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인간이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사실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달리고, 쉬기를 반복하며 수 백 번 근육을 혹사 시키면 그래도 재능이 있는 녀석들의 ‘보통’수준에는 도달 할 수 있다. 차라리 죽고 싶어 지더라도 견딘다. 훈련을 멈추면 그대로 밀려나버리기에. 어리석은 거인은 그저 걸을 수 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달리는 것이 좋았다. 정확하게는 그저 경주가 좋았다. 다른 녀석들보다 조금 빠르게 커서 얻게 된 조금 좋은 신체조건 때문에 나가는 레이스에서도 대부분은 상위권의 성적이었으니까. 이기고 나면 칭찬받는 것이 좋았다. 하나 둘 다른 사람들을 지나쳐 갈때마다 하나씩. 나에게 자신의 꿈을 맡겼고 나 역시 전력으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진학을 할 수는 없다 들었다. 아마도 중등부에 진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받은 진로상담에서. 생각해보면 얼마 전까지 초등학생이었던 녀석한테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쓰레기 같은 교사였네. …그래도 그때까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모두가 나에게 기대했으니까.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았으니까.
죽더라도 트랙 위에서 죽을 것이다. 나는 평생을 경주 우마무스메로 살아갈 거라고, 막연하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성적 따위 아주 조그마한 계기로도 바뀌는 법이다. 어느 순간부터 키가 크지 않게 되었다. 근육도 잘 붙지 않았다. 끌어야 하는 중량은 조금씩 늘어만 가는데 나의 몸은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안된다며 선을 그었다. 동기들이 좋은 성적을 내며 하나 둘씩 데뷔를 위한 준비를 해나갈 때에도 나는 그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채로 그 자리에 서있을 뿐. 그저 서있는 채로 내가 빛날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악에 받쳐서 소리칠 뿐.
슬럼프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태한 탓에, 남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거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나를 택했던 트레이너에게서 버려지고 홀로 고독하게 깎아내는 길. 달리고, 쉬고, 달리고, 쉬고. 지쳐서 쓰러지는 것 만을 훈련의 종료 선언으로 삼아 만들어낸 몸은 단기간의 휴식으로 회복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있었다. 그저 쇳덩이로 된 썰매를 끌고 달릴 뿐. 쓰러지면 눈을 붙였다. 중등부의 수업은 버려도 된다. 나는 최강이니까. 나는 최강이다. 매일같이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반복한다. 트레이너는 더 이상 없으니 그저 나의 감이 닿는 대로. 그런 막무가내인 훈련 탓에 아침이 찾아오는 것이 싫어 질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더양은 체구가 작은 편이라… 아무래도 이 이상은…”
그 날 나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던 탓일까. 아니면 그 의사 선생도 망설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일까.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달리는 것만이 나의 인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다른 길 따위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거리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조금 그리운 향기와 행복해보이는 사람들의 얼굴. 그게 보기 싫다. 누구는 인생이 끝나버렸는데. 뭐가 그렇게 즐겁다고. 적어도 동정하란말이다. 빠르게 지나쳐가는 거리의 풍경을 뒤로 하고 그저 소리만을 질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무엇인지 말로 나오지 않았다. 살짝 올라오는 격한 호흡. 온 몸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제한 속도마저 무시하고 긴장한 채로 전력 질주하며 그저 내 안의 고통을 내뱉었다.
“…그래서 여기로 온거냐.”
도착한 것은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그래, 분명 트레이너이니 무엇이라도 해줄 말이 있을거라고.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가족이라면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관둬라. 몸 상태가 그 따위인데. 나보고 손녀를 죽이라고?”
저는 꿈을 향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래. 꿈을 쫓다가 죽지 마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해.”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팔도 다리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야. 근육 상태가 이 꼬라지인데 반에이? 자살이다 그건. 뛰는 건 고사하고 팔도 다리도 두 번 다시 못쓰게 될걸.”
…그러면 그러면 왜 나는 꿈을 꿔야 하나요. 이놈이고 저놈이고 당장 몇 년 전만해도 나에게 꿈을 맡기느니 헛소리를 해서 기대하게 만든 주제에.
“포기하라고는 하지 않았어.”
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근육이 잡힌 다부진 몸. 입고있는 하카마 탓인지 더욱 크게만 보였습니다.
“원더야. 너는 어떻게 되고 싶니.”
모르겠습니다.
“꿈을 향하고 싶은 것이 아니냐.”
“너의 꿈은 저 따위 작은 경기장에서 썰매나 끌다 끝나는거냐?”
…물론 아니었다. 예전에는, 정말 에전에는 반에이가 아니라 일반 경주가 더 좋았으니까. 하지만 적성이라는 것이…
“적성이라는 틀로 꿈을 포기한 건 아니냐? 게다가 멋대로 남이 쥐어준 꿈을 끌어안고 있다가 녀석들이 다시 가지고 돌아다니 장난감을 빼앗긴 개처럼 끙끙대는 건 아니고?”
“너, 재팬 컵에 나가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느냐.”
머리가 복잡해졌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예전에 들은 말을 기억한다.
[트윙클 시리즈? 그 따위 커다란 몸으로 나가고 싶다… 현실적인 꿈을 꿔야지. 다른 녀석들 다리라도 부러뜨리게?]
그래, 안다. 나는 그런 건 하면 안되는데.
“…표정을 보니 알 것 같구나. 중앙에 넣어줄 수는 없지만 지방이라면 어느정도 연이 있는 곳이 있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당신도 제멋대로 나에게 꿈을 맡기는 건가.
“너는 뭘 하고 싶냐.”
“…달리고 싶어요.”
“그럼 달리면 된다. 동경의 대상이 되지 말거라. 잃는 것이 더욱 많으니까."
...다시 한번 해도 되는걸까. 정말로. 이번에야말로 그냥 나만을 위해서 달려도 되는걸까.
“할아버지.”
“왜 그러냐.”
“나 타카라즈카에 가고 싶어.”
“어렵겠구나.”
“재팬컵도 내가 먹는다.”
“힘들겠지.”
“그리고 개선문으로 갈 거야.”
“불가능에 가까워.”
많은 우마무스메들이 꾸는 평범한 꿈이 이런거라면. 아무것도 아닌 나라도 꿈을 꿔도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