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 >>736 아잇 잘렸잖아...~!!!! 으음~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는데 늘봄이는 후다닥 몸이 재빠르고 유현이는 몸 둔함... 자주 부딪침... 맹...이라는 사실 착안해서 화유현씨가 길 가다 넘어져서 어디에 앉아 있던 늘봄이한테 대뜸 박치기 공격 해버리는 그런 상황 어떤가요(영 클리셰스러운 이하생략2)
17세, 한창 혈기 왕성하고 바람에 구르는 낙엽에도 눈물짓는 감성 풍부한 시기. 몸에 도는 피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기행도 자주 벌이고 매일 비슷비슷해도 별 이상 없는 하루하루를 꼭 각자 달라야 한다는 것 마냥 잡고 늘어질 구석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없으면 끝끝내 만들어 내고야 마는 잡스런 기운이 넘치는 나이. 이 나이대의 학생들은 대개 지루함을 견디는 인내력이 한없이 부족하곤 했고 늘봄도 거기에서 크게 예외인 부류는 아니었던지라, 그는 이따금 남는 여가 시간마다 손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곧잘 꼼지락 거리거나 신체 단련으로 참칭한 뜀박질을 하며 1분 1초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곤 했다. 강도 높은 수업에 연달아 시달리거나 해서 특별히 신체적으로 피로했던 하루가 아니라면 이제 거의 버릇같이 된 가벼운 뜀박질로 평생에 걸쳐 피부 아래 스며든 한기를 수분으로써 배출해 내 몸의 건강을 독려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기동하도록 유도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딱히 수업이 힘들지도 않았고 특별히 힘 뺄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힘이 빠지던 다리, 늘어지는 사지와 하품만 연달아 나오는 입술, 가물가물 잠기는 눈꺼풀 따위의 반응은 썩 기이했고 영문 모를 것이었다. 늘봄은 움직이지 못해 도로 극을 달리는 감정을 삭이며 머릿속으로 이상 현상의 원인을 이 잡듯 뒤지다가 이내 포기했다. 좌우간에 오늘은 텄다. 괜히 무리했다가 병이라도 나면 불난 데 기름 붓는 꼴이 될 게 뻔하니 얌전히 있는 게 답이다.
그래도 말이지,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기엔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손늘봄 가라사대. 시간이란 금보다도 귀한 것이다. 이건 좀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지만, 적어도 오늘은 더더욱, 그런 기분이라고.
"심심해 죽겠다!"
뭐라도 해야 한다. 늘봄은 충동적으로 손에 집히는 걸 아무거나 껴안고 기숙사를 나섰다.
설렁설렁 거닐며 살랑살랑 들어오는 밤바람을 맞다가 그제야 손에 들린 것을 확인해보니 그 정체는 언젠가 만들다 말았던 자그마한 곰인형이다. 눈이 애매하게 달리다 말아서 한쪽만 있는 모습이 조금 기괴한 한편 게으름과 방치의 말로 같아 안쓰럽기도 해서 늘봄은 구비하고 다니던 반짇고리를 급히 꺼내고 안에서 굴러다니던 실과 바늘, 그리고 곰의 반대쪽 눈이 될 작은 구슬을 꺼냈다. 그래, 오늘 밤 날 잡았다. 내 너를 완벽한 자태로 완성시키리라. 비장한 다짐을 마음 속으로 읊조린 늘봄은 바늘에 실을 끼우다가 구슬을 떨어뜨리고 만다.
떨어졌다. 작은 구슬이 톡... 통통... 도르륵... 거의 들리지도 않을 소음을 만들며 바닥을 구른다. 몇초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하니 구르는 걸 보고만 있던 늘봄은 퍼뜩 정신을 차린다.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저 구슬과 같은 색깔의 구슬은 이제 없다. 저걸 잃어버리면 다른 구슬을 써야 하는데!
"앗, 어. 야! 야아! 안돼! 이 자식아, 어딜 가! 멈춰! 멈추라고!"
구슬에는 귀가 없으니 알아듣고 딱 잘 멈출 리가 없는데도 늘봄은 무의미한 비명만 지르다가 뒤늦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작디작은 구슬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춰버렸고, 결국 늘봄은 몸을 쪼그려 바닥을 짚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의 접촉사고가 발생하는 건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복도의 사각지대, 쭈그린 채 무릎걸음 하는 작은 체구의 학생, 어두움... 모든 요소가 두 동년배의 만남을 재촉하고 있었다. 가능한 안 좋은 방향으로.
류 가에서 죄인을 구속-집행 하는 행렬은 그 분위기 흉흉하나 매우 별나다는 말 종종 들었다. 열 명 남짓으로 무리 지은 이 행렬은 모두 머리부터 발 끝까지 붉은 장속 걸친 것 물론이오 붉은 베일로 얼굴마저 가려놓아 낮에 보면 모를까 밤길에 마주치면 숨 앗으러 온 괴이라 착각하고도 남았다. 거기에 전원 각기 다른 무구를 소지하고 있어 그 기세가 더욱 험악했다. 무장을 곁든 적색 일색의 차림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그들의 장속 등판에 빛 다른 붉은 실로 수놓은 연꽃이었다. 이 자수 하나가 유독 그리고 남달리 인상적이었다. 특히 과격한 현장을 거치고 온 후에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붉게 번들거려 더욱 존재를 드러냈다. 마치 그 자수가 피를 당겨 머금은 듯이 말이다. 위와 같이 눈에 띄는 모양새이지만 이들은 낮과 밤 가리지 않고 늘 당당하게 활보하며 그들의 소임을 다했다. 이렇다보니 하늘섬의 사람들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종종 볼 수 있었고 몇몇은 이들을 포함한 류 가의 사람을 가리켜 '붉은 연꽃' 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이보게. 그거 들었소? 령도에 '붉은 연꽃' 다섯이 다녀갔다더군." "아- 그거 말인가. 진작 들었지 이 사람아! 헌데 이번엔 별 일 없었다더만?" "일이 없다니. 죄인이 그새 도망갔다던가?" "아닐세 아니여. 그 반대여! 글쎄. 그 집 안에 고대로 가만히 있었다잖나." "아이고 세상에. 집 안에 그대로? 그- 제 부모며 형제며 제 손으로 다 도륙내놓은 그 집에?" "그렇다니까! 나올 때도 시뻘겋게 뒤집어쓴 그대로여가지고 그네들보다 벌갰다고 하더만. 하도 숭해서 그 다섯 중 하나가 제 옷으로 덮어서 데려갔다던데." "어허- 그리 얌전히 잡힐 것이면 뭣하러 그런 짓을 저질렀을꼬." "낸들 아나. 아무튼 잡혔으니 걱정할 일 없을걸세. 잡혀가서 나온 적 없지 않나. 거기." "그거야 그렇지. 비린 얘기 했더니 혀가 영 그렇구먼. 주점에나 갑세. 지짐에 곡주 한 사발 축이고 가자고." "좋지. 허허."
타인의 치부 혹은 알지 못 하는 부분을 건드리는 것은 자중해야 할 일이다. 긁어 부스럼이란 말이 괜히 있을까. 방금 제가 도령에게 물은 말 역시 그렇다. 어느 모로 보나 그리 좋지 못 한 부분임이 명확한데. 도령도 죽을 수 있다 경고하건만. 온화 표정 그저 흥미로이 웃을 뿐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인가. 글쎄- 한낱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언젠가 죽을 것이 분명한 팔자인데. 고작 죽음이 두려워 무엇을 못 할까."
낄낄. 마냥 가볍게 웃으며 도령 하는 행동 물끄러미 보았다. 상자에서 케이크 꺼내 먹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니. 그저 볼 뿐이었다. 제 몫을 챙기려거나 먹으려는 기색 전혀 없이 보고 있다가 오물대는 도령의 뺨 쿡 눌러보려 했다. 마치 먹는 것이 신기한 듯이.
"도령 그렇게 말하니 물러나지. 라고 하고 싶으나 궁금해 한 시간 제법 길어 그냥은 못 무르겠구만. 내 타협하여 왜 알려고 하면 안 되는지 정도는 들어야겠어. 그것도 안 되나?"
그 정도면 많이 물러줬다. 그런 느낌으로 말하고 탁자에 괴던 팔 내렸다. 때 맞춰 주문한 음료 나와서다. 빨간 자몽에이드는 도령의 앞에 그리고 홍차가 담긴 머그잔과 진한 갈색 액상 담긴 샷잔은 제 앞에 놓였다. 이미 레몬 한 조각 들어간 홍차에 샷잔에 담긴 액상 아낌없이 붓고 같이 나온 티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붉은 찻물에 갈색빛 흩어져 진한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간다. 동시에 코를 간질이는 달짝지근한 향 흘렀다. 익숙하게 향 살짝 즐기곤 아직은 김 모락모락 나는 기묘한 홍차 천천히 마시며 시선 물끄러미 도령 보았다. 이번은 대답 해 줄지 아닐지 지켜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