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일까. 신사는 한 해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대목을 적극적으로 노려 부차적인 수익을 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잘 팔린다 해도 하루만에 동이 날 줄은 몰랐는데! 왜 벌써부터 상품이 다 떨어졌나 조심히 물어봤더니, 자신이 눈여겨보던 상품은 생산 과정에서 공급처와 소통 오류가 생겨 부득이하게 소량 판매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단다. 그 말을 듣자 어제 살걸 그랬다는 후회만 더 막심해졌다. 가게에 따져 봤자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애당초 사미다레가 그런 일로 판매자에게 시비를 걸 성정도 아니었기에 시무룩하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바닥만 내려다보면서 침울하게 있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려고 했던 물건이 없으니 무작정 밖으로 나오긴 했는데, 그렇다 해서 다른 물건 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목표하던 걸 얻지 못했으니 다른 물건 구경하기라도 해야겠단 오기 비슷한 기분 들어오는 것도 같다. 좋아, 다시 들어가야지! 사미다레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앗, ㄴ, 네?"
그리고 바로 눈앞에 선 사람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펄쩍 뛰고 말았다. 땅 위로 솟아오르듯 뛴 높이만 해도 1m정도는 족히 되지 않았을까? 생각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누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앗, 그런데 지금에서야 다시 보니 그냥 사람이 아니라 우마무스메였다. 긴 머리카락과 반짝이는 붉은 눈. 일순간 예쁘다 무심코 생각하며 시선을 뺏겨 버렸다. ……앗, 이럴 때가 아니지! 사미다레는 뒤늦게서야 자신이 문 앞을 틀어막고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황급히 옆으로 물러나 길을 내어주었다. 당황해서 상대방이 뭐라 말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 잠시 버벅거리긴 했지만, 대답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는 않았으리라.
"아, 그. 벼, 별일은 아니에요. 사고 싶었던 물건이… 다 팔렸대서요……."
그 사실 다시금 인지하려니 또 울적해지지만 이번엔 내색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친절하게 물어봐 준 이 우마무스메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편이 더 낫겠지. 사미다레는 제 양 뺨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605 분명, 이전에 만났을 때 언그레이 양은 트레이너의 표현 방법에 대해서 미즈호에게 말을 걸어온 일이 있었다. 어떻게 그 사람을 웃게 했는지 신기하다며, 자신에게도 그렇게 웃어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비슷한 느낌으로 말해온 적이 있었다. 아마 속으로 쌓이고 쌓이던 일들이 결정적인 일을 계기로 터진 게 아닌가, 하고 니시카타 미즈호는 어림잡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일은 트레이너 차원에서 말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계약 해지 서류라….. 이건 이거대로 진짜 진심으로 생각하고 온 게 분명하다. 언그레이 데이즈는 코우와의 관계를 진심으로 끊기 위해 마음 먹었던 것이다. 정말로 쌓일 만큼 쌓인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며, 니시카타 미즈호는 조용히 코우가 떨려오는 목소리로 해오고 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였다. 그리고는 이야기가 다 끝날 때 쯤에서야, 나직이 입을 열었다.
“……주눅들지 말고 일어나도록 하세요, 코우 씨. 이래서야 중앙에서 계속핵서 저와 부딪히던, 그 야나기하라라 볼 수 있겠나요? “ “기운을 차리도록 하세요. 앞으로 있을 한 달동안 믿음을 주기 위해선. 좀 더 자신있게 있으셔야지요. 중앙에 있던 시절의 코우 씨처럼. “
이렇게 평소답지 않게 위축되어 있는 모습은 중앙에서 시도때도 없이 부딪히던 그 야나기하라라 할 수 없다. 나의 라이벌 이라 할수없다. 예나 지금이나 니시카타 미즈호의 라이벌은 야나기하라였고, 그것은 연인이 된 지금도 변한 바가 없다. 그런 그가 위축되어 있는 모습이라곤 보고 싶지 않다. 헛웃음을 짓는 코우를 꼬옥 끌어안으려 하며, 미즈호가 천천히 말을 꺼내려 하였다.
“자아, 언그레이 양과의 결정적인 문제는, 표현 방식의 차이에 있답니다. 언그레이 양은 코우 씨가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 주길 바라고 있었어요. 마치 저와 있을 때 처럼 말이지요. “ ”우선은 언그레이 양의 상태를 보다 면밀하게 확인해가며, 현재 상태에 맞는 트레이닝법으로 차근차근 그 아이에게 신뢰를 주는 건 어떠한가요? 차근차근 시작해 보는 거에요. 가장 기본인 트레이닝 방법부터….그리고 표현 방법부터. “
situplay>1596941105>585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추입은 마지막 직선 코스에서 빠른 스퍼트로 치고 나오는 작전이다. 보통 그런 경우는, 폭발적인 가속력을 내기 위해서 힘이 필요하기때매, 파워나 스피드가 뛰어난 경우에 많이 쓰는 작전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우마무스메가 추입이라는 작전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바로 3코너. 즉 대략 골인지점 1000 ~ 800미터부터 가속을 시작하는 것이다. 즉 이른 타이밍에 승부를 걸어 서서히 올라오는 스타일의 추입. 원더는 후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국 추입은 최후방에 달리기에 파워가 뒷받쳐줘야 된다. 그렇지만 분명한 롱스퍼트임에도, 올라오는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아마도, 이 힘은 그녀의 체구에서 나오는 것.
그리고 마리야는 머릿속에서 확신을 가지고 있지못했던 한가지 사실을 입증해낼 수 있었다. 주니어 시즌에선 별다른 성적을 보이지 못했던 원더가, 어째서 이리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일 수 있는가. 간혹 우마무스메중에선 데뷔를 하고 나서도 성적이 나오지 않아 고생하다가, 실은 본격화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그 후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는 경우도 있다. 즉 퍼펙트 원더가 이때까지 주목받지 못한 것은 트레이너에게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받지못한 탓도 있겠지만...
"슬로스타터."
때론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여 좌절을 겪게되는 우마무스메들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퍼펙트 원더는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재능을 늦게 꽃 피웠을 뿐」.
"타임은 괜찮게 나왔네."
스톱워치를 종료하며, 짧은 평을 남긴다. 그녀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앞으로는 더더욱 빠르게 성장할꺼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페이스 배분을 좀 더 신경써야겠어. 2000m는 중거리니까 "
속으로는 그녀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도, 마리야는 그것을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나오는 것은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 칭찬은 나중에 하여도 늦지않기에. //레스주가 실수한 거지 마리야는 실수하지 않았다. 알겠지? 그리고 다음 막레로 해주셔도 될듯!
언그레이 데이즈에게 신뢰를 주려면, 이렇게 주눅든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그리고, 자신만을 바라보는 라이벌을 위해서라도. 미즈호에게 끌어안기자, 코우도 팔을 올려 그녀를 마주안는다.
"그랬...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적극적인 표현, 그녀는 그걸 바랬던 걸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나가라... 그제야 진정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게 무색하듯. 몸의 떨림도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이렇게나 간단한 답을, 왜 혼자서는 찾지 못한 거지... 좌절에 휩싸여 이성마저도 잃어버린 걸까. 토닥여주는 손길이 부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