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딱 고갯짓하며 그가 가볍게 대꾸했다. 사감은 퍽 궁금한 눈치로 보였지만 유현이라고 해서 제 도술 실력의 이유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그가 관심을 가진 대상은 타인이지 자기 자신이 아니기에 그다지 궁금하단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제 뱉은 말마따나 지금까지는 우연일 수도 있다. 유현은 혹시라도 발밑 무너질 상황에 대비하고 다시금 땅을 밟는다.
겉으로는 태연히 말하며 평화롭게 풀렸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어떻게 해도 그저 날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름 모를 신수가 주먹에 힘 주는 것 보고 고민한다. 맞서야 하나. 도망쳐야 하나. 그걸 고민한 시점에서 패착이었는지. 순식간에 뻗쳐온 그 주먹에 다시금 얻어맞았다.
"윽! 형제 싸움은 싫고. 그 형제의 반려는 쥐어패도 좋다 이거요?"
좀 얌전히 굴고 싶었으나 연달아 맞으니 아무리 저라도 열이 안 뻗칠 수가 없다. 그래. 이래뵈도 적룡이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그의 형제이니 버릇없이 굴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맞으면 참기 힘들다. 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말로 하면 좀 들어! 이 빌어먹을 신수들!"
맞은 팔이 엿 같이 아팠지만. 아마도 무언가 흘러선 안 될 것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한 방 정도는 먹여줘야 속이 시원하겠다. 그래서 저도 주먹 꽉 쥐고 내질렀다.
또다시 맞지 않는 주먹에 이를 악물었다. 오늘 정말 안 따라주는 날이구만! 욱하는 성질 튀어나오기 전에 급히 뒤로 몸 물렀다. 잡으려는 손 피하기 위함도 있었다. 피하는 그 몸짓 뒤로 무언가 후두둑 바닥에 떨어진다.
"그럼 오라고 부르기라도 하시던가. 언질? 그 때 내 들은 말은 수업 때 몸 잘 사리란 말 밖에 없었소. 단지 그 즈음 자주 가는 수업이었다고 홀랑 가버린 쪽도 잘못한 거 아니오? 수업이 한두개도 아니고! 수업 들은 날이 하루이틀도 아니거늘!"
몸의 성질 막아도 정신의 성질머리는 막을 수 없었는지 제법 날카롭게 말 튀어나갔다. 그 짧은 사이 숨 받친 듯 몰아쉬며 주먹 내지른 팔 늘어뜨리니 두루마기 소매 사이로 뭔가 흘러내렸다. 희고 얇으나 군데군데 붉게 물든 천- 붕대라 불리는 그것 스윽 흘러내리더니 왜 있는지 알려주듯 붉은 피도 뒤이어 흘렀다. 늘어뜨린 손끝에 금방 맺혀 후둑 떨어질 정도다. 이제보니 잡는 것 피할 적 바닥에 흘린 것도 피다. 방금 맞아서인지. 혹은 이미 다쳤던 것 터진 건지. 알 수 없는 상처를 소매 위로 꽉 움켜쥔 온화 고개 들어 말했다.
"그 도사가 어디서 뭘 하건 뒤졌건 살았건 내 알 바 아니오. 허나 그건 알아야겠소. 내게 뭘 원하는 거요? 다 내놓으라 하면 두말 할 것 없이 거절이요 놀이상대가 되라 하면 그것도 거절이오. 일방적으로 놀려지는 것 따위 견딜까보냐."
지금의 온화에게 그 외의 신수도 도사도 다 안중 외였다. 그러니 현진 도사가 어찌 되었건 일절 궁금하지 않았다. 단지 지금 저를 이리 괴롭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팔을 소매로 감쌌다. 그런 것 무색하게 금방 붉게 물들고 있었지만.
재미없는 인간이라. 재미로 자신을 판단한다는 점에서 번지수 하나는 지독히도 못 찾았다. 거래를 제안하는 점에서 재밌는 녀석이니 뭐니 알 게 무언가? 흥미를 끈다면 좋겠다마는 그것보다는 거래의 질이 우선이지 않겠는가. 가치의 무게를 매다는 법을 배워야 한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서서히 입술을 깨물게 된다. 경중을 잴 필요가 있었구나, 귓등으로도 듣고 싶지 않던 빌어먹을 사람이지만 이 말 하나만큼은 쓸모가 있었구나.
"고작, 학당을 보자는 이유 하나로 너머를 들여다보는 눈을 준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나.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거늘."
그 너머에 무언가가 필시 있을 것이다. 아니면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이 영원이 아닌 한 번일수도 있고. 뿌리 깊은 불신이 떨어지지 않는다. 육 년을 봐온 사감에게도 불신의 가시를 세우는데, 이방인을 향한 가시가 서지 않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 가시가 극에 달한다. 눈을 가늘게 뜨며, 표정은 천천히 일그러졌다.
"……그딴 것을 가져가서 무엇하지?"
진심이었다.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 일그러진 표정에서 끔찍함이 묻어나온다. ……제 형님에게 정인 생겼다고 해도 저런 표정은 짓지 않을 테지.
"여의주 하나 쥔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질 줄 아는가? 어림없는 소리, 보패를 쥔다 한들 달라지지 않을 것인데 그런 걸 가져가리라 생각하는가? 기고만장하기 그지없군."
인간의 입이 아니다. 등골부터 끼쳐오는 괴리감과 돋아나는 소름이 무색하게 걸음은 오히려 가까워진다. 한 걸음, 두 걸음.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놓아야 하는데 무엇하러 여의주를 쥐지? 달라지는 것이 있나? 죽으면 끝인데. 적룡 이야기가 나올 적엔 오히려 웃음 짓게 되었다. 희미한 웃음기가 목소리에 어리고, 입꼬리의 끄트머리만 미세하게 올라간 수준이지만.
"내 한때는 그런 생각을 하였지……. 차라리 용에게 생면부지 타인의 목을 수도 없이 바치든 내 몸뚱이 처먹으라 하든 그렇게 간곡히 빌며 해결하고자 하였지만, 이젠 아니다. 애초에 웃놈들이 필요하지 않았어……. 내게 주어졌기에, 응당 해야 하는 일엔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던 게야. 그러니 네 생각을 하는 법도, 그 너머의 추측도 죄 틀려먹었다."
오만하고 신경질적이며, 한없이 예민한 어조였다. 역시 춘 사감 말이 맞다. 신수와 인간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 인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데 이런 존재들과 이해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앞에 다다랐을 적, 그리도 곱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부드러운 움직임과 달리 당신의 관자놀이 부근을 손등으로 후려치려 들었다.
"내 보기에 네 퍽이나 안타까운 나머지 그만."
보기 흉하니 그 입 좀 다물라는 의도였으나 그 과정이 심히 날카로웠다.
"나는 그쪽의 눈도, 여의주도, 적룡도 필요가 없다. 그러니 얌전히 입 다물고 잡아가기나 해. 실랑이할 시간에 다른 학생 여럿 잡았을 터인데 아깝지도 않나?"
아회의 입장에서는요, 응. 아무래도 속이 많이 꼬였을 것 같아요.🥲 하 사감님과의 대화 이후로 무의미하다는 것과 신수 또한 방법이 아니라 깨달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결심 굳힌 이후에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무언가를 주겠다고 하고, 신수와 붙어먹으려 한다고 하면... 쉽게 말하면 응...
현대에유 아회가 단 음식을 멀리하려 했는데 설빙 초코빙수 기프티콘 주는 느낌... 그마저도 유효기간 끝남... 이지 않을까요...?(ㅋㅋ)
그리고 진심이기도 하답니다... 여의주가 필요가 없대요~ 거기다 형님 정인 생겨도 저런 표정은 안 지을 걸요...😏
3번부터면 그냥 우연이 아닌 듯도 하고. 유현은 잠시 멈칫한 채로 제 발밑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땅을 밟는 솜씨라 해도 잘 모르겠는데…… 걷던 것도 멈추고 잠시 턱 짚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그럴듯한 성과는 없었기에 금세 그만두었지만. 옆에서 들리는 소리는 집중에 거슬릴 뿐이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빠지면 저 꼴이 되나. 무시하고 계속 나아가기로 한다. 연속된 성공에 힘입어, 이전보다는 조금 빠르게 발을 내딛는다.
지네의 딜레마라고 했던가? 집중하지 않았을 때는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던 행동들이, 한 번 의식하고 나면 삐걱이며 실패하게 되는 효과 말이다. 유현은 그 개념 그대로 무너진 모래 구덩이에 처박힐 위기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그는- 아, 이런 구조였군. 함정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꼴사납게 흙이나 먹을 생각은 없었기에 부스러지지 않은 땅끝을 붙잡고 최대한 버텨 보려 했다.
처음엔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가슴까지 잠긴 시점부터는 저항을 포기했다. 화유현은 그리 팔팔하고 의욕 넘치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대신에 좀 건져 달란 듯한 눈으로 사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는 봤지만……. 저 사람 아니며 엄격하게 굴리는 사감께서 건져줄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다. 돕는다 해도 지난번 수업을 생각하면 고운 방법으로 올려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짧게 심호흡한 후, 도술로 몸을 파묻은 모래며 흙을 치우려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