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어두워지려고 하는 하늘, 하나 둘 씩 트랙에서 벗어나는 아이들도 보인다. 클래식 시즌이 시작된 지금, 아직 담당을 구하지 못한 아이들과, 담당을 구하지 못한 트레이너들은 분주하다. 어쩌면 주니어 시즌 때보다 훨씬 활발하게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마음이 급한 게 보이는 것도 같아서, 다이고는 팔짱을 낀 채 트랙을 쳐다보았다. 클래식 시즌이 시작된 만큼 할 일이 늘어서 트랙에 이렇게 나와 담당이 아닌 아이들의 연습을 보고 있는 시간이 줄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서라도 거의 보지 못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이름도 못 들었지."
반대로 그 아이 역시 다이고의 이름은 모르겠지. 어느 반의 누구일까 명부를 찾아보면 알 수는 있겠지만, 뭐랄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볼 때가 된다면 또 보지 않을까- 하고 (다소 바쁘긴 했지만) 막연하게 생각하던 차여서, 다이고는 벤치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어느덧 트랙은 거의 비어간다, 남은 트레이너나 우마무스메는 내일의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겠지, 어쨌든 오늘 연습은 끝일 거다.
그렇지만 어둑어둑해진 저녁때라도 연습을 하는 아이들이 없는 건 아니라, 불빛이 트랙을 밝히고 있다. 다이고 역시 이제는 들어갈까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트랙을 훑어본다, 아무도 없으면...
여기서 스트라토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는 것인지 미즈호는 다소 놀란 듯 레이니에게 말을 건네었다. 이런 곳에서 스트라토의 룸메이트를 만나게 될 줄이야.... 다소 놀라웠으나 미즈호는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물어보려 하였다.
"스트라토 씨에게 초콜릿을 주려고 하셨군요. 역시 이런 초코는 직접 전해줘야 의미가 있으니.... [ 도전장 ] 인가요? "
주니어 시즌의 막바지부터 끊임없이 이어진 거절, 거절, 그리고 또 거절. 클래식 시즌에 돌입하였으나, 아무런 트레이너를 둘 생각이 없어보이는 레이니・왈츠를 보고, 츠나센에 있는 모든 트레이너들은 고개를 가로저을 수준이 되었다. 뭐, 그게 그녀가 원하는 것이지만. 좁은 시골 학교니까, 이미, 어느정도 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트랙 위에서 달리기는 하지만, 레이스에 나갈 뜻은 없는 우마무스메가 있다고. 레이스가 코 앞인 지금, 그런 우마무스메가 트랙 위를 달리는 것은 민폐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에 오늘도 레이니・왈츠는 산책로의 천국을 달리고 학교로 돌아오는 참이다. 해가 지면, 캠핑장이 있다 하더라도 국립 공원에 혼자 있는건 조금 무서우니까.
"그래도 아직, 남아있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습관적으로 트랙을 살펴본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다니, 어쩐지 조금 부러울지도. 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기숙사로 발을 옮길려고 하는 찰나, 익숙한, 그러나 이름은 모르는 트레이너를 발견했다.
분명 필수적으로 정해진 훈련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훈련은 자율적인 거나 마찬가지, 트레이너들이 담당 우마무스메의 상태를 파악해 스케쥴을 제안하긴 하겠지만... 결국 받아들일지 말지는 우마무스메의 몫이기도 하니까.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잖아, 같은 말도 할 순 있겠지만, 계약이란 게 쉽게 해지하기 쉬운 게 아니라는 것도 알긴 하지만서도, 방법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결국은 자율성이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응?"
이젠 진짜 돌아갈까, 뭘 기대하고 있었는가(라기보단 그냥 습관처럼 몇 번이고 트랙을 훑어본 것에 가깝지만) 싶었던 차에 들려온 목소리는 그리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기억에는 남아 있었다. 시선을 돌려 보면, 그 목소리에 매치되는 얼굴이 있었으니, 다소 특이한, 낯이 익지만 자세한 건 전혀 모르는(이름조차도) 우마무스메가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네."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레이니의 얼굴을 보면서, 다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클래식 첫 단거리 레이스가 있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아이를 이제 떠나보내 주어야 할 때도 얼마 남지 않았단 소리이다. 첫 레이스의 결과에 상관없이 스트라토 엑세서의 이적은 결정되었다. 어디로 이적을 하느냐에 대한 문제만이 남았을 뿐이다. 딱히 달리기에 뜻은 없다는 레이니의 말에 그렇냐는 듯 니시카타 미즈호는 고개를 갸웃였다.
“항상 그렇지만 흥미로운 대답이네요. 당신에게서 달리기에 대한 흥미를 끌어줄 사람은 누가 될지 기대가 크답니다. ...우마무스메도 해당되는 발언이니 한정하진 말아주시길. 당신은 혼자서도 잘 하실 것 같은 우마무스메이시니까요. ”
이 말은 즉슨, 레이니가 달리기가 하고 싶게 만들어줄 트레이너나 우마무스메가 누가 될지 굉장히 기대가 된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초콜릿 섭취를 제한하고 있지는 않아요. 되려 제가 지나치게 많이 받아서 고민이지요. 어쩌다 보니 [ 도전장 ] 을 많이 받아버렸답니다. ”
아이들이야 먹은 만큼 뛰게 시키면 되니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녀는 우마무스메가 아닌 인간. 초콜릿은 많이 먹으면 입에 물리기도 하고 처분에 있어서 골치를 앓고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코우 씨와 같이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제서야 미즈호의 의중을 알았다는듯, 레이니・왈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니시카타를 두고 다른 팀으로 이적하다니... 같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이지만, 그녀 또한 트레이너를 3번이나 갈아치운 전적이 있지 않은가. 트레이닝의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결국 우마무스메와 트레이너간의 관계도 인간 관계의 일부. 어째서 이적을 하는가, 같은 이야기는 직접 물어보지 않는다면 쉽게 단언하긴 어렵다.
"확실히, 츠나센은 트레이너도, 학생들도 가리지 않고 독특한 사람이 많으니까요.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죠."
흥미로운 대답. 흥미로운 대답인가. 속으로 미즈호의 말을 곱씹는다... 아무튼, 냉정하게 부정은 하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것은 어찌 튈 지 모르지 않는가.
이른바 사기의 문제다. 이 시기에 남의 사기를 고의적으로 떨어뜨리는 악동이 없는 것은 아니나, 굳이 그러고 싶진 않다. 레이니・왈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즉답했다. 뭐, 공원에 있었다는 사실은, 숨길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딱히 숨길만한 일도 아니고. 와타노하라 국립공원은 넓디 넓으니, 여차하면 사람이 별로 드나들지 않는 새 산책로를 찾아내면 그만이지 않은가.
"아, 맞다. 미스터는 유별난 사람이었죠. 깜빡하고 있었네요."
나름대로 분위기를 풀려고 한 농담인지, 아니면 비꼬는 말인지. 전혀 변하지 않는 말로는 알 수 없다. 레이니・왈츠는 어깨에 매고 있던 크로스백의 지퍼를 열어 내용물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괜히 툴툴거리고 싶은 기분이라."
뭐, 말하자면, 다이고가 잘못한 것은 절대 아니다.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당신이 잘못했다면서, 남을 골려주는 취미도 레이니・왈츠에게는 없다.
>>54 "그렇지요. 다른 훈련방법이 알고 싶어졌다고 하니 그에 맞는 것을 보여줄 수밖에요. 어디까지나 우리는 [ 내기 ] 를 한 것에 불과하니. "
시작을 내기로 시작했으니 끝 역시 내기로 맺어야 한다. 그만큼 스트라토 엑세서와의 관계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약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임시 입부였던 만큼 이적 역시 큰 절차를 밟지않고 자유롭게 할수 있었다. 그 시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스트라토 엑세서가 완벽한 F/A 가 되는 시기가.
"후후, 하나는 서로 주고받았기에 어느정도 예상한 것이지만, 두번째는 전혀 예상치 못한 거였기에 당황스러웠던 것이랍니다. 받을 일 없을 사람에게서 받은 것인지라. "
레이니 왈츠는 모를 이야기이겠지만, 이는 햐쿠모 마리야에게서 받은 초콜릿을 의미한다. 그만큼 햐쿠모에게서 받은 초콜릿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어찌저찌 잘 해결하긴 해야 겠지요? 그래도 어느정도 먹을 양은 되니까 말이지요. 어디다 나눠줄수도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