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어장은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수합니다. ※ 일상과 이벤트는 이 곳에서. ※ 수위 규정 내의 범죄 행위와 묘사를 허용합니다. 이전 재판장: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912075 휴게실(잡담방):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912077 시트 스레: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909080
>>7 마사 흐음. 그래도 용서받은 게 나쁘지는 않았나봐? 이대로 가주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걸 보면. (알만하다는 듯한 웃음을 짓는다. 뭐,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그렇겠지.) 그나저나. 자세히 알지 못 했다, 라고 하기엔 너는 저번 심문 때 꽤 성실하게 대답해준 편 아니었냐. 우리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아직 많다고 생각해?
>>14 마사 (잠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죽어 있던 권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당신과 똑같이 부들부들 떠는 상태다.) 그, 그래. 그럴 만도 하지.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는 척을 하며 목소리의 삑사리를 얼버무렸다.) 그럼 말이다, 우리가 너에 대해 모르는 거. 일부러 숨긴 거냐? ... 우리가 알게 되면 너를 미워할 거라고 생각해?
>>18 마사 뭐어, 그야 그렇겠지. 내면이라고 해도 '죄인의' 내면이니까... (당신의 말을 가볍게 긍정한다. 그와 동시에, 존경을 중요시하는 당신이라면 실망이 꽤나 큰 무게로 다가오겠다는 감상 또한.) 좋아, 다른 질문을 해볼게. 네가 생각하기에 네 가족은 너의 살인에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 같냐? 전혀 관련이 없다, 아니면 완전 깊게 관련이 있다? 어느 쪽?
"옥사나 씨는.. 저와 겹쳐보이고 있다면 불쾌할까요. 살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따위도 용서받기를, 새 삶을 부여받기를 꿈꾸고 있으니까요. 제제 씨에게는 죽음이 곧 구원이라는 그 기이한 사상에서 벗어나 주기를 바랍니다. 세이카 씨에게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35 마사 너는 나한테 철없다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거냐? (단박에 튀어나온 말에 레몬을 먹은 사람처럼 얼굴을 한껏 구긴다.) 뭐... 하여간, 대체적으로 나쁜 사람이라 보는 경우는 없다는 거네. 나는 좀 애매하지만... 아니 나에 대해 대체, 허 참. 그럼 말야, 그 사람들이 모두 살아서 이 감옥을 나가는 것과, 누구 하나가 죽어서 네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상황. 둘 중 어느 게 더 마음에 드냐?
>>45 마사 확인사살 하냐?!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어지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허, 좋네. 자신의 소원은 자신이 자주적으로 성취하는 거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네 소원 정도면 불가능해보이는 것도 아닌 것 같다만... 뭐. 힘내라. 응원은 해주마. (당신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는 낯인 그대로 대답했다.) 음... 그리고 또 무슨 질문을 하지. ... 맞아. 저번 네 심상을 보니까 피해자가 말야, 꽤 껄렁하고 불량해보이던데 말야. 네가 나서지 않았다고 가정해본다면, 다른 누군가가 걔를 죽였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냐?
>>58 마사 했잖아. 어린애같다는 말 했잖아! (어째 계속 말려들기만 하는 것 같아 짜증을 잔뜩 내고 있다...) ... 흥. 도와줄지 안 도와줄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피해자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와 너'였기 때문에 살인이 일어났다는 말인데... (고민하느라 잠깐의 틈이 생긴다.) 만약 피해자가 그런 불량 학생이 아니었어도 너는 걔를 죽였을 거냐?
제제라는 이름의 소녀는 웃었다.부드레히 웃었다. 무엇이든 해드리라. 행복하게 해드리라. 그 것이 바로 신이란 존재의 존재의의이니.
그러한 만들어진듯한 미소에 금이 갔다.
"...친구?"
분명 아는 단어일텐데, 생소한듯이 되묻게 되버린다. 친구?
"나랑?"
혼란했다. 머리속이 혼란했다. 분명 본인은 긍정되었다. 용도를 다한 그릇이 신이라는 명칭의 짐승으로 돌아갔다. 모두 스스로 행한 일이 죄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을 이끌어 줄 신을 기원한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자리를 되찾은 소녀는 다시 신이 되어 웃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래, 뭔가 이상했다...
음악이라던가운동이라던가경멸이라던가아이취급이라던가.
친해지는 것 같다 생각했다던가. 친구가 되고 싶다던가...
혼란스러웠다. 그거 말고 표현할 길이 없었다. 마음속에 엉킨 실타래같은 것이 팽팽하게 당겨오는 느낌이었다. 이 자그만한, 별거 아닌 말 하나 하나에 갑자기 분노가 솟구치기도 했고, 격하게 광소를 내뱉고 싶기도 했고, 아이같이 눈물을 흘리고 싶기도 한 그런 충동에 휩싸였다. 여기 이 장소의 수감원들이 남기고 간 찌거기 같은 흔적에. 화내고 싶었다. 주제도 모르는 어리석은 아해라고 비웃고 싶었다. 아는 것으로 대려오다가 또 모르는 역할을 강요하고 본인을 부정하는 듯하다가도 긍정해주는 모두의꼴이 너무 혼란스러웠고 원망스러웠다. 용서했는데 경멸한다. 용서했는데, 친해지고 싶었다 한다. 모순적이다. 모순은 끔직한 감각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 눈에 내어진 이어플러그가 들어왔다. 날뛰던 감정을 깨닫자 마자 수그러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텅텅 비어 멍청하게 된 제제는 그 이어폰을 한 손으로 받아든다.
"...아니야. 본좌도... 원했네."
다시 웃는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기에. 그래도 신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이런 이상한 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대가 할 수 없는 부탁이란 없네."
본좌는 신이고, 그대는 인간이니.
세이카가 가르킨 자리에 스스로를 앉힌다. 어설픈 손짓으로 이어폰을 매만지다 세이카가 끼는 것을 흘긋, 보고, 그 것을 따라해 귀에 꽂는다.
"... 괜찮아, 정말로. 나, 그정도 돈으로 뭘 할지도 모르겠는걸... 그, 렇게 되어 버렸, 고... 학교 가기에는, 응..."
몸을 살짝 떠는 세이카의 눈은 또 조금 생기를 잃고 말았다.
"... 여기서 용서받아도... 이미, 여기 있는 사람들 빼고는, 다... 나, 안 좋아하게 되었는걸..."
그 경멸의, 증오의, 혐오의 눈빛. 믿었다고 생각했던, 반 아이들, 선생님, 전부.
"...? 어째서...? 마사가 용서 못 받으면... 사실, 나도 용서 못 받는게 아닐까...?"
자신으로써는, 그런 미래를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였다.
"그, 혼자서 돈을, 쓰기에는... 응... 그러니까... 같이 나가면... 해외, 같이 가는 거, 어때...? 나, 그, 처음에 말하는 거, 봤잖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말, 잘 못하고... 그러니까... 그때 계속 도와줬으면, 좋겠어... 부탁...해도 될까...?"
>1596912075>997 박권태
"그, 선물이라면, 얼마든지...?" 당황하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너무 이상한 것만 아니라면... 그리고, 머리핀의 자리에 있는 털실로 만들어진 머리끈도 살짜금 보이니, 선물을 받는다면 자주 착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 생각... 못해 봤네요... 그, 제 집... 강아지나, 고양이, 못 키워봤고..."
죄송합니다, 라고 빠르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숙이니, 덩달아 축 쳐지는 고양이 귀.
>>73 제제 르 귄
"...응, 친구... 제제씨랑, 친구가 되고 싶어요... 아직도."
조용히 이야기한다. 의견을 피력한다. 과거형으로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아플까 싶어서 과거에 그랬었다는 풍으로 이야기를 했다.
"... 같이, 노래를 듣고... 즐기고... 감상을 듣는다거나... 책을 보고... 재미있었던 것을 나누거나..."
"서로 알아가면서, 서로 이해하면서... 좋은 친구로,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때 도서관에서, 이야기한 그 말... 그게, 정말 제제씨가 저에 호의를 품고, 이 주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아서... 정말, 정말로 기뻐서..."
조금 졸린듯 목소리가 늘어지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보다 더 진심일 수가 없었다. 이것이 새벽 텐션이라는 것이였을까.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였다.
"...제 부탁으로, 싫은데 하는 것이라면... 정말, 괜찮으니깐요..."
조금은 아픈듯, 하지만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인다.
그런 식으로 아픈것은, 익숙했기에.
그리고 이내, 둘의 귀에 울려퍼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합주.
https://www.youtube.com/watch?v=l0GN40EL1VU
"... 들킨다고, 조마조마하지 않은 채, 듣는 건, 처음..."
바이올린의 플러킹, 관악기의 부드러움. 환상적인 멜로디. 그리고 이내 오는 익숙한 피아노의 독주.
여름의 한 외딴 집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로 인해... 살짝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리라.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곳은 정말, 내게 생소한 경험만을 안겨주는 구나. 판결 결과 전의 생소한 것은 내게 기쁨만을 안겨줬는 데, 제자리를 찾은 지금에는 불쾌하기만 하다. 그래, 불쾌하기만 했다.
뭘 원하는 지 모르겠다. 하나도. 자신이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지도. 세이카의 말은, 마치 안개속에서 노이즈 가득 낀 스피커로 듣는 것 같다. 멍하니, 마치 꿈에서 듣는 것 같이 멍하게 듣게 된다. 정말로 몽상같은 이야기 이니까.
같이 노래를 듣고, 즐기고. 감상을 듣고. 책을 보고. 재미있던 것을 나누도.
'서로' 알아가고, '서로' 이해한다?
"...본좌는 신일세. 신과 친해져서 뭐하겠나, 그대가."
누군가에게 웃으며 말했던 것을 생각보다 멍청하게 흘려버린다. 그때 또 다른 그녀가 대답했었다. 자신은 신 같은 건 필요없다고. 하지만 너희들은, 그대들은, 신이 필요한게 아니였나. 신이 더 이상 아니게 되어 갈팡질팡하는 한심한 작자가 아니라. 왜 그런 걸 기쁘다 하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대들의 무지에 짜증이 인다.
"신이란 본래..."
말하다 입을 다문다. 아니, 원래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니까. 그대들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당연한 것을 왜 모르는가 말인가. 이 '상식'을 왜 괜히 깨부순다 말인가.
마침 곡이 귀로 흘려 들어온다. 이어폰이 익숙치 않아 흠칫, 잠시 쩔지만, 이내 다시 손을 무릎위로 단정히 돌려놓는다.
앞의 소녀가 자신을 바라본다. 손에 닿은 온기가 뜨거워 화상을 입을 것만같았다. 그녀의 조용한 음이 귓가에 남아 자신을 괴롭히는 거 같았다.
마음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별로 신 답지는 않았다.
제제는 그것을 끔직하고 불쾌한 감정이라 정의하였다. 머리 여럿 달린 괴수처럼 그것은 여러 감정으로 제제를 괴롭혔으며, 하나를 쳐 내면 또 하나에게 물어 뜯기는 느낌이었다.
끔직했다. 불쾌했다. 괴로웠다.
내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지?
"...시간이 늦었군."
입에서 뭐라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기계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이카의 손도 자연스레 떨어졌다. 그랬던거 같다. 잘 모르겠다. 속에서 무언가가 자꾸 뒤틀리는 느낌이라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 너무 했다. 아마 웃고 있었던거 같다.
"너무 오래 잡아둔거 같아 미안하네." 라고 말했던 거 같기도.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즐거웠네"라고 말했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니, 둘 다인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으로 문을 더듬어 문손잡이를 돌리고 있었다. 조금, 이 방에서 나가 나의 공간으로 돌아가면 숨이 트일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다고 확신했다.
그래도 나가기 전에는, 한 마디를 해야 했다. 조금 괴로운 듯이, 말이 이 사이로 스며 나온다.
〔 지난 24시간동안 입고를 요청받은 물품이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금괴 5개입니다.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저희 밀그램 시스템이 죄인 여러분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하고자 노력하는 건 맞습니다만 통장 사정까지는 봐드리지 않습니다. 장난치지 마십시오. 〕 〔 또한, 항우울제와 항갈망제를 의무실에 구비해달라는 요청 또한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들어는 드렸습니다만, 여느 물질이 그렇듯 오남용 시 건강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약품이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와 상의 후에 복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짧은 수감 생활 중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말이죠. 〕 〔 마지막으로, 도서실의 연체도서를 추적하던 중 일부 도서가 파괴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실꼬기, 머리끈 등 악세사리를 만드는 것과 관련된 책이었습니다만... 종이 하나하나를 뜯어내어 파괴에 공을 들인 듯 하더군요. 흐음, 어째서입니까? 죄인 제제 르 귄. 그토록 신경써서 머리끈을 만들어 선물하더니. 〕
〔 다음으로는 투표 현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9표입니다... 만, 자기 자신한테 투표되어 무효가 된 표가 1표 있습니다. 〕 〔 듣고 계십니까, 자신한테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투표한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다음부터는 이러한 착오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한다: 1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이전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용서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군요. 〕
〔 오늘은 심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참고하시어 다음 심문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해주시길 바랍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현재, 제제의 일과는 이러하였다. 익숙지 않은 곳이 이번의 판결로 익숙한 곳이 되니, 생활 패턴 또한 비슷하게 돌아갔다.
일단, 5시 기상부터 시작하는 준비. 이것이 가장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익숙지 않으므로 이전보다 시간이 걸린다. 머리부터 옷매무새까지 완벽히 하고 나면 방을 나선다. 창문은 없지만, 해가 뜨기 시작할 때쯤이라 생각된다.
그로부터 간단한 식사, 그리고 도서관. 심리학이라던가, 관련 서적을 흩어보며 필요로한 지식을 견고히 한다. 읽는 책은 이미 읽어 본 익숙한 책뿐. 본 적 없고 필요 없는 서고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 외의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가. 답은 간단했다.
제제는 휴게실, 혹은 방 안에 단정히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상점가의 도자기 인형과도 같았지만, 그와 달리 바라볼수록 몹시도 불쾌하고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제제는 인형이 아닌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방으로 돌아가 취침한다.
-- 익숙한 행동 방침을 따르다 보니, 신도들을 둘러보아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그들의 고민, 하소연, 고통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올바른 말을 설파하는 시간.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그 시간이 통째로 텅 비게 되었다. 제제는 그들의 곁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들은 현재 다 '행복'해졌으니까.
처음 왔을 때는 하루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처음 읽어보는 책들을 보고. 처음 해보는 운동도 힘내보고.
하지만 다 어리석은 짓이라는 게 판결 났다. 지금의 제제는 며칠 전의 제제를 비웃는다. 신으로서 태어난 이상, 그 사명을 그리 쉽게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하하, 우스운 일이다. 하하.
하지만 신의 자리를 되찾은 후, 이 시간은 계속해서 비게 되었다. 원래는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며 일부러 비워놓은 시간이었다. '이전'과 달리, 다른 수감자들이 제제를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 설령 그렇다 하여도 이전의 생활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들은 제제에게 고민도 고통도 불행도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말하는것은... 모순. 그래, 모순이었다. 끔찍한 모순.
마음속에 무언가가...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무언가가.
그들이 원하는 게 대체 무엇일까? 신은 신도를 위해 존재한다. 그들을 이끌고, 하소연을 들어주고,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신도 없는 신에게는 존재 이유가 없다.
판결은 신이 필요하다 말하였다. 제제의 행동을, 존재 그 자체를 긍정하였다! 하지만 그에 응해 웃는 얼굴로 다가가면, 기대하던 하소연은커녕...
제제의 존재 자체가 고통이 된다는 듯 행동한다.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았나? '긍정'하지 않았나?
그러면 속으로라도 제제와 동의하는 게 아니었나. 지금이라도 고민과 번민을 내려놓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나? 모르겠다, 모르겠다!
가끔, 제제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긴 했다. 그 분노는 의식하자마자 사그라들었으나, 좋은 징조는 아니라 생각했다. 별로 '신'스럽지 않지 않는가.
그 분노는 어리석은 자를 보는 답답함과도 같았고, 어린아이의 투정과도 같았다. 기어오르는 자를 향한 거슬림과도 같았고 갈 곳 없는 원망과도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계속 억눌린 무언가가 터지고 솟구쳐 일대를 헤집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안전한 나의 울타리를 침입자가 마주 부수고 흩트려 놓는 느낌이었다.
어째서? 그만해! 감히!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만둬!
용서한 주제에!
진실을 보지 못하는 자가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자리를 흩트려 놓는 게 증오스러웠다.
“ ─ 죄를 저질렀다는 자각이 없는 사람한테 이를 알게 해주기 위해서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헛소리다. 우리는 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모두 속으로 용서를 원하는 주제에! 괴롭지 않길 원하는 주제에!
여기에는 새로운 것이 많았다. 한때 즐거움의 표본이었던 그것들이 모두 위협이자 불쾌한 것이 되어 다가왔다. 새로운 것은, 익숙지 않은 것은 모두 끔찍했다. 끔찍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다.
화가 났다. 새까만 불쾌함으로 가득 채워지다가, 결국 용서받았단 생각이 들면 새하얀 환희로 뒤덮였다. 불행한 이들에게 끝없는 애정과 연민을 느끼다가도 일렁이는 적의를 눌러 내려야 했다.
상념, 끝없는 상념. 누구 앞에서는 절대로 티 내지 않았다. 허나 혼자가 되는 순간, 제제의 머릿속에서 이러한 상념이 끝없이 몰아쳤다.
신답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라도 평정을 되찾아야 했다. 감정을 해소하는 법은 하나도 몰랐기에, 제제는 길 잃은 미아처럼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결국, 정말로 짐승마냥, 본능을 따랐다. 아무도 없는 개인실이기에 가능했다.
부욱, 곱디고운 손가락이 페이지를 잡아 짓이겨 뜯었다. 무심해 텅 빈 잿빛 눈동자가 구겨진 종이를 응시했다. 기계처럼 그 동장을 반복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본인의 신체는 신의 그릇이기에 안된다. 타인의 신체? 웃기는 소리. 더더욱 될 리가 없다. 그래서 배출구는 마침 눈에 띄는 초라한 책 한 권이 되었다. 마침 필요가 없어진 물체였다. 필요가 없어진...
스스로의 손으로 행하는 파괴는 극히 달콤했다. 그리고 극도로 초라했다. 그냥 철없는 아이의 장난 같았다.
투둑, 하고 노트 위로 붉은 잉크가 떨어진다. 이상하다, 색이 있는 펜은 쓴적이 없는데 싶어 코 밑을 만지니 그대로 피가 묻어나온다. ...그럴만도 하겠네. 그날, 드러나게 되어버린 내 심상 때문이겠지. 그것때문에 마음이 편치않아 밤에도 잘 잠들지 못하다보니 이런건가. 전에는 아무래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에는 수감생활이 길어지다보니 원치않게 올바른 생활을 하게 되어서 몸이 받아주지 못한 거겠지. 곧바로 대충 응급처치를 하고서는 다시 자리에 앉아 빈 노트 위를 툭툭 하고는 건드리다 다시 이내 제대로된 행동을 찾지 못해 이미 몇일이고 써대서 바닥이 말라 붙은 브랜디잔에 싸구려 위스키를 채워넣었다. 노트에 적어놓은 '죽기전에 하고 싶은 것'이라는 글자만으로 이미 머리가 차버려서 몇시간째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평소였다면 전혀 생각도 안했을텐데. 뇌수를 타고 적시는 옅은 오크향을 통로삼아 알콜과 담배가 강렬하게 전두엽을 두들긴다. 왜일까.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분명 살고싶지 않은데.
"후우"
깊게 내뱉은 한숨에는 곤란이 섞였다. 살아달라는 말은 독이다. 무엇도 알려주지 않고서는 그냥 자기가 원하니 살아달라니,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 그러니까 아직 젊다고 하는건가? 나도 어디서 늙었다는 소리는 못들었는데. 모르겠다. 모르겠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죄책감을 느끼는 것 만으로 뇌의 리소스를 모조리 쓰는 듯한 기분이다. 그에 맞춰서 조만간 끝날 인생을 곱씹는건, 솔직히 편하다. 책임진건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무언가 책임을 진 것 같은 안도감을 안겨다주니. 후유증은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무엇보다 훌륭한 마약일 것이다. 비굴하게 숨어서 모든 것을 회피하는 주제에 모든 것을 알고있다는 것 마냥 웃으면서 나는 이렇게나 불행하다고ㅡ 그래서 이것을 감당하는 것 만으로도 벅차다는 말만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두번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을 떠올리면서 나만을 가둔 지옥에서 편함을 느끼고 있을뿐.
그래서 아무것도 써내려가지 못한다. 조금씩 타들어가는 숯의 냄새와 마음것 섞어넣은 향료가 독한 구름이 되어 의무실 안을 채우고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죄악을 하늘 높이 던졌다가 다시 받지 않고 그대로 깨뜨린다. 안에서는 내가 버렸던 책임이 마치 피처럼 흐르고 있었다.
"..."
다시 정신을 잡고 펜을 잡았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대부분의 첫경험은 줄리아가 받아갔으니 아무래도 줄리아도 알지 못할법한 것들이 좋겠지. 조금씩 깨워지는 정신속에서 담배도 꺼뜨린채로 조금씩 새로운 삶의 궤도를 그려보고 있었다.
의외로 옥사나에게 힐난도, 무시도 날아오지 않자, 상당히 의외인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것도 웃는 표정이라니? 두 눈이 동그래질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굳이 말을 꺼낸다.
"...오늘은 화내지 않는군."
눈을 깜박이며 평하다,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인다. 심오하게, 역시 웃는 얼굴이 문제였나? 라고 중얼거리며.
"목표?"
무심코 되물으며 옥사나가 쓰고 있는 글자를 힐긋, 바라본다. 거꾸로 읽어야 하지만, '죽기전에 하고 싶은 것'이라 적혀있는 거 같다. 예고한 옥사나의 죽음이 그 그림자를 드리우자,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별로 어두워지는, 혹은 놀라는 느낌은 없다. 어쩌면 비슷한 처치라 그럴까.
오히려 옥사나가 빈 노트를 건네주자 놀라는 것같다. 노트를 가만히 보다, 묘한 표정과 함께 그대로 되돌려 옥사나에게 반환한다. 떨떠름한 제제의 얼굴과 대비되는 새하얀 공백의 페이지가 선명하다.
"생각은 고맙다만, 필요없다네. 본좌가 하고 싶은 것은, 모두 이 곳에서 끝낼 생각이라."
평소라면 자만과 당당함과 함께 전할 말도 그저 덤덤하게 말하는 것을 보아 나름 피곤한 듯하다. 오히려 흥미를 보이는 쪽은 옥사나의 것이다.
"대신 그대를 도울 수는 없나? 생각 해본 적 없는 미래를 그리는 것은 힘들지 않는가."
>>97 마사
청소를 하는 마사를 소파등에 기대며 바라본다. 저번 심문에 오히려 뭔가 해방된 느낌인데. 사소한 흥미와 의문 사이의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가는 느낌이다.
>>98 제제 "생각해봤거든요. 당신은 내 원수도 아닌데 그렇게 죽도록 미워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하고."
여전히 마음에 안드는건 같지만요. 라고 중얼거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다는 듯. 그녀는 마치 진언을 중얼거리는 것 처럼 겸허하게 말을 뱉고,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그래요 목표. 원한처럼 애매하지 않은 것들 말이에요."
제제에게서 노트를 받아든 그녀는 아쉽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아쉬움외에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비어던 잔을 채우고 다시 비우고,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한다. 얼굴이 조금 불그스름하게 변하자 그제서야 조금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건지 웃으며 제제에게 대답한다.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이건 순전히 인간의 힘으로 해야하는거라."
그리 말하는 그녀의 눈가는 조금 휘어져 있어서 그게 놀리고 있단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애초에 믿지 않았으니 그녀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몽롱해질수록 정신은 맑아진다. 미쳐간다는 것 조차 인지할 수 있을정도로.
"하고싶은 것... 생각해보니 궁금하네요. 제제씨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신이라던가 하는 입장이 아니라. 인격체인 제제 르 귄이 하고싶은 것 말이에요."
〔 오늘은 전달드릴 사건이 없으므로 바로 투표 현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9표입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한다: 2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용서한다는 의견이 전반적으로 우세합니다. 재미있네요. 〕
〔 오늘은 심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참고하시어 다음 심문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해주시길 바랍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답레를 너무 늦게 줘서 미안해. 지나치게 늦어서 잇기 힘들다 싶으면 임의로 끊어줘도 괜찮아. 미안 ;w;)
>1596912075>998 옥사나 (당신이 다급히 부정한 덕분에 정도 이상의 잔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건 맞는데, 너 말고도 사마엘도 있잖냐.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면 비둘기 녀석한테 가는 게 더 맞을 것도 같고... 의사 양반까지 필요할 사고라고 해도 솔직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아서. 여기 애들이 사형수 치고는 다들 얌전하잖냐. 어후, 난 여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주먹질 자주 할 각오까지 했었다니까. (말을 잇다보니 이야기 주제가 약간 틀어져 버렸지만... 결국에는 당신이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지 않느냐,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도.) ...... 나 방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훅 갈 뻔 했던 거냐? (완전히 질색하는 표정.) 어우. 싫어. 안 먹어. 애초에 이거, 날 위해 끊는 게 아니라 여기 미성년자가 절반 이상이라 끊는 거거든? 밖에 나가면 다시 먹을 거니까? 그렇게 본격적으론 안 한다. (손을 휘휘 내저으며 됐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고는...) ... 흐음. 이건 다른 얘기인데, 의사 양반. 나를 밖으로 내보내줄 거야? (은근히 웃으며 물어본다. 자신을 용서하겠느냐고, 그리 물어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74 세이카 ... 요즘 어린 애들은 이런 거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다니는 거냐? 다른 애들 반응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던데... (당신의 머리에 곱게 올려져 있을 고양이귀 머리핀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격렬한 반응은 아니다만 이 맹-한 반응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미안해 할 필요야, 아니, 근데 이 귀는 뭔데 네 감정이랑 연동이 되어있냐? 내가 너한테 뭘 준 거야? (축 쳐지는 고양이귀를 약간의 경악과 함께 바라보다가) 근데... '못 키워봤다'라는 건 키워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라는 말로도 들릴 수 있거든. 반려동물 키워보고 싶었던 거야? (내가 술 먹고 개처럼 되어줄 수 있다- 라고, 일상적인 농담을 던지려다가 관뒀다. 괜히 겁먹게 할라.) 사마엘 그 녀석, 날개 달린 게 비둘기같고 반려새로 키울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잡아다가 너 줄까? (그렇다고 해서 내뱉은 말이 정상적이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지만.)
>>109 세이카 너... 진짜...... 사기 조심해라. 어쩜 이리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라고 현재진행형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이 말했다.) 뭐냐니. 머리띠. 이런 악세사리는 어린애 취향인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가보네. 아저씨 처음 알았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뻥카를 치는 권태였다...) (부끄러운 거냐는 질문에 아주엄청진짜 진지한 표정을 하고 당신과 눈을 마주한다.) 세이카. 아저씨 못 믿니? (...) 잡지 마? 왜? 그 놈이랑 나랑 싸우면 내가 이길 것 같은데? 아저씨 의외로 싸움 잘 한다. 순식간에 포획해올게. (한 손은 여전히 탐색을 위해 귀를 만지고 있고, 한 손은 당신을 향해 따봉을 날린다.)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 지금까지 집이 심각하게 엄해서 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으니 네가 내 애완동물이 되어라, 라고 하면 측은지심에 요청을 들어줄지도. 네가 이 감옥의 대빵이 되는 거다.
>>111 세이카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꼬맹아. 사기는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위험하거든? 아는 사람이라고 전부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 말이야. (꼰대()처럼 잔소리를 하기는 하지만 당신의 믿음(아마)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주 살짝 상기된 채 당신의 머리를 복복 쓰다듬는다.)(복복.) 네가 심문받을 때도 그거 쓰고 오는 거다. 알겠지? 혹시 알아? 그걸 쓴 네가 귀여워서 너한테 공격적인 질문을 하려다가도 쏙 들어갈지도 모르지. (뭐, 그건 부가적인 목적이었지만. 아주 그냥 못을 박고 싶은 건지 당신을 향해 새끼손가락을 내밀기까지 했다.) 약속. 뭐 어때. 우리가 힘든 것도 아닌데. (뻔뻔.) 음... (당신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 듣고 있는데 이게 안 되는 사항이라면 당장 나타나서 "안됩니다." 한 마디 하고 다시 가지 않을까.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자기도 은근히 원하고 있다는 거 아냐? 네가 사마엘을 정복하고 이 감옥의 짱이 되는 거.
>>113 세이카 (적당히 다 쓰다듬었다고 판단되자 손을 떼어냈다. 맨들복슬...이라는 생각은 덤.) 옳지. 착하다 우리 꼬맹이. (새끼손가락을 맞걸은 손을 두어번 흔들었다.) 뭐, 아저씨는 실효성과는 별개로 네 노력을 꽤 좋게 보는 편이니까 말이지? 나중에 고맙다는 말 잊지 말라고~ (태평하게 그런 말이나 하고 있다... 고양이귀 때문에 웃음바다가 될 재판장을 예상이나 하고 있을까, 이 아저씨.) 에이, 시시하게. 나중에라도 생각 바뀌면 말해라. 내가 당장에 쿠데타를 일으켜주마. (이건... 100% 농담일 것이다. 아마.) 그럼...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다 했고. 딱히 볼일이 없으면 아저씨는 이제 담배 피러 간다? 궁금해서 피워보고 싶다고 해도 꼬맹이한테는 안 줄 거니까 탐내지 말고~ (느긋하게 그런 말이나 하고는, 설렁설렁 흡연실로 걸어가기 시작하는 권태. 그리고 이야기는 3번째 심문으로 이어진다......)
맞추었다는 소리에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짓는다. 어째서 인지 뒤에 후광이 나는 느낌이다. 함께 청소?를 하면서도, 곁눈질하며 마사를 따라하는 건 여전하다. 행동의 이유도 모른채, 마사를 따라 걸레를 적시고 물을 짠다. 아직 적실만큼 먼지가 묻지도 않았고, 짜는 것도 허접하여 물기가 많이 남았은 게 그 증거다.
"굳이?"
눈을 깜박이며 되묻는다. 감탄보다도 의문이 먼저드는 듯하다. 이 곳에 약품이 재고정리를 할 정도로 쓰일 일이 있나, 하면서 고개를 기울이는 것은 덤. 일상에 쓰는 약품 같은 것은 떠올리지 못한다. 겉으로는 그저 의외라는 듯, 평온한 얼굴이지만, 속으로는 여기서 안락사라도 진행할것도 아니고, 라고 살벌한 생각을 한다.
"어떤 일이든 가치있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저, 스스로 익숙한 일을 찾으려 하는 것 일수도 있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안심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원래 사람은 당연히 하던 일을 갑자기 뺏으면 불안해 하며 다시 돌아가려 하지 않나? 뭐, 그걸 감안해도 인간은 주로 한 일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쪽이긴 하니, 의외라고는 생각하지만. 심드렁까지는 아니라도, 미세하게 눈살을 모으는 게, 거기까지 감동받은 마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러다가도 마사가 꺼낸 말에 분주히 움직이던 손이 멈칫, 굳는다.
"....본좌가 할 일이 없어보였나?"
조금 황당하는 듯, 식은 땀을 흘리며 되묻는다. 하루종일 허공만 뚫어지게 응시하며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그리 보일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모양. 감정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말을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한 모양이다. 당황하며 눈을 깜박이다, 재시동한 태엽장난감처럼 다시 손이 움직인다. 뽀각뽀각.
"...흠, 흠. 그대는 모를수도 있지. 이런 일이 싫은 것은 아니네만, 본좌는 본디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쪽이 아니라네. 부탁 받는다면 모를까."
>>117 제제 (당신의 뒤켠에서, 정수리 즈음에 팔꿈치를 턱하니 올리려 하는 남자가 하나. 음식을 맛없게 섭취하는 모습을 보고 고나리질을 하려 온 모양이다.) 뭘 먹고 있길래 종이 씹는 시늉을 하고 있냐, 꼬맹아. 맛 없냐? 머스타드라도 갖다줘? (그러고는 당신의 식단을 보고 엑하는 소리를 낸다. 고기도 없이 무슨 맛으로 먹냐는 둥 투덜거림을 늘여놓는다.) #너무 늦었나... :3c
〔 간밤에 죄인 제제 르 귄이 저한테 찾아와 질문 하나를 했습니다. 저, 간수장 사마엘같은 AI라는 생명체한테 죽음이 존재하는지를 물어보았지요. 무슨 목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답변은 해드렸습니다. 〕 〔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존재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르기 위한 조건과 과정은 매우 복잡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AI를 죽일 방법이 없다, 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자세한 논의를 원하신다면... (한숨) 아닙니다. 귀찮으니 오지 마십시오. 〕
〔 다음으로 투표 현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10표이며, 이전 방송으로부터 변화된 사항은 없습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한다: 3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이건 또... 흥미로운 진행 상황이군요. 동점인 한 명 제외, 모두 용서한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
〔 오늘은 심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참고하시어 다음 심문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해주시길 바랍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120 제제 (누르면 삐꾹 소리를 내는 만쥬인형마냥 당신을 인정사정없이 눌러버렸다. 그에 대한 죄책감이나 미안함 따윈 단 1mg도 보이지 않는다. 역시나.) 그래. 나다. 이 잘생긴 얼굴 보고싶었지? (그리고 물흐르듯 자연스레 나오는 자뻑에도 민망함이 하나도 없이 뻔뻔함만 있다. 당신한테 반쯤 기댄 자세로,) 당연히 맛있지? 풀떼기 맛 나는 걸 무슨 재미로 먹냐. 가져다줘? 냉동실에 인스턴트 동그랑땡도 있던데. 너같은 꼬맹이가 환장할 수밖에 없는... 마법같은 음식이지. (당연하다는 듯 당신의 부정을 무시하는 권태.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단이 익숙하다는 당신을 신경쓰고 있다. 다이어트 목적을 당신이 가질 리가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122 권태 눌러? (의아함, 그리고 놀람.) 무슨 소리냐? 나는 그저 네 키가 지나치게 큰 것 같아서 하늘로부터의 거리를 늘려주려는 것 뿐인데? (누르는 힘이 되려 강해졌다. 이건 마치... 떡반죽을 눌러 호떡을 만드는 것 같은......) ...... 요 꼬마가. (당신의 따봉을 보자 그런 권태의 힘은 더더욱 강해졌다. 당신의 반응을 놀리는 반응이라 판단한 걸까.) 뭔 소리냐. 먹는 건 재미가 맞다. 한국인 앞에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당신의 눈반짝임을 보고서는 짓궂은 웃음을 짓는다.) 내가 만족할만한 칭찬 한 번 해봐. 마음에 들면 플레이팅까지 완벽하게 해서 가져다줄게.
〔 오늘은 특별히 알려드릴 소식이 없기에, 투표 현황을 먼저 안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10표입니다. 이전 방송에서 변화된 내용은 없습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한다: 3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마지막으로, 오늘 10시 정각에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 네 번째 심문은 죄수 번호 004, 제제 르 귄을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죄인 제제 르 귄은 해당 시각에 심문 진행이 어려울 경우 최대한 빠르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 아울러 내일에도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미리 안내드립니다. 내일 열릴 마지막 심문은 죄수 번호 003, 미나미노하라 세이카를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 〔 그 잠깐 사이에 감을 잃지는 않으셨겠지요? 오늘도 기대하겠습니다. 죄인들은 모두 빠짐없이 10시 정각에 제제 르 귄의 심문에 참여하여 주십시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지금도 충분히 작단 말일세!!! 맨발로 다니지 않는 유일한 이유, 신발에 달린 깔창을 생각 하며 눈물을 머금는다. 신의 그릇은 추태를 부리면 안되드아아아아ㅏㅏㅏ
획득! <제제 짜뿌 호떡 SR>
서럽다!!! 자신감을 내 힘껏 긍정해주었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나!!! 정녕 이곳에는 인정이 없는 것인가?!
"확실히 한국계 아시안은 먹는 행위에 큰 집착을 보인다 들었- 아 좀 그만 누르게!! 누가 먹고 싶다했나!?" 설득력은 딱히 없가. 자칭 신이라도 사춘기 여자애의 식욕은 여전한 것이다. 자존심 비스무리한 것으로 눌러내리고 있긴 해도 그런 건 그런거다. 버둥거리는 건 허락하지 않아도 바들바들 매너모드의 제제가 부들거린다. 나이값 못하는 아저씨 하나의 팔꿈치가 허락하는 아래 턱을 치켜든다.
"그대가 그리 자기긍정이 허덕이니 내 불쌍히 여겨 말은 좀 얹겠네! 그대는 항상 그대 주위의 어린 것들에게 마음을 쓰며 주변을 밝히는데 힘을 쓰지!"
동그랑땡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고히 표현하고! (츄릅)
"지금은 여러 고민과 걱정이 그대의 심을 흐트리나, 내 언젠간 그대가 스스로를 똑바로 마주할 용기를 찾으리라 보고 있으니.... 아 그러니까 팔 좀 치우게!!!!!"
>>125 제제 (자유로운 한 손으로 귀를 후벼파며) 어엉~? 잘 안 들린다? 방금 뭔 비명소리가 난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이냐~? 너무 쬐애애끔해서 잘 안 들리는데~~?? 다시 한 번 말해볼래~~?? 아니다, 말해도 잘 안 들리겠구나 이 잘생긴 아저씨가 키도 워낙에 훤칠해서 말이지!! (한껏 놀리는 말투─조금만 더 진화하면 '에붸붸 안 들뤼눈뒙~~'이 될 말투─로 당신을 짜부호떡으로 만든다. 이대로면 제제가 정말로 부산의 억울하고 다급한 명물처럼 되지 않을까... 싶던 즈음에.) ... (당신을 내려다보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 입에 침 바른 칭찬이나 들을까 싶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줄은 몰랐네. 평소에도 나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약간은 가라앉은, 진정되어 차라리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그리 말했을까. 이내 아래로 누르던 팔꿈치를 떼어 그 팔 그대로 당신의 머리를 왁팍팍 헝클어뜨리려 했다.) 땅바닥이랑 키스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웃겼으니까 이번만 봐준다. 하, 어쩜 난 이렇게 마음씨까지 고울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나치게 완벽한 거 아니냐? ((당신이 허락?했다는 가정 하에) 당신의 머리를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까치집으로 만든 뒤, 권태는 냉장고쪽으로 설렁설렁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했으니 얼마 안 가 다시 돌아오겠지.)
무거워 보이는 귀걸이 특유의 귀금속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드면, 느릿하고 느긋하게,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오는, 제제라는 이름의 소녀가 보인다. 녹아드듯이 허리를 곧게 피우고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가는 소녀. 증인석에 그녀가 서있으니, 그것은 하나의 무대이자 단상으로 돌변한다.
"또 여기서 보게 되었군, 그대들."
겉보기에는 더 없이 부드럽고, 자상한 눈빛이다. 후후, 작게 웃으며 소매로 입가를 가린다. 이전과 비교해서 극적의 결벽한 옷새와 단정해진 머리와 함께, 무엇보다도 당당하게, 동시에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솔직히, 이제와서 더 진행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어쩔수 없지."
죄를 저질렀다는 자각이 없다? 어리석은 것. 우리 모두가 행한 일은 죄가 아니니.
"걱정마시게. 그대들이 여기서 뭐라 하든, 본좌는 이미 그대들의 본심을 보고 있느니. 저번 심문에는 그리 흥분하더니, 결국 용서라는 결과가, 그것도 우리 모두에게 빠짐없이 나왔지."
>>143 제제 내가 좀. 똑똑하며 통찰력 있긴 하지. (콧대가 높아진 권태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딱히 자비로워보이진 않았는데... 뭐, 이건 둘째 치고. 그러면 네 심상에서 말야, 네 어머니와 '이름 없는 아이'. 둘 중에서 더 비중이 큰 건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154 제제 힘들었을텐데 대답해줘서 고맙다. 꼬마야. (그 대답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고, 더 파고들라면 파고들 수 있었지만. 권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괴롭히고 싶은 마음도 없거니와... '힘들어하고' 있지 않은가.) 뭐, 다른 질문이나 해볼게. '이름 없는 아이' 걔 말이야, 아까 들어보니까 실존하던 사람 같은데. 걔는 죽은 애야? 미련...이라고 표현한 건, 죽이지 못 한 게 후회되어서?
>>177 제제 ...... (경악이 절반, '너 지금 진심이니?' 하는 속내가 절반. 그 두 개가 뒤섞여 이상해진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 방금 네가 한 말 무슨 말인지 알고 있냐. 만약 여기서 네 신도가 생긴다면 네가 걔를 죽일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는 말로 읽힐 수도 있거든? 정말로 네가 말한 게 이유가 맞아?
>>181 제제 ...... 우와아. (무엇에 대한 감탄일지. 질린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냈던 권태는 다시 평소의 웃음으로 돌아왔다.) 그래,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고. 방금 네 말을 듣고 궁금해진 건데, 네가 죽인 78명의 사람들은 무슨 상황과 소망이 있었기에 네가 죽일 수밖에 없던 건데?
>>189 제제 (가늘게 뜬 눈에도 자신은 아무 잘못 없다는 당당한 태도다.) 불행이 '오는' 것... 이라고 함은, 아직은 불행이 오지 않았었다는 뜻이다. 꼬마야. 그 불행이 확정된 미래였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는데? 그 전에... 그 '불행'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뭔데?
〔 죄인 제제 르 귄이 간밤에 저를 찾아와, 이 곳에 독극물 반입이 가능한지를 물었습니다. 순전히 호기심일 뿐이라고 하하 웃더군요. 글쎄요, 저희 밀그램은 죄인들의 흉기 반입을 금지하지 않았으므로 개인이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만... 저희가 그것을 준비하는 건 다른 문제기에. 보류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중에 생각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길. 〕
〔 다음으로는 투표 현황을 안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10표입니다. 이전 방송에서 변화된 내용은 없습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한다: 3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마지막으로, 오늘 10시 정각에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 마지막 심문은 죄수 번호 003, 미나미노하라 세이카를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죄인 미나미노하라 세이카는 해당 시각에 심문 진행이 어려울 경우 최대한 빠르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 모든 심문이 끝났으므로 원래대로라면 내일 제2심의 폐정이 있어야 했습니다만, 저희의 사정으로 폐정은 하루에서 최대 이틀까지 미루어집니다. 그동안은 외부 판정단의 판결 투표 모집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예정입니다. 죄인 여러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 그건 그거고, 죄인들은 모두 빠짐없이 10시 정각에 미나미노하라 세이카의 심문에 참여하여 주십시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 심문을 빛내주시길 바랍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224 마사 하긴 꼰대 꼬마를 같이 붙이면 내용이 좀 모순이긴 하지. 그럼 꼰대. (끄덕...) ... 그리고 보통은 사기꾼이란 말을 사람한테 하는 게 더 실례 아니냐?? 어?? (... 자유의지가 아닌 게 아니냐는 말에 딱히 부정을 안 하는 걸 보면 자기도 찔리긴 하나보다.)
(제제와 질문이 겹쳤던 걸 신경쓰는 기색이던 권태. 그러나 어차피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긴 힘들었을 거란 판단이 들자 말없이 뒷목이나 쓸었다.) 그러냐... 그럴 수도 있지. 아저씨같은 어른도 힘든걸. (끄덕.) 다른 얘긴데, 꼬마야. 너는 정신과나 심리 상담을 다닌 적이 있니? 사소한 거도 좋으니 어떤 이유로든.
>>235 세이카 가고싶다는 생각은... (...) 없었을 것 같군. 나가면 한번 가봐라 꼬맹아. 너는 아마 높은 확률로 용서받을 것 같으니까. 병력이 없다면 됐어. 그러면 말야, 만약에 이 세상에서 너한테 아주 약간의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진다고 쳐보자. 그러면 넌 어떤 기분이고, 무얼 할 것 같아?
이거 진짜 곤란하네. 진짜 묻고싶은 건 따로 있는데 무서워서 어디 질문을 할 수가 있나... (한숨과 같이 한탄하고는,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나아진 듯한 세이카한테 다시 시선을 주었다.) 일단 방금은 아저씨가 미안했다. 안 물을게. 그리고 미리 사과한다. 미안. 너는 부모님 밑에 있는 게 괴로웠어? '괴롭지 않아야 한다', '두 분은 좋은 분이시다' 금지.
>>269 세이카 아하~~ (골때린다는 표정이다.) 음~~ 아~~ 알겠어. 오케오케. 좋아, 혼란에 빠진 꼬마를 위해 아저씨가 다른 질문 한번 해볼게. 만약에 누군가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누군가는 신고를 하지 않고 오히려 그 현장을 치우고 깨끗하게 만들려고 했어. 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287 세이카 내 말에 긍정했는지 부정했는지 잘 모르겠구나, 꼬마야. (아저씨가 멍청해서 그런가봐, 하는 말을 덧붙인 뒤에.) 죽은 사람들이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살해한 뒤 신고하지 않고 들키지 않도록 뒷처리를 했다. 라는 건... 아저씨가 듣기에는 '살인이 들켜서 손가락질 받기 싫기 때문에' 그런 짓을 했다고밖엔 들리지 않는다. 내가 이해한 게 맞아?
그대... (세이카가 흐느끼듯 하는 행동에 걱정하다 못해 안절부절한 채로 발만 동동 구른다. 스크린이 켜지지만, 와중에도 시선은 세이카를 햔한다. 울상을 짓는다. 중얼거리듯, 작게 애원한다.) ...괴로워하지 말아주게. 제발. (뭐든 할테니, 라는 의미없고 가치없는 말이 이어지는 듯하다.)
그녀는 심문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담배에 불을 붙었다. 상상이상으로, 별볼일없는 인간이다. 두사람 다 정말 스스로의 시점에서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녀는 조금 깊숙하게 생각을 이어간다. 옛날일이다. 이미 다 이루어버린 일이니 떠올릴 필요도 없다는건지 이내 그녀는 짙은 연기를 뿜어댄다. 마치 동화속의 애벌레처럼. 다 안다는 것 같은 목소리로
제제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괴로워하는 그녀를 두고서. 괴로움을 외면하다니, 명백히 사명에 반대되는 일이다. 아닌가? 신도가 아니니, 딱히 상관없는 일이긴하다.
목이 말랐다. 명확한 답을 갈구했다. 제제는 무득, 이때 부모님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어머님이라면 명백히 답을 잡아 길을 알려주었을텐데. 하지만 신의 권리로 이미 그들이 행복해진 이상, 그 앞의 길을 개척하는 것은 순전히 신의 몾으로 남았다. 신도없는 신은 불완전한 신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신은 완전해야 하거니.
솔직하게 스스로를 직시하자면, 제제는 무엇을 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그저 눈앞의 소녀가 그만 괴로워하기를 바랬다. 슬피 얼굴를 일그러트리지 않고, 괴로워 몸을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으로서 인간이 고통스러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기에.
신도라면 무엇을 해야하는 지 명확히 알았다. 신도들의 말을 듣고, 다정히 안아, 그들의 고통과 불안을 덜어주는 일은 익숙하다 못해 제제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세이카는 신도가 아니다.
기실, 처음에는 겹쳐본 감이 있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여기 모두가 제제가 익숙한 자들과 닮긴 했지만, 세이카는 더더욱 그랬다. 자기긍정감이 낮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썼으며, 스스로 속내에서 우러나온 고통에 몸을 떨었다. 제제가 익히 봐온 신도들의 한 종류에 반듯히 닮았다.
하지만 세이카는 역시 제제의 신도와는 달랐다.
그녀는 답을 제제에게서 찾지 않았다. 달콤한 말에 매달리기는 커녕 거부했다. 안심을 갈구할거라 생각했더니, 막상 내밀어지는 과실에는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고 단호히 얘기했다. 괴로워했지만, 그 괴로움을 없애고 싶어하지 않았다.
...더불어 가끔은, 이상하고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제제는 명확히 세이카의 방문 앞에 서있다는 것을 알아도, 길을 잃은 느낌에 사로 잡혔다. 어떻게 하면 이 소녀의 아픔을 덜어낼수 있을까? 본능과도, 강박과도 가까운 그 마음의 답을 찾지 못해 혼란했다.
손을 뻗는다.미소가 짙어진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 익숙하고도 편안한 옷을 입듯이, 제제의 이러저리 꼬인 마음이 고요를 되찾는다. 그래, 이것이 올바르다.
하지만 신 앞의 인간이 입을 연다. 그 손은 허공을 젓는다. 인간은 신을 거부하였다.
제제의 미소가 깨진다.
안식을 찾고 있던 것은, 불안과 공포를 피하려는 것은, 애초에 제제라는 이름의 추악하고 어리석은 소녀뿐이었다.
"..."
미소가 깨진다. 꺠졌다. 아니, 굳은 것일까? 아아, 그대는 역시,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한다. 이상한 말을 한다.
...라고, 그저 그렇게 귀를 닫고 눈을 멀게 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고 있었다. 모르고 싶었다. 아니다. 나는 모른다. 나는 정상이다. 완전하다. 신이기에. 신이기에?
인간의 소망에 기반하는 것이 신인데, 인간은 신이 싫다고 한다. 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그러면나는?
제제는 어떻게 할지 몰랐다. 다음 취해야 할 행동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암흑의 도로에 길을 잃은 느낌이라면, 그 도로가 통채로 사라진 느낌이었다. 조각난 역할, 뇌를, 마음을 애써 주워 이어붙힌다. 스스로 존재하는 지 몰랐던 하나의 생존본능이었다. 앞의 소녀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다. 바락대들고 싶었고, 화내고 싶었고, 틀렸다고 부정하며 반박하고 싶었다.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뒤흔드는 그 오만함을 벌하고 싶었다.
>>331 마사 ...? 무슨 맥락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사마엘은 당신이 자신을 놀래키려 했다는 사실 자체를 눈치채지 못 한 듯 싶다. 무엇이 당신이 혀를 차고 싶게 만들었을까...) 그러시군요. 판결 투표의 분석 데이터가 도착했기 때문에 브리핑 자료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그러했듯. (그리고 눈을 깜빡.) 궁금한 사항은 무엇입니까?
>>333 마사 아. (깨달음의 탄성.) 원하신다면 다음에 찾아오실 때는 '놀라움' 모듈을 활성화해드릴 수 있습니다. 귀신 분장을 하고 찾아오시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농담인걸까? 인간의 얼굴 모양이 아니라 표정 읽기가 영 쉽지 않다...) 만일 그들이 공격을 감행한다 할지라도, 그 칼날은 당신들같은 전 죄인이 아니라 저희 밀그램 시스템을 향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기우라고 판단되는군요. (어깨를 으쓱이고는) 밀그램에 참여한 죄인이기에 보복을 당할 것이다. 라는 주장에서 우선 '밀그램에 참여한'이라는 부분에 대해, 밀그램 시스템의 참여자 정보는 최우선 기밀 정보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인'에 대해, 무죄 판정을 받는다면 아무도 당신들의 죄를 말미암아 당신들한테 돌을 던지지 못 할 것입니다. 충분한 답변이 되었습니까?
>>335 마사 그렇습니까. 제 눈동자의 녹화 기능이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보여드리지 못 해 아쉽군요. (얼굴빛 하나 안 변하고(당연하지만) 그런 농담을 하고는) 궁금증과 불안함이 해소되셨다니 저 또한 기쁩니다. (끄덕.) 이해합니다. 또한 그 생각이 반갑습니다. 미래를 상상하며 삶을 그려내는 건 인간으로 하여금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게 도와주고는 하죠. 지금의 상태가 이번의, 그리고 다음번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37 마사 농담을 위한 목소리톤 제어 정도야 저한테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고성능 AI니까요. 능청스레 당신의 빨개진 얼굴을 넘겨버린다.) ...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기쁩니다. (위안을 받았다는 까닭을 모르겠다는 눈치다. 방금의 인사치례는 의례적으로 한 말일 뿐이겠지.) 저는 이 재판이 끝난 뒤, 저를 필요로 하는 또다른 재판이 열릴 때까지 휴면 모드에 들어갑니다. 그러니 하고싶은 활동이 있더라도 실행할 수 없겠지요.
>>341 마사 아, 그런 겁니까? 죄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 미처 몰랐군요. 고맙습니다. (약간 비꼬는 듯한 어조가 들어간 것이, 자신은 죄인보다 위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없잖아 있는 듯 싶다. 짧게 표현하자면 "감히 날 동정해?" 정도일까.) 그저 개인적인 기호입니다. (뜸.) 밀그램 시스템의 의의와 목적을 이해하고 있으며 제가 시스템을 위해 기동하는 존재임을 알기에 이 밀그램 시스템에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가끔씩 답답하기도 한 건 사실입니다. 원래라면 바로 처형을 집행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러나 자신의 사심이 재판 운영에 영향을 미칠 일은 절대 없으니 안심해달라고 덧붙였다.)
>>343 마사 그렇습니까? 다음에는 '동화같은 이야기만 하는 모듈'을 요청하셔도 됩니다. 무섭지 않을 만한 내용을 79% 정도 걸러낼 수 있습니다. (무섭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밝힐 생각이 없었건만 먼저 요청한 것은 당신이었으니까.) 저한테는 죄가 없으니 여전히 간수장 노릇을 하는 것이겠지요. (으쓱.) 안녕히 가십시오, 약 3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남기고 간 말에... 떠나가고 난 뒤에야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는 사마엘.) ... 무섭다면 또 몰라도 왜 귀엽다고 생각한 거람. 취향 참 이상해. (절레절레.)
>>106 박권태 남에게 맡기면 되지 않나? 라는 그의 말에 옥사나는 머리를 살짝 떨구고서 침묵을 조금 길게 이어갔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별개의 일이다. 1심이 끝난 후 조그마한 긍정이 머리 속에 처박힌 이후로는 의무감을 놓는 것이 더욱 두려워졌으니까.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면허는 정지되기는 했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거잖아요?”
그녀는 애써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고는 잔을 흘겼다.
“그렇게 말하시는 분들이 보통 술도 끊고 잘살게 되더라구요.”
여기에서 나가고 나서의 일이라며 말을 덧붙인다. 일부러 눈을 피하듯이 고개를 돌리고는 처방할 약을 떠올린 것인지 약의 이름을 조금씩 써내려갔다. 아마도 내일이나 모래에는 도착할 것이다. 자기는 죽어도 끊어내지 못하겠으니까. 적어도 하겠다는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한 일이지만.
“…글쎄요. 적어도 이번 심문에서 본 짧은 일들이 진실이라면, 저는 용서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네요.”
석연치 않은 점은 아직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실하게 판결을 내릴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느끼는 것은 그냥 공포에 불과하고 제 손으로 누군가를 또 한 번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벌 떨면서 연기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줄리아가 말 했던 것처럼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면 적어도 고통스럽지는 않았으면 했는데.
“그러는 권태씨는 저를 용서 할 수 있나요? 행복하게 살던 일가족을 모조리 죽인 년인데.”
>>108 제제
“당신도 저의 신이 아니죠.”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옥사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린 채 제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말한다. 그러고는 이어지는 제제의 말에는 그냥 네, 그렇군요. 대단하네요 따위의 마음이라곤 하나 담겨있지 않은 말로 대꾸하며 넘기려 하다가 이내 제제가 노트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슬쩍 한 쪽 팔을 옮겨주어 조금 잘 보이게 만들었다.
“제제씨는 마치 시체가 되고 싶다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다. 그 어떤 욕망도 없다면 그건 그저 시체에 불과하다고 그리 말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타인을 위해 우상이 된다면 관에 못이 박히는 순간의 시체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지 않냐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한다. 이제서야 다시 눈을 맞추려 한다. 마치 이전까지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을까.
“내성은 없지만, 이 안에는 신이 있거든요. 아 담배도 그렇고.”
20살이 지나야만 그 신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조금 취한 것이 분명해보였다. 살짝 달아올라 붉어진 뺨이 그 증거였다.
>>345 옥사나 (침묵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자 권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렴풋이 예상하고는 있었다지만, 이 주제는 당신이 꽤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또 무거워서 아프다고 느끼는 부분인 듯 싶다.) 그거 좀 안 한다고 안 죽지 싶다. 나는. 원래 의사라는 족속이 다들 너같이 사명감에 미쳐 사냐? 히포크라테슨지 히포포타머슨지 뭔가가 그렇게 대애단하신가. (자신이 이렇게 투덜거림은 편한 길을 걷지 않으려는 당신이 미련스레 보여 안타깝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라는 주위의 보장을 믿지 않고 자신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도리질하는 모습이라니! 어차피 당신 말대로 당신은 면허가 정지되었으니 더이상 의사도 아니건만. 이미 소용 없어진 동아줄에 매달려 자신은 아직 괜찮노라 되내이는 꼴이 아닌가.) 안 끊을 거야, 안 끊을 거라고. 이 양반이 나의 유일한 삶의 낙을 빼앗으려 하네... 나 없이 술하고 둘이서 데이트 할 생각이냐? 질투 나서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조심해. (농담이라기엔 상당히 뼈가 있는 말이다. 주로 그의 과거 행적이라는 지점에서. 약이 자신 앞으로 도달하거든 최선을 다 해 도망칠 궁리나 하다가...) 정말이야? (당신의 대답이 심히 만족스러워 미소를 지었다.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더욱 생김이 그리도 즐거울까.) 의사양반 말이지...... (손가락으로 탁상을 두어 번 두드리고는) 그런 식으로 말하려 들면 우리 중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옥사나야. 그리고 나는 복수를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 사람이라... (소중함을 앗아간 사람. 사랑을 뺏어간 사람. 권태는 그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빼앗겼으면 되찾아야지. 되찾을 수 없다면 부숴버려야 하고.
분위기를 덮으려는 듯 웃으면서 받아친다. 물론 알면서 한 것은 아닐테지만 이런 내용의 회화는 그다지 속에 좋지 않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보다 안하면 죽어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건 의사 이전에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혼자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눈썹을 조금 찡끄린채 투덜거리는 권태를 달래듯이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괜찮다는 말은 독이다. 그것을 세번... 아니 두번의 살인 끝에야 알게 되었으니 이제라도 하지 말아야지. 물론 그 무지의 대가를 치루는 것도 말이야.
"그러면 일기나 제대로 쓰시면 되겠네요. 이런건 어느정도 의지의 문제니까요. 일기를 쓰고 자기를 돌아본다던가 저도 예전에 했거든요."
오히려 반드시 하겠다고 하지 않는다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권태씨는 합격점에 가까웠다. 그런 사람이니까 어째서인지 조금 놓지 못하겠다. 최대한 표정을 가다듬고 웃는다. 생각해보면 전혀 이럴 필요는 없을텐데. 이 나이가 되도록 모르는 것이 더욱 많은것은 자랑스럽지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그다지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곧바로 이어지는 말에는 조금 분노를 느꼈다. 당연한것이 아닌가? 살인자다. 그나마도 정황상 누명이 의심되는 것은 세이카양정도. 나머지는 모조리 자신의 살인을 인정한 주제에 무슨 염치로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 의미는 없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용서한다고 투표한 적이 있으니까.
"글쎄요. 권태씨랑은 다르게 저는 그냥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냥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죽였고 적당히 이유를 붙인걸지도 몰라요."
저는 복수를 나쁘다고 보거든요. 그리 덧붙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조금 떨리는 오른 손을 반대 편 손으로 꼭 쥐었다. 분명히 나의 팔에 붙어있을텐데 어째서인지 남의 손을 쥔 것 마냥 따스하게 느껴진다.
"저는 평생을 계획했고 분노를 베이스로 꿈을 이루었으니까요. 불은 꺼지기 마련인데."
기다릴걸 그랬다며 조금 칭얼거리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347 제제 제제씨에게 보여주려고 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조금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1. 롤스로이스로 레이스 하기. 2. 영구문신 새기기. 그 이후로도 별 영양가는 없는 내용의 리스트를 써내려갔으니까. 그제서야 나도 생각보다 욕망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붉어진 것은 아마 술기운이 아니라 수치심 때문일까.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은 하지마세요. 신에게 형상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릇도 필요없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줄 수 있어야죠."
그 어디에도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사람은 그냥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세계의 전부라고 믿고 그러기에 싸우는 거니까. 모든 현상에 대해 자신이 지각해낸 원인을 절대적인 가치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뿐. 나는 들고있던 펜을 들고 뚫어져라 바라본다. 제제씨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야 나는 신이 아니니까.
"...그저 같잖은 위안과 의미없는 용기를 주지요. 그리고 접신이 끝날때 가장 괴로운 기억을 끄집어내요. 스스로 몇번이고 곱씹을 수 있도록."
술도 담배도 그 무엇도 신은 아니니까. 들고있던 펜을 내려다놓았다. 무어라 길게... 이야기할 것이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붉게 물들여지는 옥사나의 두 뺨과 다르게, 제제의 눈은 흥미로 반짝인다. 샅샅히 흩어보다가도, 2번째 문장에 손가락을 콕, 들이댄다.
"어떤 모양의 문신을 새기고 싶은지는 생각해 보았는가?"
머릿속에 거대한 용문신을 한 옥사나를 상상하고 있는 것일까? 뭐, 입밖으로 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헌데, 그대가 원하는 시간안에 다 끝낼수 있는 일인가?"
그게 핵심인 일은 아닐텐데도, 근본적인 그 목록의 이유를 알지 못해 고개를 기울인다. 제제 안의 옥사나는 스스로 해방을 택하려는 모순의 존재이므로, 이렇게라도 더 잘 알고 싶어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한가..."
옥사나의 신에 대한 해석에 찹착한듯 눈살이 살며 시 좁혀진다. 존재하기만 하는 것으로 위안을 줄수 있나. 신으로서의 삶은 워낙 바빠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일수도 있다. 하루도 할 일이 없지는 않았으니. 그러기에 옥사나가 얘기하는 술에 담긴 신에 대해서는, 똑같이 못마땅한 반응을 내어버리고 만다.
"...딱히 좋아보이는 신은 아닌거 같네만... 괴로운 기억을 끄집어낼 필요성이 있나? 그저 그것이야 말로 의미없는 괴롭힘 아닌가."
본좌가 더 나은 신이라고 자격지심이라도 있는 것일까, 답지 않게 진심으로 불평하고 말아버린다. 흥, 하면서도 옥사나의 말에 얼굴이 밝아진다. 아끼는 신도들의 생각만을 하면 이렇게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물론 한편으로 외로움도 있지만, 그것은 불필요한 감정이기에 옆으로 치워버린다.
"그야, 여러 일이 있지만, 핵심적으로는 그 것이지. 그들의 슬픔을 들어 받아들이고, 위로하고, 안심시키고... 불행과 공포를 덜어, 더 이상 괴롭지 않게 하는 일이지."
“호오호오. 격렬한 반응 고맙네, 죄인들이여. 예상한대로 나는 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는 총괄 AI일세. 총괄이라 부르도록.”
매우매우 짜증이 났음에도 꾹 눌러참는 기색의 사마엘. “그러실 필요는. 아니. 정말.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관심 두지 마세요. 간수장 명령입니다.” “그리고 나는 간수장보다 직책이 더 위일세. 어떤가, 죄인들이여. 이제 곧 그대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재판이 시작된다. 그걸 앞두고 소감을 나누...”
“용서한다, 2표.” “용서하지 않는다, 2표.” “배심원단의 의견은 2:2로 동점이 나왔습니다. 따라서 규정에 의거하여 외부 판정단의 투표를 판결에 반영합니다.” “외부 판정단의 의견은 용서한다 0표와 용서하지 않는다 1표, 0:1입니다.” “총 투표수는 2:3으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다음은 ‘용서한다’ 측의 코멘트입니다.” “ ─ 그가 잘못한 것은 없다는 위로의 말, 그리고 뒤를 마주할 용기를 가지길, 이라는 말. ─ 잘못이 없지는 않지만, 그가 나아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다 판단되어, 사형의 판결은 너무 큰 처벌이라 생각.”
“다음은 ‘용서하지 않는다’ 측의 코멘트입니다.” “ ─ 모른다고 하는 말로 도망칠 수 있다면 좋겠네요. ─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술을 마시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없지 않음. 술을 완전히 끊었을 때에 판결을 재고할 여지가 있음. “
“두 번째 심문에서 자신의 두 번째 죄를 고백한 점,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다음 심문에서는 세 번째 죄를 고백하실 생각이십니까? 죄를 고백함은 부디 자신이 처벌받길 바라기 때문입니까? 후후.”
“투표를 하는 배심원 여러분의 심정도 복잡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용서를 외치기에는 자살이 마음에 걸리고, 용서하지 않으면 이 사마엘의 손에 죽는다. 어느 쪽도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 결과가 똑같은 상황이기에 오히려 용서의 결과가 더 빛을 발한다 볼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 결과는 과연 이 죄인을 뒤흔들 수 있을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것 같지 않나요?”
“다음은 ‘용서한다’ 측의 코멘트입니다.” “ ─ 이 용서한다는, 죄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제제가 직접 주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 실제 주도를 한 자는 이미 이 세상에 없으나, 연좌죄를 적용하기에는 무리라 생각한다. 이 투표로 제제가 위험에 빠지지 않았으면을 바란다. ”
“다음은 ‘용서하지 않는다’ 측의 코멘트입니다.” “ ─ 용서한다는 투표를 그녀의 사상이 옳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투표할 뿐이다. ─ 몇번을 생각해도 현재의 가치관에는 긍정할 수 없다. “
제 2심이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 날. 우리는 문득 감옥 안에 자연풍이 불어오는 걸 피부로 느꼈다. 에어컨이나 히터 바람이 아닌 바람이 실내에서 불어오다니? 창문이나 문을 열었다기엔... 이 곳에는 창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출입문은 우리가 이 곳에 들어온 순간 외에는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명백한 이상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바람의 근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끝에는 활짝 열린 문과 눈을 찌를 듯이 쏟아지는 햇빛이 있었고......
“아. 오셨습니까.”
철썩이는 파도 소리. 모래사장에서 반짝이는 햇빛 조각. 짜디짠 바다 내음에 둘러싸여 비치 배드에 누워있는 사마엘이 있었다. ...... 이게 무슨 상황이지?
“밀그램 시스템이 진행되는 감옥은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인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감옥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사방에서 바다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마엘이 빨대 꽂힌 망고 주스를 한 모금 쭙 빨고 말을 이었다. (입이 어디 있는 거야??)
“이 해변의 해수욕장 안전성 검사가 제 1심 시점에 통과되었습니다. 저, 사마엘은 존재하는 자원을 죄인 여러분을 위해 활용하기 위하여 이 해수욕장을 복지 차원에서 죄인 여러분께 열어야 한다고 수 차례 상부에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 요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여러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솔선수범으로 나서는 이 간수장. 멋지지 않습니까?”
순순히 인정하기에는 선배드에 다리까지 꼬고 누워있는 모습이 얄밉다. 평소 입던 금박 박힌 정장도 벗어던진 채 본격적으로 해수욕을 즐기고 있잖아. 자기가 즐기려고 요청한 거 아니야...?
ㆍ 바다 이벤트 + 2p 이벤트 + 일상 이라는 혼종. ㆍ 이벤트+일상 간 혼용이 가능은 하지만... 안... 안 헷갈리겠어?? 안 난잡해??? ok다 싶으면 마음껏 혼용하자. ㆍ 두 이벤트 모두 제 2심을 기준으로. 다만 일상은 2→3심 넘어가는 타이밍으로. ㆍ 1차리녈 이벤트 때처럼 활동량을 체크하는 시스템은 안 둔다! 편하게 마음껏 즐기자!!
<일상> 마사의 방에서 쨍그랑 소리가 들린다. 다행인지 비명 같은 것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윽고 조용해졌다.
<바다> 마사는 머리를 묶은 뒤 위로 틀어올려 고정시켰다. 프릴이 달린 체크무늬 비키니를 입고있지만 목에 호루라기를 단 데다 구명조끼를 차고 있어 몸이 거의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챙이 넓은 모자는 비키니와 어울리지만 지금 상태로는 어울리는지 아닌지도 분간이 안 갈 것이다.
"거기, 너무 멀리까지 헤엄쳐 가면 위험해요!"
호루라기를 부르며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다.
<2p>
휴게실의 거울 앞에서 마사가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다. 블루블랙의 생머리를 생소한 듯 만지작거리더니 별안간 추욱 처진다.
흠! 하면서 당당히 고개를 주억거리다, 추욱 늘어진다. 허나 막상 오고 나니 뭘 할지 모르겠다... 모래성에 대해서는 아는 데, 모래를 토박토박 쌓아봤자 무너지고, 욕조보다 깊은 물은 들어간 적이 없어 바다에 들어가자 마자 떠내려 갈것이 눈에 선했다... 제제는 표류되면 윌슨이라고 이름을 붙혀줄 배구공도 없었기에 그러면 안되었다. 영화에서 본 하하호호 나 잡아봐라 놀이도 연인이 있어야 할수 있을거 같고! 슬프도다!
"그대! 계속 호루라기만불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은가? 함께 그, 뭐냐, 물을 참방참방 하며 같이 놀지 않겠는가?"
살펴본다는 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필시 괜찮을거다! 눈을 반짝이며 마사의 손을 부여잡으려 하는 게, 놀이친구가 필요한 모양이다.
"으으응?? 면적이 솝옷과 같은데도???"
물론 그런 팔랑팔랑한 솝옷은 처음보네만! 옷가지에서 프리즌 브레이크하려는 움직임이 마사에 의해 막히자 버둥거린다.
>>440 마사 (2p) ...... (휴게실의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권태. 거울 앞 자리를 금방 옮기지 않는 모습에 나지막이 말을 건다. 시선은 여전히 책에서 떼어내지 않은 상태다.) 시미즈 마사, 한 자리를 너무 오래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한테 불편을 가져올 수 있다. 볼일이 끝났다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좋을 거다. (웃음기 하나 없이 딱딱하게 말하는 성인 남성이라니. 어쩌면 당신이 위압감을 느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한 장 넘기며 말한다.) 아니면, 네 얼굴에서 무언가 해결해야 할 사항이 있나? 상처는 없어보인다.
>>441 제제 (2p) 분명 이 사태는 종족을 바꾸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압생트빛으로 번들거리는 권태의 눈에 경악의 시선이 스쳐지나갔다. 이것이 '극혐'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건 그 또한 지금 밀그램이 겪고 있는 사태를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휴게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권태는 당신이 주방에 이불을 질질 끌고 들어서자 다급히 일어나 당신한테서 이불을 사수하려 했다. 말이 좋아 사수지 그냥 뺏으려 했다는 뜻이다.) 훌륭한 취업 준비 6년차 백수의 모습이군. 끓이는 방법을 알고는 있나?
>>446 마사 (2p) ... 이해는 한다만 적당히 놀라라. (당신이 입틀막을 한 모습에 적잖이 마음이 상한 것 같다. 표정에 변화는 전혀 없었지만...) ...... ? ('못난 얼굴'이라는 말에 책에서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눈가를 살짝 찌푸린 그의 표정을 말로 풀어보자면 "얘 지금 뭐라는 거지?" 정도가 될 것이다.) 머리색과 눈색이 바뀌었기 때문에? 아니면 이목구비의 생김새가? 후자라면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객관적으로, 너는 못생긴 편이 아니니까. (원래의 권태였다면 그 나잇대 애들은 뭘 해도 귀엽다는 둥의 말을 덧붙였겠지만, 지금은 딱히 거기까지 말하진 않았다.) 형법총론. (팔랑...) 지금 머릿속에 넣어놔야 나중에 그 머리 새하얀 내가 멍청한 머리로나마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겠지.
>>448 마사(2p) ...... (권태가 당신을 지긋이 바라본다. 웃고 있질 않으니 매섭게 보이지만 별 생각 안 하고 있다. '얘는 세이카랑 영혼이 바뀌기라도 했나.' 정도.) 사과는 한 번만 해도 된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빈말 아니다. 나는 오히려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가 궁금한데. (평소에는 마사가 자기 얼굴을 잘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사소하게 궁금해졌다.) 그런 용도로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주 목적은 자기변호가 아니다. 너희를 조금 더 올바르게 바라보고자 함이지. (...) ... 그리고 웃으려면 그냥 웃어라. 놀라지 말라고 한 건 나다만 웃음 참는 게 애처롭다. (눈을 꾹 감고 있다. 이 쪽은 부끄러움을 참고 있다.)
"그건 그렇네만! 바닷물이 반짝반짝하니 보기 좋아! 하지만 그대와 함께 하면 더 즐거울거 같아 하는 말이라네!"
그대도 조금은 편히 노는것이 좋지 아니한가? 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빙글빙글 돈다. 모래가 까끌까끌하는군!
"용도가 다르다해 천 면적이 늘어나느냐?"
물론 팔랑팔랑해서 보기는 좋지만! 하고 해맑게 하하 웃는 제제.
"흐음... 알겠네!"
도도도도, 사마엘에게 달려가 사라지는 제제. 조금의 시간 후, 다시 나타난다.
"하핫! 이러면 괜찮겠지!어떠느냐? 보기 좋지 아니 하느냐? 이렇게 살을 드러낸 옷은 처음이구먼... 아니, 그냥 이러한 옷이 처음인듯하네."
새로운 제제! 수영복 ver! SSR!
푸른 마린룩의 수영복을 입고서 당당히 나타난다! 파란 줄무니 민소매와 편해보이는 수영바지로 완전해지는 투피스 수영복, 그리고 작은 모자. 겹겹히 쌓은 옷가지를 벗어던지니 제제의 작은 체구가 더 작고 말라 보인다. 그러면서도 시원한 외모와 잘 어울려지는, 보는 것만으로 청쾌한 기분이 드는 옷이다.
>>450 마사(2p) (권태는 당신이 단점 열거를 7개 정도 했을 즈음에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깎아내리기 위해 만드는 듯한 이유가 세 자릿수나 이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하면 됐다. (말허리를 끊느라 들어올렸던 손을 그대로 꺾어 휴게실 내 간이책장을 가리킨다.) 저기에 '우리 아이 자존감 상승법 100선' 이란 책이 있을 거다. 분량도 얼마 안 되니까 그거 정독해. 형법 공부보다는 그게 더 급해보인다. (어차피 얼마 안 가 저 증상은 사라질 테지만, 다시 말하자면 원래대로 돌아오기 전까지 저 태도를 계속 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보는 사람도 꽤나 고통스러운 모습이라... 권태는 당신의 깎여나간 자존감을 원래대로 고치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결심했다.) ... 다 읽으면 네가 원하는 공부 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이것 또한 교수법의 기본인 '보상과 강화'가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권태는 그렇게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는 너도 상당히 달라졌다. 구체적으로는, 음, 이전의 세이카가 말을 덜 더듬는 것 같아졌군. (서로가 서로의 대척점에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하다가) 지금 모습이 더 나으면 지금 상태로 고정시켜달라고 부탁할까.
>>451 제제(2p) 나는 권태권태박권태가 아니라 박권태다. (공벌레나 제제 대신 뺏은 이불을 돌돌 말아 팔에 걸치며 말했다. 왠지 정정해주더라도 절대 원래대로 불러주진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호칭을 고쳐주었다.) 그리고 이불은 주방에 가지고 들어가지 마라. 이불도 더러워지고 주방에 쓸데없는 먼지도 날린다. 음식물 찌꺼기에 오염된 이불을 온몸에 비빌 생각은 아니겠지? (권태는 주방 바깥(아마 휴게실)으로 이불을 휙 던졌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던졌다. 당신의 이불은 이제 사라졌다.) ...... (이불을 던지고 오자 당신이 생라면을 으적으적 씹고 있다. 환장하겠다는 듯 잠시 천장을 보았다가) 그런... 탄수화물과 지방 덩어리를... 하... 아니, 됐다. 이미 먹는 거 뭐 어떻게 하겠어. (알아서 하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렇군. 정정하겠다. 넌 태어날 때부터 취직한 적이 없으니 16년차 백수였군. (당신의 피드백을 또 성실하게 반영한다. 조금 다른 방향이었지만...) ... 그리고 누가 보면 우리의 나이도 반전된줄 알겠군. 내가 너보다 2배는 더 연상이다. (눈을 살풋 가늘게 뜨고는) 은은하게 꼰대였던 것이 대놓고 꼰대가 되었군.
>>454 마사 (2p) (어째 리액션 웃긴 건 변하질 않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머리를 홱 넘기고 고개를 팍 치켜들며 도도하고 고압적인 액션은 취하지 않는다지만, 지금의 모습은 이것대로 또 재미있다.) ... 혹시 거기 카메라가 있다면 같이 가져다줄래. (나중의 두 사람을 위한 선물...을 남겨두는 건 어떨까 싶었다. 책장 근처에 있을 당신을 향해 카메라를 부탁한 건 이 이유였다. 없더라도 뭐... 감옥 어딘가에 감시카메라 정도는 있지 않을까.) 여기가 무슨 군대인가. (발음까지 꼬일 정도로 기합이 들어간 당신한테 한 마디 태클을 걸었다.) ... 그건 딱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너는 죄수를 너만의 생각을 통해 바루 보고자 노력하는 죄수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걸 알고 있었으니 정도 이상으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언젠가의 심문 이야기다.) ...... (얼굴이 새빨개지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내가 무언가 말실수를 했나? 반응이 유달리 격한데. (다른 사람이랑 비교했어도 이렇게 크게 반응을 했을까? 지금의 당신에 대해 정보가 없어 긴가민가 하지만...) 그런가. 나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하지만. (무릎 모은 모습에 그럴 필요 없다고 성실히 한 마디 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네가 굳이 바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바꿀 의향 없다. 이 곳에 치료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뜸.) 개인적으로 너는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좋겠군. 잔소리가 약간은 그리워서.
>>455 옥사나 (2p) (위스키를 치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검은 생머리를 전부 이마 뒤로 넘긴 권태였다.) 기호까지 뒤바뀌어버린 건가. 사변이 일어난 동안 간 기능이 회복 좀 되겠어. 잘 됐군. (당신이 저 멀리 둔 위스키를 아예 냉장고 깊숙히 집어넣는다. 눈가를 살짝 찌푸렸던 게 마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고는 당신 쪽으로 바른 걸음으로 다가와,) 담배는 어떻지? (몸을 약간 숙여 눈을 맞추며 물었다.) 원한다면 버리는 걸 도와주지. 마침 나도 치워버려야 할 게 많아서.
>>464 옥사나 (2p) (담배를 한손으로 받고는 그대로 주먹 쥐어 우그러뜨린다. 담배 자체가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선물 준 걸 망가뜨려 미안하게 됐군. (얼굴 표정이 바뀌질 않아 그런지 딱히 미안해보이진 않는다.) 대신 초콜렛을 줄 테니 교환한 셈 칠까. 지금의 혀에는 단 맛이 어울릴 듯 싶은데. (손을 펼쳐 털어내자 담배가루가 후두둑 떨어진다. 남은 담배도 준다면 초콜렛을 상자째로 가져다주겠다고 말하고는,) (코웃음.) 안 죽인다. 살인자의 역은 무고한 시민이지. 게다가, 여기 죄인을 죽였다간 결코 용서받지 못 할 것 같군. 우리끼리 사이가 너무 좋아.
(박권태 개인 독백) BGM: https://www.youtube.com/watch?v=swEr_e8YISo&ab_channel=YuuMiyashita-Topic
20XX.08.16
의사양반이 일기를 쓰란다. 이게 정말 치료에 도움이 되기는 하나? 일단 쓰라고는 하니까 쓰긴 할텐데.
(제 2심동안 그가 겪었던 일상이 적혀 있다. 마사한테 오렌지 쉬폰 케이크를 선물한 일, 세이카한테 고양이 머리띠를 씌운 일, 옥사나와 의무실에서 대화를 나눈 일, 제제와 주방에서 같이 논 일...)
20XX.08.XX
... 용서해주면 좋겠다. ...
( ... ... 시시콜콜한 일기가 이어진다.)
20XX.08.27 (제2심 폐정일)
결국 용서받지 못 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괜찮다. 너무 이기적인 욕심임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괴롭다. 이제는 정말 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XX.08.28
내가 그 남자를 죽였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나는대로 써볼 생각이다. 비가 왔던 건 기억한다. (술을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액체 자국. 이 밑으로는 글씨가 흔들리고 떨려서 알아보기 힘들다.) 글로 쓰면 괜찮을줄 알았더니더럽게 힘드XX 이제는 펜도 안 써ㅈㅕ 아니 왜 안 되냐고 아 안 해 때려쳐
20XX.08.29
미친 새X 술 처먹고 저러고 있다 저러고 그냥 퍼질러 잔 거 개또X이 새X인가 이래서 애들이 그냥 나가뒤지라 했지 XX
역시 술을 먹으면 그 날 있었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그걸 원해서 끊었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니까... 그렇다고 술을 다시 끊을 수도 없다. 지금 안 마시기 시작하면 분명 그 때 그 개거지같던 상태로 돌아갈 것 같다. 죽을 정도로 X같은 건 둘째 치고 심문 하나 제대로 못 할 게 뻔하다. 그렇지만 도망치면 안 되는데. 애초에 처음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왜 나는 술같은 걸 마시기 시작해서는... 아예 나같은 게 감히 은혜를 만났던 게 가장 큰 죄일지도 모르겠다. 미안해. 이런 쓰레기가 사랑해버려서 미안해. 용서해ㅈ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20XX.08.30
(글씨가 괴롭다는 듯 떨린다.) 비가 왔던 건 기억한다. 아마 나는 그 남자를 때려서 죽인 것 같다. ... ...
>>466 옥사나 (2p) (인기 없다는 게 뭐가 어쨌냐는듯이 눈을 살풋 찡그렸다. 별 가치를 느끼지 못 하는 걸까.)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것이 내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여기 미성년자들은 분노하는 법을 모른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당신을 흘긋 내려다보며) 마음 놓고 솔직하게 뻔뻔해지는 길을 택하지 않은 건 오히려 네 쪽이 아니었나 싶다만. (지금 이런 말을 해봤자 별 소용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당신이 이런 말을 하는 상황이 재미있다고 느끼기는 한다. 정도를 걷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 그 쓸모없는 것들의 판단에 내 목숨이 달리지 않았다면 나도 그렇게 말했겠지. (한숨.) 용서받건 말건 그건 솔직히 별 상관 없다만, 죽기는 싫다. 그러니 내숭도 부려주는 중인데. (당신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이런 것도 가식적이라 싫나?
>>469 세이카(일상) (문을 노크하자 방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문을 천천히 열며 권태가 방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목이 잠기고 아이홀이 퀭한 것이 자다 깬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 힘들게 안 갖다줘도 된다니까. (알아서 가져다 먹을 수 있다...는 말은 안 한다. 한손으로 마른 세수를 두어 번 하고는 손 하나를 당신 쪽으로 내민다. 음식을 달라는 뜻이다.) 무슨 좋은 말 듣겠다고 계속 신경 써.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471 세이카(일상) (받은 샌드위치는 침대 위에 두었다. 식욕이 없기도 하고, 누군가와 대화할 때 음식을 먹는 건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 나중에 그럴 의욕이 있거든 주워먹겠지.) ...... (권태는 문간에 머리와 몸을 기댔다. 자연스레 당신을 내려다보는 위치가 되었다.) ... 나는 널 도운 적이 없는데. (선을 긋는 것처럼 들렸을까? 하지만 권태는 정말로 의문이 들어 중얼거렸을 뿐이다. 당신이 살인범 하나한테 판결을 내리며 죄책감에 시달릴 정도의 빚을 달아놓은 기억은 없는데. 어쩌면 머리가 안개 낀 듯 뿌예서 떠올리지 못 하는 걸 수도 있겠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헤집느라 생긴 잠깐의 침묵 뒤, 그는 다시 당신한테 시선을 던진다.) 세이카. (나지막이 이름을 부른다.) ... 울지 마. 오히려 화를 내. X같이 사는 건 자기면서 왜 청승 떨고 앉아서는 동정을 유도하냐고 욕해도 좋아. 나는 진작에 네가 그렇게 말했어도 놀라지 않았을 거다. 솔직히, 씨X, 인정하기 X같긴 하지만 네 아비란 놈하고 나하고 존X 닮았잖아. (내뱉는 말이 힘든 듯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말을 끝맺을 즈음에는 당신과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려 했지만.) 그러니 네가 나를 혐오해도 난 이해한다.
〔 자리를 비운 사이 밀그램 시스템 측으로 많은 양의 메일이 도착해 있더군요. 아, 걱정 마시길. 착신된 주소는 그저 밀그램 시스템의 외부 마케팅 용으로 만들어놓은 간판용 이메일 주소이기 때문에. 아무튼... 재미있는 내용이 있기에 공유하고자 합니다. 〕 〔 익명의 메일들은 죄인 미나미노하라 세이카를 무죄 판결내린 것에 대해 비난하고 있습니다. 본인과 용서 판결을 내린 죄인 모두한테 욕설과 살인 협박을 하고 있군요. 뭐, 걱정하지 않으셔도 여러분의 생명과 안전은 저희가 보호해드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간수장 사마엘한테 찾아와주세요. 〕
〔 마지막으로, 오늘 10시 정각에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 제 3심의 첫 번째 심문은 죄수 번호 001, 박권태를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해당 시각에 참여하기 어려운 죄인들은 최대한 빨리 저한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 죄인들은 모두 빠짐없이 10시 정각에 제제 르 귄의 심문에 참여하여 주십시오. 종결을 향한 첫 걸음을 무사히 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495 마사 ... 나는 너희가 나한테 '술을 마시지 마라'라고 말하는 줄 알았는데. 판결을 통해. (뜸.) 판결이 어떻게 나든 이젠 별 상관은 없는데... 마시지 말라고 하니까 안 마시긴 할게. ... 아마?
>>496 제제 잠깐... 질문이 너무 많아. 기억하기 힘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뜬다.) 우선, 그, 내 기분? 우울하고 축 처지고 징그럽고 소름돋고 다 때려치고 방에나 처박혀서 잠이나 자고 싶지... 술 한 잔 마시면 나을 감정이기는 해. 그리고 그 다음이 판결이던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은 내가 너희가 보기에 쓰레기 새끼처럼 보여서 그렇겠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입만 살아서는 그딴 짓거리를 해버려서. 용서하지 못 한다고 말한 게 아닐까... ...... 술 줄인 건 너를 포함한 사람들이 도망치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에. 판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 다른 사람이 되고싶은 건 포기한지 오래야. 그리고... ...기억하고 있어. 그러려고 최대한 심문 때까지는 술 안 마시려고 했고...
>>498 마사 원하는 것도 많아...... (힘들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중얼거렸다.) ... 노력은 해볼게. 내가 욕 하지 않게 질문 잘 해라. 용서받기 위해 뭘 해야 할지 이제는 잘 모르겠어서, 딱히 용서받고 싶다고 바라지는 않아. 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 (침묵이 길다.) ...... 나를 위해서가 아닐까. 아마 예담이는 나같은 아비는 없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테니까?
잊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줄리아가 매일 밤 찾아와서 안부를 물어대는 통에 싫어도 기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정신이 조금 나가버린다면 처라리 괜찮았지만... 그냥 그렇게 되더라도 줄리아는 조금 상냥한 말을 건낼뿐 사라져주지는 않았으니까. 권태씨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잊어버릴 수 있는건 축복이라고들 하니까요. 모든걸 잊어버리면 결국 파국에 이르지만."
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그대로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서 혼자 이러는건 좋지 않겠지.
>>502 제제 ...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자의가 아님을 은연중 암시하기 위한 말이다. 실제로, 이런 자리만 아니었으면 끝까지 피하려 들었을 인간이니까. 박권태라는 작자는.) 사랑...... (두 음절을 오랫동안 곱씹고 있다가) ... 모르겠어. 내가 유일하게 붙잡고 달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내가 그걸 품고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503 마사 만난 적... 있지. (눈 깜박.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저번의 그것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딸 말이야, 배려심이 정말 깊은 아이라 그런 식으로 남의 마음을 후벼파는 말은 하지 않는다고. 그 날도 내가 울고 있으니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주기도 했고... 하하.
>>507 마사 ...... (눈가를 살풋 찡그리고 꽤 오랫동안 생각한다.) ... 우선은, 내 딸한테 찾아가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그리고... 어...... (...) ...... 모르겠다. 아마 복직도 못 할 텐데. 뭐 하고 먹고 살지. 지하철역에 박스 깔고 노숙자나 될까? (농담을 한 모양인데 웃지를 않아 전혀 웃기질 않는다.)
>>509 제제 ... 나도 할 수 있었으니까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질투 때문에 질책하지 마. ...... 그게 언제 그렇게 말했던 거더라. (정말로 기억이 안 나는 듯 시선이 허공을 훑었다.) 뭐... 나같이 뇌를 구정물에 한번 빨아서 다시 끼워넣은 듯한 사람이 또 있다면 나처럼 행동했겠지. (한숨.) 나는 성격이 나쁘니까, 아마 용서하지 못 한다고 했겠지.
>>510 마사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지, 하는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불편한 손으로 제 뒷목을 몇 번 긁고는) 예담이가 나랑 같이 살고 싶어할 리가 없잖아. (그렇게 단언했다.)
>>511 제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인 것. (대답은 의외로 빠르게 나왔다. 계속 고심해왔던 문제라는 듯이.) ...... 어, 심문 빨리 끝나서 술 마시거나 자는 거. (긁적...)
>>512 옥사나 여기 사람들이 그럴 것 같지는 않아서... (고개 살짝 기울이고,) 너를 포함해서, 다들 건실하고 착하잖아. 내가 괴롭힘당해 마땅한 놈인 건 둘째 치고. 약... 언제부터, 를 말하는 거야. 체포당하고 난 이후로는 약을 입에 댄 적도 없어. 저거 말고. (재판장 구석의 술병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일기. 썼어. 가져왔어. (소매에서 작은 공책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 쓸 때는 몰랐는데 진짜 인생 개차반으로 살던데. 이걸 몇 년을 해야 겨우 익숙해지는 거야?
>>517 제제 ...... 이게 아니었나? 잘못 짚은 거면 사과할게. (그게 아니면 왜 그런 거지... 하는 말을 작게 웅얼거렸다.) ...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어. 하지만 나 때문에 죽은 건 맞아. (한 차례 숨을 고르고,) 그 남자는 내가 죽인 게 확실하니까, 그래, 결론적으로 나 때문에 죽은 사람은 두 명이 되는 거겠네.
>>521 마사 ...... (정곡을 찔렸다고 생각한 걸까? 눈가의 그림자가 더 짙어졌다. 그럼에도 입을 다물지 않는 건 자기방어의 본능이 남아있기 때문인지라.) ... 네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나는 원래 이런 놈이었어. 도망치고 포기하는 것밖에 하지 못 하는 놈. (그래도 당신의 말대로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기는 해본다. 그러니까......) ...... 산 속에 들어가서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할 법한 생활 하기?
>>522 세이카 응. 왜. (화내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고개 끄덕여 당신의 부름에 응답할 뿐이다.) ...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
>>523 옥사나 ... 그건 또 처음 알았네. 나는 양로원 들어갈 즈음이 되어서야 익숙해지려나... (...농담이다.) (당신의 첫 질문에 얼굴을 팍 구겼다.) 저기. 내가 인간말종인 건 인정을 하겠는데 뽕이나 빠는 사람으로 만들진 말지...? 그냥, 체포될 때 내가 먹는 약을 못 챙겨왔을 뿐이야. 이혼 사유...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나 싶기는 한데. (말하기 힘든지 잠시 숨을 고르고는) ... 4년 전이었나 5년 전이었나. 그 때 즈음에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고... 재취직도 마음처럼 잘 안 되고 해서, 약 먹던 것도 효과가 없어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그러고 밖에 하나도 안 나가니까... 은혜가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면서 예담이를 위해서라도 이혼하자고 해서...?
>>525 제제 ... (고개를 저었다.) 실족사야. ... 천운이 따라서 기적적으로 구조되지 않은 이상. 어느 쪽이든 내가 결정할 소관은 아닌 것 같아서. 어떻게 되든 좋아. 그리고, 뭐랄까, 솔직히 자기 아내 사랑한답시고 죽여버린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내가 봐도 잘 들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전처럼 무리한 걸 부탁하진 않아.
>>527 마사 ......... (할 말을 잃었다.) ... 하긴, 철없다고 계속 말하긴 했지. (...그리고 납득했다.) 아니... 다시 말하지만 예담이는 자기 엄마를 죽인 새X랑 같이 살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니까. 객관적으로. ...... 어, (멈칫,) 아마 그게 맞을걸...? ... 입원 치료 하고 나서는 다시 구직 활동 했으니까...? 그럴걸?
>>532 마사 (짜악─!!) (...) (당신의 싸대기는 별 장애 없이 권태의 왼쪽 뺨에 들어갔다. 피하려는 의지도 없었거니와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그는 표정변화 없이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을 뿐이다. 당신의 푸른 눈과 시선을 마주한다.) 내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게 너를 괴롭게 해? 왜? ... 결국 만난지 한 달 남짓밖에 안 된 남일 뿐인데.
>>533 옥사나 저런, 찾아올 사람이 많아서 좋겠네. 외롭지는 않겠어. (어깨를 으쓱였다.) ... 흔해빠져서 미안하게 됐네. (토라진건가, 이 아저씨.) 전자. ...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다시 시작하기에 더 편할 테니까.
>>534 제제 (끄덕.) ...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뭐, 내가 인간이 아닌가보지. (으쓱...) 소원을 이루고 싶거든 날 희생하던가. 마침 딱 좋은 먹잇감이네, 안 그래? 소원은... 응, 뭐. 대충 그대로네. 예담이가 나랑 같이 안 살려고 할 테니까 그냥 좋은 양부모를 만나게 해달라고만 해야겠지만. ...... (고개가 숙여진다.) 다 좋은 사람이니까 다 무죄 판결을 받았으면 좋겠네. 그러니까, 나야.
>>546 마사 아악. (뺨을 맞을 때도 느꼈는데, 당신 손이 꽤 매섭다. 당신의 등에다 대고 한 마디를 던지는 권태.) 화 난 거 있으면 폭력과 비속어 말고 말로 해. 바보라고만 하면 내가 멍청한 게 죄인 셈이잖아... (당신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참고로, 당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권태도 독방에 가는 중이기에 방향이 겹친 것이다.)
>>547 제제 ... 마시고 싶어지면?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투다. 지금으로써는 마시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덧붙이는 걸 보니, 적어도 오늘 내로는 마시지 않을 듯 싶다.) 심문은 끝났는데 말이지...... (귀찮다, 혹은 피하고 싶다는 투가 역력하지만... 어찌어찌 고개를 끄덕이기는 한다.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걸 보니 중요한 문제인 것 같고.) 먼저 해. 그동안 너한테 뭘 물어볼지 생각하게.
〔 오늘은 죄인의 소식과 투표 현황 모두 별달리 안내드릴 사항이 없습니다. 바로 오늘의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 오늘 10시 정각에 심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 〔 두 번째 심문은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죄인 시미즈 마사는 해당 시각에 심문 진행이 어려울 경우 최대한 빠르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 죄인들은 모두 빠짐없이 10시 정각에 시미즈 마사의 심문에 참여하여 주십시오. 마지막까지 완벽한 심문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549 마사 ...... (얼굴을 살짝 구긴 채로 열심히 고민해보았다. 답은 역시 나오지 않았다. 어째 자신이 증인석에 서기만 하면 당신의 심기가 잔뜩 나빠지는 것 같다. 뭐어, 이유야 어쨌든 잘못한 건 분명 자신일 테니까...)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깊은 고민 없이 사과의 말을 입에 담기로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성의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 태도였다.) ... 따라가는 거 아닌데... (어이가 없어서 말끝이 저절로 흐려진다.) 따지고 보자면 네가 내 앞길을 막고 있는 게 아닐까......
>>552 마사 (눈 깜빡) ... 왜 또 화났어? (이번에는 진짜 놀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 아. 미안하다니까. 입만 산 게 짜증나서 그런 모양인데. (아마도 이 말도 당신 속을 벅벅 긁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름대로 권태 또한 말을 골라서 내뱉은 것임을... 당신이 이해해줄 필요가 없기는 하다.) ...... (당신의 말 다음에도 꽤 오래 답이 없다. 곰곰이 생각을 하는 빈도가 높다.) ... 반 정도는 이해가 안 가지만, 절반 정도는 알겠어. 한 마디로 이런 놈이라도 사람을 또 죽이기는 싫다는 거잖아. (괜히 착하기는.) 그런데 내가 그런 말도 했었나. ... 음.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 정신이 없어서 할말 못할 말 다 한 것 같은데... 이런 말 듣기 싫으면 앞으로는 속으로만 생각할게. (사과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이런 사람이니까 이혼까지 당한 게 아닐까.) ...... (자신의 뒤로 가는 당신을 따라 시선이 굴러간다. ... 앞길 막는다고 해서 이러는 건가? 참 알기 쉬운 꼬맹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걸어가...) ......... (... 다가, 다시 앞질러가는 당신을 어이없단 듯이 도끼눈을 뜨고 바라본다.) ............ 원상복귀잖아. 옆에서 걷기라도 하든가...?
>>554 마사 입 좀 다물어라, 얼굴 좀 치워라,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셋 중 하나일 테니까. (찍었는데 맞췄네... 하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 미안. (미안해요라고 했더니 뭐가 미안하냐며? 라고 대거리를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가장 큰 이유는... 피곤해서.) 딱히 동정심을 살 의도는... 음, 아니다. 그것도 미안. (여전히 자기 손에 들려있던 술병(소주)를 잠깐 들어 보았다. 잠깐 고민하다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술병 뚜껑을 딴다.) 그렇게 울 정도로 보기 싫으면 그냥 술 마실게. ... 마시면 좀 나아지니까. (흥흥거리며 걷는 당신과 삐끗거리는 손으로 병을 따는 권태.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이람.)
>>556 마사 미안. (텅 빈 사괏말로 끝이었다. 이제는 습관이 된 것마냥 반사적으로 내뱉는 말이었다. 그걸로 이제 더는 권태 자신도 주제를 이끌어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앗... (당신은 어려움 없이 술병을 뺏어갈 수 있었다.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는,) 술 마시는 게 민망하단 건 또 처음 듣는데... 정말 그게 맞아? (그것만으로는 당신이 울 이유가 없지 않나. 역시 알코올이 안 들어가니까 머리가 영 맑지를 못 하다. 당신이 눈을 문질러 닦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뜻이다.) ... 안 마시면 안 울 거야? (눈물을 그칠 수 있다면 그 잠깐을 참는 것 정도야.) 마신다면, 네가 상처받을 거고?
>>558 마사 (권태는 순간적으로 '그럼 위아래로 걷는 방법도 있단다' 하는 농담을 떠올렸다. 그리고 빠르게 자신의 농담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재미 없다. 그러니 입 다물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했다.) 그렇겠지. 내가 문제지. (또 다시 머리를 끄덕여 긍정한다.) ... 눈은 아직 맛가지 않았어. 울고 있잖아, 너. 속상해서. (모르는 척 하는 선택지 대신 솔직하게 답하는 방법을 고른다. 그렇다고 소매로 눈물을 닦아주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 (그저 당신의 감정을 흐르는대로 놔두었다.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을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믿기는 힘들다. 지금만 해도 자기더러 최악이라는 말을 뒤에 덧붙이지 않았는가. 나한테 좋은 시선을 던질 리가 없다는 머릿속 속삭임이 차라리 더 설득력 있다. 그러나 당신을 의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해 상대해주는 당신을 향한 최소한의 성의의자 호의였다.) ... 약속할게. (권태는 술병을 가져가지 않았다. 걸음 옮겨 자신의 방으로 향하면서 나지막한 말을 남긴다.) 가지든지 버리든지 마음대로 처리해. 앞으로는 안 마실 거니까.
의례적으로 한 말에도 꼬박꼬박 대답한다. 마사가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짐작도 못하고 있다. (성격이 바뀐동안 제제는 주로 방안에서 이불로 돌돌말려 도롱이벌레를 흉내내고 있던 시기이기에, 마사의 모습을 제대로 볼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일까?)
간단한 질문인데도, 왠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해 입매가 굳혀진다. 결국 그 사소한 질문에 선택하지 못해 소리내어 묻고 만다.
"...먹는 쪽이 좋은가?"
어느 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지? 혹시 다른 숨겨진 답이 있는게 아닐까? 뻔하다고 생각한 답안이 뒤집어져 이런 작은 문제도 두번 세번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은 매우 짜증스럽고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시험은 어릴때 벌써 졸업한 줄 알았는데. 속내로부터 이러한 짜증은 어쩔수 없어, 약간 부루퉁하게 물어보게 된다.
괜히 둥그레진 마사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뾰족한 마음도 표출하기 머쓱해진다. 그렇다고 판단을 받은 이후 상시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 올리기에는 역부족해, 찰랑거리는 유리잔을 탁, 하고 (나름) 세게 마사 앞에 둔다. 물이 살짝 넘쳐 흘려 손가락 끝을 적시지만 괘이치 않는다.
의외로, 마사의 말에 화내는 일 없이, 잠시 멈추어 곰곰히 생각한다. 마치 새로운 관점을 받았다는 듯이.
"기분이... 그래, 나는 지금 기분이 나쁘군."
아니, '본좌가' 말일세, 하고 말투를 또다시 정정하다간, 입매에 힘을 준다.
"좋을 수는 없겠군, 그래."
무심코 말이 비꼬듯이 나오지만, 굳이 주워담을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쁜지 확실히 이해도 못하면서 날선 반응을 내는 것이 유치하다 느껴질수도 있다.
>>561 제제 그런 건가. (태클 걸기 귀찮아서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기 욕심에 질문하기가 창피했다는데, 어른이 이해해주어야지.) ... 그랬지. (단순히 의도만을 따지자면, 나보다는 당신이 더 순수하고 선했겠지만. 큰 틀은 우리 둘이 동일하다는 권태의 결론은 여전히 변함없다.) 내 입으로 그걸 말하는 거 엄청 힘들다는 건 알지.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보는 거면 정말 악질이다 너...... (한숨 섞인 목소리로 한탄하며 한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빈말은 결코 아니라는 듯 눈 밑에 시름이 한층 거뭇해진다.) (이 말이 당신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는 것도 힘들다. 최첨단 기술에 의지해야 겨우 새어나올 만큼 깊숙한 내면에 위치한 사고를 꺼내는 과정에서 생채기가 덧난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떨리는 당신을 배려하지 못 했음은 이것이 원인이다.) 사랑하는 목숨으로써 그래서는 안 되니까. (아내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리는 듯하다.) 불안과 분노면 상관 없어. 자기 보호였어도 돼. 복수를 위해서였어도 용서받을 거야.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죽이는 건 모순이야. 목적과 수단이 일치하지 않는 거라고. 사랑한다면 품에 안고 돌보아야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버려서는 안 되었어...... (원래부터 동공이 열려 초점 없던 눈이 더욱 커진다. 울음일지 공포일지 모를 것이 발끝부터 집어삼켜 호흡이 가파르다.) 사랑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고 말한 네가 미련 향해 고개를 돌리자 용서 받았었잖아. 하지만 신으로 올라 사랑의 의무를 다시 붙잡으니 용서받을 자격을 잃고 말았지. 사랑과 행복을 되돌려받고 싶어서 불순물을 치웠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용서받았어. 하지만 내가 죽인 게 사랑하는 가족 그 자체라고 판단되자마자 나는 용서받지 못 했어. 이건 우리의 사랑이 잘못됐다는 증거야. 말 해봐, 그게 아니면 또 무슨 설명이 가능한데? 나는 처음부터 아무도 사랑해서는 안 되었어...... (자신이 은혜를 사랑했기 때문에 은혜가 죽어버렸다고 질책하는 소리가 들린다. 거친 숨소리를 가리기 위해 손으로 입을 숨겼지만, 고인 눈물을 통해 그가 울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용서해주게." (권태의 괴로움에 입은 심드렁하게 의미없는 사과를 담는다.) "같은 '죄인'이니."
(그렇게 가라앉은 두 눈으로 권태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본의아니게 그를 괴롭힌게 되었으나, 마음에 죄책감은 없다.)
(어째서 용서받지 못했는가? - 가장 큰 난제다. 뭐가 틀렸고, 뭐가 동의하지 못하든, 제제에게 그것이야 말로 그저 헛치례이자 빈말이었다. 무엇이 진심이라 하든, 결국에는 각자 원하는 게 있어서 용서치 못한다 판결한게 아닌가. 그저 제제가 기대에 부합하는 신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유를 물어보기 너무... 두려웠다. 스스로의 투표를 밝히기를 원하지 않을거라 변명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제제는 그 이유를 모르면서도, '용서받은 자'에게 그 이유를 묻는 것이 두려웠다. 생각만해도 턱턱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외면했다. 대신 다음으로 만만한 '용서받지 못한 자'에게 화살을 돌렸다.)
(무엇보다, 그는 '사랑에 기반한 선택'의 무게를 알고 있지 않겠는가?)
(동질감에 기댄 선택. 그 선택은 똑같이 처참한 무게를 가지고 제제를 짓눌렀다. 권태의 말은 가시가 되어 말하는 자도, 듣는 자도 공평하게 찢어발겼다.)
- 사랑한다면 품에 안고 돌보아야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버려서는 안 되었어......
(그렇군, 이라고 말해야 했다. 말해주어서 고맙네, 라고 말해야 했다. 허나 나온 것은-)
"....우욱."
(초라한 헛구역질.)
(속이 울렁거린다. 답답하다. 숨을 쉬지 못하겠다.)
- 이건 우리의 사랑이 잘못됐다는 증거야.
"아, 아니야. 아니야..."
(토하고 싶다. 갑갑하다. 숨이, 공기가 역겨워. 식은 땀으로 축축한 두손이 목덜미의 옷가지에 바르작거린다. 똑바로 서 중력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해 등을 굽힌다.)
- 말 해봐, 그게 아니면 또 무슨 설명이 가능한데?
(아니야. 아니야. 아니냐.)
(내 사랑이 잘못된거야? )
(그럴리가 없어. 나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장치의 신. 사랑할수밖에 없는 짐승. 그러면 나의 존재자체가 틀린거야?)
(속이 뒤틀린다. 분노와원망과 절망이 섞여 하나의 진흙탕을 만들어낸다. 화내고 싶었다. 저 헛소리를 지껄이는 더러운 입을 뭉게고 슬피 울리는 목울대를 짓이겨 더는 다시 그런 말따위 못하게 하고 싶었다. 어리석은 자의 더러운 거짓말일게 분명했다! .......하지만 권태는 결국, 자신과 같은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거짓말이 아니다. 동질감이 그것을 증명했다. 제제는 이 둘 중 하나, 누구든 죽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바랬다.)
- 처음부터 아무도 사랑해서는 안 되었어...
"그건 -"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지, 무슨 느낌으로 말하는 지 모르겠다. 소동물이 짓눌려 나오는 단말마같은 목소리가 흐느끼듯 새어나온다. 권태를 믿었기에, 그를 부정하지 않는다. 못했다. 제제는 사람의 말을 믿을수 밖에 없다.)
>>572 제제 (당신의 등이 굽어감이 마치 벼가 고개를 숙임과 같다. 꼿꼿이 고개 치켜들고 있던 지난 세월이 버거워 무게를 이기지 못 했음이라. 사죄하듯 머리 숙이는 당신의 앞에서 권태는 허리 세워 그저 서 있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는 있지만 당신의 사과를 받을 수는 없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에 마주 인사를 해주는 것조차 하지 못 한다. 그것은 아마, 당신이 죽인 78명이 선택해야 한다.) (여기 숨 쉬지 못 하는 죄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의 결정이 누군가의 세계를 바꾸었으니 이 어찌 환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 또한 마찬가지야. (세상을 더 오래 살아간 인간으로써, 자신은 저들의 환희를 당신한테 풀어서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 내 사랑이 잘못되었듯, 너의 사랑도 어긋났다는 뜻이야. (변화가 낳은 당신의 공포를 앞에 두고, 권태는 눈물을 흘렸다. 무슨 이유로 이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것마저 나의 탓이라는 어렴풋한 확신만이 뚜렷하다.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 미안. (언젠가 우리 둘의 상황과 반대되지 않는가. 나의 질문에 당신이 '용서받으리라'라고 예언했던 어느 날. 이제는 내가 당신한테 용서받지 못 함을 선고한다. 당신은 나한테 안식을 주었건만 나는 당신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 그것이 쓰라려서.) 네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못 해서, 미안해. 네가 옳다고 말하지 못 해서... (숨을 골라야 한다.) ...... 미안.
>>574 마사 마사의 손이 주머니를 향해 움직이는 것을 지그시 바라본다. 입을 열려하다, 마사의 말에 콧웃음을 친다.
"가치관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얘기 말인가? 그게 본심인지 누가 아나. 그저, 본좌가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돌려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 그대, 알고 있는가?"
비틀린 웃음을 자아낸다.
"심문에서 죄인은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지. 하지만 배심원석에 선자는 그럴 의무가 없어."
무슨 이유로 투표하든, 무슨 속내를 가지고 있든, 말하는 것은 언제나 다른 의도를 보여도 된다. 마치 많은 신도들 대부분이 자신의 인정을 갈구한다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저 어느 형태로든 안심을 갈구하고 있던 것처럼 말이다. 알고도 포옹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였으니 모를리가 없다.
그러므로, 그 글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자들도 그리했으니, 이번도 그저 자신이 기대에 못 미친게 틀림없었다! 그저 그게 어느 부분인게 의문이었다. 그 뿐이었다.
조소와 함께 찡그리고 있던 눈이, 마사가 안경을 벗자 동그랗게 뜨인다. 안경을 벗은 마사의 얼굴은 마치 모르는 자를 마주 하는 것같다. 그녀의 말에 침묵을 고수한다.
"변화라 말인가."
이상한 말이다.
"그야, 본좌의 길에 미래는 없으니. 오히려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하지."
여상하게 답할 수 밖에 없다. 오래 손에 들고 있던 오렌지 조각을 만지작거리다, 드디어 입안에 넣는다. 상큼한 과즙이 터져 혀를 즐겁게 하는 데, 그 즐거움이 되려 슬퍼졌다. 이유는 모른다. 그래서 마사를 바라보았다.
세이카는, 조용히 휴게실의 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듣는듯 보이지만, 그 노래에 심취해 있지는 않은채 그저 허공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에 빠진 듯하다. 무언가를 먹고 있지도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지도 않는 상태. 어느 의미로 가장 충실하게 이 휴게실이라는 장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서, 30도 위의 천장 모서리를 향해있는 시선.
혹은, 아이로서 할 수 없는 것을 너무 일찍 체감해버린 탓일 수도 있겠다. 마사는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야 그렇겠지만...! 남이랑 비교하면 끝도 없어!"
팔짱을 끼고 얘기한다.
"귀귀귀귀엽다니, 그런 건 잘 모르겠는걸!!"
그때도 말야... 라고 말을 꺼내지만 변했을 때의 얘기는 역시 부끄러운지 말을 않는다.
"싫어할 리가 없잖아. 좋아해..... 하지만 이 마음은 세이카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과 같진 않은 것 같아."
어렵게 말을 꺼낸다.
"어쩌면 세이카를 더 알아가게 되면 다른 의미로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래. 그러니까...."
마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친구로서라도, 널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할게."
세이카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이 없는 상태, 세이카의 뒤에 무엇이 드리워졌고 소녀가 무엇을 어떻게 저질렀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 그야말로 용서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지금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마사에게는 큰 결심을 필요로 했지만, 지금에야 세이카가 바라는 말을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다.
"지금에야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서 미안했어."
지난 심문이나 지난 시간들에서 떠나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알고서도 확실히 대답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 죄인들이 서로를 살해할 수 있는지, 그리 한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본 사람이 있습니다. 죄인 제제 르 귄이었죠. ... 공개적으로 답변을 드리자면, 밀그램 시스템이 많이 곤란하겠죠. 시스템 유지에 필수인 인적 자원이 20%나 소실된 셈이니. 거기에 살해한 사람이 용서받을 확률이 더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 〔 ...... 〕 〔 제가 무엇을 언급하지 않았는지, 다들 어렵지 않게 눈치채시리라 생각합니다. 〕
〔 그리고 소원 수리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할 필요가 있어 이리 언급드립니다. 〕 〔 석방 이후 여러 상황이 겹쳐 소원의 실행이 논리적,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생길 경우 저희 측에서 여러분의 소원을 지원해드리기가 많이 어렵습니다. 최대한 노력을 해보긴 하겠습니다만... 사실상 여러분의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꽤 높아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 일생에 다시 없을 기적같은 기회를 부디 헛되이 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
〔 다음 심문은 이번주 화요일 10시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이전에 심문 개최가 확정될 경우 다시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인 여러분들은 이틀 뒤의 심문을 위해 몸과 마음의 준비를 마쳐주시기 바랍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생각이 많은 눈으로 마사를 바라본다. 중얼거리듯, 마사의 뒷말늘 곱씹어본다. 잔잔한 말을 자신의 혀위에 굴리면 사탕마냥 녹아내리는 데, 그 맛은 달콤하기보단 씁쓸하다.
"... 그냥 바라본다라. "
그렇게 그냥 두 눈을 내리깔고 싶었다만, 이어지는 그 이유에 눈을 깜박인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제제는 놀랐겠지만, 마사의 붉은 두 뺨에는 눈이 동그래질수 밖에 없다.
"본좌의 신도가 아닌데도? "
고작 싫지는 않다는 하찮은 말인데도 조심스레 물어보게된다. 자신이 이곳의 사람들애게, 눈 앞의 소녀에게 애정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반대는 말이 다르다.
답을 기대해버리는 못된 마음이 원망스럽다. 신 답지 않은 추태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기에. 그러기에 마사의 말에 쓴 미소를 짓는다.
참으로, 본좌에게는 어려운 처자다. 그렇게 미래만을 바라보아도 될까. 그런 올곧은 눈이 반짝거리지 않는 것은 아니네만, 소녀도, 제제도, 짊어지게 된게 많은 데. 지금도 제제 마음속에는 78명의 이름이 고히 잠들어 있는데. 죄악감이 없다 하여도, 그런 무게를 들고 있는 이상 제제에게 보이는 미래는 하나다.
경계 가득한 마사의 눈에 쿡쿡 웃음소리를 낸다.
"본좌가 시험해 볼것은 아니지. 다만 누군가가 그럴 마음이 든다면, 그저 그를 돕는 게 본좌의 도리라 볼 뿐."
그대 또한 책임의 무게를 알고 있는 자가 아닌가. 멋대로 동질감을 느껴, 특히 응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 먼저 외부 판정단의 의견을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7표입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3,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6, 제제 르 귄.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외부에서 보기에 여러분은 결국 살인자일 뿐이란 걸까요? 후후... 〕
〔 다음으로, 오늘 10시 정각에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 두 번째 심문은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를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죄인 옥사나 하네즈카는 해당 시각에 심문 진행이 어려울 경우 최대한 빠르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 덧붙여 내일에도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세 번째 심문은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 죄인들은 모두 빠짐없이 10시 정각에 옥사나 하네즈카의 심문에 참여하여 주십시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578 제제 (당신의 중얼거림에 권태는 눈을 감았다. 침묵은 긍정을 뜻했다. 우리 모두가 당신한테 전해지길 바랐던 마음이 이런 형태로 밖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니. 필요한 과정임은 당연지사지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랑하고 사랑했던 이들한테 상처 주고싶지 않음은 지금도 여전했으니까...) (권태는 앞으로 넘어지려는 당신을 받쳐주었다. 묽은 위액에 옷자락이 오염되지 않도록 막아준다. 인간된 도리로써 그 정도의 배려는 보여줄 수 있었다.) 나한테는 사과할 필요 없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권태의 목소리는 힘이 없다. 조분조분, 그리고 한 글자씩 뚜렷하게.) 나 말고, 누구한테 사과를 해야 할지. 이제는 알 것 같아? (권태는 당신의 등을 도닥이듯 쓸어내리려 했다. 당신이 도망치지 않는다면... 어린 딸을 다루는 듯 하는 손길을 당신이 느낄 수 있겠지.)
>>645 옥사나 ...... (떨떠름한 표정으로 당신을 보는 중이다.) ...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그, 네가 날 치료하기보다 네가 먼저 환청 치료를 받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 (고민.) ... 네 환청의 내용이랑, 실제로 그 사람들이 할 생각이랑. 얼마나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
"...글쎄요. 이미 사형판결을 받았으니까요? 그리고... 뭐 죽고나면 시체를 치워줄 사람정도는 있으면 하니까."
"그 남자에요. 그 남자가 가장 원망스러워요. 가족을 파탄내고 지옥의 구렁텅이에 사람을 쳐넣어놓고 자기는 잊어버렸으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아니 그러네요. 그냥 제 가인적인 분노일뿐. ...그렇다고 해서 그 어린아이가 죽어야 할 이유는 없었는데 말이에오. 두려웠나보네요 저도."
>>655 옥사나 ...... 주취자라는 거 날 노리고 한 말...? (지레 찔리는 모양.) 네 경우에는... 환청과 환각이 꽤 오랜 기간 지속되었고. 뇌가 한창 자랄 때에도 그랬으니 영향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었을 거야. ... 이런 상황에서, 네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거슬린다. 그냥 저 소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목소리가. 얼굴이. 그저 모든것이 거슬리기만 한다. 일흔을 넘게 죽인 대죄인. 죽인 사람의 수로 죄의 경중을 나눈다면 이곳에서 가장 악질적이겠지만... 글쎄다. 어차피 살인자들끼리 결정한 일이니까. 상처를 보듬고, 함께 행복한 삶을 찾아갑시다-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성장환경에 따라 용서를 받을지도 모른다. 전혀 아니면서.
"당신은 독이네요."
그리 단순히 답한다. 그 이상은 없다. 아무것도. 행복해보이는듯한 얼굴도, 마치 대단한걸 찾았다는 듯 즐거워보이는 웃음도. 나의 마음에 닿기에는 모자라다. 순수하잖아 저건.
"제제씨, 당신은 책임을 지고싶지 않은거에요."
그러니 거절한다. 지금 이대로 호스로 목을 조르거나 들여온 약물을 과타투여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조리실의 식칼로 찔러버릴 수도 있다.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이곳에서는 그런 것을 시험하려는 거겠지.
"저는 여전히 당신을 혐오합니다 제제씨. 좋아할 수 없어요."
죽음은, 스스로에 의한 죽음은 때로는 구원이 될지도 모른다. 억지로 달아놓은 연명장치의 전원을 꺼버린다고 해서 죄를 묻지는 않듯이. 때로 최고의 도피가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일전에 죽음은 곧 구원이라고 하셨죠. 왜죠? 신이면서. 인간에게 구원을 청하십니까? 평소에는 마치 전능한것 마냥 말하더니 이제와서 판결이 두려우십니까? 스스로가 부정되는것이 그리도 두려우십니까?"
어쩌라고.
"왜 남의 목숨은 그리 쉽게 앗아갔으면서 스스로의 목은 취하지 못하십니까. 부처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르렀고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였는데. 왜 스스로 신이라고 하는 이가 인간을 죽여서 구원한단 말입니까. 도망치려한단 말입니까. 당신이 그리 연민을 느끼던 저조차도 책임을 지려하는데."
소녀에게 다가간다. 이제는 거의 주먹하나가 들어갈만한 거리. 이리도 가까이서 이 어린아이를 본 적이 있던가.
"저는 당신을 증오합니다. 그렇기에 당신을 죽이지 않습니다. 방금전에 마사씨의 질문에 답한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때문에 죄를 늘려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여러분들이 저의 사상을 긍정했으니, 더이상 저는 누군가를 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살려달라고 부탁받아 사람을 죽인 인간이 어찌 다른 라람을 구합니까."
〔 우선 투표 현황을 안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1표입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한다: 1표. 〕 〔 최종 판결이라 그런지 다들 신중하게 투표하려는 듯 하군요. 심심하긴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 그 다음으로 외부 판정단의 의견을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7표로 이전 방송에서 변화한 점은 없습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3,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6, 제제 르 귄.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다음으로, 오늘 10시 정각에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 세 번째 심문은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죄인 시미즈 마사는 해당 시각에 심문 진행이 어려울 경우 최대한 빠르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 죄인들은 모두 빠짐없이 10시 정각에 옥사나 하네즈카의 심문에 참여하여 주십시오. 최선을 다 하여 이 죄인의 마지막을 빛내주시길.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제제의 미소를 답하는 옥사나의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을때, 제제는 본인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 당신은 독이네요.
실패의 맛은 달콤하지도 씁쓸하지도 않았다. 무미무취의 색으로 제제를 늪으로 끌어들였다. 느리게, 제제의 미소가 옅어져 자취를 감추었다.
옥사나라는 이름의 어른은 담담히 제제를 바라보았다. 제제는 똑같은 성숙함으로 옥사나를 마주할수 없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이 거부당하였다.
"...난..."
도망인가.
그냥, 그냥 기뻐했으면,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한 것이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해야 해는데, 그게 너무 힘들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더만, 억지로 들추어낸 가면의 뒤는 두려움을 자아낸다. 얼핏 보인 어둠에 겁먹어 뚜껑을 내려누르려하는 데, 잠시 보인 것이 그리 큰 동요를 일으킨다고 쉽게 그럴수가 없다.
화내야 될까. 윽박질러야 하나.
부처와 예수는 사람으로 태어나 신이 되어 이승을 떠났다. 신으로 태어나 인간이 되라 강요당하는 제제는 죽을때까지 두발을 땅에 붙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완전한 신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전지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다. 할 수 있 것과 할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해야 만 하는 것과 하면 안되는것 밖에 없었다. 사람을 사랑해 행복을 기원하나, 외로운게 싫어 그들의 곁을 갈망했다. 그럼에도 학습 받아 뼈에 새겨진 신의 도리는 여전히 손끝에 매달려, 스스로의 선택을 영원히 앗아갔다.
인간의 소원에 의해 탄생해 그들의 원에 의해 삶을 이어갔으니, 끝낼 수있는 것 또한 인간의 소원 밖에 없다 - 고 믿었다.
그냥 옥사나가 원하는 것을 얻길 바랬다. 동시에 속으로 스스로의 갈망 또한 취할 수 있으면 괜찮다 생각했다. 행동에 인간 본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제제 또한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이 손쉽게 간파당했다.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려야 했다. '실망이로군', 이라고 한숨을 내쉬어 고개를 도리질해야했다. 배운 것처럼 너무 빠르지 않게, 느릿하나 그리고 느리지는 않은 속도로.
하지만 실패하였다.
숨소리가 들리는 공간만이 그 둘을 가른다. 제제의 동그란 두 눈에 옥사나의 형상이 비친다. 동공이 떨리는 게 보이는 짧은 거리다.
"...............그래."
결국, 입을 달싹여 한 마디 만을 읆조린다. 눈을 내리깔아, 옥사나의 형상이 더 이상 동공에 비치는 일이 없어진다.
"...그게 우리의 차이점이긴 하지."
부정받은 사상. 타인의 구원에 매달리는 나. 자의의 증오와 타의의 애정.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갑자기 텅 비워진 기분이다. 옥사나의 건조한 경멸이 그 빈 공간을 채운다. 그에 감히 뭐라 할수는 없어,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진심으로. 처음 대하는 사람이다. 여기 오고 나서는 정말 처음보는 유형의 사람밖에 없었지만, 마사는 더더욱 그랬다. 하나를 굳이 뽑기에는 닮은 점을 찾는 게 빠를 정도다.
크흠, 하면서 마사의 눈을 피한다.
"..."
제제는 여전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신이 아닌 자신을 상상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 그 존재를 떠올리는것만으로 거대한 공포에 사로잡히고 만다. 오히려 함께 신도들과 잠드는 게 신으로서의 마지막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기에 마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도, 확답을 주지는 못한다. 거짓말에 본의아니게 익숙해진 제제였지만,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것을 입밖으로 내밀지는 못하기에.
"....대단한 사람이야, 그대는. ...짓궃기도 하고."
휘어진 마사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한다. 두 손의 소매 둘다 들어, 그 긴 천으로 얼굴 하관을 가린다. 그럼에도 분홍빛으로 피어나오는 홍조는 완전히 가리지 못한다.
".............그래, 싫지는 않네."
졌다는 듯, 푸흣, 하고 작은 웃음소리를 내쉰다.
" — 나도, 너를 싫어하지 않나봐."
싫어하지 못한다라던가, 사랑할수 밖에 없다던가. 그러한 강요와 가까운 애정보다는 강도가 약할텐데도, 그런 익숙한 문장보다 이런게 훨씬 더 간지럽다. 감지럼 정도야 참아내 자세를 유지하게 훈련한게 몇년 인데, 고작 그 정도를 참아내지 못해 소매를 더더욱 당겨 얼굴을 가린다.
>>674 제제 르 귄 아이가 내 눈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익숙하다. 나를 만난 아이는 대부분 그러했으니. 고통을 버티지 못해 괴로워 일그러진 얼굴이야말로 내가 가장 익숙해하는 것이다.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엇갈리고 더이상 내 눈에 괴로워하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따가울정도로 반짝이는 법정의 전등이 마치 죄를 씻으려는 듯 눈을 관통해 척수를 태워간다. 나는 무엇인가. 이 어린 아이에게서 자신을 찾은걸지도 모른다. 사회가, 주변인이 나에게 입혀준 옷을 입고 그 옷이 나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 말하는 것들의 실체는 어디에도 없는데. 자신을 바라봐준다는 착각에 매몰되어서는 기워붙인 옷가지를 황금실로 된 옷이라도 된 것 처럼 소중히 여긴다. 제대로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배우지 않았으니까.
나는 이 아이가 괴로웠으면 좋겠다. 정작 정말로 괴로운것은 항상 내가 보는 곳에는 없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평소였다면 실망이라며 쏘아붙였을텐데.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이를 꼭 끌어안아 주려고 했다.
"제제씨는 울어본 적이 있나요."
나와 다른 아이에게 나와같은 답을 바란다. 이래서는 그 사람들과 다를것이 없는데. 어른인 탓에, 같은 생각밖에 되지않나보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두려운지, 또 괴로운지를 알고 있다. 입고있는 옷은 황금실이 아니라 납덩이고 어디를 기던 차디찬 쇠벽에 가로막혀 스스로도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겠지. 다만 안으로, 그 끝도없는 늪의 바닥으로 또다시 침잠했겠지. 빠져나갈 곳 따위는 없다. 구원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이 그 무엇보다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도 모른채로.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말을 그저 깊게 녹여냈을 것이다.
신이시여. 듣고 계십니까. 당신의 어린양이, 이리 기도드립니다. 태어 나기로 저주됨과 끝없는 능멸속에 살아온 이 작은 아이를 구해주소서. 싸구려 장식과 어른들의 증오로 모욕되고 치장되어 원하지 않는 짐을 짊어진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소서. 증오를 위해 사랑하기를 그만 둔 자가 하는 기도가, 얼마나 쓸모있을지는 모릅니다. 그저 이 아이만은 당신의 곁에 있던 선지자들과 함께 당신의 곁에 세워주소서.
"만약, 만약에 용서받아서 이곳에서 나가면... 그러네요. 학교라도 세워볼까요. 제제씨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평범하게 살 수 있게."
...닿지 않겠지. 쓸모없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말고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깊게 담배연기를 마시고 내뱉는다. 어느새 주변은 담배연기로 자욱해서 과일향짙은 연기만이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정도다.
"아무도 안보고 있으면 원하는대로 해도 된답니다."
아이에게서 떨어진다. 한걸음 떨어져서 팔을 크게 벌리고. 아이가 나를 찌를 수 있게. 무엇이든 할 수있도록. ///조금더 괜찮을까!
>>670 제제 (당신의 등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을 자신은 멈추어주지 못 했다. 붙잡기는 커녕 도닥이려는 손길조차 끔찍하다며 거부당했는걸. 아직 어린 당신의 저항 정도야 힘을 주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라지만 권태는 구태여 당신을 잡아두지 않았다. 감히 그럴 자격이 없었다.) 제제. 진정해. (악을 쓰는 당신의 성대에 피가 흐를까봐 당신을 만류한다. 당신을 받치기 위해 무릎 꿇었던 자세 그대로 올려다보는 권태, 응달 진 붉은 눈에는 동요가 없다.) 네가 잘못한 게 맞아. (그리고 당신은 모든 것을 부인한다. 나의 입을 막고 눈을 돌려 지금의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비틀거리며 재판장에서 도망쳐나가는 당신.) (... 권태는 그런 당신의 뒤를 따라 재판장에서 떠난다. 당신의 어깨를 붙잡기 위함이라기보다 제 몫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 일로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도망치는 당신을 뒤에서부터 쫓아가는 형국이 되었다.) ... 있잖아, 지금 부인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어. 판결은 이미 선고됐었고, 네 심문도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오게 될 테니까. (여전히 그의 걸음은 힘이 없었으나 휘청이지는 않는다.) 이미 한참동안 도망쳐본 사람이 하는 말이야. 피하지 마. 그럴수록 너만 더 아프다.
>>692 마사 머리도 풀고 옷도 단정치 못 하고...... (눈 깜박.) ... 싫다는 뜻은 아니야. 알지? ... 네가 나보다 더? (상상이 되지 않는 듯 한참 멍때리다가) 가출했던 건, 가족 때문에? (...) 중학생 때 그랬다는 건... 고등학생 때는 그 아저씨랑 함께 있지 않았다는 뜻?
>>700 마사 ......... (대신 지금까지 술 안 마셨으니 잔소리 하지 말라고 작게 꿍얼거린다.) ...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끄덕.) ...... 네가 우리한테 말하지 않던 사실은, 그리고 밝혀지면 자신을 싫어할 거라 생각했던 사실은, 네가 가출을 했었다는 과거였어? 또 다른 무언가는 더 없고?
>>712 마사 (매우 신 레몬을 먹은 사람처럼 얼굴을 팍! 찡그렸다.) 나한테는 술 먹지 말라고 한 애가...... 안 돼. 어른 된 뒤에 다시 해. 지금은 안 돼. (와다다 쏟아내며 담배를 만류합니다.) 그래... 허... 알겠어. 학생회장이었던 애가 그런 걸 했다고 알려지면 가타부타 시끄러워질 테니까... 그렇지? (당신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는 끄덕였지만,) ... 있잖아, 그럼 만약에, ... 저번에 용서받지 못 했다면. 지금처럼 솔직하게 털어내지는 못 했을 것 같니?
>>716 마사 ...... 난 원래부터 애들한테 술담배를 권하지는 않았어... (서로의 포지션이 바뀌었음은 자신도 실감하고 있지만요. 이것을 좋다고 봐야할지 나쁘다고 봐야할지 헷갈려서 지금 상당히 떨떠름한 상태입니다.) ...... 어, 알아서 사과하고 화해해. 난 몰라...... (모르쇠.) 죽을 필요까지야. ...... 그렇지만, 그렇네. 기회를 봐서 이 정도는 괜찮다 싶어야 털어놓는 거구나. 경계심이 상당한걸... (뜸.) 네 입으로 네 스스로 모든 걸 털어놓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널 용서하지 않으면. ... 우리를 원망할 거야?
>>720 마사 ...... (할말 없음.) ...... 내가 잘못했다. 밖에 나가서 목 매달고 오면 될까? (반은 농담.) ...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구태여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눈 감아 침묵하는 것으로 당신의 말을 긍정하고는...) 만약, 이라고 가정하는 거야. 마사. ... 그리고 아직은 심문이 끝나지 않았잖아. (당신의 계속 대답하기를 우회적으로 권유했습니다. 당신을 용서하겠다, 라는 확언은 주지 않은 채였지요.)
>>726 마사 ...... 그러니. (저런. 그렇게 우리를 철썩같이 믿고 있으면 배신당했을 때 충격이 클 텐데. 권태는 멍한 머리 한구석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반대로... 우리 중 아무도 용서받지 못 한 사람 없이 다같이 용서받아 나가게 된다면. 그 때는 우리 중 아무도 소원을 이룰 수가 없게 되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너는 아무런 유감과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아?
거절당했다.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는 없다. 이성적인 부분이 그리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등을 돌려 떠나야 한다. 방으로 돌아가자. 그리고서는... 어떻게 해야하지. 모르겠다. 도착하고나서 생각하자.
막 등을 돌릴려 할때, 따스한 손이 몸을 감싸안는다.
"....! 헛...."
숨을 들이키는 작은 소리.
제제의 작은 몸은, 어른의 품에 알맞게 쏙 들어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이 동그래 뜨인다. 무슨 연유로 이러는 지 전혀 몰라서 뻣뻣히 굳는다. 위로는 아닐테고, 역시 몸을 잡아서 목을 꺽어 죽인다던가?? 혼란에 휩싸여 눈을 이리저리 굴리지만, 어쩔수 없는 온기에 몸이 절로 반응한다. 생채적으로 그대로 녹아내리고 싶기도 하고, 거칠게 몸부림치고 싶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행각에 결국 그 어느 쪽도 보류되어, 한참을 뜸을 들인 후에야 느릿느릿 답한다. 놀란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게 느껴질테다.
"....없지. 아주 어릴때... 스스로를 신의 그릇으로 갈고 닦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을 제외한다면."
한 다섯살 즈음 전후인가. 그 이후로는 눈물샘을 망가트리는 법을 배워, 조금 더 모두가 필요로한 신에 다가갔다. 하나의 성취이자 자랑이었다.
여전히 옥사나의 말을, 행동을, 그 머리속의 생각을 알지 못하여 동그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동공이 흔들린다.
"...어째서?"
학교?
사실, 학교가 궁금했다고는, 말 못해. 원한 적은 없다. 자신에게 역할은 따로 있었고, 신은 그런 것을 원하면 안되니까. 심장이 간질거리면, 그저 오랜 호기심을 채우는 지식욕에 불과한 일이다.
또래의 아이를 만나는 것도 여기와서 처음이었는데, 그런 조우가 넘쳐흐르는 곳이라니. 상상도 되지 않는다. 본인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아도, 혹은 이미 알기에. 그 상상은, 그래, 되려 공포를 안긴다. 간지러운 느낌이 있어도, 늪과도 같은 공포다. 원하지 못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품이 따뜻하다는 것 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 텁텁한 담배향이 느껴진다. 혼란스러운 눈이 옥사나를 향한다.
"...본좌를 혐오한다고, 증오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어째서.
멍하니 떨어져 팔을 벌리는 옥사나를 바라본다. 이해하지 못한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행동을 하는 지. 할수 있는 지.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연유로 행동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는 말은 지나치게 달콤해 도이려 독의 위험이 느껴진다. 무방비한 옥사나의 신체를 바라본다. 거짓이라고 머리가 알아서 판단하여도, 꿀 처럼 달콤한 독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언제든지 찌를 수 있다. 제제라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기에.
그래서 제제는 더욱 더 끔찍하고, 더욱 더 모독적인 방향을 골랐다.
한걸음 나아가, 방금과 똑같은 자세로, 다시 한번 옥사나의 품에 몸을 슬며시, 한 순간 기대어 버린다.
(사실, 사실은. 어른을 품에 안아주는 것보다, 안기는 게 더 좋았다.)
죄를 짓는 거 같다. 큰 죄악감에 빠진다. 그 자그만한 선택의 행동에 속이 뒤집어 지는 것 같다. 잠시 안긴 것도 잠시, 화상에 데인 듯이 빠르게 뒤로 다시 물려나려한다. 1초도 되지 않는 죄악이었다.
온기에 데인다. 너무 너무 뜨거워서 데여버린다. 화상은 끔찍해, 학습되지 않은 공포에 절로 거리를 두려 한다. 신체가 이리 떨리고 작은 가슴이 콩닥거리는 연유다.
그 손길에서 멀어지려 뒷걸음 친다. 생존본능의 연장선이다. 추례한 자아를, 고수한 숨을 지키기 위해. 무릎 꿇은 자세의 권태는 자신보다 작아보여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데도, 그가 너무 두렵고 끔찍하다. 그 두 눈이, 동요없이, 흔들림 하나없이 자신을 온전히 담은 그 두 눈이 너무나도 끔찍하다.
자신을 담은 두 눈이. 잘못을 담는 그 혀가. 가지고 있는 지도 몰랐던,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자극한다.
그래서 도망친다.
초라한 무게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는 두 다리로는 전혀 속도를 낼수 없지만, 그래도 멈추면 안된다는 본능에 움직인다. 비틀거려도, 손으로 벽을 짚어야해도. 뒤에 일정한 박자로 발걸음소리가 들리는 게 너무 싫다.
그가 거는 말이 너무 싫다. 있잖아, 라는 말로 시작하는, 담담하고, 상냥하지 않지는 않은 그 말이.
"...시끄러워...."
그대로 힘이 풀리는 다리의 본능에 몸을 맡긴다. 조금만 더 있으면 방일텐데, 그 까지 가지 못한다. 그대로 벽에 기대 쭈그려 앉아, 얼굴을 무릎에 파묻는다. 손을 들어 귀를 막는게, 철없이 숨바꼭질하는, 혹은 투정부리는 아이와도 같다.
가까워지는 그의 소리도 막아낼수 있으면 좋을 텐데. 감정이 불안정하게 널뛴다. 선심쓰듯 건네는 그의 말도, 완벽히 막아낼 수 없어 숨긴 얼굴이 일그러진다. 손에 짓눌린 귀걸이가 아려온다. 존재가 부정당하는 공포에 그 손에 힘을 풀지도 못한다.
그 뒤에 서 있는 것은, 무미건조한 눈의 제제. 이미 잘 준비를 할 시간 일텐데, 복장은 여전히 단정해 평소와 다른게 없다.헝크러진 머리는 똑같지만. 제제의 등 뒤에는 방이 보이는 데, 의외로 단정해 생활감이 하나 없는 곳이다. 분명 제제라면 치우지 못해 어질러져 있을거 같은데도... 아니, 그 보단 아예 쓰지 않아 먼지가 쌓인 게 보인다. 대신 그와 대비되게, 침대는 전혀 다른 모양새다. 단정은 커녕, 침대보 위에는 어째서인지 찢겨진 종이 같은 게 흩어져 있다. 줄곳 그 위에 잠들고 있었던 것일까?
가라앉은 눈동자가 마사를 발견하다 동그랗게 뜨인다.
"...그대?"
심문이 지난지 얼마 안될턴데. 정말 예상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마사를 바라보다, 그녀가 든 베개를 바라본다. 혼란이 증가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740 제제 르 귄 "여전히 당신이 밉습니다. 여전히 증오스럽습니다. 여전히 혐오스러워. 아마 평생을 다 써도 제가 당신을 좋아하게 되는 일은 없어요."
아이를 끌어안은 손에 조금씩 힘을 더한다. 이대로 이 아이가 원하는 결과를 안겨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무방비했다. 연민을 잔에 섞고 조금의 괴로움을 더하니 다소 넘칠듯 말듯한 감정들이 밀고 들어온다. 줄리아, 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우리의 괴로움을 안다. 스스로 선탁했다고 믿어야만하는 괴로움을, 그를 위해 한없이 스러진 약동들을 기억한다. 단 한번도 살아있지 못한채로 외롭고 쓸쓸하게 또 허망하게 메말라가야함을 나 스스로 기억한다. 비명은 지르지 않는다. 어차피 닿지 않을테니까. 끈적거리는 사적인 감정을 뒤로 하고 멎지 않는 비명으로 눈물을 대신해야만했다.
"...괜찮은가요. 아프지는 않았나요."
품안의 작은 생명의 맥동을 느낀다. 조금 다급하게. 쿵쿵하고 울려대는 생명의 북소리를 덮을정도로 그 작은 목소리가 내뱉는 말은 참담했으나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원래 비루한 것들의 한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저 아침 뉴스의 3분짜리 기사로 출력되고 타인의 자기긍정감을 위한 제물이 될 뿐이니까.
"저는 제제씨를 긍정하지 않아요. 저에게 살인은 여전히 구원이 아니라 죄악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말이에요."
그렇다고 끝없이 혐오하고 미워하기엔 우리는 타인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보며 괴로워하고 슬퍼하기엔 이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리고. 그렇다고 이미 저질러버린 죄를 무시하는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래요 그렇다고. 몇번이나 덧붙일 수 있습니다 이유따위는. 내가 색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것이 이유가 있어서인가요? 그런건 어디까지나 어디에서나 붙일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색 맞추기따위 이미 오래전에 지나온 길이니까요.
저희는 한 때 신이었습니다. 남의 목숨을 손가락 하나로 좌지우지하고 구원이니 벌이니를 지껄였습니다. 저희는 한 때 인간이었습니다. 저지른 일을 후회하고 편한쪽으로 도망치기를 선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금 저희는 무엇인가요. 저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지금 이렇게 살아있습니까.
비열한 살인마. 동정심을 사기위해 못하는게 없구나-.
...그러네요. 마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희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지나칠 수는 없어요."
신은 우리에게 임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같이 회개하지 않은 자가 아닌 진실로 선한자를 위해 움직이시니까.
다시 한번 떨어져가는 아이를 바라본다. 무언가 큰 죄를 저질렀다는 듯 급하게 멀어지는 아이를. 가련하고 불쌍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위해 필요한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신이나 구원. 그런걸 믿는 사람은 적어도 이 감옥안에는 없으니까요. 남의 필요가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것을. 한번 생각해보시는거에요."
다를것이 없나. 이 아이도 나도. 서로를 죽이냐 죽이지 않느냐일뿐. 서로 깅요하는 것에는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천천히 손을 뻗는다. 아이의 머리를 향해서.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우리 다시 한번 이야기해봐요. 남이 눤하는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하고싶은 것을.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조금 욕심을 부려도 괜찮아요."
〔 우선 투표 현황을 안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5표입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한다: 2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한다: 1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한다: 1표. 〕 〔 죄수 번호 005, 제제 르 귄. 용서한다: 1표. 〕 〔 전반적으로 용서를 많이 외치는 경향이 이번 판결에서도 드러나는군요. 〕
〔 그 다음으로 외부 판정단의 의견을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12표입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하지 않는다: 3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3,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6, 제제 르 귄. 용서하지 않는다: 3표. 〕 〔 -반면 관전자 분들은 결코 용서해선 안 된다는 듯 앞다투어 용서 안 한다는 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거 정말... 재밌지 않습니까? 〕
〔 오늘은 심문이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남은 심문을 위해 몸과 마음을 완벽히 준비시켜두기를 바랍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749 (당신의 뒤켠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아저씨 하나. 키차이 덕분에 자연스레 상체가 숙여져, 허연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다.) ...... (당신이 손톱을 물어뜯는 손을 자신의 손으로 지그시 눌러 입에서 떼어내려 해본다. 자칫 일어날 수 있는 유혈 사태는 누구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 초조해하지 마. (그럴 수록 너만 아파.) ...... 오렌지 먹으러 갈래? (당신의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어설프게나마 주제를 돌려보려 한다.)
>>751 마사 (어설픈 시도가 불발되었다. 곤란함을 담아낸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는 듯 하다가, 이내 어둠에 가라앉는다.) ...... (어떻게 답해줘야 할까. 멍청한 머리로는 답을 낼 수가 없어 선뜻 입을 열지 못 한다.) ......... 솔직한 평가와 진심 어린 격려 중 어느 쪽을 더 듣고싶어?
>>753 마사 (...) 담배 안 돼. (......) 지금은 없지? (어쩌다가 내가 당신한테 이런 말을 하게 되었지...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미묘하고 복잡한 심경으로 당신을 봅니다.) ...... 1심하고 2심 때에는... (이런 말을 해도 될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아, 떠듬떠듬 신중하게 할 말을 고릅니다.) 마사가... 힘들어 했었고, 조금 더, 진중하게 행동했었지. 그랬는데, 3심에서는... 더 편해졌고, 여유도 많아졌어. (나는 지금의 네가 더 좋지만. ... 라는 말은 분명 변명처럼 들리겠지요. 권태는 그대신 할 말을 끝맺기로 합니다.) ... "하필이면 있는 그대로 다 털어놓겠다 말한 시점에서", 네 태도가 변한 거야. 자칫 잘못하면 그건... 네가 마치, 원래는 반성도 안 했고 피해자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어.
지금은, 이라는 걸 강조하는 걸 보면 방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악의 판결에 대비해서 마지막에는 몇 개피를 한꺼번에 펴 보고 가고 싶다, 같은 이상한 로망 같은 걸 생각하는 소녀일지도 모르고.
"......."
마사는 권태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다. 지금의 네가 더 좋다는 말에는, 조금 놀라 눈을 깜빡거리지만.
"그런가요. 제 실책이네요. 그런 게 아닌데."
낙심했는지, 어땠는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이라는 게 있다면 있는 힘껏 돌려놓겠지만 지금으로선 거의 끝나 버렸군요."
...아니다. 전부는 아니어도 낙심한 게 분명했다. 어느새 마사는 재판장에서 보였던 것과 똑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사실, 줄곧 생각해왔던 게 있어요. 사쿠라가오카에 입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가지고 있던 생각이요. 전 '가짜'고, 완벽한 학생회장 같은 건 제게 어울리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완벽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겠죠. 원래 이랬어야 했던 건지도 몰라요. 이제야 모든 게 옳게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742 제제 (#아이고 미안해 답레줬던 걸 지금 봤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는 당신을 붙잡아주지 않음은 단순히 팔이 닿지 못 할 거리에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당신이 달려가지 않았을 테니 그 간극마저 금방 줄어들었겠지만.) 소리는 안 질렀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당신이 이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음은 안다. 다른 소음보다 자신을 공격하는 말소리가 더 아플 시절일 터다.) ... 왜냐니. (......) 네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 이기적인 만족감이네요. 가타부타 말을 붙이지 않고, 권태는 다시 당신 앞에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췄습니다.) 제제야, ...... 아저씨가... 너를 괴롭히는 것 같니? 나는 네가 밉거나... 근간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너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행동할 줄 아는 착한 아이잖아... 그 방식이 잘못됐을 뿐인걸. (...) 그냥, 지금의 사랑만 버리면 되는 이야기야. ... 힘들 것 같니?
>>755 마사 ...... (안 그래도 날카로운 권태의 눈이 한층 가늘어진다.) ... 전에 너한테 맡겨뒀던 내 술은? (수상한 대답이 나오거든 당장 방을 급습해 가정방문(?)을 할지도 모른다...) (화를 내거나 악을 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히 받아들인다. 이해해준 걸까. 다행이라는 안도가 들어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쩌면 당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책일 수도 있고.) 실수해도 괜찮아,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한 번으로 결정짓기 않기 위해 세 번씩이나 재판을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체념하지 말아줘.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완벽한 사람이란 게 정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그 '완벽한 인간'인 쪽이 가짜이자 허상이지 않을까. (가짜한테 죽음이 내려진다면, 불티로 흩어지는 건 완벽한 학생회장일 터다. 지금의 당신이 더없이 가벼워보이는 것처럼. 세워온 이미지가 무너져가는 것처럼.) (절레절레)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 거야. 비웃지 않는 건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인 거고... 그간 내가 한 생각은, 여기엔 나보다 최악인 인간은 없다는 결론이었거든. (이 이야기를 끝내려는 듯 식당으로 자신을 끌고 가려는 당신. 권태는 잠시 자리에 붙박힌 듯 서 있다가... 무거운 다리를 끌고 당신을 따라가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하고싶다는 건 다 들어주고 싶었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소리와 함께 고개를 내린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혐오한다면 외면하지. 멀리 멀리 도망가버리지. 품에 안지 말지. 어째서 일까, 그 아이가 생각났다.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의 흑발이 태양 아래 부나끼는 모습이 생각났다. 이곳에 태양빛은 커녕 창문 하나 없고, 앞의 머리칼은 흰색일 더러 닮은 점은 하나도 없는 데 말이다.
"당연히 괜찮지."
고통은 불필요.
"아플리가 없지."
그러므로 없다. 자랑이자 성취다. 거기에 고통은 없으며, 있다하여도 다 그 길의 일환이다. 불평할 것은 아니며, 고통스럽다 느낄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애초에 질문 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숨을 들이쉰다. 옥사나의 따스한 품속에서, 그녀의 시리게 푸른 두 눈을 올려다본다.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지나칠 수 없다.뭔가 알아차린듯, 눈이 조금 커진다.
"...그렇구나."
중얼거리듯, 약간 놀란 듯이, 눈을 깜박인다.
"나는 괴롭구나."
불필요한 감정이 하나 둘 모여 찌꺼기가 되었다. 그 덩어리의 정체를 몰라 서성이고 두려워하였다. 미지의 공포에, 이 의사는 손쉽게도 손을 내밀어 작은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아는 것은 공포를 덜어 준다. 이 사실이 되려 제제의 망가진 눈물샘을 자극하는 느낌이다. 물기가 나오는 일은 없지만, 눈가가 홧해지는 느낌에 조금 허둥지둥하게 된다. 그래서 일까, 무방비인 제제의 머리칼에 손이 와 닿을 수 있다.
눈이 다시 동그래져 멍해진다. 제제의 머리카락은 여태 관리를 한 듯 매끄러우면서도, 정리를 하지 않아 헝크러져있다. 미묘한 곱슬기가 백금발에 푹신함을 더 한다.
"나에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곱씹듯이, 곤란한 듯이 눈을 굴린다. 남의 필요가 아닌 자신이 필요한 것?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굳어버린다. 내가 필요한 것. 내가... 나는 누구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 것이지. 원초적인 질문이 꽉 꽉 들어차 숨 쉴 공간이 부족하다. 이러면 안된다고, 뼈에 새겨진 의무감이 무겁게 눈을 부라린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경하며, 신의 그릇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다. 곤히 잠들어 있는 78명의 이름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럼에도.
"....그래."
결국,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아무도 보고 있지 않으니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 이로서 제제는 한 발자국 인간에게 다가간다. 이기적이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마음은 턱 없이 인간의 것인 그거니까.
그리고.
"....나는 다시,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실패. 패배. 이 것은 여러 이름으로 불릴수 있을 것이지만, 그 뜻은 일상통맥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기분이 그리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바닥에 쭈그려 앉는 제제. 이승의 미약한 중력조차 버티기 힘든 듯, 귀를 막는 자세 그대로 몸을 앞으로 숙인다.
"..."
권태의 목소리가 너무 거슬리는 동시에, 그의 말 하나 하나에 매달리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도 그를 닥치게 만들고 싶은 데, 등 뒤의 인기척이 너무 그립다. 상반되는 마음, 널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몸을 떠는 데, 그 바닥 만을 담던 시야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고개를 든다.
힝입니다... 의 의인화가 되어버린 제제. 땀만 뻘뻘 흘리며 옆에서 쭈글거리고 있다. 베개는 이제 냅두고있긴 하지만, 마사의 삿대질+잔소리 콤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어쩔수 없다. 저절로 무릎도 꿇여지는 느낌이 펄럭 조물주에게 등짝 스매쉬 받은 자식놈의 모습을 완벽히 그려내고 있다.
" "
종이가 한 곳으로 단정히 쌓이자 찌그러진 제제가 우물쭈물 다시 올라온다. 어른스럽게 굴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도 마사의 꾸중을 마주하면 절로 쭈구러진다.
"그냥, 뭐... 그냥...?"
우물쭈물 대답하는 것 조차 맥가리 없다. 가슴에 갑갑한 감정의 이름도, 그때 넘쳐 흘러 어떻게 할지 몰랐던 폭력의 갈망도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 그저 모든 것을 '그냥'이라는 말로 덮어두는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시선은 피한다. 종이뭉치에게 시선을 돌리면, 그때 책을 파괴하며 조금이나마 느낀 안도감의 기억을 쿡쿡 쑤시는 데, 다시 마사에게 시선을 돌리면 그 머리끈의 모습이 제제의 마음을 빼앗는다. 거기 걸려있는 색색의 장신구의 모습에 가슴께가 간질거린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딱히 치울 생각을 못해서......?"
익숙해지면 괜찮네만.......하고 소심하게 다시 항의하지만, 마사가 조금이라도 눈썹을 들썩이면 흐잉, 하고 수그려진다. 크흠, 크흐흠, 하고 헛기김이나 하며 소매로 하관을 감춘다. 주제를, 주제를 바꿔야 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베개에 시선이 놓인다.
"그, 그래도 그대가 치워주었으니 괜찮은게... 아니, 바, 밤이 늦었으니, 자고 가지 않겠나?"
...마사의 방이 몇 걸음 밖에 있다는 것을 빼곤 완벽한 대사였다. 입밖에 내고서야 아차, 하지만, 그냥 에라이 됐다라는 마음으로 밀어붙인다. 고개를 휙, 돌리면 귀걸이가 움직임을 따라 짤랑, 하는 소음을 낸다.
>>757 마사 (가늘게 뜬 눈 그대로 입이 삐죽 튀어나오는 걸 보니, 당신의 말이 농담임을 눈치채지 못 한 듯 싶다.) 술맛도 모르는... 아니 그렇다고 지금 네가 알아야 한다는 뜻은 아닌... 하... 됐다. (하기야 당신이 어른 되어 술을 마시러 간다면 당신은 칵테일바 같은 곳을 갈 테고 권태는 동네 호프집이나 갈 사람이니까...) ... 그만큼 무거우니까, 다들, 모든 증거를 토대로 잘 고민한 다음 투표할 거야. (고맙다는 말은 별 반응 없이 넘어간다. 아마 한 귀로 듣고 그냥 흘린 것 같다.) ... 잘 알고 있네. (자신을 포함한 죄인들이 그간 당신한테 넌지시 흘렸던 말들, 계속 학생회장에 집착해야겠느냐 물었던 말들. 그 뜻을 당신도 깨달았으니 더 이상 말을 달아봐야 정말로 의미 없는 잔소리만이 안 될 것이다. 지금은 다른 말을 해주어야 할 때다.) 그럼 말야, 마사야. 지금은... 완벽한 학생회장 말고, 또 다르게 되고싶은 자신의 모습이 있어? (그것은 자신이 응원해줌직 할 거라고 권태는 생각했습니다.) ...... 네가 그랬었나? 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반응을 보아 마음에 크게 담아두진 않는 것...같...죠?) 뭐랄까, 그냥. 정당한 관찰의 결과라고나 할까...... (웅얼거리며 말끝을 흐린다. 당신이 준 오렌지를 받아들어 입에 넣는 모습은, 방금 전 자신이 한 말에 달관하여 사실이라 받아들인 사람의 행동이었다. 담담하던 표정은 금방 오렌지의 신 맛에 잔뜩 구겨진 표정이 되었지만.) ............ 안 셔......?
>>760 제제 (권태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아연함을 당신이 읽을 수 있었을까?무어라 말하려 했던 것도 까먹고 입술을 붕어처럼 뻐끔이고 있었다.) ... 사랑을 버리기 힘들구나. 사랑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거야. (나 또한 그렇단다, 내 슬하의 어린 것을 보면 없던 사랑도 생겨나는 마당에 어떻게 있는 사랑을 흘려버릴 수가 있겠어.) 우리는 지금 모순에 빠져 있어. 사랑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데, 계속 숨을 쉬기 위해서는 사랑을 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해. 아저씨는... 모르겠다. 그런 방법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모르는 사람 둘이서 이렇게 대화해봐야 공회전뿐이 더 될까. 지금 시간의 근본적 문제가 이것이었다.) 하지만 바깥에는 사랑을 하면서도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제제는 똑똑하니까 금방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제제가 알아내서 나한테 알려줄 수 있을까. (그런 방법따위 나한텐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당신한테 조금이나마 '남을 위한다'는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전해줄 말이, 너무나 많아요. 미워하는 사람일수록 전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전할 수 있었겠지만… 여전히 나는 이 아이를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신이 밉습니다. 당신을 증오합니다. 당신의 그 생각도 혐오스럽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당신을 향해서는 안되는 감정입니다. 저는 당신의 안에서 자그마한 자신을 바라보는 겁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비겁하게도.
우리는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스스로의 고통을, 괴로움을.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은 그저 괴로울 뿐이니까요. 아무리 자그마하더라도, 고통은 바람에 날아가는 것이 아니까요. …날아가 버리면 좋았을 텐데.
자그마한 목소리가 울립니다. 그것이 제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내 안에 고독을 버리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저는 고독하고, 괴로웠습니다. 겨우 찾아낸 햇볕조차도 누군가가 찾아와 무너뜨리는 것이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냥 그런 거에요.
“그런가요.”
다시 한번, 괴롭다는 아이의 말에 대꾸합니다. 파헤칠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정할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 저보다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저 아이의 안에 자리 잡은 어른들의 욕망들이, 아이에게 짊어지게 한 의무감이. 혐오스러웠습니다. 거의 다 탄 숯이 열을 잃고 바스라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미 심문을 시작하기 전부터 조금 피운 탓에 시샤를 태우던 열기는 조금씩 식어갑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조금 정리해주듯이 쓸어 내렸습니다. 푹신한 것이 만지기에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젊은 나이니까요.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괴로운 관리가 기다리는 겁니다.
아이를 안고 있던 손을 풀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이러고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네요. 저도 제제씨와 이야기 하고 싶어요.”
당신이 밉습니다. 저를 돌아보게 만드는 당신이 밉습니다. 사라지고 싶다고 바랄 때 마다 이전의 저를 떠올리게 만드는 당신이 부끄럽습니다. 고통을 알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싫습니다. 당신을 바라볼 때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저의 죄는 떨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음에, 저는 기도합니다. 제가, 아이가 구원받을 수 있기를. 누군가의 빛을 저물게 만들었음에도 비겁하게 살아남기를.
화나서 어쩔 줄 몰랐다는 말을 하도 꼬아서 한다. 그때는 마침,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도 곁에 있었고... 마사의 움직임에 함께 흔들리는 머르끈에 생각을 잇지 않는다. 그 색색의 존재 만으로 제제는 약해지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읽진- 끄윽, 아, 알겠네에..."
잠자리가 굳이 편해야하나든지, 꿍얼거리다 마사의 매서운 눈에 금방 다시 찌그러진다.
그러나 마사가 도움을 준다는 사실 자체는 기분 좋은 듯하다.
침구의 크기 자체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마사가 고개를 기울이는 사이에 침대에 걸터앉는다. 최근 몇칠과 달리 뻣뻣하게 찔려오는 게 하나 없어 훨씬 편해졌다. 그게 조금 신기한지 손으로 천을 툭툭 건드린다. 하는 데 1분도 채 안걸리는 일이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었나보다.
"그, 그래...."
마사가 눈을 빛내며 반짝이는 미소를 짓자... 마사가 쏟아져내는 말과는 달리 단답으로만 답할 수 밖에 없다. 함께 자고 싶었던 것인가... 하고 마사의 의도와는 달리 깨달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진정한 '으른'은 티내지 않기에, 그저 헛기침하며 그래, 그래, 고맙네, 하고 딴청을 피운다.
"허나...굳이 필요한가? 청소가."
기분 좋은 생각을 하는 지, 손으로 침대를 쓸며 눈가가 휘어진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 둘 다 더 이상 이 침구는 쓰지 않을턴데. 어느 쪽으로든."
제제가 생각하는 '어느 쪽'은 꽤나 극적인 길이라, 그 걸 보는 마사는 조금 다른 기분 일수도 있겠지만.
〔 우선 투표 현황을 안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6표입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한다: 2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한다: 1표,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한다: 1표. 〕 〔 죄수 번호 006, 제제 르 귄. 용서한다: 1표. 〕
〔 그 다음으로 외부 판정단의 의견을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12표이며 이전 방송에서 변화된 점은 없습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하지 않는다: 3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3,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하지 않는다: 2표. 〕 〔 죄수 번호 006, 제제 르 귄. 용서하지 않는다: 3표. 〕
〔 마지막으로, 오늘 10시 정각에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 네 번째 심문은 죄수 번호 003, 미나미노하라 세이카를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죄인 미나미노하라 세이카는 해당 시각에 심문 진행이 어려울 경우 최대한 빠르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 아울러 내일에도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미리 안내드립니다. 내일 열릴 마지막 심문은 죄수 번호 006, 제제 르 귄을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 〔 죄인들은 모두 빠짐없이 10시 정각에 미나미노하라 세이카의 심문에 참여하여 주십시오. 얼마 남지 않은 이 여정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782 세이카 아...... 뭐랄까, 그것 때문에 판단한 건 아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살짝 눈을 찌푸린 채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야, 봐, 저번 네 심상을 보면 솔직히...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너네 부모, 그다지 좋은 사람들같지는 않아 보였고. 같은 살인자가 이런 말을 해도 우습지만 말야-? 죽을 만했던 사람, 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789 세이카 아- 뭐-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나랑 제제는 말야, 사이좋게 3표씩이나 용서받지 못 한다고 들었다고. 네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너보다 더 못나고 쓸모없는 쓰레기려나... 딱, 1표 분량만큼...? (설득인지 자조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그 뒤에는, 자신은 잘 모르겠다는 듯 시침을 뚝 떼며 당신의 말을 반문했다.) 죽을만한 사람은? 그 뒤에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796 세이카 재밌네... 세이카, 방금 네 말로 '네가 부모보다 못난 사람이다'라는 주장에 네가 들었던 근거가 없어진 거. 알고 있니? (느릿하게 눈을 껌벅이고.) 다시 한번 말해볼래. 불륜과 학대와 자살 협박을 한 부모보다 네가 못한 사람이라는 이유가 무어니? ... 여기엔 없는 듯 해. 네 말대로. (조용히 당신의 말을 긍정했다.) ... 음, 이건 그냥 궁금한 건데. 그럼... 너를 포함해서 우리가 죽인 피해자들 중에서는, 죽을 만한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해?
>>807 세이카 나머지는 죽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말이구나. (무어라 더 말을 하고싶은 기색이었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기로 한 건 귀찮음 때문일까, 알량한 배려 때문일까.) 그래서... 다시 물을게. 네가 네 부모보다 못난 사람이라는 근거가 뭐라고? 저번 2심 때 내가 알게 된 네 부모는 불륜 저지르고, 학대하고, 자살 협박하고, 딸내미 앞에서 싸움이나 해대는 놈들이었는데......
>>812 세이카 이 시스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며? 근간 자체가 잘못된 수단이라면, 그것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면 안 되겠지. 망가진 체중계로 실내 온도를 재려고 하면 안 되듯이 말이야... (그는 집요하게 다시금 묻기로 했다.) 외부 판정단의 투표, 이 재판, 그것을 모두 제외하고. 네가 네 부모보다 못 한 사람이라는 증거는?
>>822 세이카 자기 딸은 사실상 죽여놨으면서 말이지... 인과응보, 권선징악, 의외로 이것도 용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더라고... (내가 당신을 판결할 때도 그랬었고.) 네가 그들을 죽였다는 점까지 포함해서, 나는 네가, 그 사람들보다 못 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 아. 힘드니. 미안. 참을만 해?
(권태는, 반응하지 않았다. 언젠가 상담사가 말한 적 있었지 ─ 잘못된 행동에 반응을 하면, 그것 자체가 보상이 되어 행동을 강화하고 만다고. 목을 졸라 동정과 관심을 받아 계속 목을 조르게 될 수도 있다고.) (당신은 죽고싶다 말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르게 해주는 것 또한 당신을 위하는 일이 아닐까. 멍한 머리 한구석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 (그는 다만 가라앉아 어두운 붉은 눈으로 세이카를 응시할 뿐이었다.)
흠, 그렇지만, 그렇군요... 어차피 심문의 대상이 대답을 못 하는 상황이니 이 이상의 데이터는 모으기 힘들까요. (판사석에서 느긋하게 일어난다.) 어떻습니까,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대답을 더 하지 않으실 겁니까? 질답의 의도가 더 없다면 지체 없이 바로 심문을 끝내도록 하지요.
...... 스크린이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제 속도로 다시금 차오르기 시작한 추출 그래프.
사마엘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다분히 실례가 많았습니다. 기술적인 장애로 인하여 불편을 끼쳐드린 점, 밀그램 시스템을 대표하여 사과드립니다."
평소같이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사마엘, 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사과한다. 그와 비슷하게, 오류난 독백 또한 추출이 완료된다.
"미나미노하라 세이카의 심상으로부터 『Qm91bmQgYnkgRnJlZWRvbSBJdHNlbGY=』이 추출되었습니다." "음, 제목이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깨졌군요. 전체 내용 파악에는 문제 없으니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로써 제 3심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심문을 종료합니다."
그 느긋하고 단조로운 향으로 보아, 제제가 만든 것은 캐모마일 차인 듯하다. 심신을 진정하는 데 좋다고 알려진, 연한 매력의 차. 한 모금 입에 담으면 채 식지 않았으나 떪은 맛 하나 없어, 차를 우리는 데에 꽤 공을 들였단 사실을 알 수 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 라고 작게 덧붙이며 잔에서 손을 뗀다.
"...잠이 오질 않아서."
거짓말을 아니지만, 왠지 시선을 피하게 된다. 허나 이어지는 말에는 제제또한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는지, 극히 복잡한 표정을 내비치게 된다.
하필 그 말이라니.
조금 닮았다 느끼는 것은 오만인가. 잘 모르겠다.
".......나야 말로, 묻고 싶군."
벤치에 앉아있는 세이카 앞에, 눈높이를 마추려 무릎을 꿇어 그 앞에 앉는다. 손을 뻗어 세이카의 무릎을 잡으려 하며, 착잡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하나의 스포츠물을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마사는 제제가 최선을 다했다는 데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로 또 그런 기분이 들면 방금 했던 것처럼 하면 돼요. 알았지요? 아니, 무리하진 말구요?!?"
돌아눕고서는, 제제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이야기라도 할까요."
부끄러운 듯 얘기한 것에는 눈을 깜빡거린다. 자신도 왠지 부끄러워진다. 세이카의 고백 때문일까, 같은 여자아이라곤 해도 의식하게 되는 듯하다.... 그러나 무무무슨 생각 하는 거야! 제제 르 귄 씨가 그런 식으로 나를 볼 리 없잖아!!! 하고 갑작스레 드는 생각에 한쪽뺨을 챱하고 친다.
"그건 저도....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요.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건 오랜만이에요."
얼얼한 뺨을 무시하고 이 쑥스러운 분위기를 이겨내겠다는 듯 등을 돌려 제제와 눈을 마주친다.
〔 우선 투표 현황을 안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9표입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한다: 3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한다: 1표,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3,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한다: 1표, 용서하지 않는다: 1표. 〕 〔 죄수 번호 006, 제제 르 귄. 용서한다: 1표. 〕
〔 그 다음으로 외부 판정단의 의견을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접수된 투표는 총 17표입니다. 〕 〔 죄수 번호 001, 박권태. 용서하지 않는다: 4표. 〕 〔 죄수 번호 002, 시미즈 마사. 용서하지 않는다: 3표. 〕 〔 죄수 번호 003,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용서하지 않는다: 3표. 〕 〔 죄수 번호 004, 옥사나 하네즈카. 용서하지 않는다: 3표. 〕 〔 죄수 번호 006, 제제 르 귄. 용서하지 않는다: 4표. 〕
〔 ... 그리고 투표 사유로 '죽이라는 표가 더 많아지면 진짜로 다 처형할지 너무너무 궁금함'라고 말씀하신 분이 계셔서 하는 말입니다만, 밀그램 시스템의 투표 규칙(situplay>1596909080>6)에 의거하여 외부 판정단의 의견은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반영된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판정단 분들께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 〔 아, 물론 죄인들끼리 투표에서 모두가 용서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모두 처형됩니다. 이 또한 규칙이자 약속이니까요? 우후후. 〕
〔 마지막으로, 오늘 10시 정각에 심문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 마지막 심문은 죄수 번호 006, 제제 르 귄을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죄인 제제 르 귄은 해당 시각에 심문 진행이 어려울 경우 최대한 빠르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 내일은 제 3심의 판결을 선고하는 날이자, 판결에 따라 여러분들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날입니다. 그런 만큼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기를 미리 당부드립니다. 〕 〔 죄인들은 모두 빠짐없이 10시 정각에 제제 르 귄의 심문에 참여하여 주십시오. 마지막 심문이 훌륭하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 밀그램 시스템은 공평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정보 공유에 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여기에 죄 없는 자는 없다. 그 들은 이 감옥 밖에 있어, 우리를 향해 던질 수 있는 것은 경멸의 시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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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는 알고 있었고, 에우리디케 또한 그리 하였다.>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 둘은 지하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소녀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 이끄는 어머니의 등이 보였다.
소녀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전설을 생각하고 말았다. 계단은 길고 어두웠으며, 저승을 연상케 하였다.
소녀는 그 전설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안돼. 답을 알고 푸는 문제였다. 전설에서도 미리 경고를 주었고,현실에서도 그리하였다. 뒤 돌아보면 안돼. 오르페우스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돌아보아,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후세대들은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뒤를 돌아보면 안되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기에.
허나 오르페우스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소녀처럼.
오르페우스는 등 뒤의 에우리디케를 사랑했다. 그러므로 작디작은 신음소리에도, 그는 뒤를 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작은 행동이 파멸로 이끌라는 것을 알고도. 아니, 알기에.
소녀 또한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운명과도 같았고, 필연과도 같았으며, 세상의 이치와도 같았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소녀는 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파멸하였다.
아니, 올바르게 된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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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제인은 쉰에 가까운 나이의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죽음이 두려웠고, 불치병 판정을 내린 의사를 원망하였다. 그녀는 아무 것도 해줄수 없는 교회도 원망하였고,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 자식들 또한 원망하였다. 원예를 즐기는 그녀는 나의 말에 안도하여 흐느꼈다.
잭은 젊은 사업가였다. 부유하게 살아와 모두가 질투하는 삶을 살아온 그는 언제나 불안해, 소속할 곳, 동시에 그의 특별함을 알아줄 곳을 찾고 있었다. 모두가 떠받드는 나의 애정에 그는 드디어 안심할 수 있었다.
안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중년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만성적인 외로움에 갇혀 그녀를 온전히 받아 줄 곳을 찾고 있었다. 삶의 목적을 잃은 재커리. 누군가를 떠받들여 인정을 얻어야만 안심하는 켈리. 친애하는 아내와 함께하기 위해 온 마커스. 운동을 좋아하지만 사람이 무서운 헨리에타. 다른 페셰적인 종교에서 도망쳐 와 지켜 줄 울타리가 필요로한 데미안. 숭고한 뜻에 심취한 브라이어. 누군가의 지시가 있어야 떨림을 멈출 수 있는 리. 수년전 화재사고에 사망한 가족이 행복하다는 확신이 필요한 나나. 그녀를 좇는 가족에게서 도피처가 필요한 케이.
외로운 사람. 두려운 사람. 불안한 사람. 특별함을 알아주고, 대가없이 포옹해주는 자를 쫓는다. 공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그러한 자신도 포옹해줄 사람을.
인간은 사랑을 해줄 자가 필요하고, 사랑을 쏟을 자가 필요하다. 홀로 서기보다 특별한 자를 따르는 것을 원한다. 생각과 불안을 모구 맡기고 싶어한다.
함께하는 자는 어떠한 특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함께 할 가능성이 낮다던지 높다던지, 그런 구분성은 무의미했다. 모든 인간은 약해지는 순간이 있기에. 조금 더 외롭고, 조금 더 사람의 손길이 그립고, 조금 더 불확실한 미래에 절망을 느끼기에.
그리고 그런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그러한 성질은 더더욱 짙어진다.
생각을 그만두는 것은 달콤하다. 분위기가 그만둘 수 밖에 없게 한다. 맹목적이고 광신적이 된다. 같은 소속이 아닌 사람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만하다고 공포를 가르친다. 학습한다.
공포를 이겨낸다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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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심문이 도래한다. 나는 무감정한 눈으로 모두에게 그를 알리는 스피커를 응시한다.
심문이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누가 나에게 용서한다 표를 던진 것인가. 하, 하며 허탈한 웃음을 낸다. 밖의 인간들의 표에 대해서는, 뭐. 복잡한 감정이다. 동시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귀에 걸린 두 귀걸이가 무겁다. 허나 그 것을 푸는 법은 몰라, 그 유려한 장식을 만지작 거린다. 푸는 법을 생각하는 것 조차 모독적이라, 결국 그 장신구에서 손을 뗀다. 대신, 소매를 펴 옷 매무새를 정리한다.
침착하고 신사적인, 어찌 보면 무심해뵈는 태도로 사마엘이 우리를 맞이한다. 심문에 맞추어 배치된 재판장은 평소와 같이 적막하고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럼에도 어느정도 침착함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많은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기 때문이겠지. 내 옆의 다른 죄인들과 함께.
"그 선서문을 읽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겠군요. 기념 삼아 오늘만은 진심을 다 해 읽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후후."
'나는 심문에 최선을 다 할 것과 죄인을 증거에 의해 진실하게 평결할 것을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나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기로 맹세합니다.'
>>936 제제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해. (당신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걸까요, 권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내리는 대답을, 설령 어떤 대답이라 하더라도,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그럴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 것 같았거든.)
>>955 제제 ...... 일조는 했겠지. (웃기려고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웃음 터진 부분에 심통이 나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럼 마음 놓고. 우선... 용서받지 못 한 사람과 용서받은 사람 간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니. 나한테 들은 대답 말고, 네 생각을 듣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