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이제 클래식이지. 이것저것 애매한 일이라.. 우마그린도 담당 두면 되는 거 아냐?“
담당을 두면 그 애매한 일들에서 해방되는 거 아닌가? 그럼 쏟아지는 일이 좀 줄어들겠지. 아니다, 담당 관리로 또 일이 늘어나나...? 총량은 변하지 않아.. 일의 질량보존..같은게 있을 리가. 아무튼 담당이 있어도 없어도 바쁜 법이구만. 어른이란 참으로 힘들겠어. 입 안에서 사탕을 또르륵 굴리다가 가정실 화제가 나오자 슬쩍 뒤로 기댔다.
"흐으음~ 다들 말을 안 하는 건 말이야, 소녀의 비밀이니까 그런거라구. 우마그린 의외로 섬세하지 못하네♥“
적당히 소녀의 비밀이니 뭐니 하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그냥 말해도 되는 거 아닐까? 아, 자기 라이벌이 누구인지 대놓고 들키기 싫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칼로리 폭탄을 멕일 라이벌의 담당이 알면 길길이 날뛸까봐 비밀로 하는 걸까.
"—뭐 그냥 대놓고 말하자면, 찰렌타인데이야 찰렌타인데이. 당장 내일이거든. 친구들하고 우정 초코를 나누는건 발렌타인데이랑 비슷한데, 라이벌에게 칼로리 폭탄 진심 도전장 초코를 주는 게 살짝 다르달까. 그리고 나도 그 준비로 가정실을 빌리러 왔단 말씀."
"음- 나보다 훨씬 더 괜찮은 트레이너들이 잔뜩이니까 말이지, 담당 해달라는 애들도 거의 없었던 것 같고."
엄밀히 따지자면 그건 아니다. 본인이 거절한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인데,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는 모양. 어쨌든 일이 많은 건 맞는 법, 그렇다고 해서 다른 트레이너들의 일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어서 결국은 트레이너 평균치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크윽, 섬세하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직접 들으니 가슴이 아픈걸-"
전혀 가슴이 아파보이는 표정은 아니다, 모니터를 쳐다보고 말하는 거긴 해도 꽤 성의있게 반응해주고 있긴 하지만.
"어라? 소녀의 비밀 이렇게 말해줘도 되는 거였어? 이건 내가 들려달라고 한 거 아니다? 섬세하지 못한 건 메이사 쪽일지도~"
작업에 여유가 생겼는지 농담까지 하면서 꽤 능숙하게 말을 넘기는 다이고. 그래도 궁금했던 게 해소됐기 때문에 기분은 썩 괜찮은지, 예의 그 미소가 살짝 올라오며 메이사에게 말을 이어간다.
"듣고 보니까 왜 나한테 말 안해 줬는지 알 거 같아, 내가 봐주는 애들이 여럿이다 보니까 정보가 새나갈지도 몰라서 그런 건 아닐까... 정보의 바다에서 고립되는 건 외롭구만~"
"에~ 정보의 바다에서 고립되어 외로이 늙어가는 허~접 우마그린을 위해 내가 특별히 말해준건데~? 이게 섬세하지 못하다고~?“
누가 누굴보고 섬세하지 못하다는 것이야! 라고 하지만 이쪽도 딱히 가슴아픈 표정은 아니다. 그나저나 정보유출 때문에 다들 말을 아끼고 있었던거구나. ...근데 뭐, 그냥 초코를 만든다는 사실까진 알려줘도 되는 거 아닌가? 아- 진짜로 섬세하지 못한 쪽은 나일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미안하네. 우마그린이 트레이닝 도와주는 이름모를 친구들이여. 근데... 내 알빠냐 솔직히.
"뭐 주로 학생들끼리 주고받긴 하지만 트레이너끼리 주고받는 일도 있다고 하니까. 우마그린도 준비해두는 쪽이 좋지 않겠어? 내일 빈손으로 다니면 진짜로 섬세하지 못하다던가 눈치없다던가 그런 말 들을지도 모르는데~?“
트레이너 간에도 라이벌 구도는 있고, 그런 사람들끼리 진심 도전장 초코를 주고받-기도 하나? 그것까진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냥 가볍게 우정 초코를 주고받는 일은 있을거다 아마. 이맘때면 트레이너실 내부에서도 어디는 초코가 수북한데 어디는 텅 비었다던가 하는 말이 돌아다닐걸.
"아, 그래. 준비하는김에 우마그린 것도 오늘 준비할까. 재료는 넉넉하게 들고 왔으니까 여유있을 것 같은데. 할래?"
"그러고 보니 그렇네, 네가 내 구조선이구나 메이사... 외롭고 늙어가는 날 버리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이야기해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밌으니까 적당히 맞춰 준다. 어쨌든 메이사 덕에 정보의 바다 일부를 볼 수는 있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찰렌타인데이에 대해 알더라도 다이고 본인은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담당이 없다는 건 이 일련의 행사로 인해 갑자기 불어나는 우마무스메들의 체중에 비교적 신경을 덜 써도 된다는 장점이 되기도 했으므로.
"아 그래? 두려운 일이구만... 초코를 언제 받아봤더라..."
중학교 때 받아본 기억은 있지만 고등학교를 거치며 꽤 긴 시간동안 그런 경험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야 남자 고등학교였고, 운동을 하면서 그 쪽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으니까.
"그거 굉장히 솔깃한걸, 좋아, 받아주지!"
도전 같은 말은 없었지만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며 다이고는 자판의 엔터 키를 탁 하고 눌렀다.
"좋아, 일단 끝났다! 그럼 가자!"
드르륵, 하고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선 다이고는 자신의 책상 서랍을 뒤져 열쇠를 찾아 짤랑였다.
>>785 "후후, 나중에 만나실 때 필요하다면 연락처를 전해드리겠답니다. " "[ 스트라토 엑세서 ] 라고, 제가 현재 정식이 아닌 임시로 담당 중인 아이에요. "
명료한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 미즈호는 바로 아이의 이름부터 소개시켜주려 하였다. 아끼는 인재를 라이벌의 팀에 보내는 만큼 그에 맞는 각오는 되어있다. 이 아이를 [ 적 ] 으로 만날 각오를 말이다. 어찌됐건간에 선택은 아이의 몫.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만나면 어디가 정반대인 곳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내기 기한은 [ 클래식 시즌 첫 OP레이스 ] 까지. 그 이후에 아이에게 결정권을 넘겨주기로 했어요. 어느 쪽이 이기건 간에 아이가 담당을 옮기고 싶어하는 의사는 확고했거든요.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지요? 그럴 수밖에 없답니다. 저희는 주니어 시즌부터 이 내기를 계속 이어왔으니까요. 이제 결판이 날 때가 되었어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요. "
찰렌타인 데이 주간에는 첫 클래식 오프닝 레이스가 있다. 진짜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이 클래식 레이스이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는 생각치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