그녀는 곧장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피부는 자외선을 막기 위한 선블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타들어갈듯 약한 붉은빛을 띄었고 휴대용 선풍기를 상시지참하는 철두철미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목적지까지 가기 전에 탈수증세가 왔을지도 모른다. ...라고 해도 이미 셔츠는 조금씩 땀을 머금어가고 있었지만, 손에 쥘수 있는 작은 선풍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제 겨우 봄인데도 말이다.
"뭐 어떻슴까~ 사계절을 살아보고 싶었던 눈사람의 꿈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잖아여~ 비록 한절기 다 돌고난 뒤의 봄에 죽었지만,"
...일단 아이들이 볼수 있을지 모를 이야기였다.
좌우간 당신의 권유로 발을 디딘 해안도로의 풍경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아마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기에 대강 넘기기로 했다.
푸른 바다, 그보다 먼저 푸른 파도가 나부꼈다. 그 푸르른 일렁임은 분명 당신의 머리카락이었겠지. 그리고 한껏 그 간질간질한 바닷바람을 즐기던 당신이 이쪽을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롸?"
이미 자신은 당신이라는 이름의 절경을 보고 있는데도 당신은 저 건너편이 더 신기한 경험이었을까, 같이 사진을 찍자며 이름을 부르던 당신이 잠깐 멈칫하다가 너털웃음과 함께 쑥쓰러운듯 뺨을 긁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녀, 점롄데여?"
몇발자국만 더 걸어가면 닿는 거리의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뭐어, 그냥 이름으로 부르셔도 상관 없지만 말임다~ 즈도 그런건 신경 안쓰는 편이라서리."
사실 자신도 그저 선배님이라고만 부를 뿐이었지 딱히 이름을 넣어 지칭한적은 없었던듯 싶다. 그도 그럴게 대부분 저지먼트 활동 때만 만났는데 업무를 위한 환경에서 쉽게 이름을 거론할 일은 별로 없지 않겠는가,
"머, 사진이야 상관 없슴다~"
대신 당신이 방수백 안의 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 할때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지었을런지는 찍고나서야 알 일이었다.
결국 참지 못한듯 당신에게서 말간 웃음이 터져나온다. 마치 한창 자란 석류가 터지듯 그렇게 나온 웃음이었다. 마주하고 있는 눈에 비춰지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일단 그녀는 여전히 똑같은 표정이었을테지.
"장난... 이시라믄 머, 좌우간 다행이네여~"
처음 당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차분한 미소를 보여주었을까? 머리 위에 올려진 당신의 손길은 처음엔 가볍다가도 이내 살짝 힘을 주어 쓰다듬듯 무게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행위가, 스킨쉽이 싫지는 않았다. 당신의 손길, 그 궤적에 따라서 반짝이는 빛무리가 동공을 훑고 있었다. 그녀는 딱히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터치에 대한 느낌조차도 생소했다. 물론 새로운 기분을 느꼈지만, 그게 전부였다. 마치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팝락이 입속에서 타닥거린다고 놀라움 이상의 감정을 가지진 않듯이.
물론 기본적인 몸가짐이야 책에서 배웠던데다 애초에 그녀부터가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타입이다보니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을 뿐이다. 포옹이란걸 해본 것도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무딘 감각은 언제나 기억마저 곧잘 흐트려놓곤 했다. 마치 실내에만 있던 사람이 시간에 대한 개념을 점점 잃어가듯이,
"에에~ 오히려 엄청 신경쓰고 있지 말임다! 보십셔~ 이렇게 쓸데없이 퍄퍄하게 붙어있는 살집에, 멋지다고도, 귀엽다고도 느껴지진 않을 애매한 키에, 쓸데없이 칙칙하고 길기만 한 머리카락임다. 게다가 눈빛이 이상하다는 말도 자주 들었슴다~ 딱히 동태눈인게 죄는 아닌데 말예여."
머리를 쓰담던 손길이 천천히 내려와선 옆머리로, 귓가로, 미끄러지다가 이내 콧잔등을 톡 건드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니까 공주님 아니라니까여~ 이렇게 점 많은 공주님 보신적 있으심까~? 물론 점은 좋지만여."
살짝 불만을 토로하듯 볼멘소리를 한번 내보다가도 이내 점에 대한 예찬에선 제법 진지해졌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는 얼굴뿐만 아니라 팔다리에도, 몸에도 엉성하게 흩뿌려진 검은 별들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한켠에는 불규칙적으로 얽힌 별무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당신의 장난은 좀처럼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지 윙크까지 곁들여주었다. 마치 왕자님이 이국의 공주를 마주했을때 으레 하는 의식처럼, 추파 비스무리한 그런 것처럼 말이다.
"머... 일단은 그렇슴다? 더 둘러보신다거나 해도 즈는 괜찮지만여."
당신이 집었던 책은 물론 그 외의 주변에 있던 책 몇가지를 품에 안고서 눈을 깜박였다.
일단 목적은 달성... 한 모양이니 이대로 흔히 말하는 서점 데이트를 이어갈 수도, 길거리의 풍경을 더 만끽할 수도 있었다.
학교에서 듣기 힘든 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핸드폰에 고정되어있던 혜성의 눈이 들어올려진다. 그 행동도 잠깐 혜성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앞에 있는 후배를 바라보던 눈을 도로록 굴렸다. 이 상대가 누구인지 떠올리기 위함이었고, 동시에 자신이 저 상대를 어디에서 언제 봤는지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혜성은 곧 저 독특한 옷차림의 후배님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밀려온다. 아니지, 정말 잘 알고 있는 불길함이다. 제발, 아무말도 하지 말아줬으면, 하고 생각하며 혜성은 경례를 하며 자연스레 말을 이어가는 후배를 향해 평소와 다른 걸음으로 다급하게 가까이 다가갔다. 제발 진짜로 아무말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라는 바램은 이어지는 후배의 말이 들리자마자 혜성은 깔끔하게 박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와! 와! 와! 후배님 잠깐만! 잠-깐- 만!"
아주 애석하게도 혜성의 행동은 이미 후배가 자신이 그다지 드러내지 않고 있던 정보를 발설한 뒤에야 이뤄졌을 것이다. 후배가 피하지 않았다면, 혜성은 평정심이나 침착함 없이 동요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그 입을 손으로 텁 - 틀어막으려하며 고개를 홱 기울였다.
"일단 우리 다른데 가서 이야기하지 않을래? 이렇게 부탁할테니까."
후배의 귀에 속삭이는 혜성의 목소리가 굉장히 빨랐을 것이다. 저녁밥이든 뭐든 나중에 이야기하고 지금은 여기서 벗어나는 게 최선이다. 왜 굳이 학교 밖의 옷차림을 숨기냐고 묻는다면 딱히 이유는 없지만 원래 소녀는 이런걸 숨기고 싶은 마음이지 않은가. 후배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혜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을 낚아채듯 붙잡으려하며 방향을 돌려 사람이 없을 법한 장소로 걸어갔고 도착하고 나서야 손을 놓아줬을 것이고.
>>624-625 시간이 나 두고 가버린 게 분명해~ 왤케 빠른지 모르겠다 힝🥺 키에엑 인첨공 밖에서 양아치짓 해줘 오토바이 타고 밤에 불량한 오빠가 전화하면 아 나 싫다고~ 하면서도 터덜터덜 나가서 편의점에서 공수한 호로요이 마시고 암튼 일탈해줘(혜성주: 바라는 것도 많네 조용히하세욧)
>>633 끼아아악!!! :ㅁ 아냐 안 버려... 버릴 리가 없다 만약 버린다도 쳐도 그거 아마 물리적으로 버리는 게 아니라 혜우에게 자기 그뭔씹락덕슬램존뛰놀기취미 안 들키려고 몰래 마스크 쓰고 나간거임(대체) 안 버려... 승환 아저씨가 그 말 들으면 아이고 인첨공이 정신병 제조기다 아이고 인첨공을 메워야만 이러면서 와다닥 복지해주려고 할 걸!! >:ㅁ (???: 와아- 메우면 삼촌 실직하는 거야?
"음!! 아무래도 나를 잊어버린것 같군, 혜성 선배! 허나 그렇다면 어떤가! 다시 자기소개를 하면 그만인 일!"
"정식으로 다시금 소개하도록 하지! 나는 이번에 막 목화고로 전학오게 되어, 저지먼트로써 활동을 하게 된 이예은이라고 한다네! 모쪼록 이예은 소위라고 불러주면 고맙겠다네! 핫핫하!!"
다시금 척, 하고 멋들어지게 경례를 해보이는데. 너는 생각보다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고.
"으음? 무엇인가 문제라도옭"
"...으므유윽.."
입이 턱, 하고 손으로 틀어막혀지자, 당황해서.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것 마냥 의아한 얼굴로 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빠른 속도로 무어라고 속삭여지는데... 뭔가를 부탁한다는 내용정도만 알아들었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기도 전에, 나는 손을 낚아채여, 잡혀버린 한 마리의 물고기와 같은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이것이...납치인가...?'
상황을 이해해보고자 골똘하게 생각하던 와중에, 한적한 곳에서야 멈추게 되었고.
"핫핫하!!! 그 쯤이야 전혀 상관 없다네!! 그래서, 이제부터 무엇을 할 예정인가?!"
"신입 죽이기 같은 전통 문화라도 있는 셈인가? 이 비루한 몸이 얼마나 자네를 즐겁게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이 몸, 목화고에 충성하기 위해, 나아가 인첨공을 위해, 더 나아가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겠네! 자아, 부디 구워 삶든 쪄서 먹든 마음대로 하시게나! 핫핫하!!"
>>63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취미 수식어가 뭔가 이상한데요 그거 맞나요 인첨공이 정신병 제조기... 그렇게 되게끔 이용하는 인간들이 문제다 천씨 집안을 매우 쳐야만 ㅋㅋㅋㅋㅋ 실직 ㅋㅋㅋㅋㅋㅋㅋㅋ 궁금하긴하네 인첨공 무너지면 어떻게 될지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무능력자 뿐인 것도 뭔가 떡밥같고 응
>>639 옆집 누나의 무시무시한 사생활(?) 헤헤 햐주가 아는 앵알취 지식을 모아봤습죠 싸바싸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싫어~~~ 체벌 싫은데 저 바지 얇아서 빵꾸나서 안 되는데요~ 막 이래(적폐 무비설!!!! 마히다!!!!(냠!!! 가전제품 솔루션도 마히다!!!!!!!!!!(냠(?
>>643 혜우야 알면 다쳐(?) 정신병 제조기(일단 커리큘럼으로 머리 따는 것만 봐도 이따구 디스토피아)... 어어 천씨 계속 그러면 어 같은 천씨인 천마가 냅다 나타나서 S급 천마가 기업을 뒤엎음 이런다 (졸려서 아무말) 인첨공... 약간 0레벨 무능력자들로 하여금 뭔가 선전? 그렇게 계속되는 레벨 0 양산과 이득 취하기?를 하나...🤔 일단 실직 당하면 바깥에서라도 교수직 계속 한다는데 어림도 없지
와자박ㄱ 졸았다... 출근을 위해 먼저 잠들게.....는 다들 4시 10분이 넘었는데 일찍 자시오...(뽀담) 다들 굿잠되라구~
>>644 핫하~ 찔리는구나 류화야! 글씨... 나두 잘 모르겟서... 점례 일단 이것저것 들쑤셔도 자기 리미트 때문에 한번에 다 뱉어내지 않는 애라서 마치라잌 황금알 낳는 거위인데 배 째려고 해도 안째지는... 낸내야 류화주~~~~~ 오늘도 고생 많았서 깜장버튼냥이~~~~ (와바바바바바박)
그 상황에서도 들었던 소개를 용케 떠올려낸 혜성은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앞머리를 쓸어넘기고 놓았다. 후배, 그러니까 이예은이라고 소개한 눈 앞에서 의기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배를 향해 겨우 평정심을 찾고 돌아선 혜성은 잠깐 방금 전에 했던 말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복도에 다른 부원들은 없었다. 자신의 소문이 퍼져 있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만 이 후배님의 폭탄 발언으로 밝혀지는 계기가 되는 건 절대적으로 사양이다. 몇 없는 자신의 취미기도 했으니까 당연한 것이다.
"신입 죽이기? 아니, 아니. 그런 전통문화는 없으니까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줘."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후배에게서 쏟아지는 비상식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의 향연에 혜성의 표정은 이미 식겁한 상태였다. 이 후배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설마 내가 그런 짓을 할 선배로 보이는 건 아닐테지? 설마. 혜성은 짧게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도로록 굴렸다가 다시 후배를 바라봤다.
"구워먹거나 쪄먹거나 할 생각은 더더욱 없으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 내가 학교 밖에서 무슨 패션으로 다니는지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어."
소문으로 퍼져 있는 거랑,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랑은 아예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혜성은 굉장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부탁의 말을 꺼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부탁을 한 뒤의 혜성의 눈은 다시 도로록 굴러갔고.
띠용- 그런 효과음이라도 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생각과는 아득히 동떨어진 뉘앙스로 돌아오는 답변에 나는 벙벙한 표정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설마, 나 지금까지 후배 이름 잘 못 외우고 있던겨――?!?! ...일리가 없지. 나의 몇 없는 특기 중 하나가 사람 얼굴과 이름 외우는 것이었다. 옛날엔 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체에, 여기서 과거를 생각해봤자 어쩔 수 없나. 그렇지만, 소싯적의 똘똘함이 어디 가진 않았다고- 다행히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걸로 점례의 어원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어원이란 것은- 그것은 바로 이녀석의 몸이다! ...라고 하면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 아무튼 그것이 해답이다!! 그 왜, 있잖아? 이녀석은 일단 점이 많으니까... 얼굴에도 벌써 몇 개씩 보이고, 팔이나 다리에도 잘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보인다. 그런 근거로 이녀석은 그런 체질이고, 점례도 거기서 비롯된 별명이란 걸 쉽게 알아낼 수 있지... 후훗. 다만, 한 가지. 왜 점례일까...에 대한 것까지는 역시 나도 모른다. 어릴 적에 친구나 엄마 아빠가 부르던 별명이었을까? 막연하게 떠오르는 추측으로는 그런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입으로 점례라고 하니- 나는 대충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콧숨을 길게 뱉으며 제 허리 위에 손목을 얹었다.
"...했나! 타하하~ 그럼 이제 후딱 사진이나 찍고 내려가자구. 에에, 그러니까... 이렇게 찍으면- 아니다, 이쪽이 좀 더 평범하게 앵글 좋으려나. 으음-..."
나는 폰의 카메라를 켜서는, 마치 끊긴 전파라도 잡는양 높게 든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각도를 바꿔봤다. 참고로 셀카봉같은 건 가져오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따로 들고다니기는 귀찮다구. 어차피 사진 찍을때 외엔 짐덩이다 짐덩이. 그치만 만약에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부탁이라도 했을텐데. 역시 시기가 시기라고 지나가는 인간은 코빼기도 없다. ...라고할까, 여자 둘이서 바다 왔는데 부탁하는 것도 좀 그런가? 괜스레 이상한 오해 받는거 아냐?! 거기까지 생각이 되자 괜-히 뺨이 붉어지고 머리 털이 곤두서는 것 같다. 뭐, 뭐어~ 확실히 바다는 보통 특별한 사람들 끼리 오는 거긴 하지만! 이런 것은 그냥 내 억측이다. 이녀석... 그러니까 점례에게는 실례다. 애초에 그런 오해 살 인간 따위 없다. 이유도 없고... 에잇, 그런것 보다는 사진이다. 나는 그 후로 멈췄던 팔을 한동안 움직여 가장 최적이라고 생각했던 각도에 고정시켰다. 역시, 풍경이랑 섞여서 나오는게 최고지!
"...좋아, 그럼 찍는다 점례! 하나, 둘―"
참고로- 나는 '김치'라든가 '치즈'따위의 구호따위는 외치지 않는 녀석이다. 그런 작위적인 신호, 찍어서 뭐가 재밌겠냐? 라는 이유에서다. 사진이란 건 매순간의 자연스러움을 담을때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리타분한 생각일진 몰라도 난 굳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항상, 그 작위적인 구호를 방해하기 위해 나만의 공작을 걸어왔다. 어느 때라도, 상대가 누구라도 나는 그렇게 해왔다. 다시 말하자면, 갑자기 만나 바다까지 오게 된 '점례'라고 해서 그렇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셔터 타이밍에서도 변함 없이 숨을 하아압 폐에 잔뜩 들이마시고서는 굳게 외치는 것이었다.
"~야옹야옹우는것은언제나고양이갈매기다-!!"
그렇게 찰칵, 하고서. 파도소리 위로 정적인 셔터음이 지나간다. 개뜬금 바다팟의 투샷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핫핫하!!! 이거 이거, 다른 이에게 소위라고 불리는 것은 거진 처음 있는 일이라, 아주 상당히 만족스럽구만!!”
뿌듯한 얼굴로, 머리도 쓰다듬어달라는건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칭찬을 들을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뭘 기대하고 있는건지. 네가 한쪽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놓는 것은 조금 의아하게 보기는 했지만, 뭐가 잘못된건지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음, 한적한 곳으로 데려오길래 뭔가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가 생각했다만, 아니라니까 다행이군! 그렇지 않나? 핫핫하!“
”으음?! 어째서지! 그때, 자네의 패션에는 감복! 이렇게 개성적인 자기표현 방식이 어우러진 화려하고, 파격적이며, 전위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패션!“
”거기에 열개도 넘어보이는 피어싱이라니! 분명히 한개를 뚫을때마다 말로 다 이루지 못할 정도로 아팠을텐데, 그 고통을 이겨내면서까지 멋쟁이로써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 아닌가?! 이는 분명 학생의 귀감일세! 장하다고 칭찬을 받아도 모자라지 않겠나!“
앓는 소리를 하며, 네가 눈을 도로록 굴리다 다시 나를 바라보고.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전혀 굴하지 않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듯 말하다가.
”나도 자네처럼 멋진 패션으로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훌륭할지 상상하고는 했다네!“
”물론 학생으로써는 풍기문란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때로는 과감하게 진취적으로 일에 덤비는 태도 또한 필요한 법! 부부란 본디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듯, 혁신과 실패가 없으면 발전도 없지 않겠는가! 핫핫하!!“
”나도 내가 손수 만든 제복을 입고는 한다네!! 이몸의 유일하고도 자랑스러운 사복이지!”
그리고는, 곤란해보이는 네 표정에.
“음... 그것은 전우로써의 부탁인가? 아니면 선배로써의 명령인가?”
“어느 쪽이 되었든, 이렇게 비밀로 해달라고 친히 부탁하는데, 거절하는것은 사람된 자의 도리가 아니지! 알겠네, 내 장담컨데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대의 학교 밖 패션에 대해서는!!! 일급 기밀로 취급할 것을 약속하겠네!! 핫핫하!!”
다시금 척, 하고 경례를 해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언질은 그 무엇보다도 무거우니, 설령 이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겠네! 자, 그렇다면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면 되겠는가?“
마저, 원래 세나주 한똑똑 하자너. :0 훈련 좀 빼먹은들 어때! 하면 오르고 안하면 안오르는건 당연한 것!
>>656 그치만 예은이가 귀여운걸 어캐~~~~~~~~~~~ 저런 애를 안귀여워하는건 대충 무슨무슨 법에 의해서 잡혀가야 함;;;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구요~~~~~~~ 아, 물론 이예은씨 당신도 좀 잡혀가야겠슴다. 너무 귀여운 죄로. (?)
>>657 그런것 치곤 되게 능숙한거 같은데... :3c 뭐 어때! 귀엽고 멋쁘면 그만이지~~~~~~~~~~~ 점례는 어, 어... 하지만 오너인 나는 왕자계 여캐 좋와함 ㅠㅠㅠㅠㅠㅠㅠㅠ 오해 없길 바라며... 그냥 점례가 좀 이런쪽에 살짝 반감이 있어서 서투를 뿐... 천천히 좋와~~~~ 머, 이제 겨우 한번 돌린 거니깐! >:3 아직 류화도, 점례도 서로 숨기는 거나 말하지 못한거도 있는골! 그런건 또 나중에 풀다보면 더 가까워지고 그런겨~~~~~
>>704 그릉가...? 🤔 난 그냥 그른거 같은디? 오히려 재미가 늘어난다면 또 몰라, 괜히 세나가 어떤 반응 보일지 궁금해서 일부러 애매한 지문 내버리기~~~~~~~~~ 딱히 힘들거나 이상한건 없다~~~~ 근데 좀 괴롭히곤 싶어질ㄷ... 아냐, 그래도 선배인데... 언닌데... 점례주제에 그럴순 읎지!!!!!! 암튼 세나주도 늦지 않게 자라~~~~~~~~ 다들 늦지 않게 자라~~~~~~~
>>707 엣.... 그런가여??? 저어는 사실 지금 세나가 상황을 휙휙 바꿔대니까 조금 어렵겠구나 생각하구 있었거든여..... 애리니주도 나름대로 생각하구 계신거 있을텐데 말이조 헤헤 암튼 그렇지 않고 좋으시다구 하니까 다행이다요~~~~! >< 괴롭혀도 좋다요~~~~! (?? 애리니주 잘 자구 내일 또 봐여~~~~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은 어제와 달리 아늑하고 편안했다. 지금 이곳과 비슷한 현장을 앞에 두고 멍하니 서 있던 어제와는 달랐다. 완연히 풀린 봄밤인데도 한겨울 같은 오한을 느꼈던 어제가 거짓말 같았다. 단 한 사람의 존재 차이는 그만큼이나 컸다.
혹시나, 혹시나 내가 모르는 어딘가 아픈게 아닐까. 숨기지 못 한 동요를 보았는지 그가 말을 살짝 바꾸었다.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아프다고 할 거야. 그 말에 비로소 눈에서 걱정을 거두었다. 엄살이었구나 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글쎄. 같이 혼나면 혼났지, 덜 혼날 거 같진 않네."
소장님도 할 땐 하는 분 아니냐며, 손에 닿는 말랑한 뺨을 부드러이 감싸 만져주었다. 그래도 내가 아는 데 마레의 소장님이라면 가벼운 꾸중 정도로 넘어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가 드넓은 바다에서 자유로이 뛰어놀 수 있었던 건 그 분의 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분이 없었다면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처지에 놓여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오늘 밤은 같이 있을까, 하니 그가 응? 하고 반문했다. 굳은 가면 같은 내 얼굴과 다르게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뺨은 움직이고 입술을 휘고 눈매가 크고 좁혀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줄곧 그 얼굴을 응시했다. 누군가는 몸서리 치는 그의 금빛 눈동자는 심해를 비추는 단 하나의 광원이었다.
세월이 비껴간 듯 말간 얼굴이 웃으며, 잔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긴 대답을 내놓았다. 어릴 적 함께 했던 것들을 훌쩍 자라 버린 지금 다시 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각 안 할까 싶긴 한데, 그래. 같이 손 잡고 가자. 학교든, 네 집이든."
이제는 무력한 어린아이 만은 아니었으니, 다시 잡아도 놓칠 걱정은 줄어들 것만 같았다.
품 속에서 돌아선 그를 안고 한 걸음 앞으로 떼었다. 뒤에는 바닥에 늘어진 남자와 여자가 있었지만 이제 내 알 바 아니었다. 천천히 골목에서 나가려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고마운데 몸 주인이 그렇다는 건 무슨 화법이야. 희야는 희야지. 못 본 사이 내가 모르는 걸 배우기라도 했어?"
무사히 재회한 것은 기쁠 일이나, 줄곧 그에게서 느껴졌던 위화감을 더는 못 본 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넌지시 말만 해두고 깊게 캐묻지는 않을 생각이라 대답을 재촉하진 않았다. 대신 택시를 타러 가기 위한 걸음을 조금 채근했다. 그의 보폭에 맞춰서.
여느 때와 같이 연구소에 갔더니 가자마자 왠 체육복을 받았다. 곧장 그걸로 갈아입고 오라길래 아, 오늘은 옷에 뭔가 많이 튀는 실습을 할 예정인가 했다. 원래도 실습을 하고 나면 백의 위에 모조 혈액이 제법 튀곤 했으니까.
그러나 이럴 줄은 몰랐다.
"자! 속도 유지 하고! 앞으로 한 바퀴 더!"
그 연구소는 건물 뒤에 작은 운동장이 있었다. 능력의 특성상 외부 장소가 필요할 때 사용되는 장소였다. 물론 내 능력은 장소가 아닌 생물적 대상이 필요한 능력이니 쓸 일은 없었다.
없었어야 했다...
"헉... 헉..." "얌마! 허리 자꾸 처진다! 자세 똑바로 하고!"
영영 쓸 일 없을 줄 알았던 운동장을 지금 나는 체육복 차림으로 돌고 있었다.
대체 왜? 내가 왜?
이유는 명확했다. 능력이 성장함에 따라 장시간 혹은 광범위한 능력 전개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체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저지먼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체력은 문제 없을 줄 알았지만, 사실 동기에 비하면 매우 나약했다. 그리고 나는 능력에 의지해 몸을 함부로 쓰는 경향도 있었다. 아마도 그 부분이 가장 주된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케이! 거기까지! 휴식!" "허억! 후, 후, 후..." "고생했다. 저기 그늘 가서 이거 마시고 있어. 능력 전개하는 거 잊지 말고."
줄기차게 호루라기를 불어대던 선임 연구원, 유준이 주는 이온음료를 받고 미리 설치한 간이천막 아래로 향했다. 전신이 쿵쾅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천막 아래 대 자로 눕자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그러나 누워서도 쉴 수 없었다. 혹사 당한 전신의 근육들을 능력으로 회복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우연히 찾아 들어오기도, 일부러 찾아 들어오기도 애매한 장소. 우연히 들어왔다면 운이 없는 것이고, 일부러 찾아왔다면 뭔가 바라는 게 있거나 뒤가 구린 게 대부분인 이 장소는 의외로 평화롭다. 바깥에 비하면 무법지대가 맞지만, 안에도 나름 규칙이 있고... 결국 사람 사는 곳인 건 마찬가지기에 매일 시끄러운 건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장소에서도 유난히 조용한 곳, 다 낡은 학교의 별관, 사실 본관을 점거해도 괜찮았지만 본관이라고 하는 큰 건물이 여기저기 허물어져 있는 데다가 이미 점거한 녀석들도 있어서, 일일히 쫓아내기는 귀찮았던 탓에 적당한 크기라 관리하기도 좋고,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 이 곳을 거처로 삼은 것이다. 별관이라는 특징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소동에서 떨어져 있기도 하고.
잘만 쓰면 꽤 큰 저택처럼 쓸 수 있는 게 이런 건물이다, 수고가 좀 들긴 하겠지만. 아무튼, 별관 내의 널찍한 공간에 있는, 침대 겸용의 커다란 소파에 누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자면 잠이 솔솔 온다. 별관 전체 난방을 하기에는 전력 소모가 심하니까 작은 난로 정도만 쓰고 있긴 해도, 공간을 잘만 쓰면 충분히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니...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캄캄한 세상을 헤엄치고 있자니 뇌리에 스치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
평소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겠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벌떡 일어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한 게, 떠오른 이미지가 자신이 누워 있는 별관의 외부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기는 거지 하고 몸을 일으켜 조심스레 창문 쪽으로 다가가 보면, 아직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 무슨 일이 생기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랑은 글러브를 손에 끼기 시작했다. 벨크로가 찌익, 하고 떨어졌다가 달라붙는다. 그렇게 약간의 준비를 마치고 창 밖을 볼 때에, 뭔가 빠르게 곤두박질치는 게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부딪히는 소리와 작은 비명이 섞여 들려 재빠르게 별관의 문을 열어젖혔다.
"...뭐지?"
대체 뭐냐는 말 밖에 생각나질 않는다, 뭔가 날아오긴 한 거 같은데. 별관의 외벽과 부딪히진 않은 것 같고... 무거운 사물이라면 파열음이 났겠지만 그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비명소리? 이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상하긴 한데, 그럼 누가 얻어맞았나 싶어 서둘러 소리가 난 쪽을 살펴본다.
죄송합니다. 취향인 줄 알았어요.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던 이레는 어색하게 눈을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은 나쁘다. 하지만 때로는 말을 해서 상황이 더 어색해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지금은 모르는 척하는 게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렇게 이레는 자기합리화를 하였다.
"혼자 있고 싶으신데 방해했다면 죄송해요. 음... 그러면... 그러면 저는 돌아가는 게 낫겠죠."
벌써 두 번째인 사과를 입에 올리며 이레는 슬그머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듣자니 일부러 숨어있던 것 같은데, 괜히 제가 끼어들어 보이게 된 거면 미안하다. 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뒤를 돈다. 온통 벚꽃나무와 길로 이루어진 비슷한 풍경이 시야에 가득하다. 그 순간 이레는 깨닫는다. 이곳까지 올 때 한참 동안 생각에 빠진 채 발길이 가는 대로 향했다는 것을. 즉 왔던 방향이 어디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거다.
"...저, 저기. 그... 길을 모르겠어서... 혹시, 혹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면... 가르쳐 주시면..."
이레는 다시 이경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동시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간다. 혼자 있게 해주겠다고 말을 내뱉은지 겨우 5초 만에 뒤집으려니 민망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간 오늘도 놀라울 만큼 쓸모가 없다.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로 종잇장처럼 새하얀 빗자루가 바닥을 구른다. 헝클어진 흰 머리카락은 누에고치처럼 몸을 휘감았다. 그림자 드리운 곳, 랑이 단번에 이 황당한 상황의 전후사정과 정체불명의 흰 덩어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에는 어려울 만 한 조건이었으나 이윽고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흘리며 꿈틀거리는 걸 봤다면 적어도 이게 어떤 괴짜의 과학기술이 낳은 거대 고치가 아니라 산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고, 이윽고 그게 고개를 든다면 얼굴이 꽤 낯익다는 사실 또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끄응... 아아아아아, 머리, 머리..."
아파... 혹 날 거 같아...! 리라는 뇌를 뎅뎅 울리는 것 같은 충격에 한동안 푹 엎어져 있다가 머리를 감싸쥐고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심하게 다치진 않은 것 같지만 아무리 낮은 높이였더라도 추락은 추락, 자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도 아픈 게 사람인데 하물며 공중에 둥둥 뜬 빗자루에서 땅바닥으로 처박힌 후유증은 상당했다. 머리가 울린다. 엉망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넘기고, 바로 옆의 창틀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킨 후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려보면 딱딱한 바닥에 긁혀서 무릎이 양쪽 다 깨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머리나 코가 깨진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한편으로는 하필 무릎이 깨진 걸 보니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나서 리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주변의 기척을 조금 늦게 발견하고 만다. 탈출해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지갑들을 에코백에 다시 주워담던 중, 리라는 한발짝 늦게 시선을 느낀다. 동시에 스쳐가듯 귓가에 남았던 목소리. 뭐지? 하는.
"누구..."
설마 아까 소리 한 번 질렀다고 바로 걸렸나?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 머잖아 제대로 눈이 마주친다. 밤하늘 같은 눈동자와 머리카락. 짙은 피부. 큰 키. 익숙한 실루엣이다.
"랑 언니?"
아는 얼굴이 나타나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걱정이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빈 자리를 물음표가 채웠다. 리라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을 깜빡인다.
"언니가 왜 여기...? 응?"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 지금 본인 상태가 어떤지에 대한 자각이 생겨서 리라는 말꼬리를 흐린다. 품속의 지갑들, 엉망진창인 매무새... 이래서야 완전 빈집 털다 걸린 좀도둑 같잖아.
이이이이익! 이놈! 칭찬을 하자마자 존댓말을 그만두다니! 혜승은 야차가 되어서는 손날치기로 예은의 어깨를 연신 치기 시작한다. ㅡ아프진 않지만 상당히 박력있는 얼굴이라 아픈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ㅡ
"존댓말! 존댓말! 존댓말!"
무슨 아침 5분 단위로 설정된 알람마냥 앵앵거리며 경고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까지 극성맞아서야 나중에는 예은이 선배에게 반말하는 족족 찾아와 경고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실제로 예은이 부장이나 부부장님 허락 없이 반말을 하는 모습을 보이면 혜승이 뒤에서 서슬퍼런 눈빛으로 노려볼터였으니 아주 허황된 걱정은 아니다.
"반말을 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네 태도와 마음가짐은 훌륭하다. 반말을 하는 것만 빼면 아주 괜찮은 후배가 맞지. 반말을 하지만."
뭐냐, 이자식. 꼰대답게 존댓말에 무진장 집착한다. 이쯤되면 이쪽도 징하다. 다행인 점은 뒤가 구리지 않은지라 뒤에서 험담을 할 일은 없다는 것인데... 그것말고는 선배로 두기 싫다는 것이 전체적인 인상이다.
"...그렇지! 단백질 공급은 중요하지.
보통 올바른 선배라면 '그러지 말라.'라든가 '그렇게까진 해줄 필요가 없다.'라고 대답하는 게 맞다. 사실 혜승도 한 3초 고민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을 위해 이렇게 힘써준다는데 거절할 필요가 있나 싶다. 게다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기 더 달라는 학생한테 무급 봉사를 시킬정도로 여기 어른들이 양심이 없을 것 같지도 않다. ...아마도.
"어우 고맙다, 야. 그럼 부탁 좀 하마."
어른들의 속사정이 어떻든 간에 뚜렷하게 윤곽이 잡히는 것 하나, 혜승은 양심이 없다. 저 뻔뻔한 미소를 봐라. 오늘 아침 메뉴 뭐더라, 분명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게 틀림없다.
종이를 이용해 실체화 한 그림은 불에 약하다. 그럼 이 그림에 방화가 된다는 설정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설정이 이길까, 법칙이 이길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리라는 구슬 하나를 실체화시켜 촛불 속에 던져넣는다. 붉게 달아오르던 구슬은 머잖아 화륵, 불꽃 붙어 잿더미로 변한다.
"역시 안 되나~"
레벨이 오르면 방화 기능도 추가할 수 있나? 턱을 괴고 빨간 불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불... 불을 다루는 능력이 있지, 그러고보니. 리라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능력을 일정 시간 동안 잡아둘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전래동화에 나오는 세 가지 색깔 호리병처럼 깨뜨리면 일시적으로 어떤 능력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아이템. 줏대없이 흘러가는 상상들은 대체로 솟아올랐다가 제 형태 갖추지 못한 채 도로 흩어지기 마련이었지만 오늘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내뱉은 말에 당황하는 것은 당연 당신이었다. 하긴, 요즘같은 시대에 점례라는 이름이 쉽사리 연상이 될까? 마치 꽃분이와 돌쇠, 영희와 철수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할만한 시간대의 이름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애초에 류애린이라는 본명이 엄연히 존재하기에 점례라는 호칭은 자동적으로 별명을 말한다는걸 스스로 알면서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 단어를 먼저 입에 올리는 버릇이 있었다.
"ㅖ, 점례임다."
손에 쥐고 있는 선풍기는 가장 강한 풍량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열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자신을 보며 만화의 한 장면처럼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거나 곧 고찰을 하듯 진지해지던 당신이 이내 수긍한듯 허리에 손을 얹고 호쾌하게 말했을까? 제군이라니... 자신도 그렇다 생각했지만 당신 역시 보통 독특함이 아니었다.
"점례점례!!!!"
그리고 그녀는 야생동물을 사로잡아 볼 안에 가두다가 다시 꺼내 서로 싸움을 시키는 게임의 동물들처럼 이상하면서도 우렁찬 소리를 내었다. ...이쯤 되면 그냥 인두겁을 쓴 동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행동이었다.
"아, 그건 글킨 하네여! 그래도 인증샷은 못참지 말임다~"
당신이 최대한 좋은 구도를 잡기 위해 휴대폰을 이리저리 향하며 고민하는 사이 그녀 역시 옆에 붙어섰다. 사실 셀카봉이 있다면야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원래 이런 스타일의 여행에선 꽉차는 인물 사진이 더 재밌는 법이었다. 무언가 당신쪽에서 알수 없는 아우라가 생기기라도 한듯 살짝 붉어진 뺨과 미세하게 뻗치는 머리카락의 느낌이 들었을까, 그것의 자세한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서도...
"오, 각임까? 예씀다."
최적의 구도가 완성되자 연신 꼬물거리던 그녀도 돌연 멈춰섰고, 남은건 셔터 타이밍이었다. 보통 이럴 때 자주 쓰이는 문구가 있다지 않나, 서양의 치즈라던지, 당장 우리나라에도 있는 김치처럼 이를 드러내어 웃어보이는 입매를 만드는 것 말이다.
아지가 애린이로부터 백화점 백지수표를 받은 마니또에서 이어짐 > 아지가 고생한 저지먼트 여러분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주면 재미없으니까 보물찾기 형식으로 학교에 이것저것 숨겨놓았어요. 한가한 주말, 저지먼트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니 보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거대한 누에고치가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의, 흰 머리카락을 휘감은 존재가 고개를 들자 그 얼굴을 확인한 랑의 눈썹이 삐뚤어진다. 익숙한 얼굴이,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뒹굴고 있다는 건 경계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해서, 랑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디서 날아들었는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던데다가, 주변에 지켜보고 있는 눈도 없었기 때문에 랑은 점점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리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새하얀 빗자루와 바닥에 뒹굴던 여자아이, 이건 도대체 무슨 조합이지. 랑은 경게심을 풀지 않은 채로 리라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쳐다보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반응을 시작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건데."
왜 네가 여기에 있느냐는 질문은 오히려 이 쪽에서 하고 싶었다, 물론 자신이 이 장소에 있으리라는 생각도 쉽진 않겠지만 이 장소에 머무르는 것이 랑 자신에게는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리라의 질문이 나온 배경 같은 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어쨌든,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자신이 훔친 게 아니라는 말과 함께 당황한 게 선명한 리라의 모습을 한번 훑더니, 랑은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손을 턱에 가져다 댔다.
"그 꼴은 뭐야."
오해하지 말아달라니, 일단 말은 아끼지만. 그래도 보이는 건 보이는 거고, 평범한 일상과는 동떨어진 장소에서 마주친 탓에 자꾸 생각이 이리저리 튄다. 학교에서 보여주던 나름 우호적인 모습과는 달리 방어적으로 나오는 것이, 리라를 따로 추격해오는 사람이 없다면, 여기서 본인이 납득할 때까지 말을 들으려고 할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장소에서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예감을 받았다, 함부로 안에 들였다가 건물이 무너진다거나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훗, 다들 점례 너처럼 그렇게 이야기하곤 하지... 뒤늦게나마 걸려오는 태클에 의미불명의 소리를 하며 폰을 거둬들여서 방금 찍은 사진들을 체크한다. 연사로 찍었으니까, 적당히 찍힌 것 중 양품 몇 가지만 골라내면 될 것이다.
"...라고 할지, 그보다 너 은근 키 크구만..."
그렇게 찍힌 사진을 하나하나 돌려보는데, 한 가지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옆에 있는 점례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크다, 여러모로. 지금까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설마 키까지 이렇게 클 줄이야. 고작 얼마 차이라곤 하지만, 내 쪽의 머리끝단이 더 아래에 있는 것이 굉장히... 큭...! 뭔가 진 기분이다. 평소에 자주 어울리던 정하같은 애들을 생각하면 더 그런 기분이다. 항상 내쪽이 우위인 입장이었는데!
"응, 좋아. 사진은 보내뒀다! 폰을 열어 이 나의 작품을 원하는 만큼 감상해보도록~ 후후."
아무튼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거. 사진 자체는 굉장히 마음에 들게 나왔다. 풍경도 현장감 있고, 우리 두 사람도 못지 않게 잘 나왔다. 나는 그것을 점례에게 전송한 뒤에 폰을 집어넣으면서 그렇게 말해준다. 나같은 경우, 같은 저지먼트 동료들의 연락처는 모두 저장해두었기 때문에 전송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의 여흥은 종료인가. 하늘은 아직 푸르고, 햇볕은 살가웠다. 멀리서는 파도가 조용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여로주 웹박 확인했어요. 개연성만 충분하다면 당위성은 충분할 것 같네요. 일단 개인이벤트는 여러분들의 캐릭터 서사를 위해서 혹시 단체 진행성 이벤트가 필요하다면 제가 검토하고 여러분들이 직접 진행해서 할 수 있게 해주는거지, 이 이벤트 해요! 하는 아이디어 내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것들은 그냥 캡틴이 있을때 이런거 하고 싶어요! 하면 제가 생각해보고 열어줄수도 있는거고요. 계수 10퍼 얻겠다고 막 억지로 짜내진 마세요. 여러분들 8ㅁ8
하긴 그렇겠네. 랑의 질문에 리라는 별다른 의문 없이 납득한다. 스트레인지에 갑자기 나타난 저지먼트 부원. 심지어 손에는 출처불명의 지갑 여러 개가 담긴 가방. 누가 봐도 수상하다. 오해하지 말라곤 했지만 반응을 보니 빠른 해명이 없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져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짐작할 수 있다. 리라는 숨을 고르고 손 안의 가방에서 지갑 몇 개를 꺼내들어 보였다.
"도난품!"
지갑들은 각각 디자인과 퀄리티가 상이하고 두께와 크기도 다르다. 누가 봐도 여러 군데에서 마구잡이로 모아온 것 같은 물건들. 리라는 그대로 말을 잇는다.
"순찰 돌다가 소매치기를 맞닥뜨려서요. 잡으려고 쫓다가 제가 쫓던 소매치기가 속한 것 같은 그룹을 봤어요. 모여서 훔친 물건들을 합치고 있길래 중간에 낚아채 왔고요."
이거 보이시죠. 하면서 한손으로는 에코백을, 다른 손으로는 바닥을 구르는 빗자루를 들어올린 리라는 그것들을 랑이 잘 볼 수 있도록 앞세웠다. 앉을 수 있도록 안장이 얹혀진 빗자루는 동화책이나 영화 따위에 흔히 나오는 마녀나 마법사의 운송수단처럼 보였을 것이다.
"제가 그린 건데, 이거 타면 날아다닐 수 있거든요. 아무래도 그냥 뛰는 것보다는 이 편이 낫고... 그런데 여기 길이... 좀... 복잡하더라고요. 와중에 제가 이거 압수한 사람들이 자꾸 뒤따라 와서 길 찾기에 전념할 정신이 없었어요."
문득 다리가 욱신거려서 빗자루를 지지대 삼아 서 있기 위해 무게중심을 옮기면, 뿌득! 하고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가뜩이나 좀 무리하게 사용했는데 방금 전의 추락으로 내구도가 완전히 닳아버린 모양이다. 살짝 휘청한 리라가 두 동강이 난 빗자루 대를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새하얀 빗자루는 곧장 펑! 소리를 내면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아— 하는 허탈한 소리가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나왔다.
"......아무튼, 그렇게 피해다니다가 가까스로 따돌리고 이쪽으로 와서 숨은 거예요. 바로 나가면 또 쫓길까 봐 좀 더 숨어있으려고 했는데..."
와. 이게 무슨 일이람? 뜻대로 안 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마냥 철판 깔고 뻔뻔하게 넘어가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그래. 부끄럽다. 엄청! 이게 대체 무슨 추태야! 이게! 리라의 귀끝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차, 착지하다가 미끄러져서......"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줄어든다. 리라는 랑의 눈을 살짝 바라보았다가 허리를 숙여 마지막 남은 지갑을 에코백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됐네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인 말은 거의 들릴락 말락 하는 수준이다. 거의 즉각적으로 따라붙은 발소리에 충분히 묻힐 수 있을 만큼. 리라는 서서히 숙여지던 고개를 퍼뜩 든다. 아직은 거리가 있었지만 분명히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여섯 쌍의 신발이 번갈아가면서 바닥에 부딪혀 거슬리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리라의 설명을 간단히 하자면, 소매치기가 훔친 물건을 낚아채 도망치다가 여기에 추락했다는 것 같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긴 애매하지만, 지금까지 봤던 모습을 생각하면 딱히 다른 사람의 물건을 노리고 훔칠 만한 느낌은 아니고... 일단 도난품이라는 건 알겠다. 지갑들이 생긴 게 통일성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혼자서 저렇게 많은 지갑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냐."
리라의 말을 듣고 꺼낸 감상은 조금 건조했지만, 일단 상황은 이해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좀 더 봐야겠지만. 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발소리가 들려오자, 랑은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아직 여기를 발견한 것 같진 않은데... 누군진 몰라도 추적하는 건 꽤 하는 모양이다. 다시 리라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포스트잇이 우수수 떨어지는 걸 보곤 손을 뻗어 리라의 손목을 덥썩 붙잡았다.
"일단 들어가자,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이라면 그렇게 해."
이미 쏟아진 종이들을 전부 담거나 치울 시간은 없다. 흔적을 보고 이 주변을 뒤질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를 그대로 발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고... 뭣보다 리라의 상태가 좋지는 않아 보였다. 무릎은 다 깨지고, 아까 말을 들어보니 머리도 부딪힌 모양이니. 충돌을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다. 랑은 리라의 손목을 붙잡은 채로 몸을 돌려 별관 건물의 문을 열어젖혔다, 어떡할까... 같이 들어가? 아니면 밖에 있을까?
"일단 상황을 좀 볼까.""
아무도 없다면 그냥 돌아갈지도 모르지, 확률이 희박하다는 건 안다. 잃어버린(엄밀히 따지자면 훔쳤다가 빼앗긴) 물건들이 중요하다면 어떻게든 주변을 뒤지겠지, 그럼 그 때 대응해도 괜찮을 것 같다. 만약 리라가 잘 따라온다면, 사람이 살 수 있게 가구가 들어선 별관 내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짝 지직거리지만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와, 널찍한 소파, 그리고 난로. TV는 없지만 꽤 아늑하다, 무사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면 말이지만.
자신의 말 한마디가 거진 열마디에 가깝게 되돌아오자 혜성은 어질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눈을 도로록 굴렸다. 설득을 하기 전에 저 텐션에 기가 빨려서 나가떨어질 기분이다. 그러니까 이건 결코 자신 앞에 있는 후베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텐션이 쉽게 높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거한 것 뿐이다.
"으응, 칭찬 고마워."
열마디쯤 되는 후배의 말에 혜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다가 겨우 대답을 한마디 내놓을 수 있었다. 텐션도 텐션이고, 저런 독특한 말투를 계속 유지하는 게 순수하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저런 텐션에, 저런 말투로 쉬지도 않고 하는 걸 보고 있자니 혜성은 절로 기가 쭉 빨려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게 풍기문란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건 처음 듣는데."
진짜로 풍기문란이라고? 우리 학교 교칙이 그렇게 팍팍했나? 길게 이어지는 말의 파도를 한번도 제지하거나 막아서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던 혜성의 동그랗게 떴던 눈이 가늘어지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원래라면 귀에 낀 인이어를 빼서 경청했을테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이 후배가 하는 말의 폭탄에 휩쓸려서 나가떨어지는 건 기정사실이었기 때문에 차마 빼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던 혜성은 이내 후배를 아주 바라본다.
"전우는 모르겠지만 명령은 절대 아니야. 단순히 부탁이었어. 그래도 비밀로 해준다고 하니까 고맙.. 아니,아니. 그렇게 심각하게 약속할 필요는 없으니까!"
무슨 부탁을 들어주는데 일급비밀이라는 말이 나오는거니? 너 진짜 뭐니?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줘야하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생각들에 잠식되어 어지러운 기분을 느낄 때쯤, 경례를 해보이는 후배의 모습을 보자마자 혜성은 예의 식겁한 표정으로 경례하고 있는 후배의 손은 붙잡아서 내리려고 했다. 애를 진짜 어쩌면 좋지. 혜성은 이렇게 마이페이스에 불도저같은 타입의 사람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나한테는 경례할 필요없어. 나는 네 상사도 아니고, 같은 부원일 뿐이야.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부탁인데..."
그러냐, 하는 목소리는 조금 건조해서 그의 말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졌는지 아닌지 파악하기 어렵다. 리라의 눈은 불안하게 헤매다가 슬쩍 랑의 눈을 마주한다. 아까부터 느꼈지만 뭔가 다르다. 평소보다 미묘하게 더 차가운 느낌. 내지는 경계하는 느낌. 지금 자신의 모습이 딱 그렇게 보일 법 하긴 하지만 이런 공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자니 어쩔 수 없이 조금 움츠러들고 마는 거다. 그러던 도중 손목이 붙잡힌다.
"어? 들어가?"
어디를? 여기? 이 건물 안? 리라의 눈이 다시금 건물을 향한다. 그러고보니 떨어질 때 창문 너머에서 사람으로 추정되는 그림자를 봤었지. 그리고 랑은... 생각해보면 먼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듣지 못했다. 왜 여기 있었던 걸까. 어디서 나타난 거지? 리라의 눈이 다시 랑에게 꽂힌 건 별관 건물의 문 앞까지 간 다음이다. 발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고 리라는 숨을 죽인 채 뒤를 살핀다. 이윽고 추격자들의 기척이 이동을 멈춘다. 바로 직전에 랑과 리라가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이것 봐라. 여기 있었던 것 같은데.'
종이를 집어올리는 소리, 뒤이어 짓밟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몇 보 떨어지지 않은 거리지만 다행히 이쪽은 아직 랑과 리라를 발견하지 못한 듯싶다. 그 사이 리라는 열린 문 너머로 언뜻 보이는 별관 내부를 짧게나마 스캔할 기회를 얻었다. 누가 봐도 생활감 있는 공간. 약간 지직거리는 라디오의 음악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발소리가 이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리라는 랑을 마주 붙잡고 안쪽으로 냉큼 발을 들여버린다.
"실례할게요."
제대로 허락 받지도 않고 입장하는 주제에 착실하게 인사까지 남기고서 문을 닫았다. 숨을 죽이고 바깥의 상황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여러 명의 발소리가 산발적으로 퍼진다. 절반은 뒤편으로, 절반은 문 앞을 위주로 주변을 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 소리라도 새어나갈까 조마조마하며 동태를 살피고 있기를 삼 분. 그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주변을 돌던 사나운 목소리와 인기척이 조금씩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내부까지 뒤질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리라가 이 안에 들어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잔뜩 긴장한 채 바깥 상황에 가만히 귀 기울이던 리라는 그제서야 다시 랑을 똑바로 바라본다.
"....가는 것 같아요. 아, 다행이다. 놀라라. 언니 덕분에 살았네요. 고마워요, 랑 언니."
궁금한 건 산더미지만 일단 감사 인사가 먼저다. 리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랑의 손등을 가볍게 감싸쥐었다. 글러브로 가려진 손의 감촉은 익숙하지 않지만 낯설거나 나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음, 그리고 혹시 제가 언니 쉬는 데 방해한 걸까요?"
리라는 난로를 중심으로 퍼지는 미미한 온기를 느낀다. 다시 눈에 담은 공간은 밖에서 막연히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아늑한 모습이었다.
아니 그런걸 동월이 막 지어줘도 되는건가!? 동월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름을 아무한테나 막 지어달라고 한다니! 아니, 그 전에 이름이 없다는 것에 놀라야 하는건가? 동월은 따라가기 힘든 상황에 헤롱헤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일단 지어달라 했으니 지어주는게 맞나? 상대의 성격 같은건 하나도 모르니, 외모만 보고 정해주는게 맞는것 같긴 한데...
" ........자연 어때? "
좀 구린 이름인가...? 발음만 들으면 구리긴 한데, 뜻은 나름 생각좀 해봤다. 자색 연못. 그냥, 이 아이를 보고 생각난 이름이었다.
본의가 아니더라도 피해를 입힌 것은 사실이었다. 소년은 고의라해도 그녀가 화를 내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몰랐고, 지금도 유쾌하진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그렇게 대응했다.
"뭐어.. 그래도 분위기 띄우는 거에는 쓸모가 있으니까."
아직 진실게임도 남아있는 판이니 좀 더 '써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선배의 위엄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입는 것을 선택했을 때도 반응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 하얀 소년은 메이드복이 안 어울리는 쪽은 아니었다. 희고 가느다란 몸체는 썩 나쁘지 않게 어울렸으나.. 소년은 이 차림새 가지고 남들과 함께 놀리던 철현을 상기해냈다. ..그냥 벗을까..
"아냐아냐~ 특별히 방해는 아니었어~"
사과에 손사레를 치면서도, 돌아가겠다는 그녀를 막지 않는 것은 충전이 조금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순박한 소녀 앞에서 표정이 허물어지면 상처를 줄 것도 같으니 생글생글, 웃음짓기 게이지를 좀 더 채운 후에 말을 걸 생각이었다. 하얀 소년의 본래는 무표정이다. 방금까지 서글서글하던 사람이 정색하면 화났나를 고민하겠지. 심약한 아이에게는 충격이 좀 될 것이다. 허나 그 계획은 곤란해하는 소녀에 의해 망가졌다. "나는 좀 더 있다가 갈게~"하는 인삿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레는 느릿하게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아.. 하고 잠시 침음성을 내었다.
"...그냥 같이 가자. 다음 게임까지 얼마 안 남았던 것 같고."
방긋! 소년은 자연스럽게 웃음짓는 것을 성공했다. 자신이 놀래켰고, 곤란해보이는 아이를 가만히 두는 것은 아무래도, 달갑지 않았다. 이참에 한계치를 높이는 것도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일 것이다.
바로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모자랐지만, 별관 입구까지 간 것과 추적자들이 쫓아온 타이밍이 엇갈린 덕에 마주치는건 면했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여기서 있을 수는 없는 법, 추적자들도 주변을 좀 더 살펴본 생각인 모양이고... 여차하면 때려눕힐까 생각하던 차에, 리라가 얼른 별관 안으로 들어선 덕에 랑 역시 어쩌다 보니 딸려 들어갔다.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별관에 들어선 리라가 문을 닫은 뒤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까지 눈에 담곤, 랑 역시 바깥의 상황을 살핀다. 주변을 도는 듯한 발걸음 소리와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이 안까지 살필 생각은 못 한 모양이다. 그제야 긴장이 좀 풀린 듯 자신을 바라보는 리라를 마주본 랑은, 고맙다는 말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어."
이건 방해했다는 대답일까, 아니면 고맙다는 말에 대한 반응일까. 이 말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손등을 감싸쥔 리라의 손을 내려다보던 랑은 손이 떨어지면 글러브를 벗으며 소파 쪽을 가리켰다.
"앉아, 무릎 다 깨졌다."
급한 상황이라 따끔거리는 걸 느끼지 못했던 거겠지 싶어, 소파 쪽에 앉으라며 이야기한 랑은 소파 맞은편에 있는 캐비넷으로 걸어가 문을 잡아당겼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캐비넷의 문이 열리자, 상당히 허전한 가운데 구급상자가 떡하니 놓여 있다. 구급상자를 덜그럭거리며 들고 소파까지 돌아온 랑은, 리라가 소파에 앉을 때까지 빤히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앉지 않는다면... 억지로 앉혀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