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에 나도 녹차를 마셨다.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이냐며, 정말 귀찮지 않냐며 일일이 확인하는건 진짜 귀찮고,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평소같으면 이러지 않는데. 좀 더 날 숨겨야 하는데, 연습하지 않고 친구들과 있을때는 그냥저냥 평범한 우마무스메로 잘 대하고 있는데. 역시 짜증난단 말야. 당신이 처음 생긴 트레이너여서일까, 자꾸 의지하게 돼. 그동안 불안했던것에 보답을 달라는듯 떼를 써버리게 돼. 사실 이러지 않는게 좋았을까? 여기까진 어쩐 일로 왔냐고 장난스럽게 물으면서, 루어를 벌레인척 들이밀며 장난을 치는게 나았을까.
"도쿄에서, 츠나지로 온 지는 얼마나 됐어?"
"여기, 참 조용하고 좋은 동네야. 이곳에서 태어나서 기뻐. 내가 사랑하는 고향이니까. 하지만, 역시 우마무스메라면 달리고 싶잖아."
"달리고, 달려서 1착이 되고 싶어. 아니, 일본 제일이 되고 싶어. 그렇지만 여기에 있다는게, 이런 변두리의 데뷔전에서조차 승리하지 못했다는게 자꾸 날 불안하게 해."
이런 말을 뱉는 나의 눈을 가리키며, 당신은 웃었다. 그 모습에 어쩐지 지금까지 고민했던게 바보같이 느껴져서, 나도 당신을 따라 웃어버렸다.
"그래, 달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낫겠지."
"달리지 못해서, 누구도 날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더이상 내겐 살아갈 이유가 없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일도 열심히 훈련해야겠지."
기지개를 쭉 펴며, 만족했다는듯 길게 숨을 내뱉었다.
"흐음... 좋아, 얘기해봐. 나도 들어주는것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말야. 트레이너도 날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고."
>>974 조용히 유키무라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하고 있던 니시카타 미즈호가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아. 이 아이는 정말로 달리기에 진심인 아이구나. 하고 말이다. 이 정도로 레이스에 진심인 아이는 이곳에서도 많이 보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레이스에 진심인 아이를. 목표가 뚜렷한 아이를 내키지 않아할 트레이너는 어디에도 없다. 가만히 유키무라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미즈호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츠나지에 온지 얼마 안되어서 이곳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알고 있답니다. 유키무라 씨는, 첫 데뷔전에서 반드시 1착을 하실 수 있으실 거에요. 지금과 같은 트레이닝을 계속 받게 되신다면 말이에요. " "그러니 걱정 말고 트레이닝에 집중해 주시길. 때로는 지나친 잡념이 독이 될 때도 있답니다. "
".... 트레이닝을 지도할 경우에도 말이지요. " 라 덧붙이며 니시카타 미즈호는 다시금 녹차를 홀짝이더니, 말을 이었다.
"내일도 똑같이 더트 2000미터 훈련이랍니다. " "제 사전에 있어 대상경주에 출주하지 못할 우마무스메는 없을 거에요. 비록 거리에 따라 목표하는 것이 다르다고 해도.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어요. 그것이 우리 트레이너들이 해야 하는 과업이니까요. "
달리지 못해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거나, 그런 말에는 대답해 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내일의 플랜을 전해줄 뿐이다. 고민을 얘기해 보라는 유키무라의 말에 말없이 웃고는 미즈호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당신과 같은 목표가 뚜렷한 우마무스메가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그만큼 불안한 점이 있어요. 내가 이 모든 아이들의 기대에 온전히 부응해 줄수 있을까? 내가 이 아이들이 원하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건 [ 당연히 ] 해야 하는 것이기에 고민하지 않아요. 정말 제가 고민되는 건 이것이랍니다. "
또 다시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것.
"내가.... 이 아이들의 기대에 너무 부응해준 나머지, 지나치게 무리하게 하여 다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 "그것이 제가 하고 있는 걱정이에요. 유키무라 씨. 당신은 연습 도중이나 경기에 나갔을 때 다칠 걱정을 하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