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할 대상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아니, 같은 게 아니라 그런 뜻이 맞지. 아무튼 그 말을 들으니 또 잘못했나 싶어서 귀가 더 아래로 향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어떻게든 옷소매로 훔쳐본다. 평소랑 다른 분위기라서 무서워, 내가 잘못한 일이 맞아서 더 무섭고, 저번에 다리를 걷어찬 거 사실은 용서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 같아서 더욱 무섭다. 하또, 미안. 하또가 해준 조언 하나도 소용없게 되어버렸어....
"....."
옅고 짙은 색만 있는 바닥만 비추고 있던 시야에 좀 더 진한 색의 그림자와- 조금 다른 색의 인영이 들어온다. 잠깐 앉을까?라는 말과 함께 잡힌 손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아니, 손은 딱히 거칠게 잡힌 것도 아니고,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지만 아무리 나라도 이 상황에서 손까지 뿌리치면 사태가 어떻게 악화될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다.
"...죄, 송해요. 저번에, 다리, 걷어차서... 오, 옥상도 몰래, 올라와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섞인 사과를 하면서 잡히지 않은 손으로 연신 눈가를 닦아냈다. 다리를 다치게 한 것에 대한 사과, 이런 상황이 아니라 더 일찍, 좀 더 다른 상황에서 말하고 싶었는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이렇게 되니 얼결에 사과했다고 생각하면 어쩌지?하는 불안이 생겨버린다. 사과를 하는데도 또 불안해진다.
메이사가 손을 뿌리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볍게 손을 쥔 채 옥상 벽 쪽으로 걸어가 앉는다. 햇빛에 적당히 달궈져서 따뜻한 느낌이 옷 너머로 전해져 온다. 솔직히 옥상에 올라오는 것 자체로는 그다지 심하게 통제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느낌이라는 게 지나 보면 하나하나,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소중해서.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시간을 빼앗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바닥 따뜻하다, 그치."
그런 의미에서 조금 분위기를 환기시켜 보려고 그런 감상을 입 밖으로 내 본다. 쉽게 기분이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지만.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됐어, 메이사."
굳이 말하지 않아도 미안해한다는 것 쯤은 알았다, 그러지 않았으면 매번 수고스럽게 데리러 오거나 하지 않았겠지. 단순히 체력이나 신체적 스펙만 따져 보자면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아직은 여린 여자아이였다. 사과라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 참에 조금 바뀔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 다이고는 앞에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어간다.
"그렇게 직접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나는... 말할 때까지 기다릴 자신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하라고 재촉하고 싶지는 않아."
억지로 시키는 것 같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일인지 정도는 아니까.
"...그러니까 내 다리 관련해서는 그만 생각해도 돼, 옥상도... 어쨌든 잘못했다는 생각 하고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그래도 여기서 벌어진 일은 확실히 해야 돼, 사람은 연약해, 메이사."
솔직히 말하면, 기저에 공포가 깔려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잘못하면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조금만 수틀려도 목숨을 위협 받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큰일이 날 뻔 했으니, 피해자에게는 극심한 트라우마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아서...
이어지는 유키무라의 말에, 레이니는 황급히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말하며 고개를 급히 가로젓는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절대로. 나와 너는 자석의 양 극처럼,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주보는것 까지는 못 하지 않으니까,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친목을 다진다거나 하는, 이 나잇대의 사소한 일도, 이상하거나 한 건 아니잖아.
“...지금은 그래도, 언제 끊길지 모르는 관계니까. 응. 내 짜증같은거, 언제까지나 버텨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더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고.”
언제까지나, 옆에 있어주는 사람 같은건... 환상이잖아. 그 시라기 다이고도, 내가 달리기를 그만두면, 자신의 삶을 살러 갈텐데. 끊임없는 자괴감의 스파이럴이, 또 다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직까지는, 별 일 없어.”
그런 의미에서, 흔쾌히 놀러나가자고 제안을 하는 당신의 말은, 너무나, 기쁘다. 레이니・왈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유키무라의 손을, 꼭 잡았다.
“좋아. 나, 츠나지는 모르니까. 모모카가 에스코트 해줘야겠지만. 대신, 밥 값이랑 커피 값 정도는 내가 다 낼게.”
이런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고양이의 기분을 알 것 같다는 소리를 하며 쭉 늘어져 있을 정도로. 햇빛을 머금은 바닥은 따스했고, 바람은 적당히 부드러웠다. 아니, 이런 상황이어도 바닥은 따듯하고, 바람을 부드럽다. 손에 이끌려서 옥상 벽에 기대앉자 조금은 진정된 느낌이 들어서-하지만 여전히 훌쩍임은 남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그건... 용서해주는거야?" "아니면 이제.. 됐으니까 말, 하지 말라는거야...?"
가장 무서웠던걸 결국 입에 올리고 만다. 됐으니까 말하지 말라는 것과 용서했으니 됐다는 말은 꽤나 차이가 있어서. 만약에, 만약에 용서한 건 아니지만 더하면 귀찮을 뿐이니까 됐다고 하는 말이면, 난 그건 너무 무서울 것 같아... 물어보지 않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혼자 불안해지는 날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하또가 한 조언, 완전히 소용없진 않을지도. 하지만 역시 무서운 건 여전해서. 귀는 아래로 찰싹 붙어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꼬리도 다리 사이로 들어와 있었다.
".....그건, 알고 있는데..."
사람은 연약하다. 체력적으로도, 신체적 스펙으로도 우마무스메에 비하면 사람은 연약하기 그지 없다. 몇몇 아이들 중에서는 농담삼아(때로는 진지하게) '히또미미주제에 우마무스메에게 대들어?'같은 느낌의 말을 할 정도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때로는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때로는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배우면서 싫어도 알게 되는 사실이다. 그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데, 알고 있다고 말하기엔 이미 저지른 짓이 너무 크긴 했다. ....할 말이 딱히 없네.
용서라는 말이 좀 거창하게 들릴 때가 있어서, 되도록이면 안 하고 싶었다. 용서가 꼭 필요한 만큼 엄청 큰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메이사 쪽에서 먼저 용서해 주는 거냐는 말이 들리자 메이사에게는 직접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놓고 자신은 은근히 흘려 버릴 뻔 했다는 생각을 한다.
"용서했으니까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뜻이야."
축 쳐지다 못해 아래로 찰싹 붙어 버린 귀와 다리 사이로 쏙 들어간 꼬리를 보자니 조금 안쓰럽다.
"조금 걱정이 돼, 이번엔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하니까."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나버린다거나, 그런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피해자도 피해자지만, 그대로 메이사 프로키온이라는 우마무스메의 삶은 어떻게 될 지 상상이 잘 되질 않아서. 다이고는 작게 한숨을 쉬곤 턱을 매만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발차기를 막을 힘 같은 건 나한테 없고."
꼬리에 있는 리본을 보고 조심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나. 이런 생각도 평소에 아무 데나 발차기를 날리고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서 가능한 것이다. 욱한 건 맞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걸 믿고 있기 때문에 다이고는 조금 착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