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제가 쟈라미 양에게 볼 일이 있어서 그런데요~ 라고 하고 받아내면 되는 거잖아요~."
설마 모든 일을 전부 말해버린다고? 시라기 다이고라는 사람은 꽤 정직한 사람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어 당신의 번호를 찍으라는 듯 다이얼이 있는 창을 열어 건넸다. 남은 한 손으로는 당신이 했던 것처럼 구겨지다 못해 짜부러진 캔을 쓰레기통에 넣는 것이었다.
"당신이 시라기 다이고니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레이니 쨩의 연인이니까, 주는 거에요."
뭣하면, 레이니 없는 데방결 톡방에 뿌려서 다른 멤버들의 2차 청문회를 열었을 것이라 덧붙이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래, 저스트 러브 미는 온화하니까. 친절하고, 상냥하니까!
"그건~ 뭐, 솔직히 좋은 일을 아니니까 말이죠."
그래도 NINJA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는걸. 톡톡 두드려진 어깨를 흘긋 바라보더니, 다시 썬글라스를 낀다.
"다른 데방결 녀석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재미있을 뿐이니까요. 뭐, 이래저래 정보상이어도 재미있지 않겠나요~?"
살짝 입꼬리가 굳었다. 난 표정을 숨기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고, 이 미묘한 표정은 니시카타에게도 확실히 보였겠지. 그 의미를 눈치챌지는 모르겠지만.
"...난, 신경 써." "내가, 신경 쓴다고."
이건 명백한 도발이다. 피차 성격 좀 하는 사람들끼리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멋대로 이름 부르고, 6살 위한테 버르장머리 좀 봐라. 난 위아래 확실한 문화에 있다 와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입을 열면 라이벌에게 했듯이 가시돋친 말만 나올 거 같다.
그러면 지금까지 한 게 다 헛수고니까, 바늘 천 개 삼키는 기분이다. 내가 널 얼마나 봐줬다고 생각하는 거냐. 어리고 여자아이라서 가만히 굽혀준 것만 벌써 몇 번인 거야. 그 짜증이, 담아둔다고 담아뒀는데 혀 위로 불쑥 튀어나와버렸다.
"...난, 여기 아니면 일할 곳이 없어. 괜한 소문에 시달렸다간 관둘 수밖에 없다고."
"아가씨는 명문가의 트레이너시니까 잘 이해 못하시겠지만, 그렇다고요. 나같은 녀석은 신경 쓸 수 밖에 없다고."
>>612 "후후, 알겠답니다. 히다이 트레이너 님. 부탁을 들어주셨는데 이 정도를 못 따를 리가 있나요. "
호칭의 구분을 확실히 하는 것은 미즈호 쪽 역시 마찬가지. 평소에도 ~님이라 꼬박꼬박 붙여 부르는 미즈호가 이름을 부른 것은 명백한 도발이 맞았다. 하지만 이쯤에서 굽혀야 할 것은 굽혀야 하기에, 미즈호는 흔쾌히 알겠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간절함이 있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니시카타 미즈호가 아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히다이 트레이너 님. 그때 그 기둥서방? 고백은 조금 많이 과하지 않았는지 싶답니다? " "다음에 정말 좋아하는 분께 고백을 하시게 된다면 그런 멘트는 절대로 쓰지 않으시는 걸 추천드리어요? "
그래도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할말은 한다. 니시카타 미즈호는 참지 않는다. 확실하게 해두자는 듯 이렇게 되물어보이기까지 하였다.
"아무튼간에 두 가지, [ 니시카타 미즈호는 5kg도 들지 못할만큼 약해졌다 ] , [ 니시카타 미즈호가 밥을 먹지 않는다 ] 는 소문은 확실히 퍼트려 주시는 것이지요, 히다이 트레이너 님? "
오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 미즈호는 이 날조만은 확실히 정정하고 싶었다. 193kg이 뭐냐 193kg가!!!!!!
지붕 달리기에서부터 많이 먹기, 물건 찾기 경주까지. 다사하고 떠들썩한 운동회도 마지막 행사를 기점으로 폐막에 가까워 간다. 경기가 끝난 뒤 달팽이를 원래 있던 장소에 풀어주는 데에(벌들은 어떻게든…… 피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꽤 많은 시간이 들었던 모양이다. 돌아와서 보니 이곳저곳 분주히 정리하는 인원들로 붐비고, 학원은 서서히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아직 트랙은 쓸 수 없는 상태고 오늘은 더 해야 할 일도 없겠다, 정리에 방해 되지 않도록 비켜 있어야겠다. 그렇게 학생과 관계자들이 다니는 동선을 피해 가다가…….
"……흐잇."
갑작스레 들려온 확성기 소리에 쭈뼛 놀라고 만다. 부끄러운 소리를 내 버려서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들은 사람은 없는 듯해 슬금슬금 그리로 향했다. 앗, 빵이 많이 남았구나. 사실 메이사 도넛 외에 다른 맛도 꽤 궁금했던지라 반가운 이야기다. 쭉 쌓인 도넛 무더기 중에서 제 도넛의 비율은 적어 보였다. 하긴 수상할 정도로 내 빵이 많았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미다레 도넛'에 관해 생각하자니 괜히 또 부끄러운 기분이 되어서, 마사바와 언그레이 도넛을 들고 자리를 떴다. 얼마나 가져갈지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지만 너무 많이 챙겨가기엔 조금 미안해서다.
도넛은 음식만 아니었다면 소장하고 싶어지는 비주얼이었다. 이런 모양 굿즈가 나와서 꽤 수요가 있을 것 같은데. 사미다레는 이내 도넛의 사진을 찍어서 마사바와 언그레이에게 각각 따로 메시지를 보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