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초콜릿은 간단하게 전해줄 수 있다지만, 문제의 큰 맘먹고 준비한 진심 초콜릿이 문제다. 그것은 이미 오스트리아에서 머나먼 9,151 km를 거쳐 이미 내손에 들려진 상자안에 들어있다.
막상 줄 대상을 구하자니 그렇게 원한을 가진 존재가 있냐고 하면 아니다. 분했거나 어쩔수 없는 갈등을 가졌던 것을 떠올리자면 후자는 아직도 매듭을 풀지 못하였고, 승부후에야 그 매듭을 풀 폭풍의 안쪽. 지금 그녀에게 건내주는 것은 그것대로 기름을 부어대는 행위니 나 스스로 판단해도 사양하고 싶다.
그렇다면 전자의 이야기인가. 지난번 트레이닝때 두번을 패배한 것은 꽤 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근데 그것만으로 진심 도전장을 건내도 되는것인가. 이 행사의 취지를 잘모르겠다.
"아."
그런 생각을 하고있자니 하야나미에 도착하였다. 왜 나는 밖으로 나왔는가. 전자의 분했던 감정으로 나는 이것을 내놓아도 되는것인가. 그런 생각으로 하야나미의 문을 연다. 일단 저녁시간대이고 배가 고팠기때문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쯤 자동적으로 입에서 나온 인삿말은 상대가 누구인지를 확인하자 좀 더 살갑게 바뀌었다. 오우, 일단 임시긴 해도 같은 팀인 스트라토잖아. 밥 먹으러 온 건가? 뭔가 짐까지 들고 온 걸 보니 어디 들렀다가 온 걸지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은 착실하게 자리를 안내해준다.
"이쪽 테이블로. 저녁 먹으러 왔다는 건 또 밖에서 자주 트레이닝? 주문은 늘 먹던 걸로?"
뭐, 늘 그런건 아니지만 꽤 자주, 높은 확률로 밖에서 자율 트레이닝(이라 쓰고 달리기라고 읽는다)을 하고난 뒤에 우리집에 들러서 밥을 먹고 돌아가곤 했으니까. 아마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아니, 아니지? 오늘은 뭔가 상자가 있는데? 트레이닝이 아니라 다른 걸 하다 온 건가?
지나치게 긍정적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까... 물처럼 흘러가는 타입이라는 것은, 저번 만남에서 대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던가. 황당한 마음에 뭐라고 더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레이니・왈츠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남에게 버릇없이 구는건 딱히,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는 더더욱.
"두 사람 모두의 예감이 동한 경우가 없었다."
레이니・왈츠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다이고의 말을 다시 한 번 중얼거린다. 인간 관계라는 것은, 간단해보여도 실로 복잡하고, 복잡해도 돌아보면 실로 간단하기도 해서, 때로는 되돌릴 수 있기도 하고, 영영 되돌릴 수 없기도 하다.
"...도 그걸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들릴법한, 혼잣말. 레이니・왈츠는 한참 주인의 애를 썩이고선 마침내 손에 잡힌 물건을 꺼낸다. 상자에 담겨있는 초콜릿이다.
>>82 “글쎄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답니다. [ 반대의 영역에서 저와 부딪혀보고 싶다 ] 고 그 아이가 그랬으니까요. 뭐가 어떻게 되든 결국엔 부딪히게 되겠지요. “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레이니의 말에 미즈호는 그렇지 않다며 단 칼에 부정하려 하였다. 반대의 영역이라는 것은 곧 자신과 맞붙고 싶다는 것. 니시카타 미즈호는 이미 그 도전을 받아들였고, 이제 그녀를 놓아줄 준비가 되었다. 이미 아는 사람이 츠나센에 내려온 모양이란 말에 미즈호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선배되는 트레이너분이랍니다. 저보다 더 검증된 베테랑이세요. 야나기하라란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
중앙 출신인 레이니인 만큼 아마 이런 이름을 들어보지 않았을까, 하고 니시카타 미즈호는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야나기하라는 이미 걸출한 인재를 여럿 배출한 베테랑이었으므로.
”베이킹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겠는 걸요. 좋은 답변이 되었답니다. 고마워요 레이니 씨. “
늘 먹던 것으로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에 주문을 전한다. 그리고 잠시- 음식이 나올 때까지는 좀 여유가 있으니 슬쩍 스트라토의 이야기에 올라탄다. 흠흠. 진심 초콜릿을 어떻게 할지 고민중이라. 뭘로 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라는 걸 보니 이미 만들던 사던, 아무튼 입수는 했다는걸까.
"상대를 고르는 것도 꽤 고민되니까 말야. 나도 아직 못 정해서 큰일이야 큰일~ 뭐, 안 준다고 큰일이 나진 않겠지만. 뭔가 그렇잖아? 이런 행사는 즐기지 않으면 손해같으니까. 아, 잠깐만-"
일년에 단 한 번!이라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한정이라는 느낌이니까. 놓치면 아쉽다. 내년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도 말이다.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지나간 것과 똑같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서 그런가. 아무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초콜릿을 밥보다 먼저 전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네. 이런 건 화제가 나왔을 때 바로바로 해야지 안그러면 타이밍을 놓치니까. 잠시 카운터 쪽으로 가서 챙겨왔던 초콜릿들 중 하나를 골라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스트라토에게 건네주려 했다. 별이 그려진 포장지에 싸인 두개의 초콜릿. 둘 중 하나는 함정. 뭐가 들어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반대의 영역에서 부짖혀보고 싶다라... 꽤나, 당돌한 말이다. 레이니・왈츠는 미즈호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저렇게 단 칼에 잘라 말할정도라면, 어떤 직감, 혹은 직감에 준하는 사건이 필히 있었을 것이다. 그걸 지금 캐내고 싶진 않고, 이유를 알게 될 일이라면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어떤 방법으로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나기하라. 두 분이 계셨던걸로 기억하는데요. 여성분과, 남성분."
두 사람이 남매라고 하였나. 여성쪽의 이름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아는 사람의 이름과 비슷했기에. 어느 쪽일까. 역시 여성쪽일까. 레이니・왈츠는 호기심에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인다.
"생각하기 나름이지, 기억하고 싶은 사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결국 특별하단 얘기니까."
그렇다면 되도록이면 좋은 쪽으로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했지만, 사실 레이니・왈츠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는 몰랐다. 그냥 다이고가 레이니・왈츠를 보며 특이하다고 느낀 것처럼, 레이니・왈츠 역시 다이고를 그렇게 여기는 건 아닐까... 하고 지극히 자신에게서 비롯된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 아는 게 쉬운 건 아니긴 하지."
처음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사람이라도,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며 다가온다면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마음에 불현듯 찾아오는 예감이란 것도 그런 것인지라, 정말로 서로에게 운명이라는 예감이 느껴졌다는 게 아닌 일방적인 예감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인식하는 순간 마음은 울렁이게 되어 있는 거 아닐까. 들으라고 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기에, 다이고 역시 입에 맴도는 수준으로 중얼거리고 만다.
"오- 초코? 고마워, 잘 먹을게."
만난 김에- 애초 예정에 없다는 의미라고 생각해 보면 큰 의미는 아닌 초코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그렇지만 동시에 운이 좋구나,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보다 귀엽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듣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 대답하면 다 큰 나이에 귀여움으로 으스대는 듯해 이상하고, 아니라고 잡아떼기에도 무엇하다. 제 양손만 만지작거리며 눈길을 피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다감한 갈빛 눈 슬며시 상대편으로 향한다. 그러는 유키무라 씨야말로…… 으음, 귀엽기보단 세련된 느낌이라 똑같이 돌려줄 수가 없었다.
"아, 우연…이네요. 제 부모님은 횟집을 하셔서……. "
항구 쪽이라 마주친 적 없는 걸까? 여하간 이야기가 그렇게 되었다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게 되었다.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테니 그 호의 고맙다 말하려 했는데. ……도망가고 싶어졌다! 내 내내내내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바보! 방금 전 자기가 한 말이무엇인지 깨닫자 조금이나마 덜해졌던 수치 단번에 몰아닥친다. 임계에 달한 수치를 견디지 못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꼬리다. 흥분한 것처럼 꼬리가 마구잡이로 펄럭거리는 것을 슬그머니 손 뒤로 옮겨서 붙잡았다. 사미다레는 홧홧하게 열 오른 얼굴 감추지도 못하고 눈만 질끈 감을 뿐이었다. "그, 저, ……고, 고맙습니다……." 애써 하려던 말 내뱉으며 사미다레는 유키무라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붙잡았다. 열이 올라선지 흘러나오는 입김이 미묘하게 거세져 있었다. 손을 잡는다면 손까지 뜨뜻했을 거다.
신년 겨울 공기는 다행히도 시리다. 만면에 뜨끈하던 열도 금방 식어 내려간다. 사미다레는 한결 평온해진 얼굴로 유키무라의 말에 고개를 살살 가로저었다. 인간이라면 호칭에 조금 까다롭게 반응할 수 있겠지만, 우마무스메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는다면 워낙 규칙을 찾기 힘드니까. 이름을 불렸더라도 몰랐기에 그런 것이라면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124 "남성분이시랍니다. 이 츠나센에 내려오신 분은. 제가 주고받은 분도 그 분이에요. "
역시 알고 있는지 대답하는 것에 미즈호는 순순히 대답해준다. 물론 이제 두번째로 만난 만큼 그와 구체적으로 어떠한 복잡한 사이인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이미 퍼질 대로 퍼지긴 했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은 것도 있다. 차라리 이 아이만큼은 몰랐으면 좋겠다.....
"후후, 가정실 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좋은 답변에 감사드린답니다. 레이니 씨. "
어느새 시간이 되었다는 듯 미즈호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였다. 구경하는 것도 잠깐일 뿐, 이제 다시 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랑 스트라토가 서로 감정 상할 일이 있었나...? 첫 대면에서도 스트라토보다는 또레나한테 화가 나있었으니까 그땐 아닌거같고, 아, 그 뒤에 트레이닝때는 내가 두 번 이기긴 했지만... 스트라토도 한 번은 이겼는데. ...원한의 대상이 아니라 진심 초콜릿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는 일단, 길에서 뒤통수 맞는 게 아니라 라이벌로 인정받은게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뭐, 됐나.
초콜릿을 받아드는 스트라토를 보며 싱글벙글 웃다가, 어째서인지 눈치채고 낮게 깔려서 나오는 목소리에 살그머니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살짝, 눈가만 보일 정도로 들고-
"—너처럼 감이 좋은 손님은 싫어해. 그냥 먹었더라면 재밌었을텐데 말이야..."
마치 무슨 만화에 나오는 악역마냥 말을 이어간다. 그나저나 맵다는 걸 보니 저거 그 데스 소스 넣은 녀석이었구나. ...눈치채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네..
"~막 이래. 으음, 데스 소스 들어간 거였구나. 하나는 진짜 멀쩡한 초코니까 그냥 멀쩡한 것만 먹고 그건 놔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