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부끄럽다! 너무너무 민망하고 쑥스러워서 이 자리를 떠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치솟지만, 정말 도망친다면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이니까. 간신히 자제심 부여잡고 버텼다. 두 손으로 새빨개진 양 볼 꼬옥 붙잡고 식히면서 더듬더듬 대답한다.
"그게…… 다, 당황해서요……."
혹시라도 유키무라 씨가 싫다거나 무서워서 그런 걸로 받아들여졌다면 어쩌지? 그건 아니라는 뜻이 전해진다면 좋겠다.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자 유키무라는 다행히 재밌게만 보고 있는 듯했다. 사미다레는 작게 안도의 한숨 내쉬곤 슬금슬금 사격장의 가판대 앞에 섰다.
"아, 네에. 지금은 없지만요…… 어, 책가방에 달았어요."
직접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럴 순 없으니 조금 아쉽다. 그건 그렇고, 축제 아르바이트구나. 죽 늘어선 게임용 총과 저편의 표적을 힐끗 건너다 보며 구경한다. 그러다 들린 말에 속내를 들킨 것 같아 퍼뜩 귀를 쫑긋거린다. 사실 재밌어 보인다고 생각하던 차라……. 조금 우물쭈물 고민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wwwwww사미쟌 굿모닝 굿모닝인wwwwwwwwwwwww 사미쟌... 와따시.... '후후후 어떻게 쏘는지 모르면 내가 유리하군 나약한녀석은 마피아 츠나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하고 사미쟌에게 고무줄 총을 마구마구 쏴버리는 장난을 치고 싶은 욕망이 마구마구 생기는데 어떡하죠...?????(사미주:신고할게요;;;;;)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못 본 척 자연스럽게 넘기는 것도. 이미 처음부터 모르는 척 지나가기엔 정적이 길었다. 이, 이걸. 어떻게, 반응해 드려야 덜 부끄러우실까……. 그런 고민을 하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망했다는 걸 사미다레는 몰랐다. 차라리 깔깔 웃고선 엄지척 하고 장난스레 떠나는 편이 유키무라에겐 덜 수치스러운 반응 아니었을까? 사미다레는 한 손으로 살며시 입을 틀어막고 미미하게 몸을 떨었다. 공감성 수치와는 조금 다른 결의, 이 우마무스메를 구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이다……. 그러나 이내 굳은 결의가 엿보이는 표정이 되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유키무라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성큼성큼 다가와 유키무라의 손을 조심히 잡으려 했을 것이다.
"ㄴ, 넷. 그, 그, 그 서비스. 부탁드립니다."
이제 와 아무것도 못 봤다며 도망친다면 분명 부끄러우시겠지. 그러니까 호객을 당한 손님이 된다면 덜 곤란하?지? 않을까? 사미다레는 진심으로 그리 판단했다…….
"다들, 요루의 공연을 봐 줘서 고마워! 그럼 이제, 모두가 기대하는 불꽃놀이 시간이야♡ 폭발음에 깜짝 놀라지 않도록 모두 조심해!"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의 눈이 밤하늘로 향한다. 우마무스메들은 벌써 귀를 가리고 있거나, 아예 멘코를 뒤집어쓴 경우도 있다. 요루니 앙카케는 인이어 때문에라도 귀가 활짝 열린 채로 두었다. 수많은 무대를 헤쳐 나온 그녀에게 폭죽의 소음 따위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A, B 조명 모두 스탠바이." "음향 송출 시작합니다."
무대의 불빛이 닿지 않는 막후에서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유유자적하던 소방대원들의 얼굴에도 긴장이 감돌기 시작한다. 불꽃이 터지기 전이지만 기계공학 동아리의 견학생들의 눈은 벌써부터 반짝이고 있다. 멀리 도쿄에서 출장을 온 불꽃연출가가 꺼내든 모듈에 관심을 빼앗긴 탓이다.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다가 끌려온 우로코네틱스도 기계를 보자마자 빠져들었으니까. 아마 불꽃놀이가 시작된 이후에도 그녀들은 여기서 시선을 떼지 못할지도...
"그럼 함께 카운트다운을 해 보자!"
무대 조명이 암전되고, 모두의 목소리가 함께 모여 메아리친다. 5, 4, 3, 2, 1...
"......" 쿵────쿠궁───! "......"
수면이 순간 환해지며, 물결을 잔뜩 이지러뜨리는 폭음이 부둣가까지 울려 왔다. 찌가 드리운 물 아래는 컴컴한 어둠에서 화려한 만화경으로 변해 갔지만, 한 길 아래를 엿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두 우마무스메는 귀를 바짝 눕히고, 한 사람은 하늘의 불빛을, 한 사람은 물에 비친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은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공중에서는 폭죽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왔지만, 낚싯대의 끄트머리는 잠잠해졌다. 입질하던 물고기가 도망갔다는 것을 알아챈 키마구레 에스커는 인상을 찌푸리며 낚싯대를 거두었다. 여기서는 더 낚을 수 없다. 물론 입질이 하나도 없는 날에도 물속에 찌를 드리운 채 가만히 있는 날도 있지만, 오늘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곁에 친구가 있으니까.
키마구레 에스커는 무심하게 낚시줄을 걷어올리다가, 폭음이 터지는 순간 반대편에서 느낀 위화감을 뒤늦게 떠올리고 뒤돌아봤다.
"... 레몬, 조금 전에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 말도."
레몬 노 웨츠는 엷은 웃음을 떠올리고, 낚시 바구니를 챙긴 키마구레 에스커를 따라 마츠리가 한창인 시내까지 걸어갔다.
"올해는 무려 불꽃놀이! 쪼꼬미 선향이 아니라 진짜 불꽃이라구... 산끼야아아악!!!" "와아! 터졌어! 치~즈☆ #산포_더스트 #무쿠치_올리브 #케구링 #마인드리스_풀 #갸루즈 #불꽃놀이 #나츠마츠리" "나츠마츠리의 불꽃놀이! 친구들이랑 파리 타임♡"
갸루들이 옹기종기 뭉쳐서 저마다 셀카봉을 이리저리 내밀고 불꽃이 보이는 가장 좋은 각도를 찾아 애쓰고 있다. 하는 행동은 비슷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우마터에 올릴 사진을, 누군가는 우마스타그램에 올라갈 스토리를, 누군가는 우마튜브에 업로드할 브이로그를 찍고 있으니까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갑작스러운 폭발음은 우마무스메에게는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얌전한 우마무스메를 깜짝 놀라게 할 수도, 또는 어떤 우마무스메를 들뜨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스붐바! 역시 일본은 화끈합니다!!" "텐 양, 생각하는 거하곤 달라!"
그래도 이 불꽃이 누군가의 지붕이나 머리털을 홀라당 태우는 일 없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떠오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