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잠이 많은 아이라. 꼼작 못하고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에 마미레가 어떠했을진 뻔한 것이다. 수업에서 잠깐이라도 깨어 있으면 다들 신기해하고는 했었으니. 마지막으로 멀쩡히 꺤 채 수업을 받았던 것이 언제인지 가늠도 안 될까. 달리는 것은 좋아 했으나, 그 달리는 자세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이론을 알아가는 것에, 공부와 마미레는 친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 중간고사도 준비 하나 하지 않았으니. 금방 시험 기간이 코앞으로 닥치고 나서야 뒤늦게 책을 펼치나 문제집에, 교과서에, 노트에 모두 새것 같고. 그래도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찾아온 도서관에서 창가의 채광이 좋아 꾸벅꾸벅 졸아버리고 만 것이니. 마미레는 창가와 가까운 책상 위에서 엎드려 누운 채 졸고 있었다.
"그, 구, 굳이 나한테? 아니, 싫다는 소리는 아니고. 그냥, 나 말고 더 좋은 사람도 있을거고, 난 그냥 인터넷에서 배운 딱 그정도밖에 못하는... 그런 사람인데."
솔직히 말해서 기쁘기야 하다. 내가 다이고라는, 나보다 적은 시간을 보냈으나 더욱 밀도 높게 살아, 번듯한 결과물을 낸 사람에게 무언갈 가르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종종 시기를 하더라도 지금 당장 기쁜 건 진실이고 사실이다. 그야, 나 지금 귀까지 시뻘개져 있을 테니까.
들어봐,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라고 한다면, 그나마 두번째로 잘하는 게 요리니까. 이건 꽤 소중한 거였다고. 재기불능이라고 생각한 나에게 가족이 기회를 줬던, 그런 거라고. 사실 근데... 내심 생각했단 말야? 가족들이 내가 가족이니까, 구제불능이지만 용기내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억지로 즐겨주는 척 하는 거라고.
그래서 나와 깊은 연은 없지만, 소소하고 확실한 호의를 내어주기로 결정했던 바깥 사람이, 바깥 사람이 그걸 인정해주는 건... ...마치 내가 이 세상에 잘 녹아들고 있다고. 조금 실수는 했을지언정 잘 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기분이 들어서... 정말이지 기뻤다.
"고작 그 정도지만 좋다면야 당연히 가르쳐줘야지, 물론이고말고. 정말로. 나는... 그러고 싶은걸."
>>123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릇 이 시기의 학생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잠을 자는 것까지 과연 허용될까? 니시카타 미즈호가 졸고 있는 도로마미레를 발견한 것은 한참 읽을 책을 골라 앉으려 할 무렵이었다. 창가와 가까운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 거대한 무스메를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쉰 니시카타 미즈호는, 그녀의 정확히 건너편 자리에 책을 놓고는 도로마미레를 향해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였다. 만약에 이러고도 도로마미레가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면, 미즈호는 최대한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말을 꺼내려 하였을 것이다.
"자아, 아가씨. 괜찮다면 일어나 주시겠어요? "
책상에 놓인 것을 보자면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공부를 하다 졸게 된 것이겠지. 모든 우마무스메가 달리는 것만큼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계속 졸고 있는 것을 놔둘 수는 없기에 미즈호는 마미레를 향해 이렇게 말하며 깨우려 하였다.
이번에 걷어찬 것은 술냄새 담배냄새 아저씨냄새 풀풀 풍기는 귤박스 노숙자 아저씨— 가 아니라, 그 바로 옆의 바닥이었다. 터-엉하는 소리가 잠시 울려퍼졌다. 그리고 찾아온건 아마도 적막? ...그치만 진짜 사고가 맞았는걸. 아니, 사실 사고가 아니라.. 내 잘못이긴했어. 걷어차는 버릇을 제어하지 못한 게 내 잘못이지. 하지만 사실 우마그린도 쪼금 잘못 있.. 아니 따지고보면 내 오해가 맞긴해!!! 그래서 더 열받아!!!
".....흥, 권위 챙기려면 제대로 선생짓이나 하고나서 말하시지! 내 앞에서 한 짓이라곤 술냄새 풍기면서 귤박스 두르고 벤치에서 자려고 했던거랑 금연구역에서 당당하게 담배피우기 정도밖에 없으면서 권위는 무슨 권위!"
>>126 다른 학생들이 공부에 열심일 때 잠이나 자고 있으니, 이번 중간 교사 결과도 볼만할까. 생각이 있으면 당장 일어나 세수라도 하고 다시 집중해야 할 텐데. 지금 당장 마미레에게는 잠이 더 중요할까. 당신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어도 마미레는 아무런 미동이 없다. 그저 새근새근 숨 쉬며 자고 있는 모습만 가까이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에 당신이 말을 걸어오면 그제야 마미레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앓는 소리를 내며 잠꼬대를 한다. 느리게 실눈을 뜨고서 살짝 고개를 드니, 초점이 맞지 않는 카메라처럼 흐리고 묽은 시야에 눈을 깜빡이며 당신 쪽을 똑바로 바라본다. 다시 졸음에 빠져들지 않게 긴 하품을 하고서 온몸을 길게 늘여트린다.
"..... 도서관 닫을 시간이야?"
엄청 깊게 자고 있었으니. 그만큼 오래 자버린건지, 마미레는 그렇게 물으며 눈앞의 당신이 누구인지 살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죠? 왜 이런 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걸까요? 제가 부들부들 떨면서, 제가 저지른 일의 업보를 돌려받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무,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라고. 하지만 어쩐지 도시락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도시락 말인가요. 도시락, 맞아맞아, 제가 다이고한테 손수 반찬을 싸주고 있거든요. 그렇게 되기까지의 스토리가 얼마나 눈물겨운지. 아, 이거 진짜 맨입으로는 말 못하는..."
...기백에 눌렸다. 교섭은 제안하기도 전에 실패했다.
"...건데, 특별히 말해드릴게요.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대충, 그 녀석이 급식을 주로 타먹었는데 나와 어울리다보니 도시락을 사먹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도시락이라는 게 꼬라지가 정말 끔찍해서, 정말 끔찍해서(나는 이부분을 아주 그로테스크하게 서술했다...)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박살난 단탄지, 맛의 개념이라고는 전혀 챙기지 못한 레토르트의 무언가! ...나는 이미 가족들의 도시락을 싸주는 담당이었으므로 1인분 늘어나는 것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