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5 모든 던져지는 칼날을 고스란히 그대로 받아들인다. 가만히 붙들린 채로 히다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당연히 실망했을 것이다. 실망했을 수밖에 없다. 중앙에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의 찬사는 [ 실체 ] 를 안 순간 반대로 뒤집힌다. 간신히 시선을 맞추고 있는 상태로 말을 꺼낸다. 밝게 빛나던 보랏빛은 더이상 없다. 탁한 보랏빛만이 갈색 눈을 마주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상처라.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은 더 큰 상처로 다가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상처, 그러나 그 상처는 전부 다르다. 모양도, 깊이도. 얼핏 보았을 때 비슷하게 생긴 상처더라도, 상처 입은 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비슷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완벽히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니 당연히 완전한 공감도 없다.
"그래도 그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레이니를 못 봤겠네."
이건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너에게 힘들고 슬펐던 일들이, 나와의 만남으로 감사로 화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 시련과 고통이, 지금의 나와 만나기 위한 길이었음을. 이 자리에 오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단무지가 들어간 게 있긴 한데, 확실히 생각하던 단 것과는 좀 다르지, 암." "그 정도야...? 그래도 자신있는 요리(?)인데, 나름..."
도시락을 싸준다니 기쁘긴 하지만, 그렇게 별로인가 싶어서 가만히 주먹밥을 내려다 본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레이니가 주먹밥을 또 하나 들어 먹는 걸 보곤 진심으로 별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지만.
"으음... 큰일이네."
이쪽은 보고 있는 대로 얘기하는 건데, 역시 좀 무리인가... 다이고는 눈을 질끈 감은 레이니의 머리에 손을 올려서 부드럽게 쓰다듬으려고 했다.
>>0 오늘은 또 어떤 가십거리가 있길래 그럴까. 모여있는 다른 아이들 뒤로 다가와 게시판을 보면, 붙어 있는 규탄문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읽는다. 사랑 이야기는 그 시작이나 끝이 아름답고, 애틋하고, 슬프기도 한 각자의 드라마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교사와 학생이라니. 이 얼마나 위험한 이야기인지. 중간에 토끼 패턴 마스킹 테이프가 붙어 있어 그 뒤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나, 뜯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깨만 으쓱인다. 그렇게 여기에 적힌 교사와 학생이 누구일지 궁금해하며 마미레는 서로 추측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대화를 재밌다는 듯이 듣는다.
하지만, 이루기는 어려운 꿈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는다. 그야... 개선문 상이다. 파리 롱샹에서 열리는, 세계의 최강들이 달리는 곳. 간다 하더라도, 한명 정도가 최대겠지.
"... 의지는 강하제. 그거는 맞어야. 하지마는... 하하..."
씁쓸하게 밖을 본다. 한계를 정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그저, 이것이 전략 게임이라면, 자신의 실력에 맞는, 최선의 수를 두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백조가 떠 있는 물 속의 발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였다.
"... 썰매끌기를... 어릴적부터..."
"... 북쪽 출신인가벼...?"
꿈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그만둔다. 자신에게도 꿈이 있었지만... 사실, 그런 꿈을 꾸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했을 뿐, 그 뿐인 이야기일 뿐이다. 중앙에 가지도 못한 주제에 클래식에서 삼관 비스무르한 것을 따겠다고 사카나 삼관을 노리고 있었을 뿐인, 그저 그런 이야기. 세계최강이 되고야 싶지. 하지만, 지금도 자신에게는 충분히 기적인것을.
"... 역시, 니는 대단하구마. 내는 꿈도 못꿀 이야기들이여."
"그것만 혀도, 이미 강한기라. 그 전에도 니는 이미 강적 안에 들어가 있었고 말이제."
"글고... 정면서 힘겨루기를 하므는 내 여기 있는 전부한테 질끼 분명헌디. 아마 토레나 중 몇명헌티도 지지 안하겄나."
"... 내가 그나마 괘안아 하는거는... 철저히 분석해가꼬... 약점을 찌르는 거. 그정도 뿐이라."
"... 그러이... 이 자리서 기다리고 있으께, 니가 오는 날을."
..이와시캔에서 승리를 했을때부터, 그 자리에 앉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진 것이였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 맞게 웃어보인다.
진심이라는 말에 사미다레는 배시시 볼 붉히며 웃는다. 운동뇌가 켜져서 자꾸만 비장해지려고 하니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다. 지시하는 내용만 아니었다면 평소처럼 수줍게만 보일 얼굴이었을 텐데. 메이사가 앓는 소리를 내니 금세 마음이 약해졌다가도, 싫은 소리 하면서도 순순히 매트로 가는 모습에 얼굴이 활짝 편다.
"복근이 있어야 몸의 균형이 잡히고, 다리를 움직일 힘도 생기니까?"
그걸 물은 게 아닌데도 원론적인 답변이 나왔다. 사미다레의 성격상 놀리려는 게 아니고 진심으로 한 말이었으리라. 그리고 어째, 운동 시작하니까 평소보다도 더 쌩쌩하고 생기 있어 보이기도 하고. 사미다레는 메이사가 마지막 동작을 멈추는 타이밍에 맞추어 스톱워치를 켰다.
"응, 수고했어. 휴식시간 50초. 이 다음은 케틀벨 들고 슬라이드 사이드 런지."
그러니까 허벅지 안쪽과 엉덩이를 조지는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사미다레는 메이사에게 그리 말하곤 저 역시 앉아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한편 있는 우마무스메용 케틀벨을 가리키며 눈을 빛내는데, 유감이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미다레의 머리에는 그저 친구와 트레이닝을 해서 즐겁다는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842 "......사바 캔이 끝난 이후에, " "그 아이에게, 안에 있는 인형을 꼭 전해주세요. " "그것만 해주신다면, 뭐든 어울려 드릴 테니까........ "
그래, 울고 있어 보았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 우니상이 코앞에 있고, 가장 중요한 아이들의 첫 발짝이 이제 시작되려고 한다. 비록 봉투 안의 [ 추천장 ] 과 [ 이적 처리서 ] 는 파쇄되겠지만, 이것만큼은 꼭 전해주고 싶었다..... 떠나는 히다이를 향해 니시카타 미즈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려 하였다.
"....폐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히다이 트레이너님...... "
최악의 기분인 것은 한 쪽만이 아니었다. 처참한 기분인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견뎌내야 한다. 가라앉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앞에 놓여진 아이들을 위한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