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것에 대해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와 훈련, 그리고 기숙사에 오기 전에는 애들 돌보기, 온 후에는 풍기위원 일까지 도맡은 상황에 알바를 뛰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였다. 아마 알바를 뛸 날이 머지않긴 하겠지. 그때 물질적으로 도움을 준 메이사네 부모님, 다이고씨, 그리고 트레이너에게 먼저 빚을 갚고 나머지를 우리 가족 생활에 보탤 예정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빌린다면 그것은 주객전도겠지.
... 그렇기에 그냥 100엔 동전 세개로 어떻게든 버틸 예정이였다. 예정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레 토레나가 꺼낸 지폐만 아니였더라면. 지폐가 무엇인가. 종이로 만든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중에서도 500엔짜리 지폐는 1951년부터 1994년까지만 발매되고 발매가 중지된... 옛 통화가 아닌가. 20년도 더 된 화폐. 그것을 선뜻 내준다는 것은,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니고 자신의 지갑에서 꺼낸다는 것은.
얼굴이 굳었다. 말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내 아둔한 머리가 굴러간다. 내가 방금 들은 이야기의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 그야, 상식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이야기니까.
첫째, 네가 거짓을 말하고 있을 경우.
1-1. 일종의 떠보기. 장난으로 받아줄 수도 있었다구요 하고 있는 경우. 하지만 이 경우라면, 너는 야나기하라 코우라는 네 연인을 두고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한 농담을 하는 사람이 된다.
1-2. 메이사 프로키온을 나에게 반영구적으로 '맡길' 의향인 경우. 내가 정 떨어질 법한 말만 하고, 협조해줄까말까, 너 그런 소문 신경 써? 이 쫄보야. 하며 성질을 긁어대서 완전히 정떼기를 하고 있다면. 글쎄, 난 그런다고 메이사 프로키온을 오래 맡을 마음이 없다. 애초에 니시카타의 부탁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니까. 이 경우라면 너는 헛다리를 짚은 멍청이가 된다.
둘째,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경우.
아니, 이렇게 나누는 게 무슨 소용이야. 셋 다 전부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인데...
"너..."
나는, 니시카타 미즈호라는 여자가 불쌍했다. 음흉한 소문이 도는 당사자와 주먹다짐으로 해결 볼 생각도 안 해, 도발을 해도 꽁무니를 빼고 결국 주먹질 하나도 못하는 남자의 짝인 게 불쌍했다. 그래서 자기에게 무슨 소문이 엮였는지 파악도 못하고 그저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게.
누가 누굴 불쌍해 하고 있던 거야, 불쌍한 쪽은... ...아니, 다 무슨 소용이냐. 불쌍한 녀석따위 애초에 없었는데.
헛웃음이 난다.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었었다. 그걸 네가 단지째로 걷어찼다. 너에 대한 서운함, 배신감, 불신감, 실망감, 답답함, 투사했던 경멸과 혐오가 전부 뚜껑을 박차고 나와 흘러나온다. 이 판도라 같은 사람은 참, 왜 꼭 건드려도 이런 곳을 건드리는 걸까?
"하하, 너 진짜..."
이제 너에겐 아무 기대도 생기지 않는다.
"최저구나."
그것이 내 명확한 진단이다. 그래서 나는 상쾌해졌다.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고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난 명백히 최선을 다했고, 모든 게 망쳐졌을 뿐이다. 네 변덕 하나에 따라서.
이제 나는 너를 편하게 대한다. 애초에 다른 이들보다는 비교적 편하게 대했다. 언젠가부터 말을 놓고 있었으니까. 그야, 불쌍함도 하나의 감정이고 친밀감과 가깝다고, 나는 다이고에게 하듯 너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래도 몇 꺼풀은 더 있었다. '유우가군은 싸가지가 없으니까 말에 소프트스킬을 좀 넣도록 해' 라는 방침에 따라 껴입고 껴입은 것들이 있었다. 그걸 내려놓는다면, 그 대상은 어떤 사람일까.
있는 그대로 나를 이해해줄 친애하는 사람. 혹은, 더 볼 필요도 없어 거리낄 것도 없는 사람.
네가 어느 쪽일지는 명백하지. 그래서 나는 너를 편하게 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숨막히는 위아래 문화와 이마가 익을 것 같던 운동장의 열기와 은은했던 무릎통증과 코치의 힐난과,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우마무스메에 대한 열등감으로 벼려진 내 말을 '거리낄 것 없이' 던질 수 있다.
나는 마주 악수했다. 손바닥에는 땀 한 방울 배어있지 않았다. 약간 차갑게도 느껴지는 네 손을 붙잡았다.
"미즈호야, 잘 들어둬."
"사바캔이 끝나고 너는 나랑 메이사 프로키온을 만나러 갈 거야. 그 때 네가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어."
"너에게 덤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 그 당시에도 경황이 없어 섭섭하게 대해 정말 죄스럽게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
"이 이외의 말은 필요 없어. 만약 괜한 말을 해서 1착한 기분을 상하게 만들면...너 진짜 가만 안 둔다."
손을 놓았다. 나는 전혀 화나있지도 격앙이 되어있지도 않았다. 이제 소문이고 뭐고 아무 상관이 없어. 멋대로 해버리라 그래. 그런 상쾌함이 있었기에 오히려 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