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 시간, 선명했던 색이 넘어간 햇빛 때문에 슬슬 색을 잃고 다소 탁하게 변해가고 있다. 해가 넘어갔다는 건 곧 퇴근을 할 시간이라는 것, 다이고는 어제의 경기 결과를 살펴보다가 시간이 된 걸 확인하고 트레이너실에서 빠져나왔다. 아마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랬다면 문단속을 하고 불까지 끈 뒤에야 빠져나왔겠지.
"어으, 쌀쌀해라."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목을 훑고 가자 소름이 돋아서 옷깃을 세운다. 깜빡하고 있던 스카프를 꺼내서 목에 감는다. 바닷바람 따라서 사정없이 펄럭이는 스카프가 날아가지 않도록 적당히 매듭지은 뒤에 그제서야 부지를 가로지른다. 학교 바깥으로 나오면 시내가 곧이고, 시내를 지나서 좀 더 들어가면 민가가 모여 있는 장소, 그 중에 하나가 다이고가 머무는 곳이었으므로, 다이고는 자연스럽게 시내를 지나가야 했다.
터덜터덜, 아무도 없는 트랙을 가로지르면서 멍하니 생각한다.
시내를 걷다 보면 이것저것 보게 된다. 열려 있는 가게들로부터 새어 나오는 빛은 슬슬 어두워지는 주변 때문에 두드러져서, 애초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음에도 따뜻한 국물이 맛보고 싶어져서 충동적으로 들어가 버릴 만한 가게도 주변에 모인 사람도 볼 수 있고, 단순히 용건이 있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별 의미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
이제 막 초입에 다다랐을 때, 다이고는 저만치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에 눈을 가늘게 떴다. 갈색 머리카락(사실 어두워서 명확히는 구분되지 않는다)과 사이드 테일(특징적 요소1), 노란 빛의 멘코(특징적 요소2)가 인상적인 우마무스메 같은데... 단순히 집에 가는 게 목적이었기에 느릿느릿했던 발걸음이 새로운 목표를 포착하여 성큼성큼으로 바뀌었다.
점점 진하게 물들어가는 하늘에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밤이 내려오고 있었다. 가장 밝고 가장 먼저 뜨는 별은 이미 지평선 아래로 숨어 새벽을 기다리고 있을 즈음이다. 이런 시간에 왜 밖을 돌아다니냐고 한다면, 글쎄에. 어쩌면 학교에 남은 찰렌타인데이 초코를 몰래 뿌리려고 들어온 걸수도 있다. 아니면 늦은 시간 라스트 오더로 들어온 주문의 배달을 마치고 느긋하게 돌아가는 길일수도 있겠지. 누군가에게 둘러댈 이유로는 이런 것들이 있겠다. 하지만 그 중에 정답은 하나도 없었다.
"......"
정답은 '스스로도 모르겠다'에 가까웠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어제의 경기를 보고나서부터, 혹은 그 전부터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마사바는 2착을 했었지. 방황하는 시선이 길을 훑고 가로수와 가로등, 그리고 하늘까지 거친 후, 발소리가 들려 귀가 쫑긋 움직였다. 츠나센 방향 쪽이다. ..에, 이 시간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있었다고? 순간의 의문보다도 빠르게 커진 생각은, 이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에~ 뭐야. 우마그린이었어?"
잔뜩 긴장한채로 발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쳐다본다. 드문드문 늘어선 가로등의 불빛이 그 주인을 비추자, 팽팽해진 긴장감도, 꼬리도 축 늘어진다. 뭐야. 아는 사람이잖아. 방황하던 시선은 우마그린에게 정박하고, 안도의 웃음이 흘러나온다.
해가 지면 보이는 풍경은 낮과는 다르다, 분명 같은 장소인데도내리쬐는 빛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보이는 것은 전혀 달라진다. 그저 빛을 받아들이는 게 달라지기 때문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달라지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열지 않았던 가게들, 밤에는 열지 않는 가게들. 낮에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조명들, 밤에만 볼 수 있는 빛들. 다이고는 가끔이지만 밤길을 걸으면 감성적이 될만 하다고 생각했다.
"앗, 들켰네-"
깜짝 좀 놀래켜 볼까 했는데, 역시 청력이 좋다고 생각하면서(성큼성큼 걸어서 발소리가 다 들렸다고 생각하지는 못하고), 안도한 듯한 웃음을 흘리는 메이사의 얼굴을 보고 웃고 만다.
"엉 그렇지? 내가 마지막으로 퇴근한 거 같긴 해, 어제 레이스 관련해서 확인해볼 게 좀 있었거든."
"뭐야~? 몰래 다가올 생각이었던거야? 발소리를 그렇게 크게 내면서?? 닌자 수련이 부족하잖아 허접그린❤️"
들켰네,라니 뭐야 그게. 그렇게 티를 팍팍 내면서 걸어왔으면서. 츠나지에 전해지는 어둠의 닌자 수련이 부족한 자로군. 히죽 웃다가 레이스 관련해서 확인했단 말에 살짝, 표정이 굳어졌을지도 모른다. 음, 그렇구나. 우마그린 트레이너니까.
"그렇구나. 고생이 많네. 나는..."
여기서 뭘 하냐는 말에 머리 속으로 준비했던(?) 변명들을 떠올려본다. 학교에 초콜릿을 뿌리러, 아니면 배달이 늦어져서. 가방을 들고 있으니 전자 쪽이 더 신빙성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손에 든 봉투를 보면 후자도.. 아니.. 배달을 안 가고 여기서 농땡이 피운다는게 되어버리나 그럼? 아주 잠깐만 고민할 생각이었는데 생각외로 침묵이 길어지는 느낌이 든다. 결국 다급한 마음에 급하게 둘러대게 되어버려.
"—글쎄, 그치만 딱히 상관없잖아. 내가 언제 어디서 뭘 하든 우마그린하고는 상관없지~"
그렇지않아? 우리는 전담 트레이너와 전담 우마무스메의 관계도 아니고, 사적으로 가까운 사이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닐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늦은 시간에 어디를 돌아다니든, 우마그린한테 혼날 이유는 없지!(?)
굳이 이렇게 베베꼬아서 말하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시간에 나와서 뭘 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니까...
"여기 걷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으니까 모를 줄 알았는데! 역시 인술을 배웠어야 했나..."
같은 실없는 소리를 하다가 이 시간에 뭘 하는지 이야기하려는 듯한 메이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금방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바로 들리지 않아 조금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을 때, 침묵을 깨고 들려온 뭘 하든 다이고와는 상관없다는 말에 순간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가 사라진다.
"뭣... 어떻게 그런 말을... 우리 같이 뛰기도 하고, 신사에 참배도 하고 부적도 사고, 붕어빵도 사서 나눠먹고, 초코도 같이 만든 사이 아니었어??"
잠시 잡혔던 미간의 주름이 무색하게 눈썹은 바깥으로 처지는가 싶더니 기운이 쪽 빠진 듯한 표정을 한 채로 그동안 같이 했던 일들을 줄줄이 읊는다. 특별한 사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친하지 않았나? 이게 결국 트레이너와 우마무스메의 간극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는 것 같은 표정에 느릿하게 뜨인 눈은 메이사가 아닌 다른 방향을 향했다. 딱히 뭘 보는 건 아니고 그냥, 다른 곳 아무 데나 시선을 뒀을 뿐.
"확실히 뭘 한다고 해서 내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긴 하지..."
결국 담당도 아니면서 뭐 어쩌라구요! 하면 할 말이 없다, 담당이 아니길 선택한 만큼 당연히 이런 상황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