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로 잔뜩 곤두선 청각에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을 귀로 느낀 시점에는 이미 늦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날아든 그것은…… 엥. 그냥 박쥐다.
그러나 이 우마무스메는 그냥 박쥐에도 굴할 수준의 쫄보였으니. 사미다레는 이제 코우에게 달라붙다 못해 아예 새끼 코알라처럼 다리까지 딱 붙이고 매달리려 했다. 껴?안은 몸으로부터 덜덜 떠는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사미다레도 나름대로는 참고 있는 중이었다. 뭘 참았느냐면, 착란에 빠져서 사방팔방에 발길질과 주먹질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말이다.
"읏, ㄴ, 네엣."
정, 정신차리자. 자칫 잘못했다간 트레이너님이 사고사하실지도 몰라. 괴물이나 유령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코우의 말에 사미다레는 퍼뜩 팔을 풀어주었다. 잔뜩 힘주어 뻣뻣하게 굳어진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한다.
"그, 그럴게요. 그런데 저건 대체……."
말을 하면서도 재빨리 몸을 숙여, 코우의 등과 다리 뒤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올리려 했다. 한가하게 양해를 구할 시간 따위 없었다.
"저어, 만약에 저게, 우마무스메보다 빠르다면……. 트레이너님은 도망치세요……. 뒤, 뒷일은, 남은 싸움은 제가."
내 떨리는 손은 히로카미쌤이 건넨 등불을 의외로 잘 받아들었다. 아무리 떨려도 동앗줄은 꽉 잡을 수 있는 것이 나의 생존본능이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늘고 흰 손가락이 어깨를 털어내는 것을 질끈 눈감고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들리시나요?
라는 말에 온갖 죽상을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뭔갈 못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처음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늘 영적으로 닫혀있는 타입이라는 말은 곧잘 들었지. 솔직히 가위같은 것도 평생 눌려본 적이 없고, 어디 홀린 듯이 심령스팟으로 찾아간 일도 없다.
근데 어쩐지 요즘은 진짜 기기괴괴한 현상을 몰아서 체험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정말 울고 싶다... 나뭇잎이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떠보면, 어쩐지 시야가 좀 더 밝아진 기분이다. 아니 아니 뭐랄까, 아까처럼...
몰라. 단순하게 생각해서 흐렸던 하늘이 약간 개어 월광이 들어오는 것 같다.
"...이, 이제 괜찮으니까... 속전속결로 갈까요."
"...이걸 다 끝내고 나면 저 평생 귀신의집따위 안 갈 거니까..."
솔직히 객관적으로 봐도 나 지금 엄청난 치킨이니까. 다이고 공룡치킨 옆에 히다이 순살치킨 있을 것 같다고. 나는 히로카미 쌤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와들와들 뒤따라가고...
포이그잼플의 눈알이 흘러내린 기괴한 분장에 히로카미쌤 귓가에다 비명도 지르고, 미스레드 코멧의 목이 늘어나는 귀신 분장에 히로카미쌤에게 꺄아아악 소리지르며 와드득 껴안기도 하고, 누가 쓰다 말은 피범벅 제단 장치에 흐아아아아악 좌회전좌회전제발좌회전끔찍해애애앳 하며 히로카미쌤을 들어올리고 냅다 달리기도 하며...
...결국 완주했다.
끝나자, 땀과 눈물 밤이슬 그리고 기분나쁜 검은슬라임과 거기 붙은 낙엽으로 범벅인 채였다.
아이고 깜짝이야. 박쥐의 예고없는 갑툭튀에 펄쩍 튀어오르며 비명을 지를 뻔했는데, 간신히 참아낸다. 박쥐를 무서워하는 건 아니지만, 이 어두운 동굴이라면 아주 귀여운 제노사이드 커터가 튀어나온다 하더라도 놀랄 것이다. 아 암튼 그렇다고~ 무서운거 아니라고~ 아무튼 간신히 정신을 차리는데,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사미다레에게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다리까지 바짝 붙여오는 그녀의 행동에 살짝 몸을 휘청거린다. 무거워!!! 그래도 금방 떨어져나가긴 했지만, 쉴 틈도 없이 사미다레에게 번쩍 들리고야 말았다.
"...뭐?" "아니, 그래도 같이 살아야지..."
희생을 자처하는 사미다레를 말리듯이, 그렇게 말한다. 아무리 우마무스메라 하더라도 곰이나 멧돼지랑 싸워서 이기는 건... ......되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 때문일까,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거리를 두는 게 익숙한 입장에선 담당 쪽이 좀 더 대하기는 쉬운 것 같았기에, 히다이의 말에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으나... 자신이 레이니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어려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야.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어쩌다 보니 좀 더, 깊고 가까운 관계가 되어간다, 히다이가 들이받지 않았다면 아마 이럴 리 없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다이고에게 이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고 볼 수 있었다, 히다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레이니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시간이 되었으니까.
"숙제인가, 알겠어."
도시락이 없다는 말에 조금 걱정이 됐다, 형이 해주는 도시락 맛있는데! 매일 먹진 않지만 그래도 영양 균형이 잘 잡힌 도시락을 가끔 먹는 건 꽤 즐거워서.
"형도 힘내,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 잘 끝나면 한 끼 같이 먹는 걸로 하자."
이미 일어선 히다이를 따라 일어서며 미소를 지은 다이고는 팔을 내민다, 이건 악수와 비슷하지만 다른 그런 인사다. 그런 거 있잖은가, 팔을 교차시키는 장면.
보라색 빛을 뿜는 수수께끼의 괴물이라는 점이 여전히 무섭지만, 그래도 형체 없는 저주나 귀신 같은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도리어 조금은 안심했다. 동물이 맞다면, 아니 차라리 괴물이더라도. 그 정도만 해도 오히려 낫다. 실체 있는 생물이라면 일단 주먹은 먹힐 것 아닌가……!
코우를 들어 안은 채 비장하게 동굴의 입구를 노려보는 것도 순간이다. 괴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더 지체할 시간은 없으리라. 그렇게 다리에 힘을 모으고 수풀 무성한 숲 한가운데로 다시금 뛰어들려던 순간―
극도로 곤두선 청각이 문득 어떤 위화감을 잡아내었다. 저 소리, 왠지 미묘하게…… '음질'이라는 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서둘러 고개 돌려 뒤를 확인하자 거기엔 무언가 기묘한, 그러니까 방금까지의 상황과는 다른 의미에서 기묘하기 그지없는 광경이…….
"고릴라……?"
어어, 여기가 남국이긴 한데 그렇다고 고릴라가 나올 만한 장소는 아니지 않나? ……아니 그보다도 왜 고릴라가 스피커를 들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점보다도 곁다리 격 될 사실들에 더 주목한 까닭은, 이 상황이 너무도 황당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다. 프러시안의 니시카타 트레이너가 한밤중에 고릴라 옷을 입고 동굴에 들어가 있는 상황보다는 새끼 고릴라가 남국에 표류해 있는 쪽이 더 설득력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봤자 엄연한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원시 회귀……인가요?"
인간의 조상은 선사보다도 한참 이전에 유인원에게서 갈라져 내려왔으니까……. 그런 걸까. 그렇게라도 생각해야만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자의 안타까운 몸부림이다.
사실 저 소리를 듣고 무서워한 적은 없다. 그냥 박쥐를 보고 좀 놀랐을 뿐이지, 그리고 위험한 야생동물이 있을까봐 그걸 걱정한 거고(?) 아무튼 곧 모습을 드러낸 거구의 괴생명체...는 거구도 아니고 괴생명체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150센치 조금 넘을 거 같은 체구에, 딱 봐도 가짜같은 고릴라 탈을 쓴... 사람. 게다가 양손에 울음소리가 나오는 스피커를 든. ...여기도 담력시험 코스였었나... 라기엔 귀신이나 유령 같은 초자연적인 소재도 아니고,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이라서 더 이질적이다.
"...괜히 놀랐네."
그래도 상상하던 최악의 상황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건 아니고, 잘 봐봐. 저거 가짜 탈이야."
원시 회귀라는 이상한 추측을 하는 사미다레에게, 넌지시 그렇게 알려준다. 막상 정체를 알고나니 그렇게 무섭지도 않은데, 이 담력시험 이대로 괜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