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히로카미 트레이너의 모습으로 또 변한건가!!!! 싫어!!! 진짜로 싫어!!! 도와줘!!!! 도망치면서 슬쩍 돌아봤을 때, 뒤에 있던 것을 봐서 뒤로는 가고 싶지 않은데, 앞에 계단에는 히로카미 트레이너의 모습이 또 있어서. 뒤로도 앞으로도 못가고 그냥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서, 다리 사이로 숨다 못해 가슴께까지 끌어올린 꼬리를 꽉 끌어안고 바들바들 떨었다. 이제, 이제 진짜로 싫어. 자, 잘못했어요 뭘 잘못했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시는 안 할테니까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제발 집에만 보내줘 제발!
"우우우.. 싫어 집에 갈래 제발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잡아먹히는건싫어진짜로무리이제집에갈래왜아무도도와주러오지않는거야아아"
히로카미 트레이너의 모습을 한 무언가가 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이제 또 속을까보냐. 절대로 안 속아. 안 넘어갈거야. 그러니까 제발 누가 좀 도와주러 와줘!!!!!!!
바르는 의미를 모르겠다고? 역시 혼활대실패 맞선파괴자 모쏠다운 사고방식이군... 모자도 안 들고 왔다고? 열사병으로 쓰러지고 싶은 건가 이 트레이너... 위험하다 싶을 땐 이미 늦은거라고? 보아하니 돌아다니면서 수분보급할 물통도 없겠군. 물통은 있냐고 물어보면 당당하게 '맥주 있는데?'라는 대답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 '바닷물 마시면 되잖아 염분보급도 되고~'라고 할지도 모르지...
"허접~❤️ 한심해❤️ 아무것도 안 챙겨서 담당 우마무스메한테 전부 빌리고 있어❤️ 어른인데 학생한테 손 벌리고 있어❤️ 그야말로 한심 그 자체❤️" "어쩔 수 없네~ 아무리 한심하고 어설프고 모쏠에 맞선파괴자라도 내 담당이니까, 빌려줄게❤️"
야레야레, 하는 느낌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잠시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밀짚모자와 선크림, 물통을 챙겨서 다시 나와 유우가에게 모자와 선크림을 내밀었다.
"자, 여기. 선크림은 드러나는 곳에 전부 바르면 돼. 모자는 이거 써."
사실? 누구 빌려줄 생각은 했지만 그게 트레이너일거란 생각은 안 해서. 만약 트레이너에게 빌려준다고 해도 그게 유우가일거란 생각은 안 해서... ...모자가 그, 리본 달린 모자긴 한데.... ....뭐 괜찮겠지.
절대 안 속는다고 안 넘어간다고 한게 무색하게,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바로 마음이 무너져버린다. 이럴수가. 기껏 연장해놨는데 산마캔은커녕 여름합숙도 다 안 지나간 지금 시점에서 트레이너를 잃게 되다니. 이럴 수는 없어어어어....
"그, 그래! 뒤엔 없겠지!!! 지금은 앞에 있으니까!" "아까도 히로카미 트레이너 모습으로 나왔잖아! 이제 안 속을거라고!!!"
눈을 꾹 감고서 외쳤다. 내, 내가 또 속을 줄 알아?! 이제 안 속아!!! 눈을 감으면 어두워서 무서워. 하지만 눈 앞에 있는 것이 아까 그것이라고 생각하면 눈을 뜨는 게 더 무섭다. 아니야, 눈을 감는 쪽이 더 무서운가? 모르겠어. 그냥 무서워. 이제 진짜로 무리이이이이!!
그러다가 머리에 무언가가 닿는 감촉에 화들짝 놀라, 땅을 파고 들어갈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 우우우, 머리부터 삼켜지는거야, 난 이제 끝이야....
......그, 그냥 머리를 핥...는건가? 맛보기 중인건가...? 아니, 이건 쓰다듬는 감촉인데. ....헉, 설마 안심하고 고개를 들면 집어삼키는...?
"히다이 트레이너는 멀쩡합니다." 아마 저 안에서 스포츠음료와 당근쥬스를 고르고 있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며 천천히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 합니다.
"한순간에 삼키다니요. 지금 저는 히토미미라서 못 삼킨답니다." "정말로 괜찮을 겁니다." 뭐.. 증명할 방법이 없긴 하지만.. 일단 전 진짜입니다. 라고 말을 계속하면서 진정시키려 시도합니다.
"제 모습을 하고 속인 건.." "....언젠가 때려잡을 수 있을 겁니다." 분명 저기엔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보일 겁니다. 뭐 보이면 제가 하야나미 1년치 식재료 중 일부를 40%할인가로 팝니다. 라고 당당히 말하려 하네요. 하야나미에 수산물을 그가격으로 팔지 않을거라는 당당함인가.
나는 리본이 휘날리는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선크림을 치덕치덕 얼굴에 펴발랐다. 고양이 세수라도 하는 기분이네, 이거. 목 뒤랑 팔도 발라주고... 좀 손에 넉넉이 남았으니까 매끈한 겨드랑이에...는 아니고, 대충 발에다 바를까. 그렇게 생각하며 샌들에서 발을 꺼내자, 거긴 이미 타지 않은 모양으로 샌들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자각하고 나니까 좀 따가워! 앗 뭐야 이거! 앞으로는 무조건 바르겠습니다!
"따갑다..."
일단 선크림은 내 파라솔 벤치 위에다 놓았다. 돌아다니면서 들고다니긴 좀 그렇기도 하고... 대신 메이사가 들고 있는 물통은 내가 들어야지. 달라는 듯 말도 없이 손을 내밀었다. 이정도는 알아먹을 정도의 신뢰관계...라고 생각한다.
"...근데 메이사, 너 그거구나? 그 뭐야, 요즘 애들말로..."
"츤데레."
나는 뭐... 지금 당장은... 해변가에서 리본이 휘날리는 밀짚모자를 쓰고 햇볕을 등진채로 너를 돌아보는 타입의 흰 원피스 미소녀라고 할까. 일단 흰 반팔티니까 좀 맞지 않을런지.
멀쩡하다고...? 진짜인가...? 히또미미라서 못 삼킨다고? 아니, 아까 그것도 히또미미인척 했어. 발목이 투명했지만... 맞아 발목....
".......그럼 발목 보여줘."
엄청난 발목페티쉬 같은 발언이지만, 엄청나게 진지한 목소리로 했으니까 그런 느낌은 없을거야. 난 진짜로 비장하게 꺼낸 말이라고... 만약 발목이 반투명하거나 흐릿하면, 이 녀석도 가짜다. 날 말로 구슬려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겠지. 아까 그 녀석도 하반신은 담요로 가리고 있었는걸. 가릴 필요가 있었다는거야. 그렇다면... 둔갑인지 뭔지 모를 그것도 완벽하진 않다는 뜻이겠지. 즉,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것. 하지만 발목이 멀쩡하면?
진짜로 히로카미 트레이너라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살짝 고개를 들고 눈을.. 역시 무서우니까 반만 뜨고 힐끔, 히로카미 트레이너의 발목을 보려고 했다.
>>495 ㅠㅠㅠㅠㅠㅠㅠㅠㅠ히다이주 상냥해 그 그렇게 해서 해결된다면 저는좋슴다 다이다이(??)
그 리고 그때 못 봐서 수첩 내용을 말씀 못드렸는데 화과자집 하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내용이랑, 병원 내원 기록 같은 게 있었슴다 구체적 소견까진 안 적혔고... 허리 쪽에 부상이 있었다, 정도만 알 수 있는 그런 내용임다 지금도 가끔 병원 간다는 느낌의 영수증도 좀 있고
일단 히다이한테 말한 것처럼 자세히 말한 게 아니라 다 암시하는 내용이다보니 어느정도는 맞는...
그거, 나중에 씻을 때가 진국인데. 엄청 따가울거라고. 히죽히죽 웃다가 유우가가 내민 손에 물통을 턱 건네준다. 아니 뭐, 달라는 거 아니었나? 아니었어도 선크림에 모자까지 제공했으니까 이 정도는 들고 다니라는 뜻으로 준 거다. 꼬우면 아시죠?
"응?" "...뭐, 뭐라는거야!! 딱히 유우가를 위해서 한 거 아니라고!!" "폭삭 늙어서 노안이 되거나 이상한 태닝자국이 남은 트레이너한테 트레이닝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거니까! 전적으로 날 위해서 한 것 뿐이니까! 착각하지 마시지!"
키이이잇!!!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그보다 하나도 안 챙겨와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빌린 주제에(사실 세 개뿐이지만 아무튼 느낌상 그렇다)잘도 그런 말을!!! 물통을 건네준 덕에 비어버린 양손을 꽉 쥐고 바들바들 떨다가, 먼저 걸어가는 유우가의 등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살짝 쳤다. 마마가 자주 보여주는 등짝스매시보다 위력은 적지만, 따끔할 정도는 되겠지. 아마도.
신발과 양말 뒤에 있던 것은, 하얀 발목이었다. 어라, 이렇게 서술하니 이건 이거대로 무서운데. ...아니, 흐릿하지 않아. 선명하다. 하얗지만, 선명해.
"....진짜 히로카미 트레이너야? 진짜야? 으, 으으으으.. 으아아아앙..."
진짜다. 진짜 히로카미 트레이너야. 맞지? 진짜지? 눈을 깜빡이며 몇 번 더 확인하고, 진짜 히로카미 트레이너냐고 물어보는데 울음이 터졌다. 나, 나 너무 무서웠어. 이제 이런 거 싫어...
"으우우... 그치만 거기, 있다구. 진짜로 있었어. 히로카미 트레이너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발목이 없고, 철벅거리면서 따라오고..."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있는거지? 아, 아까도 안 보이다가 보였어. 분명히 있어. 있다니까. 확인시켜주겠다는 히로카미 트레이너에게 이끌려 내려가면서도 계속 분명 있었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작 내려간 지하실은 정말로 텅 비어있어서. 아니, 아무도 없는 건 이해하겠지만. 아까 초라던가, 향이라던가, 엎어진 서랍장도 푹신한 자리도. 내가 앉았던 곳까지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텅 빈 지하실이라...
"......어라....?"
분명, 있었는데. 어째서...? 끼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히로카미 트레이너를 올려다봤다.
"그럼요. 진짜랍니다." 울음을 터뜨리는 메이사에게 손수건을 건네주고는 좀 달래주려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떠도는 잔해들을 생각하면 울만도 하다고 속으로 납득하네요. 그도 그렇지...
"정말 무서웠겠네요.."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라고 안심시키면서 아래로 내려가서 장소를 보려 합니다. 정말로 있었다는 것을 어필하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가끔 그런 괴담같은 일이 일어나는 게 여름이니까요.."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는 장소에 오래 있는 건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들이 또 불려올 수 있으니.. 라고 말하면서 이만 진짜 장소로 갈까요? 라고 말하려 합니다. 메이사가 뒤돌아서면. 끼익거리는 듯한 옅은 소리와. 향의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지만.
-어디서 날뛰는 건가요? 그녀가 피리카가 손으로 흩어버립니다. 메이사가 향을 맡고 혹시? 뒤돌아볼 수도 있지만. 그저 피리카와 텅 빈 지하실만이 보일 겁니다. 피리카는 아직도 발목이 선명하고, 바로 메이사에게 다가와서 가죠. 라는 평범한 말을 건넵니다.
아니아니아니 나 그냥 방으로 갈래... 이제 괴담이고 뭐고 싫어.... 히로카미 트레이너가 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원래 장소로 가자는 말에 고개를 빠르게 휘저으며 손수건을 꽉 쥐었다. 나, 나 이제 3년 정도는 괴담 없이 살아도 괜찮아. 아니야 평생 없어도 돼. 진짜로.
"아무튼 가, 갈래... ....어라?"
원래 장소든, 숙소든 일단 가려면 뒤돌아서 나가야 하니까. 몸을 돌린 순간, 끼익하는 소리와 아까 그 향 냄새가...
"—?!"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지만, 거기엔 여전히 텅 비어있는 지하실과 히로카미 트레이너가 있었다. ....차, 착각이었나봐... 아까 일이 너무, 무서워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