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그 방황이 길게 이어지기 전에 너무나도 확고한 존엄성을 지닌 존재를 너무 일찍 마주했다는 것. 그리고 그때 이후로 좀 더 남들과 비슷해질수도 있었던 제 방향성은 키를 꺾어 정반대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 그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었다. 그 기억을 되짚어본다면 아련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후회하거나 자책하지는 않았다. 단 한번의 알현으로 제가 나아갈 길이 단번에 트인 셈이었으니 오히려 고개 깊이 숙이며 감사의 뜻 전해도 모자랐다.
"으음~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끝까지 모르겠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나도 환영이야~"
어쩌면 자신도 이 여학생에게 그런 길잡이가 되어줄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자신은 전지전능하지 못하기에 그 한계가 명확히 존재하게 될 테지만, 그럼에도 제 사람을 데리고 이끌어갈수 있게 된다면 자신에게 득이면 득이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먹여살릴 입 하나 늘어난다고 해서 가문이 흔들리지도 않게 될 것이며, 제 방향성이 틀어지지도 않으며, 어차피 자신은 곧 당주 자리에 오를 사람이었으니 그 누가 불편함을 표할 수 있으랴. 임씨 가문에서의 당주는 늘 그런 위치였다. 가문원 중 누구도 당주의 의견에 불만을 토로하지 못했으며, 신을 제외한다면 가문 내에서 절대적인 사람. 그런 존재였으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며 주저앉으려 하는 여학생을 가현은 얼른 부축했다. 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했는데, 이 여학생이 이 정도로 지칠 사람은 아니었는데. 왤까? 의문을 뒤로 한 채 괜찮느냐는 물음을 건네며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이윽고 옷을 바꿔입고 나올 적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번지게 되었다.
"조금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그렇게 입고 다니면 적어도 덜 더울거야~ 보기에도 시원시원해서, 좀 더 활동적인 느낌도 주고.... 어머나."
어떤 느낌인지 들으려 하던 가현은 여학생에게 힘없이 밀려 벽에 살살 기댄다. 말로만 설명해줘도 충분하지만 거기에 행동까지 곁들여지니 더욱 완벽해지는 느낌이었다. 늘 제게 휘둘리기만 하던 사람의 다른 모습은- 조금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했으며.
"으응, 좋아... 언제까지고, 계속, 헤어나오지 못할 그런 꿈을 선사해주지 않으련... 으음. 그런가~? 그리고 이 정도는 무리 축에도 안 들어가니까 걱정하지 마~"
이제는 되려 자신이 그 상황에 몰입해서 사랑에 빠진 양 황홀하게 중얼거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이윽고 가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역시 최대한 저 여학생의 느낌을 살리게끔 골라줬다고는 해도, 자신의 센스가 녹아날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으니. 이제는 여학생의 옷 고르는 스타일도 조금 익혀두는것도 나쁘지 않지 싶었다. 총총거리며 옷을 고르고,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나오기까지 기다린 가현은 이윽고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그치만 니오가 고른 옷도 충분히 멋있는걸~? 뭐랄까. 조금 더 펑키한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네 매력, 한껏 드러나서 좋은것 같아~"
펑키하면서도 하드하지는 않은 타입의 의상. 여학생의 하얀 머리카락과 대비를 이루며 적당히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한참동안 눈에 담아두며 멋있으면서 귀엽다는 평을 남긴 가현은 옷을 조금 더 골랐다. 이번에는 제가 입을 것이었는데, 이왕 상황이 이렇게까지 왔으니 한껏 만끽해보자는 생각으로 탈의실으로 들어가 자신이 고른 옷으로 갈아입은 채 나온다.
"어때~? 이렇게 하면. 니오랑 조금 더 비슷한 느낌으로 보일까?"
여학생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더 하드한 느낌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이런 옷차림은 기분에 따라 입는 편이었으며, 자주 입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꽤 신선한 기분이었다. 너와 함께 꿈 속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니- 가끔은 옷차림도 그에 맞춰도 나쁠 건 없겠지.
>>2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딘가에 갇히고 시무룩 힝찌해지는게 내 캐릭터성이라면... 나는 순순히 그걸 받아들일.... 리 없자나~~~!! 담금주 엔딩은 안대!!! (통 와장창) ㅋㅋㅋㅋㅋㅋㅋㅋ 포인트를 아주 확실하게 잘 집어줬구나~~~! 낡고 지친 회사원... 그것은 바로 나 임가현주이기 때문에...(오열)
어때, 따라올래? 하고 덧붙이며 니오는 조금 더 세게 밀었다. 얼굴을 더 가까이 가져다대었다가 '그런 느낌~' 하고 말하며 웃으면서 떨어져나갔다. 지금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만 또 오늘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뜨고 이 꿈이 깬다면 지금 같은 시간은 꿈꾸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 더 과감하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어프로치하는 것이 지금 이 시간을 즐기는 법이자 이 시간을 대하고 기리는 법인 셈이다.
" 으응, 그래도 바지가 짧아서.. 조금 부끄러운 느낌.. "
옷을 갈아입은 지금도 아래가 허전했던 것이 생각났는지 니오는 다리를 배배꼬면서 치마를 몇 번인가 팔락거렸다.
" 응. 칭찬해주면 니오는 기뻐- 언니야가 좋아해주면 니오도 좋으니까. 펑키한 느낌이려나.. 응. 뭐랄까, 강해보이잖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 같은 느낌..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교복 입고 있으면.. 다들 똑같으니까 뭔가 만만해보여.. "
머리도 피부도 새하얗기 때문에 이렇게 검은색으로 골라주면 대비가 되기 때문에 역으로 각자 더 어두워보이고 더 밝아보인다. 그것이 포인트라면 포인트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단색을 좋아했다. 검은색과 흰색은 어디다 섞어도 잘 어울리는 옷이니까. 니오는 손목에 걸고있는 팔찌를 몇 번인가 돌려보면서 스파이크가 썩 맘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 앗, 잘생겼어. "
갈아입고 온 모습을 본 니오는 또 퐁- 하는 효과음과 함께 눈에 작은 하트 두 개를 띄우곤 몸을 배배 꼬면서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보았다. 가끔 이렇게 사복입고 만나는 거 정말 괜찮을 것 같다. 깰 것만 같았던 위태위태한 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 니오는 아까 맨 처음 만났을 때 처럼 가까이 다가가서는 위를 올려다보며 에헤헤.. 하고 웃어보였다
" 언니야, 안 바쁘면 니오랑 놀자.... 아, 지금도 같이 놀고있지 참.. "
착각했네. 니오는 또 에헤헤~ 하고 웃으면서 배배 꼬인 몸을 가까이 가져가서는 팔을 허리에 둘러 꼭 안고 올려다보았다. 평소에도 이렇게 나긋나긋하게 꿈처럼 대해주면 좋을텐데. 학당에서 제일 잘 챙겨주는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학당에서 제일 두려운 사람이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목줄이 채인 개는 절대 주인에게 반항할 수 없지만, 가끔은 이런 꿈을 꾸기도 하는구나.
" 니오는 이거면 될 것 같아. 나머지는.. 좋지만, 언니야 돈이니까.. 막 아무거나 집어갈 수는 없고. 니오, 돈 많은 편이 아니라서.. "
세게 밀면 미는대로 얌전히 제 몸을 맡기며 짧은 숨결을 토해낸다. 벽에 더더욱 밀어붙여지는 압박감이 느껴졌으나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었는지 작게 웃으며 다시금 여학생을 바라본다. 자신의 성향만 놓고 본다면 목줄을 쥔 채 한껏 휘두르는 것이 좋지만 제 사람의 이런 모습에는 간혹 휘둘려주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주도권을 잡지 않아도 스스로가 오직 자신만을 바라봐주며 제 마음에 들게끔 굴어준다면 더더욱. 비로소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성취감이 느껴졌으나- 자신이 처음 언급하지 않았는가. 꿈은 언젠가는 깨어버리기 마련이라고. 그 잔잔한 여운을 한껏 남긴 채 결국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날이 온다고. 허나 지금은 그것까지는 생각에 담지 않기로 한 채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시 정리한다.
"적응이 안 되었던 모양이네? 그래도 늘 보던 모습이랑은 다른 느낌을 느낄수 있었으니까 나는 만족해~"
역시 자신에게 익숙한 것과 타인에게 익숙한 것은 다른 개념이었으니. 그래도 간간히 평소와는 다른 옷들을 입혀주면서 다른 모습을 비쳐볼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훗날 또 다시 이렇게 어우러질수 있었다면 좋을텐데- 하는 자그마한 일상적인 소망 하나가 피어오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니오가 기쁘면 나도 기쁘니까~ 앞으로도 많이 칭찬해줄게? 맞아. 보기에 비슷한 느낌이라면 같은 격으로 느껴지게 되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누가 우리 니오를 함부로 대할 수 있겠니. 내 사람인데."
여학생의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어주던 가현은 이윽고 눈높이를 맞춘 채 빙긋 웃는다. 마지막 문단에서 학당에서 여실 없이 보여주던 제 집착이 어렴풋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자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사람에 대해 한 없이 집착하고 갈망하며 소유하려 드는 사람. 이 연극이 막을 내리고 꿈에서 벗어난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수밖에 없는 사람. 허나, 실제 꿈과 또 다른 차이가 존재한다면 이것은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꾸게 해줄 수 있는 그런 꿈이었다는 것이니. 옷을 갈아입고 나올 적, 크롭티 특유의 휑한 느낌에 적응하려 애쓰던 가현은 여학생이 보여주는 반응을 보며 다시금 미소지었다.
"다행이다. 꽤 괜찮은가보네~ 지금도 놀고 있고, 하나도 안 바쁘지만... 우리 니오가 원한다면 기꺼이."
제 허리를 안고 올려다보는 여학생을 마주 안아주며, 다른 손으로는 다시금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황홀하고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안심하고 목줄을 놓는다면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기에, 절대 놓아줄 생각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지금은 잠깐이나마 제가 목줄을 쥐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
"응. 그러면 슬슬 계산하고 갈까? 나머지는 나중에 와서 다시 사도 되는거니까. 또 이렇게 같이 나올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다시금 탈의실로 들어가 처음의 그 옷으로 갈아입고, 계산을 위해 카운터 쪽으로 다가간다. 훗날 다시 이 꿈을 거닐기 위한 밑밥을 던져둔 채로.
"적룡이면 누굴 놀리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하나? 허어. 내 그런 규칙은 들어본 적도 없네만."
어째서 적룡인데, 라는 말 들었을 때. 온화 웃고 있었지만 가늘게 접힌 눈동자 서늘하게 시선 흘렸다. 학당에서 그런 규칙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고작 기숙사로 행실 나누는 것은 제가 썩 듣고 싶지 않은 말 중 하나였다. 그래. 요전날 제 누이들과 어울릴 적 비아냥댔던 청룡놈들이 그래서 얻어터졌지. 적룡이면 적룡답게? 알게 무어냐. 인생에 고작해야 여섯해 다니는 학당에 휘둘릴까보냐. 그러고 싶은 것들은 그러면 된다. 저만 아니면 되니.
그건 그렇고 이 도령 묘하게 말투가 바뀐 느낌인데.
소리칠 적이나 카페 보고 중얼댈 적 반말이 아니게 된 것 깨닫고 고개 슬핏 기울인다. 진지해지면 말투가 바뀌는 성격인가. 아무렴 어떠랴. 데려온 곳이 마음에 든 듯 하니 저도 그 뒤 따라 들어갔다.
딸랑딸랑 종소리 내는 문 열고 들어가면 엷은 회색빛 대리석 바닥과 말끔한 우윳빛 타일 깔린 벽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내부는 사용감 있는 의자와 소파에 탁자 몇몇개가 놓인 심플한 구조로 이미 손님 두어명이 각각 한 자리씩 앉아 있었다. 음악 소리 없이 조용한 카페 안에 갓 들어온 두 사람 분 발소리가 다각다각 울린다. 도령 딴데로 빠져나갈새라 얼른 어깨에 손 올린 온화 저어기 안쪽 향하며 말했다.
"자자. 이 시간엔 저기가 가장 앉을 만 하지. 저리로 갑세. 저기."
도령 뒤에서 양 어깨 잡고 슬슬 힘주어 앉고자 하는 자리로 유도하니 쉬이 빠져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이끄는 대로 가면 적당히 볕 드는 한켠에 둘이 쓰기엔 넉넉한 사이즈의 작은 소파 있는 자리 나온다. 딱 봐도 푹신해보이는 소파는 여태 걸은 다리 앉아서 쉬기에 딱이지 않았을까. 거기 앉는다면 그 옆에 온화 스윽 나란히 앉아 또 옆에 가까이 했겠지만. 어디든 앉은 뒤엔 때마침 탁자에 놓여 있던 메뉴표를 집어 도령 앞에 밀어주었을 것이다. 보고 고르라며 말이다.
"내가 살 테니 마음껏 고르시게. 나는 늘 마시는게 있으니 도령만 고르면 되네."
저는 여기 오면 적어도 음료는 하나만 마시곤 했기에 따로 볼 필요가 없었다. 얄팍한 종이 두 장으로 된 메뉴표는 한 장에 차와 에이드 등 음료들 있고 다른 한 장에 쿠키나 휘낭시에 등 간단한 디저트류 있었다. 온화 그 옆에서 턱 괴고 무얼 고를까 지켜보고 있었을테고.
현재 외부 홍보 트위터 계정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무례를 무릅쓰고 개입합니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여쭤 본 바는 situplay>1596591086>759-760 로, 수위에 대해서가 아닌, 총괄 입장에서의 참치 상황극판의 장점이 무엇인가 였음을 정정하겠습니다. 굳이 어장 별로 방문한 이유는 실제로 어장을 운영하는 캡틴 입장에서도 의견을 여쭤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수위 기준에 대한 논의는 굳이 물어볼 필요 없이 외부 홍보를 하냐 하지 않냐에 따라 갈리는 어장의 자유에 맡기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저희의 개입을 지나치지 않고 신경써 주신 점에 있어서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