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잘 왔어 마츠시타양 우리 모두 수사에 진척이 없어서 곤란해 했던 차인데 이렇게 도와주는 헌터가 있어서 강력반 모두가 한시름 놓았거든."
형사가 운전대를 돌리며 쾌활하게 중얼거린다. 옆 자리의 앉은 동료는 연신 끄덕거리면서 동의를 표시하면서도 계속 눈치 보듯 뒷자석의 동승자를 힐끔거린다. 네비게이션의 불빛으로 밝은 앞좌석과 다르게 빛이 닿지 않아 밤의 어둠이 그대로 녹아든 뒷자석에 앉은 검은 형체가 두 사람과의 화기애애한 대화에 참여하기 싫다는 의사를 수동적으로 표현하듯 살짝 몸을 움츠리고 침묵을 지킨다 .
"...하하하."
'아 젠장, 미야모토 진짜 이게 최선이냐. 어디서 굴러 들어온지도 모를 신원미상의 여자애에게 이 작전의 대부분을 의지하는 게.'
그렇지 않아도 묘하게 꺼림직한데다 태도마저 비협조적인 동승자가 제대로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한 다케우치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열심히 어설픈 웃음을 흘리는 동료에게 눈빛을 보낸다.
'어쩌겠어, 지금 대부분의 가디언들은 북쪽에 열린 게이트를 토벌하러 갔고 그나마 연이 닿는 헌터들은 몸 값 불리기에 바쁜데. 지금 우리는 고양이 발이라도 빌려야 할 처지고, 뭣보다 상부의 결정인데 우리가 뭐 어쩔건데?'
우린 그냥 시키는 대로 하자고. 결과는 입만 닦고 모르는 척 하면 끝이야 다케우치. 연신 쾌활한 목소리로 텐션을 올리는 미야모토가 그늘진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며 심드렁하게 답한다.
젠장. 말없이 승복한 다케우치는 입을 다물고 앞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푸르스름한 밤하늘 아래 간간히 차들이 오가는 평온한 도로가 이면의 불안함을 감춘 것만 같아 조바심을 억누르고 얼굴을 찡그린다. 뒷자석의 여자, 어쩌면 소녀가 말없이 무릎을 붙인 자세로 고개를 반쯤 수그리고 있는 모습이 창에 비친다. 긴 검은 머리칼이 얼굴을 가려 그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표정 이전에 다케우치는 그녀의 생김새도 정확히 몰랐다.
갑자기 끊은지 몇 개월된 담배가 땡겼다.
"몇 살."
있지도 않은 담배갑을 찾으며 헛발질 하지 않고 보이지 않은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묵묵부답인 상대에게 나이를 물어본 이유는 분명 충동이였다. 저가 입으로 내뱉고도 놀라 눈을 크게 뜬 다케우치는 이를 얼버무리며 수습하는 대신 이미 엎질러진 물, 눈빛으로 말리는 미야모토를 무시하고서 여태 쌓인 의문이나 해결하자 싶어 다시 물어본다.
"마츠시타양은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희미한 반사광에 언뜻 보이는 인영의 윤곽이 살짝 경직된다.
"...열여덟."
작지만 차분한 목소리가 담담하게 나이를 밝힌다. 다케우치는 왜인지 그 목소리의 끝이 조금 떨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맙소사, 내 동생과 동갑이잖아."
더 말하기 싫다는 듯 소녀는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봤지만 미야모토는 다케우치를 말리던건 잊었는지 어김없이 호들갑을 떤다. 와중에 완벽하게 핸들을 꺾으며 커브를 도는 것 까지 언제나의 미야모토였다.
"마츠시타양 진짜 괜찮겠어? 일부러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우리 둘 모두 많이 걱정하고 있거든?"
하, 젠장. 다케우치는 미야모토와 다니며 생긴 버릇대로 이마를 한 손으로 짚었다.
"나보고 말하지 말자고 할 때는 언제고."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어리잖아. 의념각성자가 상식을 뛰어넘는단 소리를 들었지만 우리 상대도 의념범죄자라고. 열여덟이면 대부분은 한창 학교에서 바보짓 할때야."
"그냥 동생이 떠올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것도 맞긴 해. 하지만 임무가 과중한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너도 찔렸으니 잘 된거 아니야. 상부가 여자애를 설득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고. 본인이 안하겠다고 하면 끝인거지."
"미야모토."
"왜? 어차피 우리에게 결정권은 없어. 그냥 섭외한 헌터가 중간에 거부의사를 밝혔다며 보고만 하고 골치 아픈 임무에서 벗어나자고. 정 뭣하면 다른 지부로 옮기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걸 대안이라고."
대책없이 빠르게 나오는 대로 쏟아붓는 미야모토의 모습에 다케우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 눈을 돌려 뒷자석을 힐끗 돌아본다. 기분이 상한건지 꿈쩍도 하지 않는 인영에 한숨이 절로 푹푹 쏟아진다. 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푸르고 노란 빛에 창백한 옆 얼굴의 선이 흐리게 보인다.
"그러니 마츠시타양 너무 부담스러우면 지금이라도 말하면..."
"레벨 28."
"이 사건에 투입되지 않아도...응?"
다가갈 수 없는 거울 너머의 인물들을 대하는 것처럼 미동도 않던 소녀가 대뜸 두 어절을 내뱉으며 끊임없이 이어지던 일방적인 권유를 끊는다. 얇다랗지만 튼튼한 철조망의 철사가 전조 없이 뚝 끊어지듯 두 사람과 그녀 사이에 존재하던 단단한 무형의 무언가에 틈이 났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차를 지나쳐 매정하게 스쳐가는 헤드라이터와 전조등의 불길이 창백하게 흰 얼굴에 깊게 파인 그림자를 드리우다 볼가에 희게 반사된다. 희다 못해 푸르스름해보이는 얼굴 반쪽이 콧대를 경계로 어둠에 완전히 파묻혀 어슴푸레 윤곽만 보이는 반대쪽 얼굴과 대조된다.
"애초에 이 일은 제가 맡겠다고 주장했으니까요."
말을 쏟아붙던 표정 그대로 얼어 입을 약간 벌리고서 벙쪄있는 미야모토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다케우치 자신의 얼굴도 미야모토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아챘다.
'레벨 28이라고?'
'내 귀도 동시에 잘못된 게 아니라면.'
미야모토가 가까스로 입을 움직이면서 입모양만으로 황당무계한 것을 봤다는 사람같이 동그래진 눈으로 수근거린다.
'어지간한 중소길드 간부 수준아니야? 그 정도면?'
'아마도.'
세상에 맙소사. 끄응 신음을 토해내고 미야모토는 다시 유려한 솜씨로 커브를 돌았다. 이 일을 하다보면 난 가끔 내가 무협지속에서 사는게 아닐까 의심 될 때가 있어.
실제로 무협지에서 나온 것 같은 영웅과 초인이 군림하는 세상이기에 1+1은 2이다를 설명하는 듯 정말 멍청한 말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다케우치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또한 그 순간 미야모토와 같은 감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그녀의 악우는 마츠시타 린을 아가씨라고 불렀다. 자신은 그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준 바가 없음에도 그는 기억나지 않을 시점부터 그녀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 명칭에 제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짐작이나 할까. 아니 분명 그는 모를 것이다.
" 차라리 린이라고 이름을 불러."
또 다시 초 천재 오죠사마라 부르며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비꼬기 시작한 소년에게 나는 짜증이 나서 쏘아붙였다. 그런 진심 하나 없는 칭찬 따위 들어봤자 기분 좋지 않아. 사무카와 와타루는 절대로 소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오직 마츠시타 아니면 아가씨, 둘 중 하나로 불렀다. 그리고 후자는 그날 파칭코에서 잭팟이 터졌다는 등의 아주 기분이 좋거나, 혹은 마츠시타 린에게 짜증 났을 때 부르는 호칭으로 길드원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통하는 신호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린이 평소와 다르게 목검까지 날리지 않음은 낄낄거리며 구경할 길드원들이 옆에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만 있는 방 안, 정확히는 세 명일까. 자고 있는 사무카와 하루카, 와타루의 동생이 침대서 뒤척이는 것을 바라보다가 의자에 걸터앉아 시건방지게 누운 자세로 삐딱하게 입을 내밀고서 툴툴거리는 그 오빠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애초에 하루카만 재우려고 했어 사무카와가 이 방에 들어올 이유는 없다고. 그렇게 비꼬고 싶으면 나가서 좋아하는 술이나 마시지 그래?" "너도 나 이름으로 부르지 않잖아."
하루카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툭, 시니컬하게 말을 내뱉은 와타루의 표정을 보려다가 금방 어이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회전의자에 앉아서 빙글빙글 도는 노란색 머리통이 정신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