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이전의 나보다는 나아졌고, 더 나아질 가능성도 눈 앞에 있는데 이게 어떻게 성장이 아니야?"
"1착을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지. 우마무스메란 다들 그래. 그런데 모모짱은 마치 1착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과 지금껏의 노력이 모두 의미 없다는 듯이 말하네."
"1착만 하고 싶다면 경주 우마무스메를 노렸으면 안됐지. 그건 너 자신을 속이는 일이잖아. 나는 모모짱이 어떤 마음으로 달리는지 몰라. 아마 모모짱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달리는지 모르겠지?"
"나는 말이야, 모모짱도 알고 있지만 어렸을때 부터 건강이랑 거리가 멀었지. 지금도 그래. 영양제랑 보충제, 식단까지 토할정도로 먹어야 지금의 체중을 유지할수 있어. 여기에 부상이라도 당해버리면 끝장이니까 도주 외의 선택지도 없지. 훈련도 다른 우마무스메들 만큼 강하게 받을수도 없어. 그래도 종종 병실신세는 지지만 하여튼."
"나는 이기는게 아니라 달리는게 좋아. 누구보다 빨리 달리고 싶지만 아마 그러지 못하리란것도 알아. 앞으로 길어야 2년인 나의 전성기를 달리기에 바친다는건 나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 남들에게 있어서는 지방의 이름없는 우마무스메의 발악으로 끝나도 좋다는 각오로, 혹은 그 전에 부상으로 은퇴해도 후회가 없으리라는 각오로 내 최선을 선택한거야."
"모모짱은 왜 달리는거야?"
잔잔한 파도처럼 마사바 콩코드의 말이 유키무라 모모카를 향해 나아간다. 올곧은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하고, 유키무라 모모카의 꽉 쥔 주먹에서 피가 흐를 때 까지만 하여도 대답을 기다리려 하였으나 눈물을 흘리며 끅끅거리는 소리가 세어나오자 힘겹게 미소지으며 상대의 어깨에 팔을 둘러 최대한 가벼운 손길로 위로를 전해주려 했다.
지방의 우마무스메란 모두 그렇다. 우리는 취미 이상으로 달릴 가치가 없다. 청춘의 3년을 갈아넣어 모두가 누리는 반짝임과 아름다움을 모두 포기해봐야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중앙의 그녀들에 비하면 티끌만한 성취 뿐이다. 아마 대부분은 그 티끌도 손에 얻지 못하고 포기하고 좌절하여 상처입은체로 다른 길로 밀려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선택한 우마무스메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자기 자신을 납득시킬, 달려야 할 이유가.
아주 오래전에 본, 낡은 TV속에서 그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나던 그 우마무스메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우마무스메가 달리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 최고의 우마무스메가 될거야. 목표는 일본 제일!"
"정말? 모모쨩, 대단해~"
그런 말을 들으면 난 씩 웃으면서 하염없이 달렸다. 작은 다리와 작은 발로, 어디까지나 뛰어갈 수 있는것처럼 달렸다. 달린다는건 즐거운 일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매일같이 산 속으로, 골목길 사이사이로 뛰어다니며 나만의 모험을 즐겼다. 친구들과 이리저리 쏘다니며 실컷 장난을 치고, 흙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날 따듯하게 맞아주는 엄마와 아빠. 아빠나 엄마와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시원한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맛있는 밥을 먹었다. 여름날 툇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고 얼마나 멀리 씨를 뱉을 수 있을지 장난치며 맡던 모기향의 냄새. 겨울날 눈을 굴리며, 손 끝이 빨개질때까지 만들던 작은 눈사람.
"모모쨩은 정말 빠르네~ 분명 일본 제일의 우마무스메가 될 수 있을거야!"
"정말?"
"그럼~ 당연하지. 모모쨩은 특별한 사람이란다. 내가 아주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딸이니까."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는게 참을 수 없을만큼 즐거웠다.
"1착이 되는것은 누구인가, 프리스트 더 콜 이냐, 투스데이 플라워냐!"
"지금 1착으로 골인! 프리스트 더 콜, 1착을 달성합니다!"
"2착은 코차이로 투스데이 플라워, 그리고 3착은...."
내 이름이 불리는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있는 나에게 엄마가 다가와서 조용히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분명 다음번엔 이길 수 있을거야. 너무 울지 말고, 내려가서 같이 밥 먹자. 엄마가 같이 달려줄게. 날 위로하는 상냥한 목소리를 들으며, 다음번엔 반드시 이길거라고 다짐했다.
"1착은 투스데이 플라워! 훌륭하게 리벤지를 달성해냅니다!"
"2착은 프리스트 더 콜, 3착은..."
또 다시 나의 이름은 없었다.
나는 더 노력하기 시작했다. 더 많이 달렸고, 더 많이 먹었고, 더 많이 운동했다.
"1착은 체리 파르페! 체리 파르페, 훌륭하게 골-인!"
"2착은..."
노력이 부족한거야.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뛰었고, 더 많이 운동했다.
"1착은... 2착은..."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뛰었다. 예뻤던 나의 발은 어느새 흉터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토하고 다시 뛰길 반복했다. 그러다 몇번 쓰러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매일같이 코스를 뛰고,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면 조용히 욕실로 가 땀과 흙, 발의 물집이 터져 흘러나오는 피와 진물을 씻어냈다. 프로틴을 마셨고 철저하게 제한한 식사를 먹었다. 식었지만 괜찮았다. 혼자였지만 괜찮았다. 여름날, 벤치에 앉아 운동을 하고 축축하게 젖어버린 가죽 시트의 악취를 맡았다. 겨울날, 새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발 끝이 붉게 물들때까지 만들던 눈 녹은 물웅덩이.
노력했다. 연애도, 사랑도, 친구도, 우정도 전부 필요없어. 일본 제일이 되고 말거야.
그렇게 나간 첫번째 데뷔전에서- 나는...
참패했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소리치며 울었다. 땅을 몇번이고 때리며, 손이 다 까져 제지당할때까지 멈추지 않으며, 목이 찢어져라 울었다.
나, 혹시 특별한 사람이 아닌거야? 나는 저 TV속 우마무스메처럼 반짝거릴수 없는거야? 이렇게 노력해도 안된다면, 나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거야? 닿을것 같은데 닿지 않아. 이대로 놓아주지 않는다는게 어리광이라는건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나의 소중한 꿈이잖아. 그것을 잃어버리면 내겐 무엇이 남는거야?
누군가 알려줘.
"난, 나는..."
추한 얼굴이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입을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상처가 터져 피도 흘러내렸다. 네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