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신수들에 대한 것은 도깨비들이나 알고 있다던가. 자식인 신수조차 창제신의 성별은 모른다던가. 그런데 신에게 성별이란 개념이 있긴 한가? 애매한 신수도 있다는 걸 보면 별로 의미 안 두는 것 같은데.
그리고 또. 그가 흉내내는 자 역시 사감이며 천공섬의 주민이 아닌 그 바깥- 영 사감이 오는 곳이라던가. 도술 아닌 마법을 쓴다는 거긴 대체 어떤 곳일지. 영 사감과 동향이라면 그 묘한 지팡이를 쓰는 이라는 건가. 조금 궁금할 지도.
들어도 여전히 내용 아리송한 것. 몰랐다가 새로이 알게 된 것. 여러 얘기를 했지만 그 뒤에 얘기로 다 아무래도 좋을 것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그를 신경 쓰게 되었나부터 쭈뼛쭈뼛 털어놓은 제 마음에 부끄러워졌음이요 갑작스레 안아오는 그의 팔에 놀람 더해져버렸으니 말이다. 갑자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강한 팔 힘에 크게 두근거린 것도 있었다. 지금껏 누구도 저를 이리 안아준 적 없었으니. 그런 복잡다망한 기분에 휩싸여 얼굴 가린 채 다시 앓는 소리 내었다. 아으아아아...
"그. 으. 아니 잠깐만요..."
여즉 얼굴 가린 채 은근히 바뀐 그의 목소리와 직설적인 말들을 듣고만 있자니 심장은 미친듯이 뛰지 귀는 간지러워 죽겠지- 저를 취한다던가 못 나가게 하고 싶다던가 들었을 때는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머릿속은 또 어찌나 시끄러워지던지.
으 아 심장 난리치는 것 들키기 싫은데 아 그렇지만 이 정도로 안겼으면 분명히 들켰겠지 아니 들키고 자시고 다 알고 있는 거 아냐? 여의주 있으니까? 앗 그러면 더 부끄러워져서 그 그 얼굴 못 내놓게 되어버려?!
"어엄마아아..."
얼마나 안팍으로 정신이 없었으면 그런 앓는 소리까지 흘러나왔다. 엄마 딸래미 큰일나요! 어떡해! 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 까악 꺄악 질러대다가. 제 이름 부르는 목소리에 하으- 하고 이젠 거의 울 듯한 소리가 났다. 이... 이... 정도를 모르는 신수...!
"...못 됐어 정말..."
아무리 부끄러워도 그의 채근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얼굴 꽁꽁 감추고 있던 손 천천히 움직여 아래로 내렸다.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 이마부터 턱 끝까지 빈틈없이 붉어진데다 뒷머리 덮인 목덜미도 설핏 붉은 듯 싶다. 반쯤 내리다 멈춰서 머뭇거렸지만 곧 완전히 손 거두고 그 말로 못 할 표정 지은 얼굴 드러내었다. 얼굴 내놓고도 눈은 저 아래인가 옆인가 애먼 곳 보고 있었으나 두어 번 깜빡깜빡 하더니 살며시 하 사감 얼굴 향했다. 인간의 것 아닌 눈동자 보고 살짝 눈 흔들렸지만 다시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중얼거렸다.
"나. 그... 아프게 하면. 당분간 근처에 얼씬도 안 할... 거에요. 진짜. 그럴 거야..."
다시 얼굴 가리고픈 손으로 하 사감의 옷 꾹 쥐고서 입술 가벼이 깨물고 하 사감 바라보았다. 인간 같지 않은 그 눈을. 곧게 마주하고서.
그다음 말은 발음이 생경하여 플루 가루, 하고 다시금 되뇔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쓰던 물건이라니, 듣자 하니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는 신묘한 것이 그리도 많다고 하더라. 당장 아회가 즐겨읽던 책도 암시장에서 구해온 바깥의 이야기이니, 영 사감님은 그쪽 출신이신 걸까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그것보다 불과 가루만 있으면 된다니, 부적으로도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마는 다른 방법까지 있다 하니 신기함 감추지 못하고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주머니에 빼앗겼다.
"……감사, 합니다."
실 용도는 벽난로에서 사용하는 것이라……. 학당에서 최근 다시 지피기 시작한 천덕꾸러기가 이젠 유용하게 쓰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이 일었다. 자신의 제멋대로인 성정이요, 충동적으로 뱉어버린 말을 그리도 쉽게도 수락하는 모습에 맥이 풀려버린 탓이다. 이후 입가에 보기 드문 호선이 그려졌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아회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아."
불꽃이 일어나고 일렁인다. 가루를 한 주먹 쥐고 정확한 목적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했나, 그저 저 불꽃 속으로 사라져버리면, 덧없는 잿더미가 되어버릴 수 있다면. 불에 홀려버린 듯 잠시 침묵하던 아회는 마음을 다잡았다.
"추위를 막아주는 도술이 있습니다. 저는 추위를 크게 타지 아니하니 쓰시지요."
그리고 자신의 너울을 벗어주며 미리 언질 주기를, "미리 말씀 올리오니 그곳에서는 정숙하여야 합니다." 라 하였다. 이후 주머니 속에서 가루를 한 줌 쥐었다. 가루를 뿌리자 옥빛 불 일렁이고, 입을 벌렸다.
"북부, 귀기 무 씨 소유의 고드름 숲으로."
불길로 망설임 없이 걷는 모습엔 회한도, 미련도 없어 보인다. 이내 불길은 몸을 집어삼켰고, 흔적도 없이 그 덧없는 뒷모습이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귀기 무 씨의 고드름 숲이라는 것은 말이 그들이 소유한 숲이지, 숲의 끝자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작은 동굴이 있었다. 이 또한 동굴이라기에도 애매한 것이 한때 쌓였던 눈이 얼음이 되어 얼어붙어 하나의 공간 이룬 것이었다. 그 안에서도 나무가 자라 얼어붙고, 제각기의 생태를 이루고 있으되 그 안까지 천장이 희미하게 갈라져 빛이 아롱아롱 든다. 아마 밤에는 달빛 새어 들어오고, 북부의 연일 이어지는 폭설도 한 수 양보하듯 엷은 눈만 깔아주리라.
"……."
그 장소는 온통 새하얀 곳과 달리 알록달록하니 그야말로 꽃으로 무성하였다. 학당에 입학한 이후 일 년에 네 번, 많으면 여섯에서 여덟, 각 계절의 꽃다발로 채워가던 것이 해를 지나며 쌓이고 쌓여, 차디찬 북부에서 자그마한 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회는 평온하게 그 중앙을 바라보다, 꽃다발을 쥔 채로 당신을 돌아보았다.
아회의 바로 앞. 햇빛이 부서져 그 조각을 내리고, 인위적인 봄에 둘러싸인 중앙에는 유리로 되어 그 안을 비추는 관이 있었다.
英사감은 너울을 어색하게 머리에 썼습니다. 그는 정숙해야 한다는 말에 한 쪽 눈썹을 치켜올렸습니다. 겨울탑이 꼭 정숙해야만 하는 장소였는지를 생각하던 그의 미간이 찌푸렸습니다.
' ..... '
분명, 고향에서도 정숙해야 하는 장소는. 상념에 잠겼던 英사감이 몸을 돌려, 아회가 읊는 말을 뒤로 한 채 불의 위에 섰습니다.
' .... 확실히, 춥군. 현궁과는 비교도 못하겠어. '
어딘가 그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한 英사감이 잠시, 관을 보더니 굳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그는 무언가 떠올린 사람처럼 숨을 거칠게 쉬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고향이아니야 ' 미, 미안하다. ' 이건그들의시신이아니야 英사감은 관에서 시선을 돌린 채, 자신의 두 손을 겹쳐 포갰습니다. 절대로아니야 ' 아무래도, 여기 자주 오는 것 같아 보이니 지름길을 만들어주마. 이야기... 라도 나누고 있도록. ' 매캐한냄새피비린내비명소리가귀를 英사감이 고개를 강하게 가로저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며 슬쩍 물러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