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로시난테가 내다! 브루스 로시난테 도시락을 빼묵었는데 내가 썽을 내고 있으면 내가 브루스 로시난테겠제!?!?!"
세상에 이런 스고이 엉망진창 통성명이 있단 말인가! '네가 내 도시락을 훔쳐먹었다'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이리도 지난한 일이었던가! 실로 말법적인 의사소통, 붓다!
"근데 아니 그... 진짜 안 비나?"
브루스 로시난테는 갸우뚱하면서 도시락통 구석의 네임택을 본다. 내인테는 잘 비는데, 같은 말을 뇌까리면서. 이녀석 시력 좋은 모양이다. 이름을 더 크게 써붙여놔야 될랑가- 하고 생각하다가 브루스는 마사바의 먼지를 마저 털어주는 것을 선택했다. 후딱 털어주고 밥이나 묵어야지 안되겠다.. 도시락통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냅킨을 꺼내서 마사바의 눈가에 눈물과 먼지가 뭉친 것을 닦아주고 나서야, 브루스는 마침내 아침식사를 시작할 기분이 됐다.
아니, 안 됐다. 아직 옆에서 고통을 채 다 사그라뜨리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는 마사바를 보고, 로시난테는 새 당근 가라아게 하나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서 마사바의 입가에 디밀어준다.
"아나. 우메보시얼굴 고만하고 하나 무라. 내 하나 주께."
인과관계가 어쨌건 아직 통성명 못한 이 우마무스메를 이꼴로 만든 게 자신이라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고, 아프고 힘들 때에는 맛있는 거 묵는 게 약인기라- 라는 것이 브루스의 신념이기도 했다.
최근 며칠간은 정말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전입을 위해 서류 처리를 하고 각종 수속을 밟느라 바빴기에. 모든 절차가 끝난 뒤 코우는 지방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츠나지에는 과연 어떤 원석들이 빛나고 있을지 그리고 그녀들을 멋지게 키워낼 수 있을지 은근한 기대와 희망을 품은 채.
그리고 츠나지 트레이닝 센터 학원으로의 첫 출근날. 코우는 먼저 배정받은 트레이너실에 짐을 풀고, 교내를 나섰다. 시설들이 다소 낙후되어 있지만 아이들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할 터. 이른 시간에도 열심히 운동장을 도는 우마무스메들을 지켜보며 코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그녀들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428 니시카타 미즈호가 이곳 츠나지에의 수속을 밟은 지 꽤 되었고, [ 전담 ] 트레이너가 된 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그날도 니시카타 미즈호는 오늘도 트레이닝 코스를 준비하기 위해 일찍 출근해 운동장에 나와있는 상황이었다. 트레이닝복들 사이에 잘 정돈된 하얀 기모노를 입은 채로 운동장 계단에 앉아있는 모습은 확실히 이질적인 모습이다. 그 이질적인 모습을 한 그녀는 뒤편에서, 교정에서 운동장으로 나오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저 사람. 그 중앙의 [ 야나기하라 ] 가 아닌가? 그 사람이 어째서, 이곳 츠나지에 와 있는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에 니시카타 미즈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마무스메들을 지켜보고 있는 그를 향해 다가서려 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다른 우마무스메들이 신경쓸 필요 없을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걸으려 하였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답니다. 야나기하라 트레이너님. "
놀랍고,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워 하는 듯한 어조다. 당연하다. 같은 [ 중앙 출신 ] 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결국 갑갑했는지 지갑에서 학생증을 꺼내서 보여주는 사칭범(?). 그러나 그 학생증에는 분명히 지금 이 땅딸막한 단발머리 우마무스메의 사진과 함께, 브루스 로시난테라는 이름이 분명히 적혀있다. 마사바가 생각하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과는 별개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우마무스메도 로시난테가 맞긴 한 모양이다. '원조에게서 이름을 따와 붙였다'는 개념은 우마무스메에게 너무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글나... 마사바 콩코드, 이름 이쁘네."
복잡한 이야기는 제끼기로 빠르게 결정한 브루스.
"원래같으면 더 일찍 들어와가 진작에 묵었어야 했는데, 중간에 다른 일이 있어가 길을 좀 돌아오니라꼬 늦었다."
마사바의 입안에 당근 가라아게 하나를 밀어넣어주고, 마침내 자신도 가장 좋아하는 메뉴의 첫입을 먹는다. 음, 오늘도 잘 튀겨졌어. 당근 가라아게 하나를 밀어넣고, 다음에는 주먹밥 하나를 꺼내 한입 왕 베어무는 브루스. 직접 만들어온거야? 하는 마사바의 질문에는, 빵빵하게 부푼 볼로 빵끗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주먹밥부터 샌드위치랑 유부초밥이랑 싹-다 내가 맨든 기데이!
츠나지의 해변가에 작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학교도 트레이닝도 쉬고, 가게도 한산해진 틈을 타 빠져나온 메이사 프로키온. 그녀가 그 그림자의 주인이었다. 메이사는 천천히 준비운동을 하면서 발에서 느껴지는 모래의 감촉을 확인했다. 더트 마장보다 발이 조금 더 들어가는 느낌. 하지만 달리기에는 충분하다. 발로 모래에 선을 그어 간이 게이트 삼는다. 게이트인 완료, 출주 준비.. 완료.
"그럼, 스타트~"
츠나센의 트랙, 경기장의 트랙과 다른 곳이지만 각 코너에 도달하는 시간 정도는 얼추 상상할 수 있다. 천천히, 자신의 각질에 맞춰 달린다. 당장 마음껏 달려나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 건 좋지만 역시, 이런 지방에서 레이스로 이름을 날리는 건 무리다. 중앙에 진출하는 것도 무리다. 중앙은 너무나도 멀어서, 올려다보면 볼수록 손이 닿지 않는 저 머나먼 별 같은 곳이다. 그렇기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얼버무렸다. [달린다]는 어렵고 험한 길보다 더 편한 길을 찾겠다고.
생각에 잠겨있어도 메이사의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생각하는 도중에도, 레이스로 성공하려는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 스스로에게 내내 설명하는 도중에도― 레이스는 멈추지 않는다.
"이제 곧 4코너― 간다!!"
아껴두던 각력을 마음껏 뽐낼 타이밍이다. 쥐고 있던 고삐를 놓는다. 해방된 마음이, 다리가 힘차게 모래사장을 딛고 차낸다. 달린다. 달린다. 흐르는 땀에, 소금기가 느껴지는 바닷바람에, 발로 차는 땅의 감각에, 달리고 있다는 그 사실에 메이사의 눈은 반짝인다. 닿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던 그 별들만큼이나.
한참을 달리다가 점점 감속한다. 트랙이었다면 이미 골을 넘어섰을 지점이다.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고른다. 개인 트레이닝이 아니었으니, 바라보는 것은 초시계가 아닌 바다다. 그리고 바다에서 자신이 뛰어왔던 모래사장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다른 우마무스메가 있었다. 반짝이던 눈은 다시 장난스레 휘어져버린다.
"너도 뛰려고 온 거야? 흐응~"
간다!라던가 이것저것 외쳐버린 느낌이 드는데, 설마 다 들었을까. 그런 부끄러움이 보자마자 떠오른 말과 섞여 짓궂은 말로 변해 나와버린다.
고작 도시락 하나를 빼앗기 위해 마술을 선보이는 마술사는 없지 않을까? 학생증도 위조야 가능하겠지만 의심의 싹은 지긋이 밟아 눌렀다. 더 의심할 건덕지도 없고.
"그렇지? 이름값에 걸맞게 언젠가는 최고속의 우마무스메로 G1을 대도주로 승리할거야!"
큰 포부를 드러내며 브루스 로시난테의 사정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그러면 브런치 먹고 점심 먹는 모양세가 되는거네. 볼이 빵빵하게 부푼 모습을 보자 하니 장난기가 돋아서 한 손으로는 그 빵빵한 볼을 꾹 누르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피크닉 바구니 안으로 손을 늠험하게 집어넣어 유부초밥을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