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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 젖은 책들은 수초가 된다

2023-10-23 16:00:18 - 2023-11-22 14:04:19

0 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 젖은 책들은 수초가 된다 (QCOo270MDw)

2023-10-23 (모두 수고..) 16:00:18

해면에 고기비늘과 같은
작은 물결이 있으나
거품은 생기지 않음.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속의 윤선도가
낚시질하던 곳을
제1의 바다라 부른다

─김성식, 《바다의 변화》중

53 묵호 - 소열 (zeJdDT.j3c)

2023-10-29 (내일 월요일) 21:39:25

그 비어버린 회색 눈동자는 이쪽을 가만히 응시한다. 떨떠름하게 올라갔던 눈썹도 느릿하게 다시 균형을 찾는다. 맞수를 보는 눈은 아니다.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를 보는 눈은 더욱 아니고, 깔보는 눈은 더더욱 아니다. 마치 그 자리에 있는 하나의 현상을 바라볼 뿐인 듯한, 무심한 눈길. 어디까지나 지금 눈 앞의 소열 역시, 자신을 스쳐갈 수많은 순간들 중 하나였기에.

"들개라고 합시다."

그러나 헛소리도 2절쯤 되니까, 이런 걸어다니는 콘크리트 동상 같은 인간에게도 좀 봐줄만한 반응이 나온다. 주인에 비유할 만한 무언가가 삶에 몇 번 있었던 것이야 사실이지만, 그래봐야 새벽 개가 올려다보는 개밥바라기별 같은 부질없는 것들뿐이었다. 지치고, 길 잃은 들개. 선택지라곤 눈앞에 있는 길이 어딘지도 모르고 정처없이 걷는 것뿐. 차라리 무심하고도 자상하게 안락사당할 수야 있는 유기견만도 못한 처지다.

"그러면 그쪽은 길고양이고?"

하며, 키큰 사람은 선뜻 소열의 머리 위로 우산을 기울여준다. 비에 젖은 눅눅한 콘크리트 성채의 혼탁한 비린내 사이로 옅은 콜롱 냄새가 살며시 코끝에 와닿는다. 딱히 어떤 장소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애매모호한 향기는, 마치 이 짐승이 어디 한 군데 정주하지 못하고 많은 곳을 떠돌았음을... 정확히는, 아직도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소열이 하는 양을 가만히 보더니, 별 생각 없이 손바닥을 위로 해서 소열에게 내밀어보인다. 자극이나 도발이 목적이었다면 그렇게 훌륭한 성과는 아니다. 생각보다 이런 데에 비위가 좋거나, 아니면 자존감이 닳을 대로 닳아서 무뎌져 있거나 한 모양이다.

54 묵호주 (zeJdDT.j3c)

2023-10-29 (내일 월요일) 21:50:11

여기서 뭔가 더 길게 써보려다가 못쓴채로 어제 잠들었다
어제 올렸어야 하는건데 말이지

늦어서 미안합니다! (물구나무 그랜절)

아 홍삼원액은 맛없는데 묵호 미간 확실히 꼬개지겠군

55 소열주 (YisJOEx..Q)

2023-10-31 (FIRE!) 11:21:50

출근 후 답레를 쓰고있는데
소열이 이름을 바로 밝힐지 소열이 가명을 밝힐지 고민...으으음.............
이틀 정도야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괜찮아 ):p헤

56 묵호주 (aBnb/nbzr.)

2023-10-31 (FIRE!) 15:26:38

생각해보면 소열이는 빌런명이나 가명이 이미 본명보다 익숙하고 더 많이 쓰이는 지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호도 묵호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빈디케이터라고 훨씬 많이 불리거든

57 소열 - 묵호 (N5lA/4f.CY)

2023-10-31 (FIRE!) 21:16:59

“반가워. 들개 씨.”

유기견이랬더니 들개란다. 소열은 얼마간 눈을 나른하게 깜박이다 방긋 접어버렸다. 마침내 초면인 상대에게 나긋한 말투와 목소리로 존칭을 사용하는가 싶더니 속으론 '결국엔 덩치 큰 멍멍이라는 거잖아!'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더랬다. 정말 뭐가 저리도 재미가 없을까, 눈앞에 내가 있는데. 당장 어딘가에서 네 발로 기어다니는 'Puppy'라도 불러와주면 좋아해줄까 싶다. 아니면 함께 빗길을 달리며 좀비물이라도 찍는 건? 다시금 굳어버린 묵호의 표정을 바라보며 열은 웃음을 띄지 않았다. 그리곤 어째선지 들개 씨에게 천연덕스레 인사하는 방금 그 문장이, 입에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고양이 좋아?”

그럼 그런 걸로 하자. 고양이네, 라는 소리를 어느때나 듣곤 하지만 소열은 그다지 동의하는 바 없다. 그 작고 연약한 털뭉치와 저가 어디가 같다는 건지. 멍청하게 발톱을 세우는 짐승은 성가시다. 차라리 영리한 인간의 쪽이 편리하지. 소열 본인은 짐승 축에 속하지 않는다 자만한다. 그야, 주인도 짐승이면 안되잖아? 본인만 모르는 듯한 비유에 소열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무심히 묻는다. 애당초 그의 건조한 사고에서 어째서 고양이가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멍멍이 취급에 대한 반발심인가. 어지간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펼치며 올라오는 그의 손동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허리 숙여.”

너는 키가 너무 크잖아. 한 우산 안에서, 둘의 거리는 한없이 가까웠고 고분고분한 묵호의 태도에 소열 역시 나직한 명령조로 중얼거렸다. 여전히 우산 위엔 빗물의 소음이 어우른다. 소열은 아직 꺼지지 않고 몽땅해진 연초를 입에 물고, 고개를 들더니 있는 힘껏 까치발을 들어 묵호가 물고 있는 연초의 끝에 맞댈 수 있도록 애써보는 거다. 까치발을 오래 버틸 자신은 없으니 그녀는 주먹을 쥐었던 손을 펼쳐 그 안엔 아무것도 없었던 빈 손을, 내민 묵호의 손 위에 얹으려하며 중심을 잡기 위해 밑으로 누르는 힘을 싣으려 한다. 그가 그녀의 말대로 얼떨결에 허리든 고개든 숙여 준다면, 건조한 그의 것과 불타고 있는 그녀의 것이 맞닿아 한 숨 빨아들이면 당신 역시 타오르게 되겠지.
처음부터 순순히 불을 내 줄 생각 따윈 없었는지 그런 번거로운 일련의 행동으로 당신을 시험하는 거다. 그녀의 살짝 벌어진 건조한 입술엔 짧은 담배가 물려있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가늘게 뜨인 눈은 오로지 무채색의 죽은 것에 꽂혀있다. 싫으면 말던가. 그런 표정의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씩 오른다.

58 소열주 (N5lA/4f.CY)

2023-10-31 (FIRE!) 21:20:55

첫만남부터 담배키스를 시도하는 >>소열주<<!!!!
거절해도 완전 괜찮습니다
사실 좀 무리수인가 싶었지만 모르겠고(???
평범하게 불만 붙혀주고 끝내기엔 못내 아쉬운 마음에 욕심을 부려봤어 어떤 반응을 해도 이미 마음에 준비를 해뒀으니 편하게 이어줘 ㅋㅋㅋㅋㅋㅋㅋ

단순히 소열이 입장에선 묵호의 키가 너무 커서 윗사람 대하듯 양 손으로 팔 높이 뻗어 불을 붙혀주기 싫었을 뿐.... 그냥 라이터만 주기엔 시시해서 관심을 유도하고 싶었을 뿐...

59 묵호 - 소열 (4qVQRicgFg)

2023-11-03 (불탄다..!) 06:31:06

"글쎄."

일단 그게 가장 먼저 생각나긴 했다. 어딘가 정처없이 떠도는 듯한 것은 자신과 비슷한데,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떠돎이 당연하고 안락하다는 듯 자유로이, 진짜배기로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것이, 의뭉스레 제멋대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그 거리를 표변하여 거리감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습이 묵호에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만든 단어가 일단은 고양이였다. 실제 고양이가 어떤 줄은 알지 못한다. 그야 그가 조금이라도 다가갈라 치면 고양이고 강아지고 햄스터고 새고 줄행랑치기 바빴다. 조금은 어울려주는 것 같더라도, 금새 자신에게 질려서 더 이상 어떤 행복도 자신과 나눠주지 않고 자신을 참 쉽사리도 떠나갔다. 좋은 것들은 항상 그를 쉬이 떠나갔다. 그래서 그는 고양이가 어떤 줄은 알지 못했다. 아니 그 무엇도 그가 똑바로 아는 것은 없었다. 검둥개, 그는 죽음을 몰고 다니는 검둥개였으니까.

"......"

그 스스로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알아도 부정할 사실이었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목줄이 아니라 담요였다. 허리 숙여, 하고 내밀어져오는 불잉걸이 일견 그럭저럭 따뜻해보여서, 묵호는 별 딴죽이나 반항을 하지 않고, 소열이 건네는 명령에 순순히 그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그 순간 소열의 허리에 와닿는 것이 있다. 돌 같은 게 소열의 허리를 붙들고는- 아니, 붙든다기보다는, 받쳐준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창백한 돌 같은 것이, 그의 손아귀가 소열의 허리를 거머쥐고는 그녀가 발돋움에 힘을 덜 주어도 되게끔 허리를 받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담뱃대가 아래로 기울어, 몽땅해진 꽁초 끝에서 불을 넘겨받는다. 정직한 담배냄새가 매캐하게 피어나, 소열의 입끝에서 타오르는 연기와 섞여 다른 향이 된다. 그리고 소열의 허리에서 그 손아귀가 물러나더니, 소열의 옆구리를 지나 허리를 다시 피는 묵호의 입가까지 올라온다. 하관을 감싸면서 검지와 중지로 담뱃대를 감싸고, 넘겨받은 불잉걸이 한 차례 빛을 돋우고는 그제서야 유독하고 칙칙한 연기가 제2서울시의 물안개에 꿉꿉한 한 겹을 더한다.

"고맙습니다."

적어도 이 이름모를 들개의 인내심의 한계선은 소열을 위해 제법 넉넉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그는 쉽사리 도로 옆으로 한없이 펼쳐진 수평선으로 시선이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소열을 담담히 마주보고 그녀의 머리 위로 우산을 기울여준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담배를 다 피면, 어디로든 갈 데가 있을 텐데, 우산을 씌워주겠다는 약속은 약속이라.

60 묵호 - 소열 (4qVQRicgFg)

2023-11-03 (불탄다..!) 06:40:03

# 아 잠깐만 소열이 레스에서 되게 감명깊게 읽은 부분이었는데 답레 쓰다가 이 부분이 날아갔다 이 단락 고칠게

그 스스로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알아도 부정할 사실이었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목줄이 아니라 담요였다. 그리고 뜻밖에 내밀어져오는 불잉걸이 일견 그럭저럭 따뜻해보인다. 허리 숙여, 하는 뜻밖의 말에 묵호는 이 손은 어쩌고? 하는 듯이 소열에게로 내민 손을 힐끔 눈짓해서 내려다보았으나, 이내 별 딴죽이나 군말 없이 소열의 명령대로 허리를 숙인다. 그리고 손끝에 걸려오는 무게를 받아든다. 닿은 손끝은, 참 차갑고 무기질적인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내밀어지는 손길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부수는 연장 노릇에 더 적합한 그런 손이었다. 정확히 소열의 불잉걸을 받아낼 만큼만 허리를 숙이고는, 담뱃대가 아래로 기울어 몽땅해진 꽁초 끝에서 불을 넘겨받는다. 정직한 담배냄새가 매캐하게 피어나, 소열의 입끝에서 타오르는 연기와 섞여 다른 향이 된다. 묵호의 손은 소열이 뒷꿈치를 온전히 땅에 내려놓을 때까지도 소열의 손을 받치고 있다가, 손끝에 실리는 무게가 덜해지고서야 허공을 가르고 허리를 다시 세우는 묵호의 입가까지 올라간다. 하관을 감싸면서 검지와 중지로 담뱃대를 감싸고, 넘겨받은 불잉걸이 한 차례 빛을 돋우고는 그제서야 유독하고 칙칙한 연기가 제2서울시의 물안개에 꿉꿉한 한 겹을 더한다.

# 들 중에 마음에 드는 버전으로 이어주시오...

61 묵호주 (4qVQRicgFg)

2023-11-03 (불탄다..!) 06:40:17

오늘 일만 치르면 현생이 그럭저럭 안정화될 것 같으므로 1일 1답레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

그... 묵호가 좀 크리피한데 그것은 묵호주가 상대가 욕심을 부리면 정직하게 맞욕심을 부리는(?) 후레 참치라 그렇습니다 너무했다 싶으면 소열이 입을 빌어 마음껏 쪼셔도 좋읍니다

62 소열주 (WNguEDl59g)

2023-11-03 (불탄다..!) 15:06:57

크아악 너무 맛있어서 정화될 것 같다
서로 닮지 않았지만 닮은 동지애가 애틋한데 나중에 정체를 알고 싸우게 될 장면이 너무 맛있어보여(와구와구
완강히 거부 당할 줄 알았는데 묵호주의 취향에 치얼스 불도저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정신을 가다듬어 보겠읍미다..

묵호주 입체감 있는 섬세한 묘사가 내 레스의 부족한 점을 완벽히 채워줘서 굉장히 몰입하게 돼..;3
잿빛의 수몰지구 위 두 사람의 장면이 갱장히 뚜렷해
답레만 받으면 하루종일 답레 장면만 생각중여,,

63 묵호주 (MlL0FbIGdU)

2023-11-03 (불탄다..!) 15:26:08

죽음을 몰고 다니는 검둥개.. 어쩌고 하는 대목에서 좀 드러났는데 묵호의 이미지 중 일부는 내가 어릴 적 읽었던 소설판 해리포터에서 글로 등장헸던 시리우스 블랙을 내가 머릿속에서 그려본 이미지에서 따왔다

시리우스가 훨씬 쾌활하고 훨씬 아저씨고 훨씬 양아치라는 사실은 불사조기사단 가서 알게됐지 ㅡㅡ;;

이제 더 이상 정의라는 이름의 일로 도망치지 않고 눈앞에 놓인 욕심을 위해 휘둘러지는 궁극의 폭력이 가까워오는 것이 보이십니까
소열주가 브레이크 놓쳐도 내가 브레이크 잡겠지만 나는 브레이크 밟는 선을 좀 느슨하게 두고 있다는거
그렇지만 부족한 글인데도 소열주에게 그 정도 기쁨이 되고 있다니 다행이네 묵호가 소열이 손 마주잡아줬는지 소열이가 갑자기 발돋움하니까 소열이 손은 팔뚝으로 받아주고 소열이 허리잡아주었는지는 소열주가 좋을대로 해석하시길 바람

64 소열주 (ROnN6ymdKE)

2023-11-06 (모두 수고..) 01:03:30

묵호 검둥개 라는 말 너무 잘 어울려 묵호를 잘 표현하는 말 같아 입에 달라붙어..
소열이가 검둥아 하고 불러보고싶군..

주말동안 꽤 바쁘게 움직이고 놀았던 소열주가 잠깐 생존갱신 >:p

65 소열 - 묵호 (68nR8gVMgo)

2023-11-09 (거의 끝나감) 18:32:05

"마음에 들 텐데."

주어는 여하간 달지 않는다. 검은 머리칼 사이 화려한 금안이 일렁이며 얼마간 그의 언저리에 머물렀다. 두 번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잘도 그런 소리를 지껄이더랬다. 어찌보면 그렇기에 뱉어진 말이다.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무책임 한 행동들. 어쩌면 당신이 좋아한다고 했더라면 고양이를 볼 때마다 그녀를 떠올릴 수 있게끔 각인 시키려 들었을지도 모른다. 팬클럽 따위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눈앞의 곯아있는 강아지를 건드렸을 때 반동되는 역린이 꽤나 맛있어보여서. 소열의 실소가 흐른다.

키가 작은 편이라 생각 한 적은 없지만 그의 앞에선 평범히 조그마해지고 만다는 사실이 우습다. 그가 고개를 숙여봤자 그녀를 같잖게 내려다보는 정도 밖에 안 되지 않는가. 그렇기에 소열은 서슴없이 묵호를 당길 줄 알았으며, 유치한 까치발을 드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닿지 않는 부분은 물론 당신이 채워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짓궂게 누르려던 묵호의 손은 그 생각보다 차갑고 메말라서, 서로가 맞닿은 종내엔 식은 온기의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퍽 거칠고 생기없이 두터운 손이다. 소열 역시 온실 속 화초의 계집처럼 말랑히 보드라운 손은 아닐테지만 그보단 어찌 따스하지 않을까.

"맛있니?"

누가 준 건데. 허리를 숙이자 암울하고 축축한 빗물 사이로 묵호의 옅은 체취가 너울거리고, 가늘게 뜨인 금빛은 그의 잿빛으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소열의 단내는 명을 다해 이미 희미해졌다. 물러남에는 망설임이 없다. 마지막까지 숨을 다했으니 끝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그녀의 발끝에 짓밟힌다. 순간은 매캐한 묵호의 숨만이 뿌옇게 시야를 덮는다.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본 그의 얼굴은 끝없이 메말라서, 저 무정의 끝에 무엇이 남아있기는 한 건지. 담담한 그의 얼굴을 응시하며, 또 편애하여 기울어진 우산에 젖어가는 그의 옷자락을 보며 소열은 짓궂게 웃어보인다.

"만지고 싶어."

그의 불씨가 다할 때 까진 아직 멀었으니, 조금은 딴짓을 해볼까. 두 손이 자유로워진 소열은 올곧게 흘러 내려있는 그의 머리칼로 손을 뻗어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눈빛으로 숨죽여 기다린다. 얼굴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를 넘겨내고 싶은 단순한 충동. 별 건 아닐 거다.

66 소열주 (68nR8gVMgo)

2023-11-09 (거의 끝나감) 18:34:36

상당히 늦어진 답레 (머쓱
이번주간 바빠서 띄엄띄엄 쓰다보니 조금 애를 먹었네 >:3 하여튼 잘 지내샸는지요

답레 기념 질문!
Q. 묵호의 장발은 본인이 귀찮아서 인가요 누군가의 취향인가요?

67 묵호주 (o1ulty3j4U)

2023-11-11 (파란날) 07:55:17

답레는 주말중에 올리고싶다
잘 지내진 못했다 감기가 씨게 들었걸랑
소열주 날씨 추운데 잘 보내고 있길

A. 현존하는 인간의 기술로는 못 자릅니다
빠지기는 남들과 다름없이 빠지고, 일단 머리에서 빠지면 다른 평범한 이들의 머리카락과 별다를 것 없는 그냥의 머리카락이며, 손 뻗어 만져볼 때의 촉감도 그냥 머리카락 만지는 것과 똑같은데, 훼손하려고 하면 불가사의할 정도의 강인함을 드러낸다
묵호가 직접 연장을 쥐면 손에 쥔 연장도 일시적으로 묵호의 일부로 취급되므로 자기 머리를 자르는 게 가능한데, 묵호 본인이 귀찮아서 안 자른다
한때 누군가가 이미 한발 앞서 이 긴 머리를 좋아하긴 했는데, 그 사람도 묵호를 떠났지

68 묵호 - 소열 (KQ1RspYvOw)

2023-11-14 (FIRE!) 18:27:31

"다들 그러더군."

과연, 건드리는 대로 족족 반응하는 것이 노리갯감으론 나쁘지 않다. 석회처럼 덕지덕지 엉겨붙은 음울함 때문에 그 신경질이라는 것도 무디고 투박한 것이 바윗돌 굴러다니는 것 같다는 게 흠이긴 하나 아직 반응이랄 게 남아있다. 마음에 들 텐데. 익숙한 느낌의 말이었다. 저마다 형태는 달랐으나 분명히 그 비슷한 뉘앙스로 묵호에게 다가온 것들이 분명히 있긴 했다. 사람일 때도 있었고, 사물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묵호가 마음에 든다, 고 느낀 그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묵호의 마음속에 상실을 하나 자물쇠 걸듯 걸어두고는 가볍게들 떠나갔다. 세계 최강의 삶, 일반인과는 엇나간 인생, 일반인과는 달라지는 인격, 그럼에도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만큼은 여전했으나 그것들 중에 이 이상해져버린 인간을 오래 견뎌주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묵호는 이번에 손끝에 올라앉는 온기며, 입끝에 걸쳐지는 불잉걸에도 그냥 따뜻하다, 정도의 감상만 남기고 마는 것이다. 다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가 그렇게 최소한의 친절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소열의 손을 담담히 놓아주었다. 놓아주는 게 퍽 익숙했다. 손도, 사람도, 마음도.

"그나마."

무뚝뚝한 대답이었다. 다시금 불잉걸은 빛을 발하고, 그는 입술 한켠을 비뚜름하게 열어 비스듬히 담배연기를 뱉어낸다. 이 황무지 너머에 뭐가 있을까. 무언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굳이 이 삭막함을 거슬러올라가 그것을 찾아낼 가치가 있기는 한가. 지금으로서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지고 싶어, 하는 말에 묵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소열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으나, 소열의 손이 그냥 머리카락으로 뻗어오는 것을 보고는 이내 눈매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 손이 뻗어올 적에, 묵호의 이빨 사이에 끼인 꽁초가 구르더니 소열의 손이 뻗어오는 쪽의 반대쪽으로 그 끄트머리가 비켜나간다. 거기에다 고개를 좀더 돌려서 꽁초를 소열의 팔에서 조금 더 멀리한다.

손끝에 감기는 머리카락은 그 주인과 다를 바 없다. 별로 특별하거나 이상한 감촉이 없는, 일반적인 길다란 머리카락. 아주 버려둔 것은 아닌지 기름기 없이 매끄러웠으나, 또한 메말라 있기도 했다. 푸석푸석하다는 말과는 그 궤가 조금 다른 메마른 감각이, 이 추적추적 쏟아지는 음울한 빗속에도 여전했다. 그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옆으로 쓸어넘겨 보면, 그 아래로 아직 이름도 모르는 이 아직 통성명도 안한 검둥개의 선이 굵고 각이 잡힌 옆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흉터나 잡티 하나 없이 칙칙하게 까만 얼굴과 색채가 결여된 눈동자로, 덤덤한 얼굴이 좀더 적나라하게 소열의 앞에 놓였다.

69 묵호주 (KQ1RspYvOw)

2023-11-14 (FIRE!) 18:29:39

1일1답레는 무슨(머리박)
이번엔 진짜로 늦었다.. 좋은저녁 보내고 있기를 바라

소열이에겐 궁금한 게 두어 개 있긴 한데.. 주된 것들은 묵호주가 물어보는 게 아니라 묵호라는 캐릭터로 직접 접해보고 싶게 되기에 막상 잡담이나 질문으로 쓸 화제가 없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70 소열주 (Pc7mTrf1kQ)

2023-11-22 (水) 14:04:19

지각생 갱신입니다 (무릎꿇고슬라이딩
연말엔 좀 바빠지는 편이라 그래도 일주일내로 답레 쪄오려고 했는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내 답레가 느리다보니 상황이 조금 루즈해진감이 있어서(ㅠㅠ)그런가 이입이 잘 안되더라구

그래서 혹시 묵호주가 괜찮다면 저 상황에서 소열이가
"또 만나" 정도의 말을 남겨놓고 비도 오는데 그냥 훅 떠나더니 눈 깜박 한 사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정도로 마무리 지어도 괜찮을까?
ㅠㅠㅠ답레도 늦었는데 이렇게 어영부영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짧게라도 써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손이 안가서.. 그렇다고 묵호랑 소열이 서사가 너무 맛있어서 포기할 수도 없어잉..

다음 일상의 기회가 있다면 더 노력하겠습니다..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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