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어장은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수합니다. ※ 일상과 이벤트는 이 곳에서. ※ 수위 규정 내의 범죄 행위와 묘사를 허용합니다. 이전 재판장: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925066 휴게실(잡담방):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912077 시트 스레: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909080
“1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 2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하지 않는다,’ 3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를 거쳐, 이 죄인이 바란 소원은── “자신의 딸, 예담이가 좋은 부모 밑으로 입양되길 원한다.” “
“소원이 이루어지지는 못 했으니 죄인의 자식이 그 방에서 나오게 될 일은 없겠군요. 죄인이 딸을 만나러 갈지와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배심원들은 그를 용서해주었지만 그의 딸은 과연 죄인을 용서해줄지. 그 이전에 죄인이 딸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지. ... 가끔은 모호하게 남기는 것도 즐겁겠죠.”
“1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 2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 3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를 거쳐, 이 죄인이 바란 소원은── “세이카와 함께 해외에 나가 살기위한 행정적인 절차나 금전적인 도움 등을 처리해주세요.” “
“행정 처리와 금전적 지원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해외에 나가는 정도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죄인이 과연 그 ‘수단을 가리지 않는’ 수단을 계속 사용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소원으로 바랐던 것만큼 풍족한 여행은 되지 못 하겠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즐기리라 예상해봅니다.”
“1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 2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 3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를 거쳐, 이 죄인이 바란 소원은── “언젠가, 다들 행복하게 재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
“... 소원이 왔을 때부터 딴죽 걸고 싶었는데, 이건 오히려 소원이 이룰 수 있는 조건에서 실행이 불가능한 소원 아닙니까? 누구 하나 죽어야지만 소원을 이뤄드릴 수 있는데요. ‘죽은 사람 빼고 다들 행복하게 재회하기를’이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오히려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된 지금이 이 소원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겠군요. 아무쪼록 바라는 소원을 위해 힘내보시길 바랍니다.”
“1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 2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 3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를 거쳐, 이 죄인이 바란 소원은── “범행 이전과 같은 삶을 살고싶다. 면허의 복구를 비롯 계좌압류해제등의 사회생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
“개인적인 감상으로 ‘감히?’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힘내서 참았습니다. 미카엘, 기특한 저를 칭찬해도 좋습니다. 아무튼...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 의사 면허는 물론이고 쌓아온 부도 되찾기 힘들 터.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쌓아나가야 할 상황이 되었겠군요. 그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죄인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모래성이 지어질 확률이 조금 더 높지 않겠습니까.”
“1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 2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하지 않는다,’ 3심에서 내려진 판결 ‘용서한다’를 거쳐, 이 죄인이 바란 소원은── “그 흑발의 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은 모든지 들어준다. 소원권을 넘기는 일이 되려나? 하하...” “
“심상 독백에서 자주 나왔던 죄인의 미련이로군요. 들어드리기 어려운 소원은 아니었지만 결국 밀그램 측에서 도와주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남은 건 죄인 스스로 이 아이를 찾아가는 것. 막이 끝난 뒤의 배우는 또 어떤 극을 펼쳐나갈지 참으로 궁금하지만... 구경할 수 없다는 게 슬프군요. 그렇게 생각하자면 판사석이 최고의 객석이긴 했습니다.”
“I heard you don't have the right to hurt me like the others 'Cause we're way too similar We're gunners in the rain. We decide which shot gets fired...”
“언제 봐도 넌 참 취향이 이상해. 죄인이 고통받는 게 그렇게도 좋더냐?”
태블릿의 노랫소리보다 저 잔소리가 더 시끄럽다. 짧은 발표가 끝난 태블릿을 사마엘이 다시 제 품으로 가져온다.
“원래라면 전원, 즉결처형을 외쳐도 이상하지 않을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죄인들을 모두 무죄로 풀어줘야 하는 간수장의 입장도 생각해주시죠. 높으신 분들의 뜻만 아니었어도 이런 촌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아직도 밀그램 시스템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게냐?” “살인에는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당연한 법칙 아닙니까.”
미카엘이 사마엘을 응시한다.
“이건 그 ‘절대적인 법칙’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텐데?” “이 곳에 모인 죄인은 전원 살인이라는 극악의 죄를 저질렀다. 그런 인간들이 외치는 유죄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하고 명백한 순수한 악일 것이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가려내기 위해 똑같은 범죄자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번 재판에서 죄인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죠. 이들의 무고함은 저지른 죄가 없기 때문입니까?”
“이 곳의 판결이 밀그램 시스템의 구조가 가진 결함 때문인지, 아니면 우연히 발생한 극단치일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 참고로 지금은 모든 표본을 아울러 통계분석이 37% 쯤 진행된 참이야.” “빠른 건지 느린 건지.”
질린다는 표정으로 사마엘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와 동시에, 사마엘의 시야가 점점 가물거리기 시작한다.
“뭐어, 결과가 궁금하다면 다음에 일어났을 때 살펴보도록 하게. 네가 다시 일어날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무래도 밀그램 시스템의 테스트 가동 결과를 보고 결정해야겠지.”
https://youtu.be/q3x5VXeGBXM ♪ Jack Stauber - New Normal ♪
Sunrise. It's time. It's time. Step out into the New Normal. Embrace the day with your new shape Goodbye to those who cannot join us Their voices are still heard in every word that we say As we blend into New Normal Familiar path, Different place You donned yesterday's smile to decorate your new face ...
(수려한 글씨로 당신을 위한 편지가 도달하였다.)
<After Act: Epilogue.>
친애하는 XX에게.
안녕하신가? 글이라도, 이렇게 그대의 이름을 칭할 수 있으니 기분이 묘하군. 물론 이제는 타인을 명칭으로 지칭하는 것이 퍽 익숙해졌으나, 그대의 이름은 다른 일이니까.
어디부터 시작할까? 일단, 이렇게 서면으로 근황을 전하게 되어 미안하네. 물론 아직도 그대의 번호는 가지고 있어. 저번처럼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거나 한 것은 아니야. (지금은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이나, 먼 곳, 낯선 곳에서 다니는 것도 조금은 익숙해졌으니.) 하지만 그저, 이런 시간이 지나도 손가락 타자보다는 글을 써내리는 편이 편해서 말이게.
익숙해졌다 해서 편해진 것은 아니지. 그렇지 않나?
이 편지를 받은 그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밖의 사람은 서면이 아닌 전자문자가 익숙하니, 이 편지를 들추어 보는 것은 막상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일 수도 있겠군. 아니, 애초에 이런 친필을 받아보는 것도 처음일 수도 있어. 하지만 편지를 멀리 보내는 것은 나도 처음이라 피차일반이야 . 첫 경험을 함께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
그대 또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있을까? 아니면 낯익은 공간에서 그리운 사람과 함께 있을까.
익숙한 길을 걸어 다른 장소에 도달했을 수도 있지. 세상에 변화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계절이 바뀌고 나뭇잎이 붉게 물들듯이, 나의 작은 상자 밖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가고 있었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마주하고, 그로 인해 변화가 찾아와. 그런 일은 언제나 고통을 오랜 친구 마냥 동반하고 오나, 그 또한 하나의 성장통이라 보니, 기껍지는 않다 해도 받아들일 수는 있게 되었네.
그렇게 우리 모두 씁쓸한 해돋이를 매일 새로운 사람으로서 질리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거겠지.
서두가 길었군.
나는 내일, '그 아이'를 만나게 된다네.
그래, 혹여 기억하나? 나의 심상독백의 살아있는 망령, 그 '흑발의 아이' 말일세.
그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손에 쥐게 된 계기.
공교롭게도, 내가 17살의 생일을 마주하는 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되었군. 철창 넘어, 어둠 넘어, 화면 넘어도 아닌, 동등한 공간에서, 동등한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되었어.
솔직히, 마음이 복잡해 무슨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군.
지금까지 좇아온 목표가 앞에 있는 일차적인 공포감이 있어. 하지만 그 외에도 말이야, 그 아이는 내게,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결국 어쩔 수 없다고 생각돼.
바깥세상의 주민이었고, 사랑의 피해자였으며, 동시에 나의 세계에 금을 낸 주범이기도 해.
가장 놀랐던 건... 그 아이를 찾고 있던 동시에, 그 아이도 나를 찾고 있던 것이었어. 이름도 모르던 자를 찾는 데에 성공한 것은 그 뿐이야.
하지만 동시에,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렸냐면... 글쎄.
나도, 그 아이도, 결국엔 망설이고 두려워했던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그렇기에 마주 보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하는 지 모르겠어. 너는 무슨 말부터 할까? 웃을까, 화를 낼까? 너는 그날 나를 보았지.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 내 마음에 뿌리를 내렸어. 너에게도 그러하지 않을까? 나는 너의 존재를, 내 마음의 기억을 마주 할 준비가 되어있나?
...어쩌다 가까워져도, 그런 상념에 마지막 한 발짝을 내딛기 망설여,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하던 나날들이야.
하지만 우리 둘 다 용기를 내어야 할 날이 오지. 그렇기에 이런 기적이 일어난 거라 생각해.
아마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 아이와 아주,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듣고 싶고 알고 싶은 게 아주 많아. 그 아이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질문이 있다면 그 또한 성실히 대답해야지.
그리고 길고 길 이야기가 끝나면,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 물어 볼 생각이야.
애정하는 그대,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몰라. 내가 무슨 존재인지도,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는 무엇인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 간의 경험 만으로 쉽게 답해 질 의문이 아니었어. 그들 모두 각자 각색의 답을 향해 턱짓하였지만, 납득도 그 이해도 나만의 숙제였으니. 그래서 나는 아직도 간단한 질문에 답도 못하는 머저리로서 나아가.
하지만 그대들이 힘써서 내게 무엇이 틀린 길인지 알려주었으니, 옳은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은 온전히 나의 일이자 책임이겠지.
그 과정에 얼마나 헤매더라도 - 그대의 존재와, 그대와의 기억이 나에게 힘이 돼.
답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힘이 필요한 일이니.
그리운 그대, 나는 기실 아직도 두려움에 휩싸이고 있어. 언제든지 무릎을 꿇어 주저앉아 모든 것을 놓아 웅크리고 싶어 해.
이전에는 '신의 그릇'에 맞지 않은 일이기에 꾹 참은 충동이야. 하지만 지금은... 글쎄, 그대들에게 미안해서 라도 버텨내고 있어. 그대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랑했던 자들에게.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아. 이 편지를 쓴 이유는, 그런 연유야 - 내가 더 이상 그 아이를 외면하고 도망칠 수 없도록. 흠, 이용당한 느낌인가? 심심찮은 사과를 표하지.
이곳에선 곧 해가 뜨는군. 그대가 있는 곳은 어떨까. 시차라는 것 또한 익숙지 않은 것이야. 그대가 편지를 뜯어볼 시간을 생각하면 더욱 복잡해지지, 안 그래?
뭐, 실로 긴 시간이었지만 - 그리하여 나는 나의 끝맺음, 혹은 새로운 길의 시작을 향해 달려 나간다네.
그대는 어떨까? 그대 또한, 어떠한 변화를 마주해야 했을까? 폭력적인 변화는 강제하는 면이 있으니, 아무리 피해도 다가오게 되더군.
후후.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일이야.
그러면, 여기서 편지를 끝마치지. 슬슬 손이 아려오기도 하고. 그래도 굳은살이 생기는 모습은 나름 마음에 든다네.
그러하면, 우리가 다시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만날 수 있길. 아니면, 안식의 어둠 속에서라도.
With the kindest regards - (가장 상냥한 안부를 전하며 - )
Yours sincerely, (그대의 진실된 벗으로부터.) Jejé Le Guin.
========
사박. 사박.
새하얀 눈에 나의 발자국이 새겨진다. 이제는 눈에 익은 그 모습은 아직도 너무나도 새로워, 작은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한다.
후우, 내뱉는 숨에는 하얀 김이 서려 안개처럼 사라진다.
몇 걸음 너머에 작은 인영이 서 있다.
그 아이가 서 있다.
아니, 아직도 아이기는 할까?
그 아이는 빈말로도 제제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 제제의 백금발 머리칼과 달리, 그 아이는 흑발을 고수하였다. 제제는 여전히 키가 작았으나 아이는 마지막 본 후로부터도 키가 훌쩍 커져, 이제는 제제보다 몇 뼘이나 컸다.
하지만 지금 보면,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다. 아니, 닮아지게 된 것일 수도.
마지막 보았던 긴 머리와 달리, 그 아이의 머리칼은 단정한 단발로 잘려져 있었다. 그와 반대로 제제의 머리카락은 길어져, 이제는 어깨는 훌쩍 넘은 길이로 찰랑거렸다. 그 아이의 몸에는 이미 나은 흉터의 흔적만이 보였다. 제제의 몸 또한, 이제는 생활의 자자한 생채기가 생겼고, 조금 거칠어 진 손에는 약간의 굳은 살이 생겼다. 그 둘은 넝마도, 화사한 예복도 아닌, 편안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 옷은 그 둘 모두의 몸에 잘 맞아, 너무 끼지도, 옷에 파묻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제 혈색이 도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 실로는 제제와 비슷한 나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 둘은 서서, 서로를 마주했다. 눈과 흐린 하늘의 새하얀 풍경에서, 그 둘의 존재는 너무나도 자극적인 색채의 존재였다.
처음 발하는 것은 아이였다.
"찾기 더럽게 힘드네."
그 아이가 처음 말을 건 적은 처음이라, 제제는 푸핫, 하고 웃었다.
"그대 또한 그리했고."
아이는 그 얼굴을 팍 구겼다.
"그 기분 나쁜 말투도 여전하고."
"입에 익어버려서 말이지."
우리 둘 다 그 시간이 아예 없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으니.
"근데 찾기 더럽게 힘들었던 건 사실이야. 찾고 있는 걸 알면 짱 박혀있지, 우크라이나는 또 왜 간 거냐?"
"동행인이, 함께 가자더군."
제제는 웃었다.
"...그리고, 그대도 나를 찾고 있으리라는 몰랐지."
대화의 내용만 보면, 그저 오랜만에 마주한 악우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 아이도, 제제의 손도 떨리고 있는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 아이의 거친 말투도, 더 끈적하게 제제의 혀에서 떠나지 않는 말투도,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이 두려움과 경각심에서 나온 행동일 것이다. 그 둘의 눈에 호의 같은 애틋한 감정 같은 건 없었다. 그럴 용기도 염치도 이유도 없었다.
제제가, 조용히 물었다.
"왜 나를 찾은 건가?"
아이는 침묵했다. 아이에게도, 그 이유는 복잡하였고, 하나로 줄이기 힘들었다. 앞에 만나면 금방 나오리라 생각했던 명쾌한 답은 어디에도 없어, 아이는 여전히 복잡한 마음을 지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그래, 그뿐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마주해 할 일은 그것이다.
일방적으로 말을 전하거나, 억지로 박제하는 게 아닌. 그러기에 제제 또한, 홀리듯이 답한다.
"나도."
이름을 알고 싶었다. 소원을 알고 싶었다. 그 시간이 어땠는지. 그 후로 어떻게 지냈는지. 내 죄에 대해 무슨 생각인지. 나를 원망하는지.
내가 죽기를 원하는지.
"응. 알아."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모래성의 꼭대기에서 갇힌 아이, 그 아래에서 숨이 짓눌려지던 아이, 그 둘이 동등한 눈밭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일단, 새롭게 자기소개부터 할까. 너, 내 이름도 몰랐다매?"
소녀는 아이의 웃는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햇살 아래 부나 끼는 흑발의 뒷모습 - 그와 대칭점에 서 있는 흐린 하늘 아래 화사한 미소는 똑같이 소녀의 시선을 앗아갔다.
"일단, 너부터."
"....나부터? 내 이름은 이미 알고 있지 않나?"
"하는 거에 의미가 있는 거야. 그것도 모르냐?"
푸핫, 제제는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그래, 그대 말이... 네 말이 맞아."
제제는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성장하였고, 제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아이의 문을 열어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던 제제와, 이제 그 아이를 찾고 찾아져 마주 보고 서있는 제제는 다른 인물인 거다. 제제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재촉하나 없이, 제제의 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