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아진 불꽃이 방어막을 깨트리고 피해를 입혔다. 순간 비릿한 웃음이 지어졌다. 서로의 기량을 비교하며 공격과 방어를 연습하는 일종의 수행과도 같은 대련의 본질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
토고는 스태프에 모여진 의념을 포착한다. 그것을 휘두르려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토고는 총을 이용해 막으려 하다가 자신이 들고 있는 것은 고르돈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그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스태프를 쥔 그의 손목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려 한다. 허나 대응이 늦은 만큼, 확실하게 도깨비불에 맞아 토고는 피해를 입는다.
거리가 벌려진다. 흙벽이 세워져 그의 모습이 가려졌지만, 손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는지 스태프를 쥔 손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흙벽이 무너진다. 일부러 이런 걸 노린 건가? 거리를 벌리기 위함인가? ...그 정도라면 어울려줘도 될 것 같았다. 어쨌든, 사정거리에만 들지 않으면 되니까.
토고는 그와의 간격은 유지한 채, 옆으로 뛴다. 흙벽이 무너지는 방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며 그를 향해 의념탄을 쏘아대며 견제와 더불어 공격을 날린다.
태어난 게 잘못인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잘못인가? 개개인의 잘못인가? 토고는 그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이러는 이유도, 어른답지 못한 이유이기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어찌됐을까.
토고는 꾹 닫은 입을 천천히 연다.
"싫지 않다."
사실이다. 강산 이라는 사람만 두고 본다면, 싫어하진 않는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긴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확대한다면 싫다. 좋은 집 자제로 태어나서 가문의 비전과, 방랑이라는 일탈을 목숨의 위협 없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그것이 싫다.
"근데, 싫다. 누군가는 발악을 해야 발끝이 겨우 닿는데 누군가는 별 다른 노력 안 해도 쉽사리 얻어버리는 그 운명이 싫다." "아예 무지했으면 모를까.. 적당히 머리 굵어지니 눈에 다 들어오는데, 이 화를 표현 할 수 없는 현실이 싫고" "차라리 나쁜 놈이었음 화를 내든 내가 피하든 욕을 하든 뭘 하겠는데 사람이 좋은 게 싫다."
총성이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산은 쉽사리 고개를 들지 못한다. 싫지 않다면 왜?라는 의문이 떠오를 때쯤 토고의 답이 이어지고 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
토고의 답이 끝나자 이번엔 강산 쪽이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침묵한다. 분명 강산도 모든 걸 마냥 쉽게만 얻은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한때는 원하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이 있었고, 또 형제들이나 부모와 비교당하던 때가 있었다. 또 그가 방랑하는 동안 아무런 고생이나 위협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특별반 입학 조건인 레벨 20은 재능이 있다 한들 결코 고생 없이 달성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고, 가문의 비전 역시 그에게 비전을 익힐 의지가 전혀 없었더라면 여전히 익히지 못한 채로 남았읗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고생했다'같은 말은 그에게 변명처럼 들릴 것이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고?"
지난 날들의 감정을 담아 강산의 입에서 결국 짜증섞인 한 마디가 나와버린다.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그래요 그쪽 사정 모르고 눈치없이 나댄 건 제가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근데 우리 오마니가 국가유공자라서 내 집안 환경이 이런 건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어차피 토고의 말대로 타고난 환경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강산은 앉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더니 엘 데모르의 시전을 해제한다. 발판이 사라짐과 동시에 강산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더니...
"못 나면 우리 오마니 반도 못 따라간다고 ×랄, 잘 나면 집안 빨 받고 잘 나가는 거라고 ×랄! 그냥 때리라우."
다시 자세를 잡으며 욕설과 함께 눈을 부릅뜨더니, 염동 마도로 토고를 세게 밀쳐내려 한다. 그딴 이유로 미움받는거면 이유없이 미움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도 않으니, 차라리!
강산주 그... 토고는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지금 강산이의 저런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하고 있으니까... 착한 사람이 무너졌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너도 그런 인간이야.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서 희열 느낄 것 같거든..? 그런데 이걸 그대로 표현해도 될까..? 강산이랑 관계가 엄청 틀어질 것 같은데 그러면 최대한 다른 방향으로 잡아보고
크크... 크하하하 토고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디어 그의 또 다른 면이 튀어 나왔으니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인 척 했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이다. 화를 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사람이다. 그 꿈을 가지고서 타인에게 그리 말하는 모습이 썩 보기 좋았다. 드디어 나와 같은 진흙탕에 구르는 구나 하는 희열감도 들었다. 그러나 이게 정말 옳은 걸까. 내가 운명이란 것이 증오스럽다고,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럽다고 타인에게 이러한 감정을 품고 그를 해하는 행위를 해도 되는 걸까.
"..."
토고는 웃음을 멈춘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염동파를 피하지도 못하고 토고는 그대로 직격하여 쓰러진다. 육신에 가해지는 충격보다 깊은 바다에 빠진 듯한 정신이 더 괴로웠다.
"그랴, 니는 항상 이렇지."
나쁜 뜻은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토고는 몸을 일으킨다. 참으로 증오스럽고 혐오스럽고, 이러한 감정을 어디로 토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항상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거. 더러워 지는 거 지 혼자면 되지 굳이 남까지 더럽히지 않는 거."