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이사가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두는 걸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다. 어린 애를 돌봐보면 알겠지만, 그런 도망칠 구멍을 모조리 막고 추궁해봤자 돌아오는 건 신뢰를 깎아먹는 일이니까. 그러니 새끼손가락에 지장까지 찍고나서는 빙긋이 웃으며 침대에 벌렁 드러눕기로 했다.
"아―앙 해줘."
메이사가 무려, 토끼사과를 깎아서 포크로 찍어 내밀어주기까지 하는데 '아―앙 하세요' 라고 해달라기까지 하다니 이 무슨 몰염치! ...알고있습니다. 알고있으니까요. 그냥 말해본 거였어요. 그렇게 말만 해놓고 포크를 받아드는 거 보면 아시겠죠? 그 정도 염치는 있다니까요.
사과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제법 깎네..." 라고 혼잣말하고, 와삭와삭 먹고 있다보면 귀도 꼬리도 풀이 죽은 메이사가 물어온다. 기억은 괜찮느냐고. 음... 어떤 평가였냐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괜찮다는 거야. 근데 좀 어려운 말이 많았지." "뇌■■를 너무 남용했기 때문에 ■■의 힘이 몸에도 영향력을 끼친 것 같다나, 이제 몸도 마음도 ■■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해놓는게 좋다나, 하지만 더 이상 필멸자가 치명상을 입힐 일은 없다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낅?!그욱,시이이잇,이카아하아아브호이이위자예이, 그런 말을 하더니 어디론가 실려갔어."
다른 이유로 입원했더라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래도 하마터면 잘못될 수 있었던 만큼 선물은 준비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히다이의 취향 같은 걸 물어본 적은 없었던지라 선물을 좋아할지는 모른다는 게 문제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식탁 쪽으로 간 히다이를 보다가 시선을 다시 튀김으로 돌린 다이고는, 남은 튀김이 전부 튀겨지자 남은 기름을 빈 용기에 부어두고, 키친타올로 남은 기름기를 닦아내는 등 뒷정리를 했다.
"오래 기다리셨슴다~"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어쨌든, 접시에 담긴 새우튀김을 들고 식탁으로 걸어온 다이고는, 식탁 위에 접시를 올려놓은 뒤 잠시 침실 쪽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손에 들린 것은 적당한 크기의 상자 하나와, 작은 상자 하나.
"먹고 볼래, 아니면 지금?"
식탁 옆에 상자를 내러놓고는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는 다이고.
"미리 어떤 걸 좋아하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그냥 내 임의대로 준비했어."
아-앙 해달라는 말에 '아? 진짜 머리 심하게 다친 거 아님?'하는 눈으로 보다가, 그래도 포크를 받아드는 모습을 보고 살짝 안심. ..아니, 그래도 입원까지 시켰으니 한 번은 해주는 게 나은가? 다른 포크를 꺼내 또 토끼사과를 하나 찍고, 몬다이가 다 먹을 즘 내밀었다.
"진짜... 이번 뿐이니까. 자, 아— "
이번만 해드리는 겁니다. 퇴원하고서 또 요구하면 그땐... 하아. 어쩌지. 폭력은 못 쓰겠고.... 신체적 폭력 대신 사회적 폭력을 쓰는 수밖에 없나..(?) 아무튼 뭔가 미안함이라던가, 그래도 부끄럽다던가, 살면서 소꿉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런 걸 해주다니 처음이라던가 이런저런 감정이 섞여서 아마, 어떤 표정일지 모를 얼굴로 몬다이를 향해 사과를 내밀었다.
근데 그 ■■라던가 이카아하 어쩌고하는 말들은 대체 뭐야... 누가 실려간건데... 누군데.... 이 병원 괜찮은거 맞냐고....
왓, 상자가 두개나. 마음같아서 당장 두개 모두 뜯어보고, 크리스마스를 맞은 아이처럼 기뻐하고 싶지만, 튀김의 유통기한은 온기가 있을 때까지. 시시각각 맛의 수명이 줄어들고 있는 지금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튀김이 맛있을 때 먹어야겠지. 그래야 제대로 만들었는지 확인을 할 수 있으니까..."
라고 대답했다. 정말로, 피눈물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의 새우튀김(질투의 누아르 튀김이다.)과 다이고의 새우튀김 두개가 완성되었다. 황금빛을 내보이는 모습은 예술처럼 보이기까지 했고, 자취방 조명 아래에서도 영롱하게 빛났다. 씹어보면 하 후 하 후 소리가 절로 나는 따끈함. 입안에 아직 버겁게 뜨거운 새우는 알이 탱글하고 고소했다. 카사삭, 하고 씹히는 튀김옷은 입안에 들어갔어도 아직 그 힘을 잃지 않고 식감의 킥을 담당했다. 온기와 새우, 튀김옷의 합작. 한 단어로 말하자면 그거지.
"극락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 다이고의 것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굳이 집자면 튀김옷 모양의 균일함 정도인데, 원래 손으로 만드는 것은 완벽하면 재미없다. 저쪽이 더 사랑스럽다고 할 수 있겠지.
이제는 정말 벼락치기뿐이라. 아는 것이 하나 없으니 전날 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웠고, 그에 한숨도 제대로 잠을 못 잔 것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피곤해 보이는 모습으로 -눈 아래 진 그늘이나, 어깨가 축 늘어진 것이 평소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비척비척 도서관으로 걸음을 옮기던 마미레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피로에 근처 벤치에 쓰러지듯 누워 버린다. 그러며 책이 담긴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고, 교과서며 노트며 쏟아지는 것이지만. 그걸 다시 주워 담을 기운조차 없고.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아니 이왕 공부를 시작한 김에 제대로 하여 끝을 보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당장 내일인데 미쳤냐 하며 어떻게 할지 결정도 못 내리고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결국 밀려오는 피로를 버티지 못하고 마미레는 그대로 눈을 감고 졸기 시작한다.
"큰 수술이 있던 것도 아니고, 이것도 학원 산재로 처리한 거라 바로 내일쯤 퇴원이야. 시간 잘 맞춰 온 거지, 네가."
그리고 내가 빨리 퇴원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요양할 거면 집에서 하고 싶었다. 병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메이사가 내미는 사과를 먹으려다 그 '으으, 빨리 먹으란 말이야 허접트레이너 나에게 이런 일을 시키다니 이번뿐이야 모오 바카' 하는 얼굴을 잠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 이것도 극락이네요!!!
하지만 너무 놀리면 이젠 주먹이 나올 것 같으니 잠자코 받아먹었다. 아앙도 한 입이면 족하고 나머지는 내가 하겠다는 듯 포크를 빼앗아왔다.
"...그러고 보면 네가 팀 프러시안이었던가."
요즘은 우마무스메 버닝 기간, 말하자면 탐문수사에 힘쓰는 주간이다. 거기에 마침 곤란한 인간과 깊게 엮인 사람이 있고, 없다곤 했지만 나에게 빚을 졌으니 지금 아니면 물어보기 어려워보였다.
"메이사, 넌 니시카타 트레이너를 어떻게 생각하냐? 별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이유야 물어보면 못 가르쳐......줄 것도 없긴 하다만, 이녀석은 어쩐지 소문의 유통을 잘 시켜줄 것 같단 말이지.
츠나지 어딘가에 위치한 이자카야. 츠나센 학원의 트레이너들은 이곳에 모여 회식을 하고 있다. 단순히 친목을 도모하기 위함인 경우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특정 대상을 위해서 모이게 된 회식이였다.
불과 며칠전에 있었던 G3의 이와시캔 레이스. 1착의 주인공이였던 언그레이의 담당인 야나기하라 코우 트레이너의 축하회다. 트레이너끼리는 결국 경쟁 상대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우마무스메가 중상 경기에서 이겼다는 사실은, 축하할만한 일이였으니. 트레이너들은 어른이였기에 그것과 이건 다른 것이라 여겼다.
다만, 몇몇은 그 햐쿠모 마리야가 이 회식에 참석할꺼라고는 감히 예상치 못했겠지. 그녀의 면모를 그다지 잘 알지못하는 몇몇 트레이너들은 그에 동의했다. 반면에 마리야와 회식을 가졌었던 트레이너들은 참석할만도 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오늘의 주인공은 코우였기에 아마, 그의 건배사가 시작되면 다들 오늘의 축하회가 시작될 듯하다. //건배사!
벤치에 누워있는 우마무스메, 그 아래에는 떨어진 가방과 원래 가방 안에 있었을 교과서와 노트들이 흩어져 있었다. 뭐야. 누가 습격이라도 했나? 우마무스메를 습격하다니, 설마 요즘 소문이 돌고있는 수상할 정도로 힘이 센 히또미미 괴한 같은 거라도 나타난건가? 츠나지도 많이 흉흉해졌네...
"다친 곳은 없나...? 어-이. 괜찮아?"
벤치에 누운 우마무스메를 이리저리 보지만 일단 눈에 띄는 외상은 없는 느낌이다. 음, 뭘까. 일단 일어나라고 부르는 겸, 괜찮은지 확인 겸 좀 큰 소리로 불러보면서, 아래에 쏟아진 책과 노트를 주섬주섬 모아서 털어 가방에 넣는다. 뭐 일단 정리는 해둬야.. 나중에 일어나서 가져가기 편하겠지.
"저-기-요. 어디 다친... 아니, 자는거냐!"
나니와한테 옮은 걸까. 츳코미가 나와버린다. 아니 그치만 이 우마무스메, 책을 뿌려놓고 졸고 있다니 이상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